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칼럼] 에듀프레스에서 보기 삶의 발자국이 된 그리움의 시편(엄옥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 '밤이 달을 입었다'의 조영희 시조집
소크라테스의 좌우명이자 델피 아폴로신전 현관 기둥에 새겨져 있다는 말로 우리에게 친숙해진 말이 있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다. 사실 나 자신을 알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도대체 '나'란 존재는 누구인가. 나를 찾으면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고 열심히 행복하게 살겠건만 인생을 살면 살수록 꼬이는 삶의 문제들이 정작 '나는 누구인가'라는 원점의 질문을 던지게 한다. 소크라테스 같은 철학자들도 잘 몰라 좌우명으로 삼았다면 우리네 선남선녀(善男善女)들은 '나'란 존재에 대해 어찌 알겠는가.
'나'도 모르는데 우리는 끊임없이 '남'을 알려고 시도한다. 그래서 인문학을 공부하고 문화예술을 추구하여 자신을 표현함으로서 표현되어진 모습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려 한다. 춤으로 표현되어진 나, 그림으로 표현되어지는 나, 음악으로 표현되어지는 나, 그리고 많은 작가들은 언어로 표현되어진 작품 속에서 '나'의 존재를 찾으려 한다. 마음 속에 떠오르는 사고작용이 문자로 굳어지는 순간 마치 보이지 않던 기체가 액화되어 출렁거리다 고체로 굳어져 어느 형상을 나타내는 이치와 같다.
'밤이 달을 입었다'의 작가 조영희 시조시인은 조용조용하여 말이 별로 없어 기체와 같다면 행동거지도 조근조근하여 출렁이는 물과 같다. 비로소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고체처럼 굳어진 형상이 시인의 모습이다. 그래서 그런지 시인은 부드러우면서도 단아한 형식을 드러내고 있다. 자유분방하면서도 정형화되었고, 정형화 속에서 파격을 즐기고 있다. 겉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살포시 드러나는 품위가 있고, 드러난 자태를 안으로 자꾸 감추려는 전통미를 느낄 수가 있다. 그래서 시조를 쓰는가 보다.
작가가 시조시인이니 먼저 시조의 형식을 살펴보자. 시조의 형식은 초장, 중장, 종장의 3장 6구의 45자 내외의 기본적 틀을 처음부터 끝까지 고수하고 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시조의 기본 형식을 고수하고 있으나 행의 배열에 있어서 파격을 추구하고 있다. '설익은 / 시간 벗겨 / 퉁퉁 불은 밤을 비켜 // 피다만 / 풀잎들의 / 말 못한 입속말이 // 어젯밤 / 진통을 잃고 / 유리알을 낳았다'('아침이슬' 전문, 13쪽) 행의 배열을 파격으로 했다고 언뜻 자유시처럼 보이나 완벽한 시조의 형식을 고수하고 있으니 천상 시조시인이다.
예술가들의 특성은 기본적으로 같은 시조의 형식 안에 시적 영감을 가두더라도 남과 같은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다. 조 시조시인도 행의 배열이 자유롭다. 필자는 시인에게 특별한 이유나 원칙이라도 있나 살짝 물었더니 '그때그때마다 다르다' 한다.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어 시조의 형식에 가두지만 시조의 형식을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은 가득하다. '속눈썹 달라붙어 충혈된 밤하늘에 / 새벽빛 납작하게 밀치고 들이댈 즘 / 잘린 밤 / 풀칠을 하여 / 밤과 낮을 이었다.'('불면증' 부분, 30쪽) 눈 여겨 보면, 이 시조는 종장을 3행으로 분절하였다.
시조의 내용을 들여다보자. 일반적으로 시조는 '선경후정(先景後情)'이다. 대개 초장과 중장은 경치를 읊고 종장은 자신의 정서를 풀어놓는다. 쉽게 예를 들자면,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양사언, 조선 중기 문신) 이 시조를 보면 초장과 중장은 중국 산동성에 있는 태산의 경치를 말하고 있다. '태산이 높지마는 하늘 아래에 있으니 오르고 또 오르면 오를 수 있다'는 말이다. 시인은 종장에서 노력하지 않는 사람을 한탄하는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선경후정'은 시조의 내용조차 정형화하고 있다.
조 시조시인의 작품을 보면, '늦가을 서릿발에 알몸을 녹이면서 / 쪽달이 있었기에 외롬도 잊은 달밤 / 박새가 / 날개를 펴고 / 입 맞추던 사랑이야.('까치밥' 부분, 56쪽) 조 시조시인의 시조도 분석하면 초장과 중장은 '까치밥'이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종장에서는 박새로 비유된 자신의 사랑을 추억하고 있다. '고갯길 / 산모롱이 / 할미꽃 수염 옆에 // 할아버지 / 뒷짐 진 듯 / 노을빛 서성일 때 // 양은솥 / 끓는 녹두죽 / 울 할머니 살 냄새.'('녹두죽' 전문, 67쪽) 이 시조는 양은솥에 녹두죽을 끓이면서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옛 모습을 추억하고 있는데 녹두죽의 냄새가 나는 순간 할머니 살 냄새를 떠올리며 막연했던 추억을 구체화하고 있다.
많은 현대 시조시인들은 시조의 형식을 깨고 종장의 첫 구인 3,5의 글자수만 일치하면 시조로 인정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3,5가 아니라 종장의 첫 음보인 3글자만 지켜도 현대시조로 인정하고 있다. 조 시조시인은 시조의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에서도 전통시조의 형식을 그대로 이어받아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다. 117편의 시조가 한결같다는 것은 이미 수만은 습작을 통해 시조의 정형을 완성했다는 의미이다.
조 시조시인은 '깊숙이 / 숨겨놓고 / 꺼내보던 겨울밤이 // 눈감은 / 여름밤에 / 익다 데인 아픔으로 // 엎어진 / 밤을 뒤집어 / 외로움도 삶는다.('열대야' 전문, 37쪽) 이 시조를 보면 조선후기 황진이의 시조 '동짓달 기나긴 밤을'이라는 시조가 떠올려진다. '동지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버혀 내여 / 춘풍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조 시조시인은 한여름 밤에 깊숙이 숨겨놓은 겨울밤을 그리워하며 외로움을 뜨겁게 삶아내는데 비해, 황진이는 동짓달 그리움의 긴 밤을 잘라 임 오시는 날에 펴서 임과 함께 오랫동안 함께하겠다는 내용이다. 시조 한 편으로 감히 황진이에 견줄만 하다.
조 시조시인의 호는 여월정(餘月亭)이다. 그녀의 성품이 고스란히 압축된 호라 할 수 있다. 고요한 정자에 밝게 비치는 달빛과 같은 시조시인이다. 충남 서산에서 출생했으며, 제28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전국시조백일장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시집과 시조집을 다수 출간한 중견 시인이다.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강동문인협회 회장을 지내고 있다. 함께 지내며 화도 없이 늘 밝은 웃음이다. 그저 달빛 같은 시조시인이다. 그러니 그의 성품처럼 시조를 써서 제목도 『밤이 달을 입었다』이다.
조 시조시인의 시조 117편 중 맨 끝에 실은 '여월정(餘月亭)'이라는 시를 보자. '조요한 마당가 앉아 노는 달빛 아래 / 영롱한 잔물결이 뒤뜰 언덕 가득하고 / 희망루 정자 마루엔 별빛 달빛 총총하다.'('여월정' 부분, 139쪽) 이 시조의 첫 글자만 따면 '조영희'이다. 조 시조시인은 시조를 통해 끊임없이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인생을 살면서 소크라테스의 '좌우명'을 수없이 되뇌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현존하여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하면 '나는 여월정이다.'라고 답하며 조요하게 정자에 남은 달빛으로 밝게 빛나고 있을 것이다.(신호현 교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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