[문화산책] 울산매일신문 문화산책(2019.7.31)
이석민 시인의 시집 『전지적 사물시점』
플라톤은 '신의 의자'를 목수가 만들고 '목수의 의자'를 화가가 그렸으니 '화가의 의자'는 이데아에서 멀어진 거짓의 세계이니 추방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화가의 의자'는 '목수의 의자'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 '목수의 의자'를 통해 '신의 의자'를 추구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천 년도 훨씬 이전에 관점으로 예술을 바라본다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불성설(語不成說)일지 모르지만 이런 필자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근거로서 이석민 시인의 『전지적 사물 시점』이라는 시집을 들여다보자.
소설에서 작가가 등장인물의 내면 심리를 다 알고 서술하는 시점을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 한다. 이 시인은 사물 하나하나를 "전부 요긴한 것들입니다. 물론 당장 쓰이지 않기에 쓸모없어 보이기도 한 것들도 있지요. 주방에 가 보니 이런저런 물건들이 꽤 많습니다. 거실에도 여러 물건들이 보이고요. 그래서 이 사물들을 그림으로 그리고 그것들에게서 깨닫게 된 생각을 시(詩)처럼 짧게 나타내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즉 '목수의 의자'를 통해 '신의 의자'를 추구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시(詩)의 표현 기법 중에 하나로 '투사(投射)'가 있다. 사물에 내 마음을 비추어 그 사물의 내면 심리를 묘사하여 표현하는 기법이다. 사람이 생명이 없는 사물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물의 언어를 듣는다면 말 그대로 미쳤다고 한다. 하지만 내 마음을 사물에 투사하면 사물의 언어를 쉽게 들을 수 있다. 그것이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평범한 사란들이 그렇게 하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시인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 고요히 사물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쓴다.
이 시인의 아버지는 건축 디자인을 전공하셨는데 유독 이 시인이 그림 그리는 솜씨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국어교사로 30여 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도 자투리 시간이 나면 그림을 그려 페이스북에 올리곤 했다. 어디 그 뿐인가. 필자의 시집 『통일의 물꼬를 트라』의 삽화도 그려주곤 했다. 흰 종이에 펜 하나만 있으면 실사하여 그린 그림을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하곤 한다. 어쩌면 국어 교사를 하면서도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미술적 재능은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 시인은 1989년 동양문학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하여 한겨레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도 등단한 다재다능한 작가이다. 시집 『감사하며 살기』, 『나 지녕 사모사랑햄서』, 『나는 나이고 당신은 당신일 때』, 『작은 사랑의 고백 노래』 등의 시집을 출간했다. 그러나 시인은 웬지 답답했을 것이다. 날마다 '목수의 의자'를 통해 '신의 의자'를 추구하면서 사물들의 언어를 담아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전지적 사물 시점』이라는 시집이다.
'집게'를 똑같이 그리고 집게의 언어를 적었다. '무엇을 집기 위해서는 먼저 입을 벌리기 위한 힘이 필요하다. 많은 힘을 줄수록 더 큰 것을 물 수 있다.' 여기서 '입'을 벌린다는 것은 '인생의 욕구'이다. 무엇인가 많이 가지려면 그만큼 노력을 경주해야 함을 말한다. 즉, 집게 하나를 그리는 주술행위를 통해 집게의 언어를 불러내는 것이다. 그 언어가 인생의 의미를 담은 시(詩)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작업은 오직 미술적 재능과 시적 재능을 겸비한 이 시인만의 손에서 만들어진 작품집이 아닌가.
어쩌면 플라톤이 보면, '화가의 의자'가 그려진 그림 위에 '허상의 언어'가 씌어졌으니 무덤에서 뛰쳐나올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플라톤이 뛰쳐나오든 말든 이 시인의 예술적 재능이 합산하여 『전지적 사물 시점』이 만들어졌고 이 시집은 많은 사람들의 손에서 즐겁게 회자될 것이다. 길고 복잡하고 많이 사색하게 하는 여느 시들보다 짧고 간결하면서 선명한 이미지를 통해 사물들의 언어가 각인된다. 그러니 스마트폰에 갇혀 1년이 되어도 이렇다 할 책 하나 읽지 않는 '호모 스마트쿠스(Homo Smartcus)'들의 필독서로 추천한다.
(신호현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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