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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평론]우리시대에 꼭 필요한 마술-강영희의 '우리에겐 마술이 필요하다'

원 시 인 2022. 5. 9. 23:00

[독서평론]

 

우리시대에 꼭 필요한 마술

 

                - 강영희의 '우리에겐 마술이 필요하다'

 

   영원한 코미디언 찰리 채플린의 우스꽝스런 표정을 가진 마술사는 빈손으로 무대 위에 서서 아무 것도 가지지 않는 손을 펼쳐 보인다. 손바닥에 아무 것도 없는데 시청자들은 손등을 의심한다. 마술사는 손등을 보여주고 손목까지 걷어 올린다. 정말 아무 것도 없다. 어쩌지 아무 것도 없는 빈털털이 마술사는 당황하는 표정을 짓는다. 관객들이 비로소 안심하고 '할 테면 해봐라.' 마음을 던질 때쯤 마술사는 손바닥에서 구술을 꺼낸다. 카드를 꺼낸다. 관객은 당황한다. '어라! 분명 없었는데 어디서 나왔지.' 관객들의 눈은 마술사의 눈처럼 동그라지고 마술사는 그제야 입가에 미소를 띤다.

   박영희 시인에게 마술은 뭘까. 진부한 일상에서 시인이 찾는 마술은 무엇일까. 시인에게 이 시집이 첫 시집이라는 데 시집 속에 갈피 끼어있을 만한 낯설음이 전혀 없다. 낯선 곳을 가듯 어리숙한 표현이 없다. 저 깊은 우물물도 첫 두레박에 물은 버리듯 낯설음은 길가에 쏟아버리는 이들이 많다. 어쩌면 시인도 첫 시집에서 '첫'이라는 말을 쏟아 버렸나 보다. 무심코 가도 익숙해진 길을 가듯 강 시인의 시는 익숙함의 시들이다.

 

   시 속에서 그 익숙함의 표현들을 살펴보자. "입에서 모래가 씹혔다."('우리에겐 마술이 필요하다' 부분) 이 한 구절 속에 들어 있는 시의 익숙함, 완숙함의 습관을 읽는다. 바그다드 카페라는 영화 속에 모래바람이 시인에게 전이된 것이다. "치렁치렁 칡꽃도 등꽃도 홀로 아름다웠다"('세모와 네모의 시간'의 부분) 갈등이 있어야 세상이 아름다울까. 갈등이 없어야 세상이 아름다울까. 누구나 갈등 없는 아름다운 조화를 꿈꾸지만 하나님이 창조한 것은 같은 것이 없다. 어차피 '너'가 '나'와 구별되는 의미의 글자라면 둘 다 하나로 합쳐서 '내'로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내 가족', '내 이웃', '내 민족', '내 나라'다. 더 나아가 '내 지구'라는 말은 없지만 신조어 '내 지구'라는 말로 인류애를 실천해야 한다.

   '사랑' 이 얼마나 설레고 환상적인 말인가. 그 설렘과 환상적인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은 현실에서 '너'와 '나'의 구별 의식을 떼어내고 '내'의 단어 하나로 묶는 힘이다. 어디 그냥 말짱한 제정신으로 사랑이 찾아오지 않듯 '사랑이라는 마술'은 묘약을 한 잔 마셔야 황홀해지는 것이다. 묘약이 깨면 현실이 보이고 '내'는 다시 '나'와 '너'로 환원하려 할 것이다. 그래서 칡과 등나무는 얽혀져야 아름답게 오를 수 있는데  '치렁처렁 칡꽃도 등꽃도 홀로 아름다우'려 한다.

   우리는 살며 끊임없이 정상에 오르려 한다. 북한산에는 한두 개의 정상은 없다. '수백 개 정상이 있을 뿐'('북한산의 정상은 없습니다' 부분) 어쩌면 정상을 오르려는 마음은 인간의 본능일지 모른다. 퇴직한 선배는 전국 100대 명산을 오른다고 약속을 했다. 명산에서 기념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는 낙으로 살고 있다. 일단 재직 시절 직장에서 정상에 오르지 못한 한이라도 풀듯 무릎이 아프면서도 오른다.

   시인은 북한산에서 '정상이 어디 있나요?' 라는 물음을 듣고 인생의 정상을 돌아보았다. '돌아보면 정점 같았던 매 순간 / 산에 초입에 다시 서 있는 나를 발견했음을' 그렇다. 중학교 때는 고등학교를, 고등학교 때는 대학만 가면, 대학 때는 직장을 잡기를, 직장 잡으면 결혼하길 꿈꾸며 살았다. 돌아보면 인생은 늘 정상을 바라보면서 언덕을 넘고 바위를 넘었다. 정상인 줄 알았는데 막상 올라보면 또 다른 정상이 눈앞에 보이는 산행을 하면서 살았다. 그러니 강 시인은 단호하게 말한다. '북한산의 정상은 없습니다' 라고.

 

   수업시간에 필자는 종종 학생들에게 마술을 보여준다. 시험공부에 정신 없었던 학생들은 필자에 서툰 마술을 보면서 피식 웃는다. 그리고는 다시 교과서 속에 얼굴을 묻는다. '얘들아 우리에겐 마술이 필요하단다'라고 속으로 아이들 향해 속삭인다. 진로 수업은 '인간이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를 알려주는 철학이고, 인문학이다. '행복해지는 선택'으로의 발걸음을 알려주는 수업이다. 많은 사람들이 '돈, 명예, 권력'이 있으면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하고 그리로 열심히 달려가지만 정작 그것을 가져본 사람들은 그것이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너 지금 행복하니?' 라고 물으면 '행복하다'고 답하는 이가 누굴까. 학생들이 행복했을 때를 돌아보면, 100점 맞았을 때, 성적이 올랐을 때이겠지만 시험에서 100점의 마술은 있어도 인생에는 100점이 없다. 사람은 사랑에 빠졌을 때 행복하다. 사랑도 사실은 마술이고 깨어나면 다시 현실이다. 우리에게 인문학이 필요하고 철학이 필요한 것은 행복으로 찾아가는 길을 찾기 위함이라면 강 시인의 시집처럼 '우리에겐 마술이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