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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랑 떡볶이를 먹다.

원 시 인 2011. 1. 21. 14:13

지은이랑 떡볶이를 먹다.

 

   오늘은 지은이랑 둘이 남았다. 아내와 아들은 교회 수련회를 가고 딸과 둘이서 잠을 자고 일어나서 딸에게 "뭘 먹고 싶니?" 물었더니 대답이 없다. 한번 더 물으니 "아무거나" 그런다. 난 기본적으로 새로운 요리를 하거나 사먹는 것보다는 냉장고에서 꽝꽝 얼어 조금씩 썩어가는 것들에 애착을 간다. '빨리빨리 먹어버리자'가 내 요리 생활 신조다.

   냉장고 냉동실을 여니 아니나 다를까 문앞에 놓였던 것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떡이나 고기, 고등어, 밥에 넣는 콩들이 떨어진다. 냉동실에 70%만 채워야 좋다는데 우리집 냉장고는 꽉이다. 아마 전쟁이 나도 한 달은 장을 안 봐도 견딜 것이다.문 앞에 쑥떡이 보였다. 지난 봄에 교회 집사님들과 쑥을 뜯어 삶았다가 냉동실에 넣고 다시 권사님이 떡으로 만들어 주신 것이다.

   "쑥떡 먹을래?그러니깐 먹는다고 해서 쑥떡을 후라이팬에 구워서 약간 노릇노릇한 부분을 떼어주니 처음엔 못 먹겠다고 한다. 그러더니 설탕을 살짝 찍어서 주니 맛있다고 잘 먹는다. 주먹만한 쑥떡 두 덩이를 껍데기 벗겨 먹듯 먹으니 아주 쉽게 먹을 수 있었다. "더 먹을래?" 물으니 더 먹는단다. 그래서 하나를 더 꺼내 먹었다. 귤과 사과, 그리고 우유와 초콜릿을 넣어 믹서기에 갈아 돌리니 맛있는 주스가 되었다. 주스와 쑥떡의 조화로 아침을 때웠다.  

 

   아이랑 바둑을 두고 오목을 두고 각자 공부를 하다보니 점심 때가 되었다. "점심엔 뭘 먹을래?" 물으니 또 망설인다. 그래서 냉장고를 열었더니 이번엔 떢볶이 떡이 툭 떨어진다. "떡볶이 먹을래?" 그랬더니 먹는단다. 괜히 딸에게 물었다. 그냥 냉장고 문을 열면 떨어지는 것이 답인데... 이렇게 먼저 떨어지는 것을 먹는 것은 좋지만 저 속에 뭐가 들었는지는 수수께끼다. 아마 거기에는 2~3년 된 떡이나 먹을 것들이 순번도 없이 때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먼저 후라이팬에 정수기 뜨거운 물을 받아 끓였다. 끓는 잠시에 감자를 꺼내 까서 썰어 넣었다. 그리고 이상한 양주병 같은 곳에 들어있는 식용유를 넣었다. 그리고 파가 보이길래 썰어 넣었다. 그 사이 딱딱하게 얼어 있는 떡은 전자랜지에 2~3분 돌려 녹였다. 무엇을 더 넣을까? 고추장을 풀어 넣고 고민하며 냉장고를 열어보니  뭐니뭐니 해도 볶거나 끓일 때는 들기름이 최고다. 들기름을 넣고 냉장고 구석에서 1년도 더 되었을 건포도를 넣었다. '웬 건포도를 넣느냐고?' 내 요리 비법은 '손에 잡히는 대로'이다. 그러니까 "그 때 그 때 달라요!"이다.

   말랑말랑한 떡을 떼어 넣고 뭔가 아쉬워 또 보니 황태 벗겨 말린 것이 들어 있길래 '아니! 이것이 여적 있네.' 황태를 가위로 잘게 잘라 넣었다. 황태는 아내가 안 넣어 먹길래 내가 조금씩 요리 때 넣어 먹는다. 김치찌개에도 넣고 된장 찌개에도 넣는다. 고추장을 볶을 때 넣으면 제격이다. 그런데 식구들은 그런 것을 고추장에 넣는다고 나만 주로 먹는다. '뭐! 어때, 맛있기만 한데...' 그리고 계란 두 개를 엏어 풀어지지 않고 그대로 익으라고 한쪽에 두었다.

  이 맛있는 황태를 안 먹고 무시하다니...

   그리고 결정적으로 치즈를 넣는 것이다. 치즈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다. 물론 나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코스트코에 갈 때마다 큰 봉지 하나씩 들고 오는 치즈는 다들 좋아 한다. 치즈를 떡볶이에 넣는다고 뭐라 하는 가족은 없다. 음식이란 창의성이 발휘되는 것이기에 잘 만들면 작품이 된다. 물론 잘못 만들면 잡탕이 되기도 하지만 난 단백하고 간촐한 음식도 좋지만 잡탕의 성격이 더 맛있다.

   어떤가? 먹음직스러운가? 뭐! 아니면 말고. "지은아! 떡볶이 먹어!" 부르자 지은이는 하고 좋아한다. 맛도 괜찮다 한다. 잘 먹는다. 나도 맛있게 먹었다. 먹으면서 떡볶이에 언제 사온지 모르는 황태를 넣었다거나, 1년도 더 된 건포도를 넣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냥 맛있게 먹는 지은이를 보면서 지그시 미소를 지을 뿐이다. 음료 대신으로는 우유로 만든 요거트에 블루베리 잼을 넣으니 보랏빛 요거트가 더욱 맛을 자극한다. 나의 요리 일기 끄으~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