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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바이처 이야기

원 시 인 2010. 3. 27. 20:56

 

 <<슈바이처 이야기>>


 

  21살의 슈바이처는 결심했습니다.

  "자신만의 행복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된다. 남에게 베푸는 인생을 살자. 그러기 위해 30살까지는 학문과 예술을 위해 살고, 그 이후에는 인류를 위해서 살자." 그리고는 이 결심을 위해 30살 이전에 뛰어난 신학자요 철학자, 음악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슈바이처가 드디어 29살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기숙사의 책상 위에 놓인 잡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책에는 아프리카인들의 비참한 생활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가 써 넣은 글이 눈에 띄었습니다.

  "…… 이 곳에는 의사도 없습니다. 약도 없습니다. 의사이신 분은 와 주십시오." 이 글을 본 슈바이처는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위해 일생을 바쳐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말렸습니다.

  "그 곳은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이다. 자네는 견디지 못 할 거야." 친구들 뿐만 아니라 부모님도 반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슈바이처는 하나님의 뜻대로 불쌍한 이웃을 위해 살겠다고 말을 하니 부모님은 더 이상 반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목사였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에 가기 위해서는 먼저 의사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트라스브르 대학의 의학부에 입학하였습니다. 슈바이처는 이미 그 곳의 교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놀랐습니다. 교수가 학생이 되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슈바이처는 열심히 공부하여 36살 때 의학 박사가 되었습니다. 그 뒤에도 파리에서 1년을 더 공부했습니다.

  그는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 가봉의 오고웨이 강가의 랑바레네라는 곳에 병원을 세우기로 정했습니다. 병원을 세우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습니다. 이 돈을 모으기 위해 음악가이기도 한 슈바이처는 오르간 연주회를 열어 돈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목사로 있던 성 니콜라이 교회에서도 성금을 보태 주었습니다.

  1912년 37살 때 헬레네 브레슬라우라와 결혼하여 함께 아프리카로 떠났습니다. 온도가 높고 습기가 많은 아프리카에는 많은 환자들이 있었습니다. 닭장을 개조하여 진료실을 만들어서 거기서 환자들을 치료했습니다.

  의사로서 뿐만 아니라 전도사로도 활동하던 슈바이처는 제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포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포로에서 풀려난 그는 또 다시 강연과 오르간 연주로 병원 운영 자금을 모았습니다.

  1924년 다시 랑바레네로 간 슈바이처는 자신의 재산을 모두 털어 제대로 된 병원 건물을 짓게 되었습니다. 일생 동안 아프리카인들을 위해 봉사한 슈바이처는 1952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문제 1. 슈바이처가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어떤 가치라 할 수 있는가? (본래적 가치, 도덕적 가치, 종교적 가치)

  문제 2. 슈바이처가 아프리카로 떠나기 위해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자신이 교수로 있던 스트라스브로 대학 의학부에 입학하는 가치는 어떤 가치인가?(도구적 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