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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이마에 써 있는 표현들

원 시 인 2019. 9. 26. 15:42

[문화산책마경덕 시인

 

이마에 써 있는 표현들

 

                                                            - 마경덕 시집 '사물의 입'을 읽고서

 

    낙엽이 떨어지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노라면 '이 가을날에 누군가 그리운가 보네.' '아, 어떻게 알았지?' '이마에 써 있는데..' '그래?'(이마를 문지르면서) '사실은 그리운 게 아니고 시집을 하나 읽고 있어. 그런데 시집을 보니 제목을 이마에 달아 놓고 가슴의 언어를 풀어놓듯 쓴 시집이 하나 있더라고.' '그래? 이마에 시가 써 있어?' '이야기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시듯, '사물의 입'을 달아 사물의 언어들을 가지런히 풀어 시로 쓰니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더라구.'

    사물이 가지고 있는 외형과 내면을 연결하는 시적 상상을 '입'이라 기관을 통해 발설해 냄으로써 사물의 비밀이 열리는 언어들이 '시의 언어'가 되고 있다. 둥근 접시에 / 선홍색 꽃잎이 활짝 피었다 // 되새김질로 / 등에 꽃을 심고 쓰러진 소여 // 피처럼 붉은 저 꽃은 / 죽어야 피는 꽃이었구나('꽃등심' 전문) 사물의 처절한 외침이 시인의 상상을 통해 구현되는데 너무나 크게 들린다, 진지하다,  처절하다. 사물의 입은 곧 시인의 입이요, 시인 자신이 사물의 입이다. 시인은 사물을 보는 순간 사물의 언어를 듣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외침을 듣고 있다. 그 외침을 받아쓰면 시가 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아버지는 석공이었고 그 어머니는 산파였다. 아버지가 겉보기에는 평범하고 흔한 돌덩이에서 아름다운 여인상이나 갈기 휘날리는 사자를 조각할 때 어떻게 이처럼 훌륭한 작품을 만드느냐 물으면, 아버지는 돌 속에 갇힌 여인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사자의 울음소리를 들어 꺼낸다고 했다. 어머니가 아기를 받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아기를 만들어 내냐고 물으면, 어머니는 이미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가 답답하다고 우는 소리가 들리면 아기가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돕는 것뿐이라고 했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은 자연스럽게 묻고 대답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깨닫도록 돕는 학문 습득의 과정을 말한다.

    '돌멩이를 던지는 순간 / 둥근 입 하나 떠올랐다 / 파문으로 드러난 물의 입 / 잔잔한 호수에 무엇이든 통째로 삼키는 식도가 있다('물의 입' 부분) 시인이 본 물의 입과 식도는 어떤 것일까. 물고기가 공기를 호흡하려고 입을 수면 위로 조물거릴 때, 물수재비를 뜨려고 돌멩이를 던지면 호수는 입을 열어 돌멩이를 낼름 받아먹고는 입을 닫는다. 호수가 배고픈 날에는 물수재비가 영 떠지질 않는다. 시인이 본 것은 물에 비친 입과 식도만 보았을까. 어쩌면 그 돌을 삭히고 있는 위장도 보았을 것이고 아무 것도 안 먹은 듯 다시 입을 닫고는 태연히 앉아 있는 호수도 보았을 것이다.    

    최연수 시인은 '마경덕 시인의 시들은 신선한 감각으로 무장되어 있다. 그 감각이 불러들인 낯선 상상은 나태와 욕망에 젖은 일상을 자극해 새로움으로 변모시키고 있다.'고 했다. 신선한 감각은 시인의 생명이다. 죽은 것 같은 사물에 입을 달아주면 저마다 시끄럽게 조잘거릴 것이다. 어쩌면 그 소리는 따스한 햇볕과도 같고 살랑이는 봄바람과도 같다. 때로는 천둥소리였다가 별빛의 속삭임으로 들릴 것이다. 이것이 시인이 시를 쓰는 기법의 하나인 '투사(投射)'이다. 내면의 성찰을 통해 현실의 부정과 불안을 시인은 끊임 없이 긍정과 위안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김경민 시인은 '마경덕 시인의 사물들은 진실이 들여다보이는 거울이며, 광학렌즈이며, 프리즘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시인은 사물들의 외침을 통해 삶의 진실을 발견해 낸다. 시간이 지나가는 물길 마디마디에는 영원을 향한 소리들이 담겨 있다. 모든 것이 순간이지만 그 순간이 이어져 흐르면 연원의 물길이 되는 것이다. 하루하루가 순간으로 인식되지만 그 순간의 언어를 시로 쓰는 순간 영원이 되는 것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이 긴 이유이다.

    마경덕 시인은 서문에서 '교보에 가면 미라가 된 책들이 야적장 나무처럼 쌓여 있다. 얇게 포를 떠 한 다발로 묶어도 죽지 않는 시집은 참 좋겠다.'고 했다. 시인들의 소망이고 모든 작가들의 꿈이다. 스마트폰 속에 갇힌 우리는 어느 새 서점마다, 도서관마다, 집안 서재 책장마다 책의 입에 지퍼를 채우고 야적장 너무처럼 쌓아두고 있다. 그 쌓여진 책들의 이마를 살짝 문질러 보라. 이마에 쓰여진 흐릿한 언어를 문질러 보면 '사물의 입'이 말을 걸어올 것이다.(신호현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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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매일신문 : https://www.iusm.co.kr/news/articleView.html?idxno=857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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