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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논술시험] ‘논술의 원조’ 바칼로레아

원 시 인 2010. 8. 4. 14:04

[프랑스의 논술시험] ‘논술의 원조’ 바칼로레아는 고교 졸업자격 시험
논술, 어떻게 공부해야 하나-
프랑스어, 철학, 수학 등 공통과목 포함 9~12과목 치러... 시험일 1년 전 출제범위 발표


국내에서 ‘논술의 원조’로 갑자기 유행어가 된 프랑스의 고등학교 졸업자격시험 바칼로레아(baccalaureat)는 대부분의 과목이 논술 형식으로 시험을 치른다. 하지만 한국 학생들에 비해 프랑스 학생들이 느끼는 논술 부담은 상대적으로 적다. 한국처럼 수능 외에 별도로 더 준비해야 하는 시험도 아닌 데다, 프랑스 고등학교 교과 과정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파리의 루이 르 그랑 고등학교에 다니는 송희정양은 올해 바칼로레아를 치르는 학년, 즉 테르미날이다. 한국으로 치면 고3이다. 송양은 “과목별로 3주에 한 번꼴로 계속 시험을 치르면서 바칼로레아에 대비하는 데다, 바칼로레아가 주로 고3 때 학교에서 배우고 시험 치르는 것의 연장이기 때문에 특별히 입시 부담을 느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공대 지망생이지만 송양은 얼마 전 역사 시간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배웠다.
철학 과목 숙제도 선생님이 내준 플라톤, 쇼펜하우어, 프로이트, 데카르트 등의 텍스트를 읽고 그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었다. 평소 수업시간과 숙제를 통해 책을 읽고 주어진 텍스트를 분석해 글 쓰는 것을 끊임없이 훈련한다. 또 학교 시험도 논술 방식으로 계속 치른다. 그러니 바칼로레아의 논술식 시험이 새삼스럽게 부담스러울 리가 없다.
그렇다고 바칼로레아의 모든 시험이 학교에서 배운 교재 범위 내에서만 나오는 건 아니다. 송양은 “바칼로레아 가운데 2학년 말에 미리 치른 프랑스어 시험의 경우, 한번도 보지 않은 텍스트가 나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학 문제도 평소 실력이 쌓여 있으면 처음 본 문제도 얼마든지 풀 수 있는 것처럼, 문학 작품의 텍스트 분석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너무나 당연한 듯 담담하게 대답했다.
프랑스에서 국어에 해당하는 프랑스어의 경우, 시·소설·희곡·전기 등 장르별로 나눠 주요 텍스트를 20~30개 선정한다. 가령 라퐁텐의 우화, 보들레르의 시집 같은 고전 문학 작품을 수업 시간 교재로 채택하는 것이다. 방학이 되면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읽어야 할 책 목록을 나눠준다. 충실하게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자기 공부를 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의 실력 차이는 중학교 때는 당장 드러나지 않아도 학년이 높아질수록 점점 벌어진다.
바칼로레아는 프랑스의 고등학교 졸업자격 시험이다. 한국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자동적으로 졸업장이 주어지지만 프랑스는 다르다. 바칼로레아를 통과해야 중등교육과정에 해당하는 고등학교 졸업 자격이 인정된다. 이와 함께 대학에서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자격도 주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별도의 대학 입시 없이 바칼로레아만 합격하면 그랑제콜을 제외한 일반 대학에는 어디든 들어갈 수 있다.
1808년부터 실시
바칼로레아는 1808년 나폴레옹 당시 중등교육의 수료를 인정하는 공인 제도로 실시돼 200년 가량의 역사를 자랑한다. 대학 교육이 대중화되면서 합격률도 점점 높아졌다. 2004년의 전체 수험생 62만5000명 가운데 합격자는 49만8400명으로, 합격률이 79.7%에 달했다. 매년 80% 안팎의 합격률을 나타낸다. 1980년대 사회당 출신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집권한 후에는 바칼로레아의 우열을 철폐해 합격 여부만으로 대학 입학이 결정되게 했다. 과목별로 20점 만점인데 평균 10점을 넘으면 합격이다. 이렇듯 프랑스에서 대학 문은 누구에게나 활짝 열어놓았다. 대신 대학에 입학해 중도 탈락률이 무척 높다.
또한 엘리트 양성은 그랑제콜이라는 특수 고등교육기관을 통해 이뤄진다. 그랑제콜에 입학하려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칼로레아에 합격한 뒤 별도로 2~3년 더 준비과정을 밟아 시험을 치러야 한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끼리 그랑제콜 입학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바칼로레아는 응시 분야별로 크게 일반(Le baccalaureat general), 기술(Le baccalaureat technologique), 직업(Le baccalaureat professionnel) 분야로 나눠진다. 이 가운데 한국의 수능처럼 일반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수험생들이 지원하는 분야가 바칼로레아 일반이다. 수험생 100명 중 52명꼴로 바칼로레아 일반에 응시한다.
일반 바칼로레아는 다시 과학(baccalaureat S), 문학(baccalaureat L), 경제사회(baccalaureat ES) 계열로 나뉜다. 일반 계열 가운데 과학 계열 응시생이 문학과 경제사회 계열 응시생을 합한 숫자와 엇비슷하다. 한국으로 치면 문과와 이과가 반반씩인 셈이다.
프랑스 교육부는 1년 전에 다음해 6월에 치를 바칼로레아 출제 범위를 미리 발표한다. 교육부의 출제범위가 발표되면 교사와 학생들은 1년간 바칼로레아 준비에 전념한다.
공통 과목은 프랑스어, 철학, 역사 및 지리, 제1외국어, 수학, 체육이고 계열별로 선택과목 시험을 더 치른다. 다 합해서 9~12과목쯤 된다. 이 가운데 프랑스어는 고3이 되기 전, 2학년 말에 미리 시험을 치른다. 4시간의 필기시험과 20분간의 구두시험을 병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계열별로 과목별 비중도 다르다. 문학 계열은 철학의 비중이 높고 과학 계열은 수학이 가장 높으며 경제사회 계열은 경제학이 가장 중요한 식이다.
바칼로레아는 매년 6월경 공통 과목인 철학 시험을 필두로 시작된다. 장장 4시간에 걸쳐 철학 시험을 치르는데 특히 문제가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모든 교과과정 논술식 교육
지난해 문학 계열 바칼로레아에 출제된 철학 문제는 3가지였다. ‘옳은 일과 그른 일은 단지 관습적인 것인가’ ‘언어는 오직 의사 소통을 위한 것인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연에 관한 텍스트를 설명하라’였다. 수험생들은 이 중 하나를 골라 글을 써야 한다.
경제사회 계열에 출제된 문제는 ‘우리는 기술로부터 무엇을 기다리나’ ‘정치 행위는 역사 인식에 이끌려야 하나’ ‘윤리와 도덕률에 관한 칸트의 텍스트를 설명하라’ 등 세 가지였다.
과학 계열에서는 ‘자유롭다는 것, 그것은 어떤 장애물도 만나지 않는 것인가’ ‘예술 작품에 대한 감수성은 교육이 요구되는가’ ‘진리 탐구에 대한 철학자 말브랑슈의 텍스트를 설명하라’라는 문제가 나왔다.
문제가 어렵다고 프랑스 사람 모두가 철학자인 것은 아니다. 프랑스 학생들에게도 철학 시험은 특히 까다로운 과목에 속해 평균 점수가 20점 만점에 7점밖에 안 된다는 통계도 있다. 까다로운 철학 과목의 비중이 높은 문학 계열 대신, 경제사회 계열을 지망하는 학생도 늘고 있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철학 과목이 바칼로레아 논술의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지만, 실은 철학뿐 아니라 프랑스어, 역사·지리 등 나머지 과목들도 모두 논술식으로 시험을 치른다.
하지만 프랑스 내에서는 바칼로레아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시험 치르는 데 드는 비용과 학생들의 실력 향상이라는 교육 효과를 감안하면 바칼로레아가 최선의 방식만은 아니라며 미국식 시험 방식을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 OECD의 교육 평가 등에서 프랑스 학생들의 실력은 중간 정도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바칼로레아가 프랑스 교육의 축소판이라는 점이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암기식 교육이 아니라 모든 교과 과정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논술식 교육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학교 수업에만 충실하면 바칼로레아를 치를 수 있다. 수학 등 몇몇 과목을 제외하고는 한국처럼 논술 준비를 위해 별도로 사교육 붐이 일 정도는 아니다. 또한 고등학교 교사들이 출제와 채점을 맡기 때문에 교과 과정에서 크게 벗어나지도 않는다. 입시 제도가 교육 현장과 동떨어져 있거나 지나치게 앞서나가지 않고, 공교육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는 점이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점이다.
파리=강경희 조선일보 특파원(khka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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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eekly.chosun.com/wdata/html/news/200602/2006020900004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