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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반]송정원의 정체성 글쓰기

원 시 인 2018. 6. 1. 14:41

[매반]송정원의 정체성 글쓰기

본관 앞 살구꽃, 환생하다

                                                                                                       1109  송 정 원


      나의 정체는 무엇일까. 사실 14년 동안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게 바로 나의 정체성이다. 난 그저 주어진 삶에 충실하며 지금까지 살아왔으며, 전생 같은 건 그저 재미로 생각해오던 평범한 학생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처음으로 나의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또 전생을 추리해보려 한다. 이건 단순한 추리이고 상상일 뿐, 내가 정말로 제목에 나오는 살구꽃이었다는 건 잘 모른다.

 

      [과거의 나]

       낡았지만 정든 본관, 매일 아침마다 나와 내 친구들을 보고 ...’ 하고 탄성을 자아내던 마치 로봇같이 똑같은 옷을 입던 아이들이 보이던 마당. 지금쯤이면 눈치 챘겠지만 난 나무의 정상에서 세상을 보고, 저 멀리 보이던 청와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정겨운 노랫소리를 한 몸으로 다 느꼈던 살구꽃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을 때, 나의 생명의 터전이 되어 주었던 살구나무의 온기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 때의 난 겨우 꽃봉오리 상태에서 휘몰아치는 바람을 향해 겨우겨우 생명을 유지해 갔던 아주 작은 생명체였다, 내 친구들은 내가 피어날 시기에 이미 꽃을 틔우고 많은 사람들의 감탄을 온몸으로 받고 행복에 겨워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 마치 지금의 매반 친구들처럼 말이다. 난 조금 덜 성숙된 아기처럼 작고 여위였던 하나의 꽃봉오리였다. 그런 나를 알아봐주고 용기를 심어 주었던 나의 은인 살구나무는 어느새 50년이 넘는 세월 끝에 배화여중 나무의 최고봉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세상에 나의 모습을 펼칠 때, 그 때의 감동을 지금까지 잊을 수 없다. 저 멀리 인왕산에는 나와 비슷한 처지인 진달래, 목련, 개나리 등등 하나 둘씩 꽃을 틔우고 있었고, 에메랄드처럼 반짝반짝 빛나던 청와대 지붕은 내가 세상에 더욱 더 좋은 이미지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깔깔대던 아이들의 목소리, 점심마다 나와 차 한 잔씩 하던 선생님들의 수다는 날 아름답게 성장시켰다. 하지만 알다시피 살구꽃은 봄에 번개처럼 모습을 반짝이고 사라지는 볼 수 있는 기간이 짧은 꽃이다. 그 이유 때문에 친구들은 밤마다 속삭였다, 언젠가는 사라질 거라는 두려움을 마음에 가득 안고. 난 현실을 외면하려 조용히 귀를 막고 저 멀리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느끼며 새카만 밤을 즐겼던 조금 괴짜같은 존재였다.

      유난히 새카맸던 밤이 지나고, 동이 터오자 학생들은 등교했다. 그때까지는 괜찮았다, 오후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은 마침내 나의 친구들을 하나씩 꺾어가기 시작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친구들을 자신의 머리에 꽂아보고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던 학생들은 전처럼 달리 나에게 공포감을 심어 주었다. 그 괴물같은 짓은 계속되었다. 내 친구들이 하나씩 떠날 때마다 난 너무나도 슬펐고, 공포스러웠다. 너무나도 무서웠던 그 날, 난 갑자기 몰아치는 바람에 휩쓸려 땅에 살포시 떨어졌고, 어떤 검은 물체가 날 꾹 짓눌렀다. 내 기억은 거기서 멈추었다.

       [현재의 나]

       어느 새 정신을 차려보니 난 6살배기의 어린 꼬마 여자아이가 되어있었다. 그동안 부모님과 친척들 손에 맡겨졌던 기억은 다 사라져 있었고, 난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아주 평범한 아이로 변하였다. 하루가 지나고, 정신을 차려보니 난 분당에 살고 있는 7살짜리 조금 현실적인 아이가 되었고, 또 정신을 차려보니 초등학교 6학년의 졸업식 날이었다. 그리고 지금, 난 살구꽃의 아름다웠지만 무서웠던 기억을 싸그리 잊어버린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살구꽃이 나와 비슷할지는 모르지만, 괴짜인건 확실하다. 아이들이 싫다고 하는 과목을 좋다고 저녁 늦게까지 공부하고, 책 읽는걸 싫어하는 아이들에게는 내가 꽤 이상하다고 느껴질 것이다.

     살구꽃은 과연 제대로 환생을 한 걸까. 꽃봉오리였을 때의 꼭 좋은 꽃을 피우리라는 꿈은 이제 다 져버렸다. 아이들의 정겨운 노랫소리와 웃음소리는 나에게 이제는 공부를 방해하는 소음으로 느껴질 뿐이고, 청와대는 이제 남한과 북한 사이의 관계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다 내가 이렇게 현실을 직면한 채로 부정적인 시각과 우울한 마인드만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는지. 정말로 의문이다. 전생에서 나에게 꿈과 희망, 용기를 심어주었던 살구나무는 어디 있는 걸까. 꽃을 피우리라는 꿈은 이제 나의 진로로 바뀌었고, 이제 진로를 찾아야 할 때다.

      내가 생각하는 내가 하고 싶은 나의 진로는 아직은 구체적이지 않지만, 과학 쪽으로 가고 싶다. 이유는 단지 과학이 재밌어서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꿈도 희미해지고 있다. 내가 기말고사 때 과학 90점을 넘을 수 있을까? 매일 이렇게 생각한다. 두 번째는, 작가이다. 이것도 희미하다.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시대라, 극히 소수의 사람들 빼고는 거의 책을 읽지 않는다. 게다가, 전생처럼 살구나무에서 떨어져 다른 사람에게 짓밟힐 두려움 때문에, 지레 겁부터 먹고 만다. 매일 생각한다. 공부를 하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하교길에도 생각한다. 사실 전생의 살구꽃은 내가 닮고싶은 그런 존재였다. 작은 꽃봉오리이지만, 늦게라도 피어나 사람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안겨다주는, 그런 시간이 지나고 멋지게 추락하여 생을 마감하는. 얼마나 멋진 삶이 아닌가.

      사춘기, 마음의 토네이도이다. 잠깐이지만 큰 후유증을 남기는. 그 사춘기 때문에 난 나락까지 간 적이 있다. 억지라도 꿈을 만들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실망을 사는 때 의 한복판을 달리고 있다. 내 미래는 시골의 밤하늘처럼 암담하지만, 암담할수록 별이 더 잘 보이는 법이다. 별이 곧 내 재능과 희망이 될 것이고, 나 또한 그렇게 믿는다.

 

     [미래의 나]

      무지개처럼 컬러풀한 현생을 살고 있는 나는 죽고 나서 또 어떻게 환생을 할까. 그게 무조건 사람으로 환생하리라는 법은 없다. 마당에 나 있는 풀이나 잡초, 들꽃 등으로 환생할 수도 있고, 산에 사는 삵, 들개로도 환생할 수 있다. 아니면 동물원에서 전 세계적으로 몇 마리 없는 백사자로도 환생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꼭 바라는 점은 전생의 기억을 꼭 잊고 다시 환생했으면 한다. 동영상, 인터넷에서 종종 전생의 기억을 잊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지금도 행복하지 않은데, 다음 생에서까지 행복하지 않다니, 끔찍하다. 적어도 다음 생에서는 행복하면 너무나 좋을 것 같다. 행복. 말 그대로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인생의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조금씩 매년마다 월급처럼 그 분량의 행복을 선물 받았고, 나의 행복 수치가 정해져 있을지 아니면 그때마다 꺼내 쓸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확실한건 행복은 어디에나 있으며 바람과 같이 홀연히 사라진다.

     홀연히 사라지는 탓에 우리는 늘 행복을 그리워하며 붙잡으려 애쓰고, 후유증이 남는다. 나도 행복을 영원히 가지고 싶지만, 행복은 나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고정되었을 때 다시 꽃가루처럼 내게 불어온다. 어쩔 수 없다. 그저, 계속 바라고 또 바라면 언제쯤인가 행복은 다시 찾아 올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난 과거에는 조금 늦지만 괴짜였던 이상하고 겁이 많았던 배화여중 본관 앞 살구꽃이었고, 지금은 과학과 사회가 가장 좋은 전생과 다를 바 없는 이상하고 겁 많은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다. 그리고 미래에는...난 예언자가 아니니 알 수 없지만 꼭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이상이다.

 

     [‘본관 앞 살구꽃, 환생하다’]를 쓰고 난 뒤의 소감

      내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처음에는 막연히 내가 이렇게 제법 무거운 글을 쓸 수 있을까?’ 하고 먼저 겁이 났지만, 계속 쓰다 보니 자신감이 늘었다. 좋은 시간을 마련해주신 원시시대에서 오시고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배화여중의 자랑스러운 선생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