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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전도를 지나다가 짓다

원 시 인 2010. 8. 4. 10:52

삼전도를 지나다가 짓다 [過三田渡有作]
南有容 作 / 柳德衡 譯

 

 

石生不願堅以穹 돌로 생겨나 단단하고 크기를 바라지 말라
試看三田渡口碑 삼전도 입구의 비석 보면 알리라
人生不願才且文 사람으로 나서 재주 있고 글 잘하길 바라지 말라
試讀三田碑上辭 삼전도비 위의 글 읽어보면 알리라
三田日夜流沄沄 삼전도에선 밤낮으로 흘러 돌아서
下流直接東江涘 아래로 흘러가 곧바로 동강 가에 닿으니
他年若過東江去 다른 해 만약 동강을 지나간다면
莫以吾牛飮江水 우리 소가 강물 마시지 못하게 하리

출전 <뇌연집(䨓淵集)> 卷2

김훈 선생님의 <남한산성>을 읽었습니다.
한 번은 자는 것도 잊고 문체를 따라 매우 빠르게, 또 한 번은 생각하고 자료를 보며 매우 느리게. 책은 한권이었고 그리 자세한 이야기를 담지는 않았지만, 많은 것이 담겨 있는 듯했습니다. 또 그 안에서 결코 시비의 양단으로 나눌 수 없는, 서로 잘 맞물리지 않는 생각과 말과 행동들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 복제된 현재가 놓여 있었습니다.

김훈 선생님이 라디오 대담에서 말한,‘그런 성 안에서 논의되는 치욕이나 자존, 그런 것들은 그 언어로서 정당하고 찬란한 것이지만. 자존이라는 것이. 그것은 곧 인간의 현실 속에서 큰 의미를 갖지는 못하리라 생각했던 거죠.’라는 대목과 ‘인조는 그 치욕을 받아들임으로써 새로운 날을 열어가는 것이죠.’라는 대목은 현재를 다른 시각으로 볼 여지를 주었습니다.

남한산성은 역사 속에 복구되고, 삼전도는 세월 속에 사라졌어도, 우리는 복제된 과거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현재라는 역사도 과거의 여느 때처럼 삶보다는 말로 대충 때워진 채 지나가는 게 아닌가 합니다. 번지르르 하게 꾸며진 말로. 그래서 370여년전 그 자리에 쓰러지고, 100년전 그 자리에 또 쓰러지고, 다시 50여년전 그 자리에 또 쓰러지고, 20여년전 그 자리에 또 쓰러지고, 3년전 또 그 자리에 또 쓰러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