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이사야 43:21말씀을 바탕으로 합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노예 되었던 백성들을 사랑으로 구원하셨고, 그들을 구원하신 목적은 찬송케 하려는 뜻이셨습니다. 창세 전부터 그들을 사랑하셨고, 세상 속 고난보다 성전에서 찬송하는 삶을 주고자 하셨습니다. 태초에 창조된백성이 죄를 지었으나 예수의 십자가로 다시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며, 광야 같은 삶 속에서도 찬송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시는베드로전서 5:6-7 말씀을 바탕으로 합니다.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 앞에 겸손하라 권면합니다. 시험과 염려로 가득한 날들 속에서도 주께서 때가 되면 높이시고, 능하신 손으로 돌보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삶의 무게에 눌려도, 미래를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 모든 염려를 맡기라 하십니다. 결국 성도는 하나님 손 아래 있을 때 참된 평안과 소망을 누리게 됩니다.
이 시는디모데후서 4:4-5말씀을 바탕으로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일에는 뜻이 있으니, 겉보기에 고난이어도 숨은 축복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의 일면만 알지만, 하나님은 전부를 아십니다. 감사하는 자는 고통도 견딜 수 있고, 불평하는 자는 복을 놓치게 되나니,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전도자의 직무를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은 감사로 거룩해집니다.
이 시는시편 118:1 말씀을 바탕으로 합니다. 하루를 감사로 시작하면 은혜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린 명령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불평이 나오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면 감사가 넘칩니다. 성경의 인물들도 고통 속에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들은 기도와 찬양으로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숨 쉬는 이 순간, 주님의 선하심에 감사하십시오.
누구나 한 번쯤은 꿈을 꾸고, 또 그 꿈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모든 여정이 순탄하지는 않다. 현실의 벽은 종종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때로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길이 맞을까?’, ‘계속 가도 되는 걸까?’ 하는 의심은 꿈을 향한 열정을 잠식시킨다. 그러나 바로 그런 순간, 우리가 가장 포기하고 싶은 그때, 정작 꿈은 바로 코앞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 단 한 걸음을 내딛지 않았기에 만나지 못하는 기적들. 이 글은 그 희망의 순간을 다시 떠올리며, “멈추지 마”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1. 기적은 대부분 ‘포기 직전’에 일어난다
미국의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하기까지 무려 1,000번이 넘는 실패를 겪었다. 누군가 “그토록 실패하고도 왜 계속했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전구가 켜지지 않는 1,000가지 방법을 알아낸 것이다.” 만약 그가 999번째에서 멈췄다면, 우리는 지금도 촛불을 들고 살았을지 모른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과정이다. 우리가 주저앉을 때, 성공은 사실 손 닿을 거리에 와 있는 경우가 많다.
실제 우리의 삶에서도 그렇다. 한 청년은 대학 입시에 세 번 실패하고, 네 번째 도전에서 합격 통지를 받았다. 그는 마지막 시험 직전까지 포기할까 고민했지만, 스스로에게 “꿈이 바로 코앞에 있을지도 몰라”라고 속삭이며 마지막 한 번만 더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이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우리는 종종 끝이라고 느끼는 지점에서, 사실은 시작선에 서 있는 것이다.
2. 멈추는 순간, 가능성은 사라진다
도전은 언제나 고통을 수반한다.때로는 실패하고, 사람들에게 오해받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중간에 멈춘다. 그러나 멈추는 순간, 가능성은 0%가 된다. 계속 걸어갈 때만이 가능성은 유지된다. 비록 작고 더딘 걸음일지라도, 멈추지 않는 사람만이 끝내 도달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일본의 장거리 역주(駅伝) 대회에서 있었던 실화를 들 수 있다. 한 선수가 경기 중 발목이 부러졌지만, 포기하지 않고 무릎을 꿇은 채 팔과 다리를 이용해 기어가며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넘겼다. 그는 결국 팀을 위해 자신의 한계를 넘었고, 전국의 수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의 한 걸음은 빠르지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멀리 가는 길이었다. 꿈을 이루는 사람은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특별히 멈추지 않은 사람이다.
3. 작지만 분명한 발걸음이 꿈을 현실로 바꾼다
꿈은 단번에 이뤄지지 않는다. 대부분은 긴 시간, 반복되는 노력, 수많은 좌절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은 사소해 보이지만, 한 발 한 발이 모여 결국 꿈이라는 거대한 현실을 만든다.
한 음악가가 있었다. 그는 작은 지방 교회에서 몇 명 되지 않는 성도 앞에서 피아노를 치며 찬양을 인도했다. 큰 무대도 없고, 박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매주 성실히 연주했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색깔과 실력을 갈고닦았다. 결국 그의 찬양 영상이 우연히 SNS를 통해 퍼졌고, 그는 수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찬양 사역자가 되었다.
그는 말한다. “나는 늘 무대 뒤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무대는 바로 내가 섬기는 그 자리에 있었더라고요.” 이처럼 우리가 꾸는 꿈은 지금의 충실함과 이어져 있다. 지금 이 순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결국 꿈을 현실로 만든다.
“꿈이 바로 코앞에 있을지도 몰라, 멈추지 마.” 이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 속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주는 실제적 조언이자 진리다. 우리는 종종 거대한 꿈 앞에서 주저하고, 눈앞의 현실 앞에서 작아진다. 하지만 진짜 실패는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용기를 잃는 것’이다.
만약 지금, 당신이 포기하고 싶을 만큼 지쳐 있다면, 바로 지금이 기적이 일어날 준비가 된 시간인지 모른다. 그 꿈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단 한 걸음 뒤에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주저하지 말자. 느려도 괜찮다. 흔들려도 괜찮다. 단,멈추지만 말자. 당신의 꿈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에 있다.
현대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청소년들이 흔들림 없이 정체성과 소명을 확립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공교육이 지식 위주의 교육에 치중되어 있을 때, 대안교육은 아이들의 영성과 인성을 회복시키고 삶의 방향을 잡아주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강릉예닮글로벌학교는 '하나님 나라의 인재 양성'이라는 분명한 교육 목표를 가지고 차별화된 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특히 기독교 세계관에 기초한 신앙 교육, 공동체 중심의 생활, 그리고 글로벌 미래 인재로의 성장을 위한 융합교육은 예닮학교만의 핵심 가치다. 이 글에서는 예닮학교의 탁월한 교육적 강점 세 가지를 실제적인 사례와 함께 조명하고자 한다.
1. 기독교 정체성에 기반한 영성 중심 교육 강릉예닮글로벌학교의 교육 철학 중심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로서의 회복’이 있다. 이는 단순히 성경 과목을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고, 삶 전체를 말씀 위에 세우는 실천으로 이어진다. 매일 아침 전교생이 모여 드리는 ‘예배와 큐티 시간’은 학교 일과의 시작이며, 교사들도 모두 신앙 안에서 살아가는 멘토로서 학생들을 섬긴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이 친구와의 갈등으로 정서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을 때, 담임교사는 단순한 훈계 대신 함께 기도하며 말씀을 나누는 방식으로 지도하였다. 이 학생은 “사랑 안에서 내가 존중받고 있음을 느꼈고, 공동체 안에서 다시 회복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이러한 경험은 지식 이전에 아이들의 마음과 영혼을 다루는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예다.
또한 전교생이 매년 참여하는 ‘예닮 미션트립’은 신앙을 실천으로 연결시키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필리핀과 캄보디아 등지로 떠나는 단기 선교를 통해 학생들은 복음의 진리를 몸으로 체험하고, 타문화를 이해하며 섬김의 기쁨을 배운다. 이는 교실에서 배운 성경 지식을 삶 속에 통합시키는 살아 있는 신앙 교육의 사례다.
2. 공동체 중심의 소규모 맞춤형 교육 예닮학교의 또 하나의 강점은 소규모 학급으로 운영되며 학생 개개인에 대한 깊은 이해와 맞춤형 지도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한 학급당 평균 10~15명 수준으로 구성되어 있어, 교사는 각 학생의 성향, 학습 수준, 신앙 상태까지도 세심히 파악하고 지도할 수 있다.
한 예로, 학습에 흥미를 잃은 중학생 A군은 집중력이 부족하고 자주 결석하던 학생이었다. 그러나 담임교사는 그 학생의 가정 환경과 내면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꾸준히 대화와 상담, 개인지도, 기도 중보로 함께해 주었다. 결국 A군은 점차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고, 졸업 후 예닮에서 추천한 기독 청소년 리더십 훈련 프로그램에까지 참여하게 되었다.
또한, 예닮학교는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며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는 ‘공동체형 학교’이다. 교사들도 함께 생활하며 교육적 돌봄이 24시간 이어진다. 이는 단순히 공부를 잘하게 하는 것을 넘어, 서로를 배려하고 협력하며 사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배우게 한다. 매주 금요일 저녁 ‘공동체의 밤’에서는 찬양, 나눔, 기도, 공동체 게임 등을 통해 서로의 삶을 돌아보며 영적 연합을 경험한다. 어떤 학생은 “기숙사 생활이 처음엔 불편했지만, 지금은 함께 울고 웃는 가족 같은 공동체가 나를 성장시켰다”고 고백했다.
3. 글로벌 비전과 융합형 교육과정 운영 예닮학교는 ‘글로벌’을 지향한다. 이는 단순히 영어를 잘하게 하는 차원이 아니라, 국제적 시야를 갖춘 신앙인으로 성장시키려는 목표를 포함한다. 영어 몰입 수업, 영어 찬양 예배, 원어민 교사 수업은 기본이며, 국제 기독교학교 연합체와의 교류를 통해 학생들은 다양한 세계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다.
실제 고등과정 학생 중 일부는 미국 기독교대학 진학을 목표로 ESL 집중 과정을 수강하고, SAT, 토플 등의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한 졸업생은 미 동부의 크리스천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하며 현재는 해외 선교사로 헌신하고 있다. 그는 “예닮에서의 삶이 없었다면, 나는 단지 꿈 많은 고등학생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나는 나의 비전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예닮학교는 STEAM 기반의 융합 교육도 활발히 운영한다. 예술, 과학, 테크놀로지를 함께 배우는 ‘창의융합 프로젝트 수업’에서는 드론 제작, 영상 콘텐츠 기획, 성경 기반 연극 만들기 등 다양한 활동이 진행된다. 이는 학생들이 배운 내용을 통합적 사고로 확장하고, 실생활에 적용하며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게 하는 중요한 교육 방법이다.
강릉예닮글로벌학교는 단순한 학력 중심의 학교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갈 수 있는 인재를 세우는 교육 공동체다. 기독교적 영성 중심 교육, 맞춤형 공동체 생활, 그리고 세계를 향한 창의적 교육이라는 세 축 위에 서 있는 이 학교는, 가정과 교회, 사회를 잇는 거룩한 사역의 현장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진로와 성적만을 염려하며 미래를 준비한다. 그러나 진정한 교육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주는 과정이어야 한다. 강릉예닮글로벌학교는 그 답을 ‘하나님 나라의 사람’이라는 언어로 보여주고 있으며, 이 시대 교육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 시는 신명기 28:12 말씀을 바탕으로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단순한 바람이 아닌 순종의 열매로 주어지는 약속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귀 기울여 따를 때, 하늘 문을 여시고 복을 부으십니다. 때를 따라 내리는 비처럼 우리 삶에도 필요한 은혜를 제때 주시는 하나님,우리는 조종할 수 없는 인생의 항해 속에서오직 하나님께 방향을 맡겨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영광은 순간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은 영원합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에게 하늘의 보고는 결코 닫히지 않습니다. 오늘도 주께 순종하며 살게 하소서. 세상보다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이 시는 디모데후서 4:2 말씀을 바탕으로 합니다. 복음 전파에는 적당한 때만 기다릴 수 없습니다. 때가 좋든지 나쁘든지, 기회가 있든지 없어 보이든지, 성도는 말씀을 전할 사명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전도는 특정 장소나 방식에만 갇히지 않습니다. 밭에서 일할 때도,병실에서 위로할 때도, 거리에서 스쳐 지나는 이에게도 그리스도의 사랑은 흘러가야 합니다. 주의 명령은 단순하고 분명합니다. "말씀을 전파하라, 항상 힘쓰라." 하나님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며 우리를 그 구원의 통로로 부르십니다. 오늘도 복음 들고 나아갑시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New chat시평]
이 시는 '베드로후서 3:11-14'을 기반으로 합니다. 성도는 단순히 믿는 데 그치지 않고, 영적으로 자라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처럼 육적인 신앙에 머물면 성숙한 믿음을 맺지 못하고 방황하게 됩니다. 믿음은 출발점이고, 경건한 삶과 거룩한 행실은 도착지입니다. 날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그분 안에서 흠 없이 평강을 이루는 것이 참 성도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어떤 성도가 되어가고 있는가?" 주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여정을 멈추지 맙시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New chat시평]
이 시는 요한계시록 3:17-20을 바탕으로 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외형은 부요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가난하고 벌거벗은 상태였습니다. 육신의 안락함이 영적 눈을 멀게 했고, 그 결과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에 권하십니다. "불로 연단한 금을 사라" — 시련 속에 빚어진 믿음이고, "흰 옷을 사라" — 예수의 보혈로 입는 의의 옷이며, "안약을 사라" — 말씀으로 눈을 뜨라는 명령입니다. 진정한 부요는 돈이 아닌 믿음에서,진짜 옷은 명품이 아닌 구원에서, 참된 시력은 세상의 지식이 아닌 말씀에서 옵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무엇을 사고 있습니까? 장식과 외형이 아닌 믿음과 구원과 말씀을 구입하고 있습니까? 주님이 문 밖에서 두드리십니다. 문을 열어, 다시 그분을 모셔 들입시다.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New chat시평]
이 시는 '내게 능력 주시는 주' 안에서 모든 것을 감당하는 믿음을 강조합니다. 자족하는 마음으로 궁핍을 이기고 형통할 때도 교만치 않습니다. 삶의 조건이 아니라 주의 뜻 따르며 질그릇에 담긴 보배처럼 살고 어떤 상황에도 은혜를 배워갑니다. 광야 같은 인생길 시련이 와도 육체의 연약함 속에 영을 익히고 나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니 비천조차 은혜로 품는 믿음이 됩니다.
이 시는 요한복음 15:5을 기반으로 믿음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로, 단절되었던 관계가 회복됨을 나타넵니다. 예수는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이니 가지는 나무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삶은 메마르고, 중심에 자신을 두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가지는 나무로부터 영양을 받아야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마찬가지로 믿음도 하나님과의 연결 속에서 성장합니다. 예수 안에 거하는 자만이 은혜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주님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 진리입니다.
이 시는 이사야 43:19 말씀을 중심으로 구성된 신앙시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새로운 일을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통해 믿음의 시선을 강조합니다. 바벨론 포로 시기처럼 절망적 상황에서도 소망을 전합니다. 고단한 삶 속에서 하나님의 개입과 회복을 노래합니다. 독자의 현실에 공감하며 위로와 용기를 건넵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새 일을 확신하며 희망으로 마무리합니다.
저는 예닮글로벌학교 6기 졸업생 남OO입니다. 현재 저는 세계 최고의 패션 명문 대학교이자 뉴욕주립대인 FIT에서 1학년 과정을 마치고, 저 자신을 더 깊이 알아가는 다양한 경험들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저의 예닮에서의 이야기를 나누기에 앞서 저를 성장시켜준 학교와 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사실 저는 예닮글로벌학교를 뜻해서 오지는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유학을 준비하던 2020년의 8월 저는 코로나로 미국에 가지 못하게 되었고 제 나이에 맞는 학년에 자리가 없어 한 학년 유급하여 예닮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한 학년 유급으로 인한 늦은 출발, 그리고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이 처음에는 저에게 너무 낯설고 두렵게만 느껴졌습니다. 첫 한달을 마무리 하고 부모님께 드렸던 걱정 섞인 전화가 기억이나네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예닮은 저에게 저다운 특색을 만들어준 곳이 되었습니다. 늦은 출발인 줄 알았던 유급이 제 학년과 저와 동갑인 학우들로 인해 더 많은 친구들이 생겼고 비오는 날 운동장에서 함께 뛰어놀며 나눈 땀들, 선생님들 몰래 저지른 일탈들과 같이 잊지 못할 추억들로 변화였습니다. 이 경험들이 남들과는 다른 저만의 이야기로 결실을 맺게 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예닮은 저에게 삶을 대하는 태도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저의 사고와 감수성이 형성되어지는 고등학교 무렵, 저는 선생님들께 '행복은 무엇이며',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와 같은 원색적인 질문들을 던졌고 너무나 감사하게도 선생님들 저의 질문에 함께 고민해 주시며 각자만의 생각과 저의 질문에 대한 답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이때의 대화들이 저를 질문과 생각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게 만들어 주었고 이 경험이 저의 삶을 더 진솔하게 살도록 만들어 주었습니 다. 아직도 선생님들과 나눈 대화들을 회상하며 대학생활의 용기를 얻고는 합니다. 특히 저의 고3 담임이셨던 이OO 선생님의 "다신 돌아오지는 않은 순간을 사무치게 후회하지 않도록 살아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뜨겁게 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닮은 저를 저 답게 만들어준 곳 입니다. 저는 커피를 좋아합니다. 커피에는 '떼누아'라는 맛과 향을 결정짓는 자연적 요인들의 조합을 의미하는 용어가 있습니다. 원두의 원산지의 고도, 기후, 토양, 지역의 생태계와 같은 환경적 요소들, 즉 '떼누아'가 커피의 맛과 개성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커피란, 얼마나 온전히 '떼누아'를 커피가 머금고 있는가로 나뉩니다.
저는 사람에게도 각자의 '떼누아'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예닮이 그 '떼누아'를, 학생들 본연의 향을 잃지 않도록 성장시켜주는 곳이라고 확신합니다. 일반학교의 학생들을 보면 같은 책상에 앉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고민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대학교를 가고 안정적이게 돈을 벌고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이런 과잉된 입시 교육에서는 학생들이 자신의 '향'에 집중하기보다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정형적인 '틀'에 자신을 맞추려고 한다고 저는 느꼈습니다. 하지만 예닮에서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탐구할 테드와 같은 활동이 있고 같이 고민해 줄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예닮에서 시간은 저의 '떼누아'를 더욱 날카롭게 형성하고 지킬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예닮에는 참으로 예쁜 소나무가 많습니다. 종종 개인 자습 시간이 끝나고 소나무들을 보며 밤 산책을 하고는 했었는데요. 그때마다 생각했습니다. 저도 소나무처럼 우뚝 서서 누군가에게 제가 소나무를 보면 느꼈던 감정의 공감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이죠.
예닮은 소나무 숲과 같은 것 같습니다. 아무리 같은 묘목이더라도 어디에 심기느냐에 따라 묘목에 성장이 다릅니다. 화분에 심겨진 묘목은 뿌리를 내리는데 한계가 있지만 숲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각자의 시간대로 깊게 뿌리를 내리며 자유롭게 성장합니다. 예닮에서 공부하던 저는 제한 없이 경험하고 생각하며 깊게 뿌리를 내렸습니다. 저의 이 배경은 환경이 바뀌거나 거센 풍파가 몰아쳐도 버텨줄 힘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닮은 꿈을 가지고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목표를 가지고 주어진 것들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꿈에 가까워진 다라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이미 저는 예닮의 그 가르침을 통하여 꿈을 이루었습니다. 예닮에서 학생시절을 보낼무렵 이 단상에 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선배님들의 모습이 빛나보였고 저도 그들처럼 저의 이야기를 저 위에서 나누고 싶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정말 감사하게도 저는 이 순간에 저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꿈을 꾸게하고 이루는 예닮의 가르침을 실현시킨 감사한 순간입니다. 저는 이곳에 있는 여러분이 예닮의 이 값진 배움들과 경험들을 자유롭게 경험하고 누리기를 바랍니다. 또한 크고 작은 꿈들을 계속 꾸고 이루어가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끝으로 저의 출발의 배경이 되어준 예닮글로벌학교와 끊임없는 대화와 기도로 저를 성장시켜준 교장선생님과 모든 선생님들, 그리고 저를 이곳으로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말을 전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예닮글로벌학교에 재학 중인 12학년 양OO입니다. 우선 오늘 학생 대표 간증자로 부족한 저를 사용해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예닮을 다니면서 경험한 것들을 이 자리에서 여러 학부모님과 잠시 나누려고 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작은 대안학교를 다녔습니다. 그 학교는 중학교 과정까지 운영했던 터라 저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일반고등학교 진학과 기독교 대안학교 진학을 두고 많이 고민했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기도로 도와주셨고, 저는 세 살 터울의 첫째 남동생과 함께 그동안 해왔던 기도와 찬양 그리고 말씀이 있는 기독교 대안학교로의 진학을 결정하였습니다.
물론 저희들의 결정에는 예닮글로벌학교를 처음 방문했던 순간 보았던 넓은 대지, 예쁜 건물, 두 개의 축구장, 그리고 학교를 둘러싼 멋진 풍경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방문 당시 인사를 열심히 하던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저희의 결정을 지지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저와 제 동생이 예닮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고, 지금은 올해 7학년으로 입학한 막내 동생까지 저희집 삼남매가 모두 예닮인이 되어 학교생활과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기숙사 생활은 모든 학생, 그리고 모든 부모님들이 가장 많이 걱정하는 부분이죠? 저 역시 가족이 아닌 누군가와 함께 지내는 것이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룸메이트들은 각기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서로 불편해 하는 부분도 다 달랐습니다. 그리고 이미 친한 친구들 사이에 들어가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사실 힘들어서 운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와 같은 방을 쓰는 친구들과 저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함께 믿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전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했고, 곧 그들과 나의 다름이 인정되었고, 문제를 해결해 갈 지혜와 용기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습니 다. 지금은 그 누구와 같은 방을 배정받아도 잘 맞춰주고 즐겁게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기숙사 생활을 통해 제가 얻은 성품들은 앞으로 더 큰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 제게 중요한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기숙사 생활로 얻는 또 하나의 장점은 바로 사춘기를 부모님 잔소리 없이 지냈다는 것입니다. 저희 부모님이 다른 사람에게 "우리 집 삼남매는 모두 사춘기가 잘 넘어갔어."라고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주말에만 부모님을 만나니 짜증을 부리거나 혼자 있기보다는 그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서로가 알기에 더 애틋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각자의 삶을 털어놓으며 이야기를 많이 나누다가 학교로 오는 것 같습니 다. 그리고 떨어져 지내면서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더 많이 커졌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올해 결혼 20주년이 되셨는데 세 아이를 모두 예닮에 보내고 지금 신혼생활을 즐기고 계신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는 학교 자랑을 몇 가지 해보려고 합니다. 가장 먼저 자랑하고 싶은 것은 바로 매일매일 깊어지는 신앙심입니다. 저희 모두는 매일 아침, 찬양을 듣고 성경을 읽고 말씀을 나누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밥 먹기 전 식기도는 기본값이고, 수요일마다 채플을 드리고 찬양기도회를 통해 마음껏 주님을 찬양합니다. 제가 가장 자신있게 소개하고 싶은 것은 공식적인 수요 채플, 찬양기도회 말고 목요일 저녁마다 찬양하는 마하나임 찬양팀과 함께하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은 필수 참석이 아닙니다. 학생들이 자의적으로 찬양팀을 구성하여 진행하는, 자유롭게 와서 조용히 찬양하고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저녁 먹고 쉴 수 있는 시간에 모여드는 많은 학생들의 모습은 감동입니다. 생각보다 이 시간은 정말 하나님과 대화하기 너무 좋은 시간이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찬양을 통해, 기도를 통해 해결되는 응답을 많이 받게 되는 시간입니다. 두 번째 자랑하고 싶은 것은 선생님입니다. 예닮 모든 선생님들을 바라보면 진심으로 학생을 사랑하고 늘 저희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계신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저는 부모님의 역할까지 해주시는 예닮선생님들께는 그 어떤 고민도 털어놓을 수 있습니다. 선생님들의 진심 어린 조언과 가끔은 따끔한 충고에 큰 힘을 얻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자랑하고 싶은 것은 선후배와의 관계입니다. 지난 2년 동안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선배님들은 제게 다가와 같이 웃어주고 울어주며 때론 해결책도 알려주고 함께 얘기해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시간이 제겐 너무 고맙고 좋은 추억입니다. 12학년이 된 지금 저는 그 빚을 갚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7학년의 멘토가 되어 수학공부를 도와주고 있으며, 힘들거나 고민이 있는 후배들이 저를 많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위로해주고 얘기를 들어주고 좋은 얘기를 해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형제 자매 없이 예닮에 혼자 와도 피를 나눈 형제 이상의 관계를 선후배와의 관계를 통해 맺을 수 있습니다.
이번 입학설명회 간증문을 쓰면서 제 학교 생활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작년 일년 동안 찬양팀의 리더로 섬겼습니다. 찬양을 좋아하고 찬양의 자리에 서길 즐거워하던 저였지만, 그동안은 나를 드러내기 위해 찬양을 했었다면 리더의 자리를 통해 하나님을 높여드리며 찬양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찬양팀을 이끌면서 팀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리더십이 생겼고, 시간이 지날수록 자존감과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특히 찬양기도회를 준비할 때는 함께 부르는 학생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되길 기도하며 준비했지만, 결국에는 그 시간을 통해 제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디와이(DY) 시간을 통해 자기주도 학습 능력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매일 해야 할 것을 스스로 계획하고 그것을 해냈을 때의 뿌듯함이 쌓여 또 다른 계획이 쌓여갑니다. 그 결과 저는 지난 4월 검정고시 만점을 받았고, 열심히 내신도 챙기고 있습니다. 지금은 살짝 더 욕심을 내어 정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12학년을 위한 독서실 청운재가 있는데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너무나 잘 조성되어 있어서 참 좋습니다. 간증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3년 동안의 예닮에서의 생활은 저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히 느끼며 지내고 있습니다. "7학년 때부터 6년을 다녔더라면 더 좋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제 동생들은 7학년부터 다니고 있기에 제가 못다 이룬 것들을 더 많이 채워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학부모님들의 자녀가, 예닮글로벌학교를 통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닌 주님께 속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아가는 멋진 주의 용사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금까지 부족한 제 이야기를 경청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시는 사사기 6:12의 기드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합니다. 기드온처럼 우리는 때로 연약하고 낙담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큰 용사”라 부르십니다.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가능성과 믿음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부족한 나도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기드온은 순종으로 우상을 없애고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13.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New chat시평]
이 시는 골로새서 3:13-14 말씀을 토대로 공동체 안에서 용서와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첫 연은 상처와 치유가 공존하는 인간관계를 바울의 권면과 연결합니다. 둘째 연은 등나무·칡넝쿨의 얽힘을 은유로 삼아 갈등 속에서도 용납이 필요함을 말합니다. 셋째 연은 나치 수용소 사례를 통해 용서의 현실적 어려움을 극대화합니다. 그러나 사랑만이 온전한 띠로서 원한을 초월하게 함을 선언합니다. 넷째 연은 신앙인이 ‘용서 위에 사랑’을 덧입어야 함을 결론으로 제시합니다. 전체적으로 시는 인간관계의 갈등을 복음적 사랑으로 치유하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저는 예닮글로벌 학교 12학년에 재학중인 아이와 2기 졸업생의 학부모 입니다.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이 가장 궁금한 것은 어떻게 예닮학교를 선택하고 확신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일 것 같습니다.
저는 결혼 전에 피아노 레슨 강사로 대형학원에 근무하며 많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예체능 사교육 현장에 있었고, 지금은 초등학교에서 협력교사로 10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피아노 레슨을 할 때는 학원에 와서 선생님의 손길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마음이 아플 때가 많았습니다. 동시간대에 많은 아이들이 몰리다 보니 피아노 건반을 만지지도 못하고 가는 아이들도 왕왕 있었고 깊이 있는 레슨을 받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때 저는 사교육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이 다음에 저의 아이는 제가 모든 것을 가르치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심을 더 굳히게 된 것은 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부터입니다.
사교육에 힘들어 하는 아이들이 정작 중요한 학교생활에 피로감과 좌절감을 느껴 부정적이고 폭력적인 정서반응을 자주 보였기 때문입니다. 자유가 있지만 자유롭지 않은 아이들, 무언가에 묶여 날지 못하는 새들처럼 웃음이나 행복을 찾아볼 수 없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제 속에서부터 생겨나는 좌절이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뛰 놀아야 할 아이들이 어린시절을 저당잡힌 채 이 학원 저 학원을 뺑뺑이 돌아야만 하는지, 학부모들은 사교육비를 충당하느라 과한 압박을 느끼며 과로와 싸워야 되는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누구보다 주목 받고 싶어하는 인정중독에 시달리면서 자존감을 위협받고 있고 공교육의 구조적인 모순에 아파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한국의 자랑스런 경제성장의 아픈 손가락인 성과주의에서 왔다고 생각합니다. 줄세우기식 교육으로 인해 경쟁이 기본이 되어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반비례 되어버린 자존감의 추락, 이것이 부끄럽지만 대한민국 공교육의 민낯인 것 같습니다. 21세에서 35세 중 흔히 "히끼꼬모리"(ひきこもり, Hikikomori)라고 부르는 은둔 고립 청년이 대략 54만명 이상이라 하며 이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세에 있다고 합니다.
이래도 우리의 아이들에게 다른 사람들처럼 학원다니고 경쟁하며 공부만 하면서 '좋은 대학에만 진학하렴'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게 못하겠더라구요. 대학진학만이 인생의 목표라면 우리 아이를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부모를 떠나 독립할 수 있는 인격체로 키울 자신이 없었습니다.
마침 그때 예수님을 닮은 '꿈 너머 꿈'을 가르쳐 주시는 예닮글로벌학교를 하나님의 은혜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학교에 아이의 모든 것을 맡기고 신뢰하며 도움 드릴것만 고민했습니다. 두 아이 다 예닮글로벌학교에 보낸 후에 성적을 물어본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농담으로 '큰 아이 대학학점은 하나님만 아신다'고 할 정도니까요. 그러나 2기 졸업생 큰 아이는 예닮에 있으면서 열심히 공부해 전통을 자랑하는 국립대인 경북대학교 사범대 생물교육학과에 진학해 교사를 꿈꾸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곳 예닮에서 받은 사랑으로 예닮 졸업 후 어느 환경에 가서 어떤 사람을 만나도 즐겁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큰 아이는 대학교수님과 과동기들을 모아 야구 관람을 함께 하도록 주선하기도 하고 지금은 과대표를 맡아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자취를 하고 있어 바쁘고 혼자 있어도 주일 예배 참석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예닮에서의 생활이 바탕이 되어 지금은 어디에 내놓아도 걱정 대신 든든함입니다.
둘째 아이는 형과 6살 터울의 막둥이라 개성이 강하고 조금은 내성적인 성향의 아이였습니다. 마음은 너무 착하지만 선생님들이 조금은 버겨워하는 성향이 있는 아이였지요. 이 아이도 예닮에 와서 너무 많이 변했습니다. 얼마 전에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자기의 문제점을 파악할 줄 알고 고치려 노력하는 아이'라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저는 너무나 흥분되고 기쁜 나머지 메타인지가 발달하여 가능성이 무궁하다 라는 과대해석을 했습니다. 부모로서 느끼는 작은 아이의 진짜 변화는 예전엔 자기표현에 서툴러 오해를 받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수다쟁이가 되어 저와 차안에서 대화를 나누면 더 이야기 나누고 싶어 내리기 싫다고 할 정도로 외향적인 성격이 된 것입니다. 눈이 마주치면 윙크를 날려주고 거대한 몸으로 허그를 해 줄때면 너무 너무 행복하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기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결정했다는 것이지요. 부모를 떠나 성인이 되기 전에 정서적 독립을 시작한 것입니다. 대학 진로를 선생님과 함께 스스로 선택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며 입시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공교육과 사교육을 통해서 절대 받을 수 없는 정서적 교육을 예닮에서 사랑의 마음으로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작은 아이는 이모들을 볼 때마다 사촌동생들을 이곳에 보내라 고 강력하게 권유합니다. 저보다 훨씬 더요.
저는 올해 큰아이의 첫 임용고시와 작은 아이의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너무나 평온하고 감사합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은 임용고시 초수합격이나 성적에 비해 월등히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바로 'now. here, best'입니다. 이것이 된다면 조금 천천히 가도 아이는 반드시 잘될 것이고,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삶을 살거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now. here. best' 지금 여기서 최선을 다해..이것은 예닮의 교육철학입니다. 그 자리에서 그 몫의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우리 가족이 흩어지나 모이나 행복해지는 삶의 방향입니다. 혹시 우리 아이에게 경쟁하지 않아도 괜찮고 '내가 최고야' 라는 인정중독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행복한 학교를 소개하고 싶다면 여기 예닮글로벌 학교를 강력하게 추천드리며, 이 곳에 오신 학부모님들은 행운의 찬스를 얻으셨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급식, 시설 환경, 교육과정 디테일하게 자랑할 것이야 밤이 샐 정도로 수도 없이 많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사랑하는 선생님들의 열정을 자랑합니다. 큰 아이가 어디에 가서도 함께 행복한 삶을 살게된 것, 작은 아이가 세상에 마음을 열고 미래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아가게 된 것은 모두 선생님들의 헌신적인 사랑과 관심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이 우선이고 모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루 하루를 살기 때문이지요. 이 자리를 통해 선생님들과 학교 관계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귀한 시간을 내주신 학부모님 뭐하기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아무리 우리 아이의 청소년기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 시기를 사랑과 관심으로 자녀의 건강한 독립의 기회 삼고 싶다면 예닮글로벌학교를 믿고 자녀분을 맡겨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