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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평가와 주관의 객관화
TV 보기보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하는데 어쩌다 가족들이 즐겨보는 TV를 엿보다 보면 가수가 되기 위해 도전하는 모습이 정말 흥미진진하다. 가수의 꿈을 안고 도전에 도전을 거듭해 경쟁자를 물리치고 1등의 영예를 안는 모습을 보면 감동이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날들을 노래하면서 밤잠을 설쳤을까. 노래 실력도 우수하지만 그 몸놀림이나 말씨 어느 것 하나 나무랄 데 없다. 이럴 때 일이관지(一以貫之)라는 말이 떠오른다. 모든 사물이 '하나로 꿰어 있다.'는 말이다. 노래도 잘하고 자기관리도 잘해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해야 1등을 할 수 있다. 하나의 사물의 이치를 제대로 터득하면 다른 사물의 원리도 그와 같다는 것이다.
사실 그 장면에서 눈여겨 볼만한 것이 하나 있는데 그 훌륭한 가수를 뽑아 가려내는 심사위원들의 전문성을 말하고 싶다. 어떤 가수는 가창력이 좋은데 박자가 안 맞는다거나 또 다른 가수는 노래를 잘하는데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노래 발표가 끝나면 심사위원들은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하나하나 부족한 점을 지적해 주고 더 나은 방향을 알려준다. 그럴 때 가수들은 눈물을 흘리거나 웃으면서 그 지적을 감사히 받는다. 일반 시청자들도 노래를 들으면서 나름 평가를 했지만 전문가들의 한 마디 촌평에 역시 감동한다. 혹여 나와 다르더라도 그 촌평을 인정한다.
필자는 이것을 '주관의 객관화'라는 말로 정의했다. 노래 실력이나 글쓰기 실력을 저마다 다르게 평가하는데 전문가가 '이것이다'라고 선언하면 그 점수가 객관화되는 것을 말한다. 올림픽에서 연기로 승패를 가름할 때 전문가의 평가를 대신하여 심사위원단 10명을 놓고 10점 만점으로 누르게 한다든지, 아예 100명을 놓고 1점씩 계산하여 점수를 평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현상을 바라보는 각자의 주관적인 판단을 점수로 객관화하여 그 실력을 평가하는 것이 바로 주관의 객관화이다. 뛰어난 전문가일수록 혼자서 또는 두세 명이 협의하여 도전자의 당락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전문가인가 비전문가인가. 요즘 학교에서는 수행평가의 비중이 많이 올라가고 있다. 학생들을 오지선다형 평가에 의존하여 점수를 줄을 세우는 교육보다는 배움에 대한 열정과 노력의 과정을 평가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수행평가는 과정중심평가를 하라고 한다. 교사가 한 교실에 30여 명의 학생들을 놓고 40-50분 사이에 벌어지는 활동에 대해 과정평가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수행평가 비중이 30-40%라면 공부 잘 하는 학생들도 수행평가에서 못 받은 점수를 선택형 문제에서 보완하면 된다지만, 수행평가의 비중이 70-80%가 되거나 심지어 100%로 하면 학생들은 평가를 두고 선생님과 마찰을 빚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과연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순응할 것인가. 선생님들은 그 짧은 시간에 그 많은 학생들의 수업과정을 제대로 평가해낼 수 있을까. 주당 2-3시간 들었다면 학생들을 접하는 횟수가 많아 학생들의 수업과정을 평가할 수 있다지만 주당 1시간 들었다면 학생들을 제대로 평가하기가 어렵다. 한 학년에 1-2백 명 되고 두 개 학년을 가르치면 3-4백 명은 족히 되는 경우가 많다. 요즘 코로나19로 온-오프라인을 병행하는 블랜디드 수업 운영으로 학생들의 평가를 객관화시키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중학교 1학년은 자유학년제로 시험을 안 보다가 2학년 들어서 시험을 치루면 고입에 반영하는 내신이 시작되기에 점수에 민감하다. 초등학교 때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점수를 100점 받은 경험이 있어 1점이라도 점수를 받지 못하면 왜 점수가 깎인 것인지 따지기 일쑤다. 선생님들은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평가 기준을 정하고 점수 등급에 따라 활동 내용을 계획하여 학생들에게 공지하지만 수업의 실제에서 오는 차이도 있고, 무작정 자신의 점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학생도 있다. 그럴 때 학생들은 학부모의 힘을 얻어 점수 이의제기를 한다.
이를 위해 선생님들은 평가 계획을 보여주고 학생이 제출한 과정평가 자료를 보여주면 교사의 전문성을 인정해 줄까. 어쩌면 교사의 설명에 고부고분 수긍하고 이해할 학부모라면 이의제기도 안했을 것이다. 대학에서 논술 평가가 어려운 것은 주관의 객관화가 어려운 까닭이다. 전문가의 주관적 판단을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수긍할 수 있을까. 의사가 여러 증상을 보고 질병 유무를 판단하면 믿고 따를 수 있을까? 판사가 범죄의 정도에 따라 형량을 선언하면 믿고 따를 수 있을까? 전문가들이 주관적인 상황에 합당한 판단 결과를 내는 데는 그에 적절한 근거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 근거에 따른 판단이 절대적일 수 없기에 이의제기를 하는 것이다.
사범대를 졸업한 신출내기 교사가 학생들 앞에 섰다. 자신의 꿈을 이뤘으니 얼마나 신나고 즐거운 일인가. 중학교 1학년에 이어 2,3학년도 시험을 없애겠다는 정책에 중2학년 시험 없는 과목을 맡았다. 수행평가 100%로 학생들을 평가하는 일이다. 젊은 교사로 수업시간마다 학생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수업을 하니 학생들도 열심히 따라와 수행평가 결과가 좋았다. 학생들의 결과물을 보고 스스로도 놀라 주변을 보여주면 중2가 아니라 고2라고 물을 정도였다. 새내기 교사는 노트를 집으로 가져와 밤새도록 읽고 평가를 했다. 연초에 제시한 평가 기준에 비추어 어느 것 하나 점수를 깎을 수가 없어 평균이 90점이 넘었다.
새내기 교사는 교무부장에게 불려가 혼쭐이 났을 것이다. 평균 75점을 기준으로 종 모양의 분포도를 내어야 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교육학 시간에 안 배웠냐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상대평가를 지향하던 시기 선택형 문제로 시험을 치룰 때 난이도를 조정하는 이상형이다. 수행평가로 학생들은 평가할 때는 성취수준에 따른 절대평가이다. 그러나 성취수준에 따른 평가기준이 정확히 명시되었다면 평균이 90점을 넘기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평균이 90점을 넘으면 문득 성적 부풀리기 아니냐며 오해할 소지가 있다.
수행평가만으로 평균 75점을 만들려면 학생들의 과정중심평가 기준은 75%에 맞추고 과감하게 20-30점을 깎아야 한다. 선택형 시험에서 100점이 두세 명 나오도록 과정중심평가 만점도 그렇게 잡아야 한다면 그것은 분명 성취기준이 너무 높았다는 것이다. 학습내용을 지도하고 절반 이상 이해하고 따라오지 못하고 두세 명만 따라온다면 그것이 오히려 문제 있는 수업이다. 학생들이 열심히 작성한 노트를 펴놓고 60-70점을 줄 수 있는 선생님은 누구일까? 더구나 기세등등한 학부모들의 이의제기를 등뒤에 두고 열심히 공부해준 학생들의 심장에 칼을 꽂을 수 있는 선생님이 누구란 말인가. 시험 없이 수행평가 100%로 학생들을 평가하는 절대평가에선 평균 90점 이상이 꾸지람 들을 일은 아니다.(글-신호현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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