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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프레스]이기는 정치 지는 정치

원 시 인 2023. 8. 29.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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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정치 지는 정치 

 

    뜨거웠던 격정의 8월이 지나간다. 그럼에도 교사들은 서이초 교사의 억울한 죽음을 가슴에서 식힐 수 없어 49제가 오는 9월 4일에 학교장 재량휴업일로 정해 50만 교사들이 안타까운 죽음을 위로하고 무너진 대한민국 교권을 확립하는 날로 정하자는 물결이 거세게 일었다. 수업이 없는 매주 토요일마다 모였던 추모집회가 처음에 오천여 명 모였는데 바닷속으로 치달리는 교권의 언덕에서 슬픈 눈덩이는 아래로 갈수록 커져 지난 주엔 6만여 명이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모였다.

   필자는 8월 9일자 칼럼[http://www.edupress.kr/news/articleView.html?idxno=10712]에서 '교권 확립을 위해서 대통령이 나서야'라는 해법을 제시했다. 교육의 주체인 학생과 학부모, 교사가 서로 협력해야 교육이 굴러가게 마련이다. 삼륜차를 보면 앞에 바퀴가 하나요, 뒤에 바퀴가 두 개이다. 앞에서 교사가 교육을 끌어가면 학생과 학부모가 뒤에서 평형을 유지하며 따라와야 넘어지지 않고 잘 달린다. 그런데 지금은 삼륜차가 학생과 학부모 두 개의 바퀴를 앞세우고 뒤에서 교사가 좌우로 부지런히 움직이며 달리다가 방향을 잡는 뒷바퀴가 부러져 주저앉은 모습이다.

   우리 민족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위기 때마다 슬기로운 지도자가 지혜롭게 난국을 극복해 왔다. 혹자는 '지금이 무슨 교육의 위기냐.'고 반문하겠지만 내다보지 못하는 무지한 시각으로 무사안일(無事安逸)을 꿈꾸지만 흙탕물이 몰려오는 물길을 보고 시류를 읽을 줄 안다면 교육의 위기를 가래가 아닌 호미로 막을 시기이다. 9월 4일 추모제에 대해 교육부는 각종 법령을 내세워 교사들의 동요를 억누르려 하고, 일부 교육감은 참여를 권장함으로써 교단에 엇박자를 내고 있다. 교권 실추의 단초를 제공하는 학생인권조례나 아동학대법을 손보지 않겠다는 교육감이나 학생이나 학부모에 대한 제제는 없고 교사에 대한 처방만 제시한 알맹이 없는 「유치원 교원 교육활동을 위한 고시를 교육부는 발표했다.

    폭풍 치는 바다 위에서 이순신 장군이라면 이 난국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까.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 '나를 버리고 민족을 살리는 대안'이 없겠는가. 이쯤에서 우리는 '지는 정치 이기는 정치'를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시대의 마지막 보루인 교사들이 아스팔트 위에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치고 있는데 국회의원은 왜 가만히 있을까. 언론은 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할까. 기업인들은 왜 저들에게 시원한 물 한 모금, 빵 한 조각 나눠주지 않는가. 저들의 외침이 한낱 자신들의 이기를 위한 불법시위인가, 아니면 교육을 살려보자는 간곡한 호소인가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예전 민주화 운동 때 학생들이 거리에서 시위를 하면 목마를까 배고플까 손수레에 빵과 우유를 사서 나눠주던 교수님들을 기억한다. 희뿌연 체류탄 연기에 눈물 콧물 흘리고 있으면 숨겨주고 먹을 것 챙겨주던 이웃 시민들이 생각난다. 교권 회복은 교사를 살리는 일이기도 하지만 이 나라의 교육을 살리는 일이라는 것을 공감해야 한다. 아직 모른 척 침묵한다는 것은 교사들이 더 죽어나가든지, 교육이 더 붕괴되어 손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서로 네탓 공방이나 할 것인가. 

   문제가 심각해질수록 '교사에게 직접 전화할 수 없게 한다느니, 학생 사안에 대해 담임교사를 분리한다느니, 학부모의 학교 출입을 엄격히 제한한다느니' 교사와 학생, 학부모를 분리하려 하지만 바람직한 대안은 아니다. 오히려 '언제든 문제가 있으면 전화 주시고 수업 중이라 전화 못 받으면 문자로 남겨 주세요, 우리 반 아이는 제게 맡겨 주세요, 학부모님 상담이 필요하면 아무 때나 문 열고 찾아오세요'라고 해야 좋은 교사, 좋은 학생, 좋은 학부모'가 아닌가. 누가 교육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가.

    이순신 장군은 법으로 부하들을 다스리기 이전에 사랑과 신뢰를 돈독히 했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안다. 전쟁의 승리는 장군 혼자만의 지략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독불장군(獨不將軍)이라 하지 않은가. 동료병사의 죽음이 너무 억울하고 슬퍼서 추모하겠다는데 장군은 군법으로 다스리겠다고 칼을 휘두르고 옆에 부하 장수들은 '슬퍼해도 된다. 칼날은 내가 막아 줄게'라고 하고 있으니 슬픔 너머에 어둠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하다.

    10월 2일, 정치권에서는 코로나 이후 고향을 편히 찾아뵙고 내수 경제도 살리자고 임시휴업일을 고려하고 있다. 많은 학교는 임시휴업일을 국가에서 정하면 방학을 하루 연장해야 하는 현실이기에 학사일정이 어긋난다. 교육 현장에서는 9월 4일을 간절히 원하는데 대통령은 10월 2일을 만지고 있다. 남 일 같지 않은 동료교사의 억울한 죽음을 이생에서 마지막으로 편히 보내드리고 싶은 마음, 우리가 이 땅에서 아이들 더 열심히 가르치겠다는 다짐이다. 교권을 회복하여 교육을 살리기 위해 9월 4일을 임시휴업일로 정해 달라고 하는데 이순신 장군도 칼을 빼들었을까. 이것이 정작 이기는 정치일까. 아니면 지는 정치일까.

    8월 9일자 칼럼에서 공무집행방해와 특수공무집행방해에 경찰공무원, 소방공무원, 행정복지센터 직원들만이 아니라 이제는 교육공무원도 포함시켜야 할 때가 되었다고 했다. 갈수록 폭풍 치는 파도를 잠재우는 가장 쉬운 처방인데 어찌 간과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제 교권 살리기에 50만 교사들만 아니라 5만 명 이상의 학부모 청원도 마감되었다. 교권을 살려야 선의의 학생들을 교사들이 보호하여 교육을 살리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아마 이순신 장군이 현생할 수 없다면 현명한 대통령이 나서야 거꾸로 달리는 삼위일체 삼륜차의 방향을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