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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권금성의 전설

원 시 인 2022. 8. 10. 00:18

설악산 권금성의 전설

 

 

어느 시대인가, 한 마을에 권장사와 김장사가 살고 있다가 병란을 당하여 같이 가족을 거느리고 피난길에 올랐으나 적군이 뒤따라와 우선 산꼭대기로 가족을 데리고 피신했다. 올라가 보니 산 정상에는 아무 방비대책이 없었다. 그래서 다음날 적병이 올라올지도 모르는 급한 상황에서 두 장사는 오늘밤 안으로 성을 쌓기로 했다.

그래서 권장사는 권금성 아래에 흐르는 냇가에서 성을 쌓을만한 돌을 던지고, 김장사는 산위에서 돌을 받아서 성을 쌓기 시작했다. 밤에는 교대로 김장사가 냇가에서 돌을 던지고 권장사가 성을 쌓았다. 이렇게 하여 권금성은 두 장사에 의해 하룻밤 사이에 성이 되었다고 전한다. 이 전설의 권씨와 김씨 두 장사의 성을 따서 권금성이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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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속초시의 서쪽 설악산국립공원 내의 외설악에 위치한 석성이다. 험준한 석산(고도:860m)의 정상에 있는 둘레 337m의 성이다. 권금성은 『세종실록지리지』 「양양도호부」에 "옹금산석성(擁金山石城)이 부(府) 북쪽에 있다. 둘레가 1,980보(步)이며, 비가 오면 바위 사이에 물이 솟아 흘러서 샘이 된다."는 기록에서 처음 나타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양양도호부」 고적조에 "권금성(權金城) 설악산 꼭대기에 있으며 석축이다. 둘레는 1,112척이고 높이는 4척이었는데, 지금은 반쯤 무너졌다. 세상에 전해 오기로는 예전에 권씨와 김씨 두 집이 여기에 피란한 까닭으로 이름하였다 한다.

    낙산사 기문에 원나라 군사가 우리 강토에 마구 들어왔는데 이 고을에서는 설악산에다 성을 쌓아서 방어하였다고 한 곳이 이곳인 듯하다."고 기록하고 있어 권금성의 유래를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몽고 침입을 막기 위해 권씨와 김씨 두 장수가 하룻밤에 쌓았다고 하여 권금성이라는 지명이 생겼다는 전설과도 관련이 있어보인다. 『대동지지』 「양양도호부」 성지조에는 "설악산고성(雪岳山古城)이 산 정상에 있으며 권금성이라고 하며 토토성(土土城)이라고도 하는데 둘레는 2,112척이다."고 기록되어 있어 설악산고성이 권금성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토토성은 토왕성(土王城)의 오기인 듯한데 권금성과 토왕성을 혼돈한 것으로 보인다.

    국립공원 소공원에서 케이블카로 연결되어 1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정상에는 80칸에 이르는 반석과 실료대(失了臺) · 방령대(放鈴臺) 등이 있다. 또 케이블카 종점 아래쪽에 안락암(安樂庵)이라는 암자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권금성 [權金城, Gwongeumseong]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지명, 2008. 12., 김기혁, 옥한석, 성효현, 양보경, 전종한, 권선정, 김용상, 박경호, 손승호, 신종원, 이기봉, 이영희, 정부매, 조영국, 김정인, 박승규, 손용택, 심보경, 정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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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금성의 유래

 

 

    지금으로부터 1,300년 전에 삼국시대 때 고구려, 고구려 보장왕을 왕으로 올려 놓고 연개소문이 정권을 손아귀에 놓고 정권을 해 가는 무렵이었어요.

    그때 당시에 그 권씨, 김씨 양 장군을 역적으로 몰아서 역적으로 몰은 적이 있어 가지고 그럼 그분들이 고구려 역적으로 몰았으니 붙잡히면 죽을 꺼고 그러믄 신라로 도피를 해 가지고 신라에 와서 저 권금성이라고 하는 저 산 꼭대기 해발 860m 정상에 올라 가서 거기서 인제 그 권, 김 양 장군이 두 아들을 데리고 난세를 피하기 위하여 성을 축소하고 난을 피하고, 난세를 피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부하들을 시켜 가지고 저 정구평을 지나면 촛대바위라고 있습니다. 촛대바위라고 하는데 거기는 봉화대, 그 봉화대를 일러서,

    "이 골을 수상한 사람이 들어오면 봉화불을 올려라."

    그게 전화보담 빠르지요. 그래서 거기 봉화대로 한 때는 불려 오고 그 군량장이라고 하는 데는 군량미를 갖다 저장하고 군량미를 저장해 가지고 그게 인제 권금성으로 쭈욱 올라가고 금강굴에도 그 금강굴이 결과적으로 마적굴이라고 마적굴이야. 마적단이 있는 굴.

    그 양양고을 원 이도은씨가 그 원을 할 때 양양 고을을 털어다가 군량미를 갖다 저장해서 권금성을 올리고 금강굴로 옮기고 그러면서 난세를 피하고 그 난을 우리나라에 들어와, 권금성에서 난을 피했다고들 합니다.

그때 당시에 그 내려오는 전설이지만 그 권장군이라는 그 장군은 그 부근에 그 막사 부근에 어느 여인이 나타나서 낮에는 나타나지 않고 밤에만 나타나서 이렇게 뱅뱅 돌고 돌아댕겨. 권금성으로 돌아댕기면서 그 사랑을, 마음의 사랑을 하면서 돌아 댕기는데. 그 낮에는 어디 풀 속에 숨었다가 밤에는 저녁마다 그렇게 아주 쉴새 없이 매일 빠짐없이 비가 오나 그저 언제든지 이래 돌아 댕기다가 결과적으로 지쳐 가지고 그래 그 이튿날 아침에 그 부하들이 와서 대장한테 문안드릴려고 와 보니 웬 여인이 하나 죽었거든. 그 여인은, 대장이 하는 말이,

    "그 여인은 저 풀속에다 갖다 묻어라."

    그 여인을 풀 속에다 갖다 묻었는데 그 묻은 자리에서부텀 그 웬 풀씨가 나와 가지고 거름이 되어 가지고 잘 커 올라오더니 그래 인제 꽃이 밤에 피었다가 낮에는 지고 노랗고 좋은 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에 와서 달맞이꽃이라고 해서 달맞이 꽃은 낮에는 피지 않고 밤에 피어가지고 밤새도록 반기다가 낮에는 시들어지는 게 달맞이 꽃이, 그래서 달맞이 꽃이 생겼다고 합니다.

<유만석, 남·50, 설악동, 1981. 4. 17> <https://blog.daum.net/goldriver70/311879>

 

https://blog.naver.com/bbgolden/222425799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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