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작품을 쓰는가
정 종 명
사람이 어떤 분야에서 일인자가 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운동선수들의 훈련과정을 지켜보면 그것을 더욱 실감할 수 있습니다.
올림픽에 나가는 우리나라 선수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태릉선수촌에 들어가 아주 혹독한 훈련을 받습니다. 훈련 중에는 함부로 외출도 못합니다. 허락 없이는 자기 집에도 못 갑니다. 음식도 정해 주는 것만 먹어야 합니다. 먹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먹을 수도 없습니다. 코치의 말에 절대 복종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최연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 체조경기에서 우승한 루마니아의 코마네치였습니다. 그때 14살의 어린 소녀였습니다. 세계의 모든 매스컴은 코마네치가 허공을 선회에는 모습을 보고 ‘극치의 예술 작품’이라고 대서 특필했습니다.
기자들이 코마네치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기술을 가질 수 있었느냐?”
코마네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훈련받다가 죽는 줄 알았어요.”
훈련이 얼마나 고되었는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대답입니다.
1992년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올림픽경기 때, 마라톤에서 우승한 우리 나라 황영조 선수가 기자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때 그의 대답도 이와 비슷했습니다.
“훈련 도중 그만 물에 빠져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난 28회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러시아 여자 선수가 장대높이뛰기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웠고, 중국의 여자 역도선수도 신기록을 수립해서 우승의 영예를 차지했습니다. 도저히 불가능해 보인다 싶었지만 결국은 뛰어넘었고, 또 사력을 다해 들어 올렸습니다. 선수 당사자는 물론이고 이를 지켜보는 관중들도 얼마나 좋아하는지, 텔레비전을 보면서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경기에서 우승한 선수들의 말을 들어 보면 거의 대부분의 선수들이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고백합니다.
지난 아테네 올림픽의 마라톤경기에서도 그와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나는 그 경기 장면을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보았습니다. 브라질의 리마 선수가 37킬로미터 지점까지 줄곧 선두에서 독주했고, 뛰는 모습으로 보아서 그의 우승은 거의 확실시되었습니다. 그런데 관중 하나가 1위를 달리고 있는 리마 선수한테 덤벼들어 길가로 밀어붙이는 어이없는 헤프닝이 벌어졌습니다. 그러잖아도 힘겹게 뛰고 있는 마라톤 선수한테는 아주 치명적인 타격입니다. 호흡이 흐트러지고, 보폭의 리듬이 깨어지고, 에너지도 급격히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보통 선수였다면 아마 길가에 주저앉아 버렸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리마는 사력을 다해 뛰었고, 가까스로 3위로 골인했습니다. 비록 3위로 처지기는 했지만, 우승을 한 이탈리아 선수 못지않은 값진 메달을 땄다고 생각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력을 다해 뛴 리마 선수를 두고 사람들은 두고두고 칭송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소설 쓰다 보면 ‘내가 과연 내내 소설을 쓸 수 있을까’하고 자신의 재능을 의심합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도 그렇습니다. 공연히 헛수고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잠을 설친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올림픽경기를 보면 어떤 종목의 운동이든 우승자를 보면 거의 기진맥진해 있습니다. 이기기 위해 있는 힘을 다 쏟아 부운 결과입니다. 아까 이야기했던 황영조 선수는 골인 지점을 통과한 후 몇 발짝 더 가지 못하고 운동장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황영조 선수는 그랬습니다. “손 들고 흔들면서 운동장을 한 바퀴 더 못 돈 것이 아쉽다.”고 말입니다. 기분은 이해하겠는데, 그런 여력을 비축하고 뛰었더라면 과연 우승할 수 있었을까요? 쓰러질 정도로 최선을 다해 뛰었기 때문에 우승을 했다고 봅니다.
글쓰기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적당히 쓰다가 만족한 작품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쓴 작품은 어디가 달라도 다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쓴 작품은 명작이 되지만, 쓰다가 적당히 만족해 버린 작품은 결국 태작이 되고 맙니다. 태작을 스무 편 백 편을 쓴들 무슨 소용입니까. 명작 한 편이 그 작가의 이름을 문학사에 오래 남깁니다.
지금 한국문인협회에 참여한 문인이 1만1천 명에 가깝습니다. 한국문협에 가입하지 문인도 이 숫자 못지않은 줄로 압니다. 앞으로 그보다 더 많은 문인들이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그 많은 문인들 가운데서 오래 살아남을 문인이 되는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목숨 걸고 작품을 써야 합니다.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왕비도 죽임을 당하지 않으려고 목숨 걸고 최선을 다해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이런저런 글 많이 쓰는 작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하는 작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쓰지 못하면 죽는다――그렇게 목숨을 걸어놓고 작품을 써야 합니다.
정종명 작가약력
1945년 경북 봉화 출생.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에 <사자의 춤>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현대문학ㆍ문학정신 등 문예지에서 다년간 근무했다. 소설집 <오월에서 사월까지> <이명> <숨은 사랑> <의혹>, 장편소설 <거인> <아들 나라> <신국> <대상> <올가미>, 수필집 <사색의 강변에 마주 앉아> 등이 있다. 경기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대우교수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부이사장을 지냈다. 현대 한국사이버대학교 방송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및 한국문인협회 편집국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문학발전포럼 대표이다.(인터넷 daum 검색창에서 정종명과 위키백과를 검색하면 보다 자세한 작가연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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