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복지사회로 가는 길
지인 중에 중동고등학교 학부모가 있는데 그가 말하길 “중동고에는 이건희가 지어준 체육관이 있는데…”라고 말하면서 자부심을 갖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우리나라 최고 갑부가 지어준 건물에서 아이들이 공부를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밝게 하는 의미를 담고 있어 듣기에 좋았다. 삼성은 우리나라 최대의 그룹으로 글로벌 브랜드컨설팅그룹 한국법인에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브랜드 가치 1위(2015), 세계 7위(2014)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은 복지재단을 만들어 전국적으로 삼성어린이집을 건립, 운영하고 나아가 청소년, 장애인, 노인 및 지역사회의 구성원들을 위한 다양하고 체계적인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그럼에도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삼성에 대해 물어보면, 학생들은 삼성의 부정적인 측면을 떠올리고 있다. 이는 삼성이 기업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문화사업, 장학사업, 복지사업에 힘을 기울여 사회에 환원해도 언론에서 삼성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을 지적한 이미지가 학생들에게 더 크게 자리잡고 있다. 비록 학부모의 입에서 이건희 회장을 높이지는 않았어도 내심 ‘이건희 회장이 지어준’ 것을 기뻐 자랑하고 있다. ‘삼성에서 지어줬으니 얼마나 잘 지었을까.’하는 생각에 한 번 가보고 싶었고, ‘우리 학교에도 체육관 시설이 열악한데 이건희 회장 돌아가시기 전에 안 지어주시려나.’하는 마음이 들었다.
교육부에서 살림을 쪼개 쓰다 보니 개개 학교에 체육관을 건설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안다. 더구나 요즘은 교육예산에서 시설비보다는 급식비나 보육비 등 학생 복지비로 많이 들어가고 교육프로그램 사업비로 많이 지출되기에 체육관 건립과 같이 돈이 많이 들어가는 사업비를 타내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그러니 삼성과 같은 대기업에서 돈을 많이 벌어 교육비에도 투자하고 복지비에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삼성이 그처럼 노력하고도 학생들의 이미지 속에는 기업이 돈 벌어 사회에 환원한다는 생각보다는 자식이나 가족의 배만 불린다고 생각할 것이다.
삼성이 이 정도이니 다른 기업은 더욱 열악할 것이요, 사회에 환원해도 빛이 안 날 것이다. 더구나 열악한 상황에 놓인 기업들은 당장 회사를 이끌어가기에도 급급하니 복지나 환원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러다보니 기업은 기술과 투자로 이윤을 창출하여 회장 자신과 가족의 배를 불린다는 생각을 접기가 어렵다. 기업이 이런 이미지로 인식을 주니 대학은 등록금을 올려 건물을 짓고 확장에 열을 올리고도 남는 돈을 환원하지 못해 축재를 한다. 가장 모범이 되어야 할 종교는 어떤가. 신도들의 헌금이나 시주를 받아 건물을 짓고, 땅을 사서 교세 확장에만 혈안이 되어 주변에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일에 소홀히 하고 있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에 굶주리고 가난했던 추억이 배를 움켜쥐고 이만큼 잘 살도록 노력하는데 원동력이 되었기에 더 이상 배고프고 싶지 않고 내 자식들에게도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부모 마음, 어른의 마음을 어찌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어떻게 벌고 어떻게 쌓은 재산인데 사회에 환원이라니 정말 생각하기 힘든 선택임을 안다. 할 수만 있다면 죽을 때까지 부를 누리고 싶고 가져갈 수만 있다면 저승에 가서라도 누리고 싶을 것이다. 이런 경제개발 1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훌륭한 사람들의 삶을 돌아보면, ‘나’보다는 ‘남’을 더 소중히 여겼고, ‘가족’보다는 ‘나라’를 소중히 여겼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황희 정승이 오늘날까지 훌륭한 재상으로 칭송을 받는 것은 그의 뛰어난 재능과 지혜에 있겠지만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그런 직위임에도 청빈한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경주의 최 부자가 오늘날까지 부자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100리 안에 가난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웃을 돌아보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젊은 학생들에게 존경할 만한 인물을 거론하라면 별로 없다고 한다. 억지로 말하라 하면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등 역사속의 인물을 거론한다. 동시대를 살면서 정말 존경할 만한 사람이 없다면 그 또한 미래세대에 불행이 아닌가. 학생들이 자라면서 존경할 만한 인물을 눈으로 보면 그보다 더 값진 교육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사는 이건희 회장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두 번째로 잘 사는 현대그룹 정몽구 회장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면 이 나라는 역사에 또 다른 획을 긋는 것이다. 굳이 사회 환원이 대기업 부자들만의 몫은 아니다. 정치인, 고위 공직자들 재산이 많다고 종종 방송에 나오는데 황희 정승의 청빈한 삶을 본받아 실천해야 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먼저 불을 지피면 산불 번지듯 전국적으로 번질 것이다.
사회가 어느 정도 잘 살게 되면서 복지에 대한 요구가 늘고 있는데 세금을 더 걷으려 하면 국민적 저항이 따른다. 나라에서 복지를 책임지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진정한 복지는 가진 사람들이 나누는 것이다. 경주 최 부자처럼 나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100리 안에 가난한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 내 회사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비정규직으로 전전하지 않게 해야 하고, 내 직장 동료가 가난하지 않게 돌봐야 한다. 힘이 없고 약하다고 '갑질하는 문화'는 사라지고 '서로 돌보고 나누는 사회'가 정작 복지사회가 아닐까.
미국의 애플 CEO인 팀 쿡이 8천800억 전 재산을 기부하기로 약속했다는 보도이다. 워런 버핏과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 빌 게이츠는 지난 2010년 억만장자들에게 최소 50%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것을 호소하는 이른바 ‘기부 약속 운동’을 시작했다. 기부문화가 익숙한 미국 사회임에도 기부와 사회 환원에 부자들이 앞장서고 있다. 우리가 어른으로서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어떤 사회를 물려줄 것인가. 봄볕에 학생들의 함성은 우렁찬데 “우리 체육관 이건희가 지어줬어.” 자랑하며 체육관이 무너져라 뛰어댈 학생들의 모습은 언제나 볼 수 있을까. (글-신호현) 복지국가로 가는 길.hwp
울산매일 : http://www.iusm.co.kr/news/articleView.html?idxno=588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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