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인세상/◈글모음◈
[배화여중] 1학년 국어 원시인
한 학기 한 책 읽기
- 꽃들에게 희망을(트리나 포올러스)
꽃들에게 희망을 본문 보기 1학기 한 책읽기(꽃들에게 희망을).hwp
꽃들에게 희망을 영상 보기
https://youtu.be/MZPew6Oo2m4
https://youtu.be/z9lo4b33fTo
1차시 : [꽃들에게 희망을] 책을 읽고 위 두 개의 영상을 보여준다.
2차시 : 위의 학습지 활동을 하고 발표를 시킨다.(생기부 교과 특성 기록 근거)
3차시 : 발표 추가 있으면 시키고 교사의 특강(책 내용 심층 분석 + 독후감 쓰기 요령)
4차시 : 독후감 쓰기(과제를 내주면 좋은데 과제를 못 내주니 학교서 쓰기)와 첨삭 => 공모전에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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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전]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을 읽고서
1학년 O반 OOO
오늘은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을 읽었다. 이 책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두껍다. 하지만 펼쳐보면 그림이 상당히 많아 거의 그림책 느낌이다. 이 책을 처음 봤을때는 그냥 애벌레와 나비가 나오는 동화책 느낌을 많이 받았다. 아무래도 동물이 나오는 책은 거의 다 어린아이들이 읽는 동화책, 그것도 무조건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고 생각하는 나의 선입견 때문인 것 같다. 기껏해야 수 cm 밖에 안되는 벌레들이 주인공인 소설은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내용은 특이하면서도 특별했다. 책을 읽던 와중에, 벌레기둥이 처음으로 등장한 즈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줄무늬 애벌레가 오르려 하는 벌레기둥의 높이는 얼마 쯤 될까?’ 뜬금없지만, 이 생각이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게다가 얼마 안되는 애벌레들이 기둥을 만들어 그 기둥이 구름까지 닿는다니, 신기했다. 그 외에도 ‘이 기둥의 중심은 하나의 애벌레일 것인데 그 애벌레는 어떻게 그 깊숙이 들어간 걸까?’, ‘벌레기둥의 시초는 누구일까?’ 등등, 벌레기둥에 대한 궁금증이 계속 샘솟았다. 여기서 나오는 줄무늬 애벌레는 안타깝게도 나와는 거리가 멀다. 줄무늬 애벌레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모습에 충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스타일이고, 나는 그냥 그대로 평탄하게 사는 스타일이다. 사실은 줄무늬 애벌레 같은 스타일이 조금 더 깊게 생각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 같다. 픽션이지만, 줄무늬 애벌레가 사는 모습을 본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에 대한 것을 더욱 더 찾아나가려고 애쓰는 모습이 나에게는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점을 보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머리가 살짝 멍했다. ‘이 작은 애벌레도 삶에 대해 알아가려고 기를 쓰며 노력하는데, 왜 나는 제자리에만 머물러 있는 걸까.’ 하고 한숨이 나왔다. 저자가 어떤 목적으로 이 책을 썼는지는 난 저자가 아니므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다들 원하고 급여가 많은 직업을 선택하려 자신의 장래희망이나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직업을 위한 꿈을 다 제쳐두고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시험 대비나 하는 우리 십대들에게 희망을 조금이라도 전해주려 이 책을 쓴 것 같다. 다른 쪽으로도 생각을 해보려 했지만, 지금 내 상황이 그닥 좋지는 않기 때문에 다른 쪽으로는 생각을 하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사실, 이 책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5번은 넘게 읽은 책이다. 어릴 때는 그저 ‘애벌레 두 마리가 나비로 변했구나.’ 하고 말았지만, 지금은 워낙 생각이 많아지고 그럴 때이다 보니 이 책에 나오는 거의 모든 것을 의미를 부여하고 깊게 생각하면서 나와 비교도 해봤다. 어릴 때는 아무래도 모든 근심과 걱정을 다 내려놓고 살아서 더욱 평면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서 1가지 더 드는 생각은 ‘나도 한번 이렇게 짧지만 생각할 여지를 주는 책을 써보고 싶다’ 였다. 요즘 들어 책 읽는게 부쩍 좋아져서 그런가, 아니면 글 쓰기를 좋아하는 엄마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그런가. 언젠가는 내가 직접 쓴, 내 생각이 담겨있는 에세이 형태의 글을 한 번 써보고 싶었다. 사실 원시시대에서 오신 선생님이 자진해서 독후감을 써보라고 하실 때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에세이는 아니지만 내 생각을 조금이나마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오다니,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잘 쓴 작품은 독후감 공모전에 나갈 수 있다니. 수만 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뒤덮었다. 그래서인지 또 다른 책 <갈매기의 꿈> 이란 책을 읽을 때에 집중이 잘 안된 것 같다. 수만 가지 생각에 비해 분량이 너무 적은 것 같지만, 그래도 독후감을 쓰는 내내 재미있었다. 이 책은 간편하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조금 더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아주 좋은 책인 것 같다. 역시 베스트셀러는 과언이 아니었다.
[원시인의 말]
중학교 1학년 보통 아이들은 이 정도의 글쓰기를 해낼 수 없다. 이 아이는 필력이 있는 아이다. 그런데 그냥 칭찬하고 넘어갈 아이는 아니다.
일단 이런게 문단구성을 무시하면 평가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첫째, 문단구성을 알려줬다. 둘째, 글쓰기의 승부는 분량인데 분량을 채우기 위해 글의 논리를 벗어난 쓸 데 없는 이야기를 늘려 쓰라는 것이다. 분량은 인용에서 온다. '남의 말(명언), 고사성어, 속담, 격언, 다른 책, 드라마나 영화' 등의 이야기를 끌어들여야 한다.
쓰고 싶은 아이들을 개별지도를 해서 달라지는 모습이다. 아이들이 대단하다. 배움에 대한 욕구가 충만한 아이들이 많다. 그들의 눈이 반짝인다. 밤하늘의 별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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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후]
나도 한 번 써 보고 싶은 책
[ 읽기 전에 나] - 좋은 말 인용 - 나의 이야기
오늘은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을 읽었다. 이 책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두껍다. 하지만 펼쳐보면 그림이 상당히 많아 거의 그림책 느낌이다. 이 책을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애벌레와 나비가 나오는 동화책 느낌을 많이 받았다. 아무래도 동물이 나오는 책은 거의 다 어린아이들이 읽는 동화책, 그것도 무조건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고 생각하는 나의 선입견 때문인 것 같다.
[ 읽으면서의 나] - 내용과 너의 의견... 변화 과정 - 인용 다른 책, 영화..
기껏해야 수 cm 밖에 안되는 벌레들이 주인공인 소설은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내용은 특이하면서도 특별했다. 책을 읽던 와중에, 벌레기둥이 처음으로 등장할 즈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줄무늬 애벌레가 오르려 하는 벌레기둥의 높이는 얼마 쯤 될까?’ 뜬금없지만, 이 생각이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게다가 얼마 안되는 애벌레들이 기둥을 만들어 그 기둥이 구름까지 닿는다니, 신기했다.
그 외에도 ‘이 기둥의 중심은 하나의 애벌레일 것인데 그 애벌레는 어떻게 그 깊숙이 들어간 걸까?’, ‘벌레기둥의 시초는 누구일까?’ 등등, 벌레기둥에 대한 궁금증이 계속 샘솟았다.
여기서 나오는 줄무늬 애벌레는 안타깝게도 나와는 거리가 멀다. 줄무늬 애벌레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모습에 충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스타일이고, 나는 그냥 그대로 평탄하게 사는 스타일이다. 사실은 줄무늬 애벌레 같은 스타일이 조금 더 깊게 생각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 같다.
픽션이지만, 줄무늬 애벌레가 사는 모습을 본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에 대한 것을 더욱 더 찾아나가려고 애쓰는 모습이 나에게는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점을 보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머리가 살짝 멍했다. ‘이 작은 애벌레도 삶에 대해 알아가려고 기를 쓰며 노력하는데, 왜 나는 제자리에만 머물러 있는 걸까.’ 하고 한숨이 나왔다.
저자가 어떤 목적으로 이 책을 썼는지는 난 저자가 아니므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다들 원하고 급여가 많은 직업을 선택하려 자신의 장래희망이나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직업을 위한 꿈을 다 제쳐두고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시험 대비나 하는 우리 십대들에게 희망을 조금이라도 전해주려 이 책을 쓴 것 같다. 다른 쪽으로도 생각을 해보려 했지만, 지금 내 상황이 그닥 좋지는 않기 때문에 다른 쪽으로는 생각을 하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사실, 이 책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5번은 넘게 읽은 책이다. 어릴 때는 그저 ‘애벌레 두 마리가 나비로 변했구나.’ 하고 말았지만, 지금은 워낙 생각이 많아지고 그럴 때이다 보니 이 책에 나오는 거의 모든 것을 의미를 부여하고 깊게 생각하면서 나와 비교도 해봤다. 어릴 때는 아무래도 모든 근심과 걱정을 다 내려놓고 살아서 더욱 평면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 읽고 난 후의 나] - 인용
이 책을 읽고 나서 1가지 더 드는 생각은 ‘나도 한번 이렇게 짧지만 생각할 여지를 주는 책을 써보고 싶다’ 였다. 요즘 들어 책 읽는게 부쩍 좋아져서 그런가, 아니면 글 쓰기를 좋아하는 엄마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그런가. 언젠가는 내가 직접 쓴, 내 생각이 담겨있는 에세이 형태의 글을 한 번 써보고 싶었다. 사실 원시시대에서 오신 선생님이 자진해서 독후감을 써보라고 하실 때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에세이는 아니지만 내 생각을 조금이나마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오다니,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잘 쓴 작품은 독후감 공모전에 나갈 수 있다니. 수만 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뒤덮었다.
그래서인지 또 다른 책 <갈매기의 꿈> 이란 책을 읽을 때에 집중이 잘 안된 것 같다. 수만 가지 생각에 비해 분량이 너무 적은 것 같지만, 그래도 독후감을 쓰는 내내 재미있었다. 이 책은 간편하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조금 더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아주 좋은 책인 것 같다. 역시 베스트셀러는 과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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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에게 희망을 독후감-
세상에게 희망을
- ‘꽃들에게 희망’을 읽고
[읽기 전에 나]
‘나의 장래희망은 무엇일까?”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그리고 어쩌면 지금도 늘 하고 있는 고민이다. 나는 아직 장래희망을 정하지도 못했고 어떤 분야에 특별히 뛰어나지도 않다. 또한 마음에 드는 직업도 찾지 못해 주변 어른들의 한마디에 하루에도 몇 번씩 꿈이 바뀌기도 한다. 이러한 내 모습에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빨리 꿈을 찾아야지’라는 마음으로 늘 조급했었고, 그 길을 걸어갔을 때 나에게 다가올 결과에 대해 두려워하며 하루하루를 지냈다. 그러나 그저 표지에 그려진 커다란 나비가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제목과 무슨 관련이 있을지 궁금한 마음에 얼른 펼쳐본 책이 나에게 이렇게나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읽으면서의 나]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호랑 애벌레는 끝이 보이지 않는 높은 애벌레 기둥을 보고 그 끝이 궁금해서 애벌레 기둥을 오르게 된다. 하지만 올라가는 도중 노랑 애벌레를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되고 더욱 행복한 삶을 위해 기둥에서 내려오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애벌레 기둥의 끝이 너무나도 궁금한 나머지 호랑 애벌레는 또 다시 기둥을 올라간다. 마침내 끝을 마주한 순간 주변에 있는 수많은 애벌레 기둥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없는 현실을 보고 분노하게 된다. 이 호랑 애벌레의 현실을 보고 나는 애벌레 기둥이 내가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직업을 갖기 위해 서로 밟고 밟히는 치열한 경쟁을 하고, 그래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현실 말이다. 하지만 애벌레 기둥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현실의 경쟁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것도 마찬가지이다. 열심히 경쟁을 해서 성공했지만 정작 진정한 행복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반면 호랑 애벌레가 기둥에 올라가고 있을 때 노랑 애벌레는 고치를 틀어 나비가 되었다. 노랑 나비를 보고 호랑 애벌레는 결국 그 기둥을 다시 내려와 마침내 아름다운 두 날개로 날아다니며 하늘과 땅을 연결시키고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사랑의 씨앗을 전해주는 나비가 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노랑 애벌레가 자신의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기꺼이 다른 것을 포기할 만큼의 열정을 가지고 끝까지 인내하여 목표를 이루는 모습도 매우 인상적이었고 그런 모습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호랑 애벌레의 모습이 더 가깝게 다가왔다. 나처럼 원하는 것, 그리고 목표를 찾지 못했던 호랑 애벌레. 하지만 호랑 애벌레는 ‘칠전팔기’ 라는 속담처럼 여러 번 시도를 하고, 실패를 하면 다른 방향으로 다시 도전하는 등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서, 결국에는 자신이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였다. 이런 모습을 보며 나도 ‘성공의 반대는 실패가 아니라 포기이다’ 라는 말처럼 아직 목표가 뚜렷하지 않지만 시간을 가지고 신중히 생각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해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읽은 후의 나]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꿈을 빨리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했고 그 길이 실패할까 봐, 내 뜻대로 되지 않을까 봐 늘 걱정하곤 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는 호랑 애벌레처럼 여러 방면으로 도전해보고, 실패해도 다시 목표를 찾아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으로 알게 되었다. 내가 지금 가는 길은 어쩌면 호랑 애벌레가 치열하게 올라간 기둥일지 모른다. 그리고 호랑 애벌레가 그랬듯이 꼭대기에 올라가 아무것도 없는 현실을 보고 허무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호랑 애벌레를 기억하자. 언젠가 호랑 애벌레가 노랑 나비를 보고 진정한 삶의 목표를 찾은 것처럼 나도 포기하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목표를 찾을 것이다. 그리고 호랑 애벌레가 고치 안에서의 두려움을 이기고 마침내 나비가 되어 꽃 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되었듯이 무엇을 위해 나아가고 있는지 그 의미를 잊지 않아야겠다. 많은 도전과 실패 끝에 삶의 의미를 찾은 호랑 애벌레처럼 나도 나비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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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에게 희망을>
배화여중-1-O-김OO
처음에 난 그냥 제목을 보고 ‘꽃들에게 희망을?’ 이건 그냥나비가 꽃의 꽃가루를 다른 꽃으로 옮겨주나??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 책의 표지를 보고 생각한 것과는 내용에 처음부터 매우 달랐다. 나는 책을 읽으며 애벌레 기둥이 대체 뭘 하는 것 일까 곰곰이 생각했다. 지은이가 생각한 것과는 좀 다를 수 있지만 나는 처음엔 그들의 인생의 목표를 찾으러 간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점점 내가 이 책을 보면서 자꾸 애벌레들이 서로서로를 밟고 올라가고 그냥 저기에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올라간다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슬픈 감정을 느낀 곳은 제 1장의 27쪽~28쪽 이다. 거기에는 ‘이런 상황에서 애벌레들은 더 이상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위협과 장애물일 뿐이었습니다. 호랑 애벌레는 그 장애물을 디딤돌로 삼고, 위협을 기회로 바꾸었습니다. 오로지 남을 딛고 올라서야 한다는 생각이 참으로 큰 도움이 되었고, 호랑 애벌레는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어떤 날은 제자리를 지키는 것만도 힘겨웠습니다. 그럴 때면 특히 불안의 어두운 그림자가 호랑 애벌레의 마음을 괴롭혔습니다. 그림자는 이렇게 속삭이곤 했습니다. “꼭대기에는 뭐가 있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28쪽) 하루는 하도 화가 나서, 그림자의 속삭임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버럭 고함을 질렀습니다. “나도 몰라 그런 건 생각할 시간도 없단 말이야!” 그때 호랑 애벌레 밑에 눌려 있던 노랑 애벌레가 숨을 헐떡이며 물었습니다. “혼잣말을 한 것뿐이야. 별로 중요한건 아니야.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궁금했을 뿐이야.’ 라고 적혀있었다. 내가 ‘장애물’이란 단어에다가 빨간색으로 색을 바꿔서 썼는데 그 이유는 그 부분을 읽었을 때 충격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간 연한 빨간색으로 칠한 부분은 내가 읽고 나서 마음이 아팠던 곳이다. 그리고 파란색은 내가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다. 애벌레들이 다들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왜 벌레 기둥의 꼭대기에는 뭐가 있는지는 내가 궁금했던 것 이다. 마지막으로 보라색으로 칠해져있는 것도 파란색과 비슷하게 내가 궁금하기도 하고 이들이 기둥을 타는 이유가 궁금하기도 한 부분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진짜 이번년도 안에라도 나의 인생 목표를 정해야 될 것 같다. 그 많은 애벌레들이 애벌레 기둥을 아무 생각 없이 올라간단 것이 정말 엉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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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읽기 전과 후가 다른 책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을 읽고 1학년 등반 김 * 연 [읽기 전의 나] 나에게는 지루했던 국어 시간에 신호현 선생님께서는 꽃들에게 희망을 이라는 책을 건내 주셨다. 국어 시간에 국어 수업을 하지 않고 책을 읽는 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런 마음으로 책을 보니 어떤 글 인들 재미 없겠나.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글보다는 그림이 많았고 책 두께도 얇았다. 그래서 당연히 어린애들이 보는 책이구나 생각했는데 선생님께서는 만약 이 책 작가인 트리나 폴러스께서 살아 계셨다면 노벨 문학상감 이라고 하셨다. 이해가 안되었다. 어떻게 글보다 그림이 많은 책에서 감명 깊은 문구가 나올 수 있는지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대단한 책이라니 이 책의 제목이 담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하였다. [읽으면서의 나] 책에 나오는 호랑애벌레는 삶이란 단순히 먹고 자라는 것보다 더 나은 생활이라고 생각하여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돌아다니다 다른 애벌레들이 얽히고 얽힌 벌레기둥을 발견한다. 호랑애벌레는 벌레기둥을 보며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전율과 흥분을 느껴 결국 이 벌레기둥의 하나가 되고 만다. 그리고 그곳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벌레기둥에다가 자신의 인생을 바친다. 여기까지의 내용을 읽는 동안 나는 소름이 끼쳤다. 나와의 삶과 거의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아기 때 먹고 자라는 단계를 거쳤고 유치원 때 여러 경험을 바탕으로 내 의지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 성적이라는 벌레기둥 같은 존재를 보고 오로지 그것을 위해 공부를 목표로 생활하고 있다. 공부를 왜 하는지 이유도 모르고 말이다. 호랑애벌레는 밟고 밟히는 삶을 선택하였다. 그 선택이 잘못됐다, 잘못되지 않더라고 결정지을 수는 없지만, 분명 그에게는 그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밟고 밟히는 삶을 살던 중 그는 노랑애벌레를 만나게 되고, 이 끔찍한 삶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그 기둥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그들은 아주 잠깐 삶의 행복을 느끼게 되지만 호랑애벌레는 다시 한 번 벌레기둥에 눈독을 들인다. 저기 꼭대기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궁금증을 갖기도 하고 노랑애벌레와 먹고 자고 사랑하는 삶이 지루하다고 생각하여 싫증을 내기도 한다. 어쩌면 이런 행동이 당연할 지도 모른다. 나 또한 이런 행동을 매일 하기 때문이다. 하나에 꽂혀 있다고 그런 삶은 지속될 수 없다. 반복되는 삶을 원하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인간은 언제나 싫증이 나기 마련이다. 이러한 것도 영원한 것이 없다는 이유 중 한 가지이다. 그렇게 서로 뒤엉켜 밟고 밟혀서 올라온 벌레기둥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그런 벌레기둥이 주위가 많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던 호랑애벌레는 혼돈에 휩싸인다. 벌레기둥. 그 기둥은 마치 사회속에서의 치열하지만 무의미한 경쟁이다. 정확한 목표 없이 오로지 남보다 한 발 앞서기 위해 누군가를 버리고 누군가에게 버림받는다. 이건 현실 속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평소 생활하는 학교를 생각해보자. 시험 점수 1점을 얻기 위해 벌레기둥에 호랑애벌레처럼 몸부림치고 있지 않은가. 좌절하던 호랑애벌레는 한 줌의 빛 같은 노랑나비를 발견한다. 호랑애벌레는 깨달은다. 자신도 저 나비처럼 날아다닐 수 있다고 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희망이 더 많았지만 만약 나비가 될 수 없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렇게 노랑나비를 만나 기둥을 내려간 다음 그 나비가 알려준대로 고치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와 같이 한 줌의 빛이 된다. 각박한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들 보다 위로 가려는 사람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용기와 사랑이다. 나는 꼭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지 않아도 용기와 사랑만 있으면 우리도 나비가 되어서 그 사람들보다 훨씬 위까지 올라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읽은 후의 나] 나는 이 책을 써 주신 트리나 폴러스와 책을 추천해주신 신호현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공부의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하는 때가 중학생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힘이 될 만한 책이다. 이 책에 나와있는 것처럼 모두 하나의 나비가 되어 사회가 벌레기둥 대신 아름다운 꽃으로 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꽃들에게 희망을 이라는 책은 나의 인생 책으로 영원히 남아있을 것 같다. 인용 : 남의 말, 속담. 고사성어, 통계 자료, 다른 책, 영화, 드라마
[독후감]
읽기 전과 후가 다른 책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을 읽고
1학년 등반 김 * 연
[읽기 전의 나]
나에게는 지루했던 국어 시간에 신호현 선생님께서는 꽃들에게 희망을 이라는 책을 건내 주셨다. 국어 시간에 국어 수업을 하지 않고 책을 읽는 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런 마음으로 책을 보니 어떤 글 인들 재미 없겠나.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글보다는 그림이 많았고 책 두께도 얇았다. 그래서 당연히 어린애들이 보는 책이구나 생각했는데 선생님께서는 만약 이 책 작가인 트리나 폴러스께서 살아 계셨다면 노벨 문학상감 이라고 하셨다. 이해가 안되었다. 어떻게 글보다 그림이 많은 책에서 감명 깊은 문구가 나올 수 있는지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대단한 책이라니 이 책의 제목이 담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하였다.
책에 나오는 호랑애벌레는 삶이란 단순히 먹고 자라는 것보다 더 나은 생활이라고 생각하여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돌아다니다 다른 애벌레들이 얽히고 얽힌 벌레기둥을 발견한다. 호랑애벌레는 벌레기둥을 보며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전율과 흥분을 느껴 결국 이 벌레기둥의 하나가 되고 만다. 그리고 그곳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벌레기둥에다가 자신의 인생을 바친다. 여기까지의 내용을 읽는 동안 나는 소름이 끼쳤다. 나와의 삶과 거의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아기 때 먹고 자라는 단계를 거쳤고 유치원 때 여러 경험을 바탕으로 내 의지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 성적이라는 벌레기둥 같은 존재를 보고 오로지 그것을 위해 공부를 목표로 생활하고 있다. 공부를 왜 하는지 이유도 모르고 말이다.
호랑애벌레는 밟고 밟히는 삶을 선택하였다. 그 선택이 잘못됐다, 잘못되지 않더라고 결정지을 수는 없지만, 분명 그에게는 그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밟고 밟히는 삶을 살던 중 그는 노랑애벌레를 만나게 되고, 이 끔찍한 삶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그 기둥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그들은 아주 잠깐 삶의 행복을 느끼게 되지만 호랑애벌레는 다시 한 번 벌레기둥에 눈독을 들인다. 저기 꼭대기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궁금증을 갖기도 하고 노랑애벌레와 먹고 자고 사랑하는 삶이 지루하다고 생각하여 싫증을 내기도 한다. 어쩌면 이런 행동이 당연할 지도 모른다. 나 또한 이런 행동을 매일 하기 때문이다. 하나에 꽂혀 있다고 그런 삶은 지속될 수 없다. 반복되는 삶을 원하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인간은 언제나 싫증이 나기 마련이다. 이러한 것도 영원한 것이 없다는 이유 중 한 가지이다.
그렇게 서로 뒤엉켜 밟고 밟혀서 올라온 벌레기둥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그런 벌레기둥이 주위가 많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던 호랑애벌레는 혼돈에 휩싸인다. 벌레기둥. 그 기둥은 마치 사회속에서의 치열하지만 무의미한 경쟁이다. 정확한 목표 없이 오로지 남보다 한 발 앞서기 위해 누군가를 버리고 누군가에게 버림받는다. 이건 현실 속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평소 생활하는 학교를 생각해보자. 시험 점수 1점을 얻기 위해 벌레기둥에 호랑애벌레처럼 몸부림치고 있지 않은가.
좌절하던 호랑애벌레는 한 줌의 빛 같은 노랑나비를 발견한다. 호랑애벌레는 깨달은다. 자신도 저 나비처럼 날아다닐 수 있다고 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희망이 더 많았지만 만약 나비가 될 수 없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렇게 노랑나비를 만나 기둥을 내려간 다음 그 나비가 알려준대로 고치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와 같이 한 줌의 빛이 된다. 각박한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들 보다 위로 가려는 사람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용기와 사랑이다. 나는 꼭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지 않아도 용기와 사랑만 있으면 우리도 나비가 되어서 그 사람들보다 훨씬 위까지 올라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써 주신 트리나 폴러스와 책을 추천해주신 신호현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공부의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하는 때가 중학생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힘이 될 만한 책이다. 이 책에 나와있는 것처럼 모두 하나의 나비가 되어 사회가 벌레기둥 대신 아름다운 꽃으로 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꽃들에게 희망을 이라는 책은 나의 인생 책으로 영원히 남아있을 것 같다.
인용 : 남의 말, 속담. 고사성어, 통계 자료, 다른 책, 영화,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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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쓰기]
제목: 꼭대기에 오르는 두 가지 방법
- <꽃들에게 희망을>을 읽고
1-등 임 * 영
그저 애벌레이다. 수cm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애벌레이다. 날아다닐 수도, 걸을 수도 없는 기어 다니기만 하는 아기벌레이다. 하나의 완성체가 되기 전 최초의 단계, 아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런 애벌레가 나보다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의 줄무늬 애벌레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삶에는 그냥 먹고 자라나는 것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지 않겠는가.’ 먹고, 먹고, 먹고 더욱 크게 자라나는 것뿐이었던 그의 생활 속에서 그는 삶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자신을 만족시켜 줄 더 나은 삶을 찾아 나선다. 줄무늬 애벌레는 익숙한 것에서 벗어 날 줄 알았기 때문에 먹을 것과 서늘한 그늘을 제공해준 다정하고 편안한 나무에서 내려 올 수 있었고, 늘 그 이상의 것, 진정한 삶의 목적을 찾고자 했다.
가끔 나는 침대에서 뒹굴뒹굴 거리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매일 매일 놀기만 하는 삶을 바라고 동경하기도 한다. 어쩌다 한 번 나에게 그런 시간이 주어질 때면 그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쉴 틈 없이 달려야 한다는 생각에 시간이 흐르는 것이 두려워진다. 그러나 애벌레는 달랐다. 먹고 자고 뒹굴 거리며 자라기만 하는 편하고 익숙한 삶에서 벗어나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다. 줄무늬 애벌레에게는 항상 더 나은 삶을 살고자하는 갈망과 그것에 도전할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작은 애벌레도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데 나는 편안함에 익숙해져 나태해지려고 하는가. 줄무늬 애벌레를 보고 나는 반성하게 되었다.
“꽃들에게 희망을”에서는 꼭대기에 오르는 두 가지의 방법이 나온다. 애벌레 기둥에 기어오르는 것과 나비가 되어 비상하는 것. 애벌레 기둥 속에서 애벌레는 서로를 짓밟고 위로 오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쓴다. 그렇다면 모두가 오르기 위해서 애쓰는 그 애벌레 기둥의 꼭대기에는 뭔가 특별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 그 위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 기둥도 수많은 애벌레 기둥 중 하나에 불과 했다. 모두가 오르기 위해 노력하는 애벌레 기둥의 저 위에는 꼭 그들을 위한 뭔가가 있을 거라 믿었던 나였기에 그 위에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은 나에게도 너무 큰 충격이었고, 줄무늬 애벌레와 함께 내 등골도 오싹해 지는 것을 느꼈다. 그럼에도, 애벌레 기둥이 결코 무너지지 않은 이유는 꼭대기의 애벌레들이 ‘자신들은 밑의 저들이 올라오고 싶어 하는 바로 그 곳에 올라와 있기 때문’에 그들의 자리를 지키려고 했고, 저 밑의 애벌레들은 ‘모두가 안간힘을 쓰며 올라가기 때문’에 위로 또 위로 올라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애벌레 기둥 속 애벌레들은 그저, 모두가 향하는 곳이 저 꼭대기이고 모두가 올라가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목적과 방향을 가지지 못하고 자신이 무엇을 위해 올라가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는 무시한 채 기어오르는 맹목적인 경쟁을 한다.
애벌레들은 기어오르는 것만이 그들이 꼭대기에 오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땅에 있으면서 기어오르는 게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이라고 믿었고 그들의 내부에 아름다운 나비가 들어있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다. 고치 속에서 거꾸로 매달려 옴짤달싹 할 수도 없는 상태로 인내하고 수 천 번의 날개 짓 끝에 마침내 고치 속에서 나와 비상할 수 있는 것인데 말이다. 그것은 나비가 될 수 있다는 믿음과 간절한 바람 그리고, 고치 속에서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의 기다림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또, 나비가 되어 오르는 것은 그저 꼭대기에 오르는 것에 한계를 두지 않는다. 아름다운 두 날개로 하늘과 땅을 연결시켜 주며 이 꽃 저 꽃 무한한 사랑의 씨앗을 운반해준다. 줄무늬 애벌레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높이 올라가려는 본능을 엉뚱한 것으로 잘못 생각했다고’ 말이다. 우리는 기어오르는 것이 아니라 날아올라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남과의 경쟁 그리고, 나 자신과의 경쟁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지금 수많은 남들과 끝없는 경쟁을 하고 있다. 학교의 친구들, 학원의 친구들, 더 나아가 모든 14살의 학생들, 아니 이 모든 세상의 사람들과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제부턴가 친구들을 보면 우정 그 자체로 바라보기보다 내가 그 아이보다 잘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먼저 판단하게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항상, 1등으로 하려면 2등을 짓밟고 올라가야만 한다. 그렇다면, 이토록 어렵게 한 1등은 기쁜가? 그렇지 않다. 물론, 1등을 한 그 순간은 무척이나 기쁘겠지만, 이 자리를 빼앗기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해야 하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더 엄격해지고 나 자신을 괴롭혀야 한다. 서로를 짓밟아 성공의 자리에 오르고 모두의 부러움을 사지만, 남들과의 끝없는 경쟁으로 얻은 돈과 권력은 사실 큰 가치를 주지 못한다. 그리고 계속 꼭대기에 남아 있기 위해서 또 다시 끊임없이 경쟁해야만 한다.
그러나, 나 자신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은 다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낸 나비들을 한 번 찾아보자. “성공한 스포츠 스타가 아니라, 끊임없이 성장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한 김연아 선수도 성공보다 성장을 원한 한 마리의 나비이다. 끊임없이 빙상장과 집 사이를 이동하고 수 천 번의 넘어짐과 부상 그리고 연습을 통해 피겨 스케이팅 정상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나비가 고치 속에서의 수천 번의 날갯짓을 통해서 고치 밖으로 나와 비상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김연아를 연느님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단순히 그녀가 피겨 스케이팅을 잘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피겨 꿈나무들, 난치병에 걸린 어린 환자들과 소년 소녀 가장들을 돕기 위해서 많은 기부를 했고 끊임없이 봉사했다.
바다 건너 미국에도 한 마리의 나비가 있다. 바로 페이스북의 창시자 마크 저커버그이다. 그는 모두가 원하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 중퇴한다. 왜냐하면, 그의 목적은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하는데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소통’이라는 목적이 있었고, 그래서 세상 사람들을 연결시켜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했다. 결국, 저커버그도 정상에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마크 저커버그는 자신의 페이스북 지분의 99%를 기부하였다.
나는 ‘꽃들에게 희망을’, 이 책을 읽으면서 나비와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이 또 있었다. 바로 ‘갈매기의 꿈’의 조나단 리빙스턴 갈매기이다. 조나단이 수많은 비행 시도 끝에 날아오르는 모습과 나비가 고치 속에서의 고통 끝에 날아오르는 모습이 꼭 닮아보였다. 조나단과 나비 모두 남들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긴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경쟁에서 이겨서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다. 단순히, 내 옆의 남들을 이기기 위해서 애쓰면 절로 나의 목표는 “1등, 저 사람들보다 잘하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만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뛰어나서 꼭대기에 오르면 더 이상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을 포기해 버린다. 반면, 나와의 싸움에서 이기고자 하는 사람들은 끝없이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고 그걸 깨부수기 위해 도전하고 시도한다. 그러면, 절로 그 분야에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꼭대기에 오르게 될 것이다. 적어도, 매우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좌절하지 않을 용기, 목표에 대한 희망, 그리고 그 일에 대한 사랑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김연아와 저커버그, 조나단, 그리고 나비는 이 세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자아실현의 단계를 넘어서 남을 위해 봉사하고 사랑을 베푸는 삶을 실천했다. 이게 바로 애벌레로서의 삶과 나비로서 살아가는 삶의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한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제목의 의미도 여기에 있다. 사실 처음에 애벌레와 나비에 관련된 이야기의 제목이 왜 이런 것인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이젠 아주 잘 이해가 된다.
나비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수분이다. 수많은 꽃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심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나는 ‘내가 행복하면 된 거지. 그럼 좋은 삶을 사는 것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내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나 혼자 행복한 삶은 결코 아름다운 삶이 아니었다. 아직 구체적인 미래를 그리지는 못했지만, 그 끝에선 나도 나비의 삶을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한명 한명이 한 마리의 애벌레이다. 각기 다르고 아름다운 눈을 가졌지만, 수없이 많은 애벌레 기둥을 세워나가야만 한다. 우리 모두가 애벌레에서 그치지 말고, 서로 다른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나비로 날아오를 수는 없을까?
지금 나는 고치를 만들기 위해서 실을 뽑아내는 단계에 있다.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할 것이다. 더 많은 실을 토해내고, 거꾸로 매달려 수 천 번의 날갯짓을 거쳐야 한다.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세상 모든 꽃들에게 희망을 심어줄, 그런 나비가 되고 싶다.
수업 중에 조용하면서도 시선을 떼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눈빛 마주치면 눈빛이 초롱초롱 빛난다. ‘겨울에야 소나무가 더욱 푸르름을 본다’는 논어의 말처럼 아이들이 떠들고 소란할 때 조용히 빛나는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선생님의 말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결과물로 화답하는 아이들이 있다. 어쩌면 임*영은 그런 학생이 아닐까? 실력으로 증명하는 아이. 교직의 보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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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벌레의 의미있는 고독
- 꽃들에게 희망을‘을 읽고 -
150* 노 * 영
국어 선생님께서 이 책의 작가인 ‘트리나 포올러스’가 살아계셨다면 노벨 문학상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책이라고 추천해주셨다. 설레임 반 기대반인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였고 내면의 가치와 진짜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애벌레는 할 줄 아는 것이 기는 것 밖에 없다. 줄무늬 애벌레 또한, 본능에 충실하여 열심히 기어가다가 하늘 높이 솟아오른 거대한 기둥을 발견하였다. 수많은 애벌레들이 서로 경쟁하며 그 기둥을 오르고 있었고, 줄무늬 애벌레는 다른 애벌레들이 그 위를 올라가고 있으니 자신도 덩달아 따라가며 그 기둥 위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하며 기둥을 오르게 된다.
나 또한 지금 공부의 기둥을 오르고 있고 수많은 내 또래의 학생들과 경쟁하고 있다. 학생은 학교에서 인생을 배우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배워야 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자의인지 타의인지 공부가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아닌 옆 친구와의 경쟁이 되었고, 대학입시를 향해 과도한 공부를 하며 달려가고 있다.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냥 따라가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아무 목적없이 부모님께 잘 보이려고, 학교에서 하라고 하니까 했던 내가 반성이 되었다. 남들이 하니까 막연하게 저기가 좋아 보이니까 오르다 어떻게 되는지, 그런 것은 그냥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줄무늬 애벌레를 통해 알게 되었다.
줄무늬 애벌레는 애벌레 기둥을 치열하게 오르던 중 우연히 작은 노랑 애벌레를 만나게 된다. 애벌레 기둥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두 애벌레는 서로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줄무늬 애벌레는 노랑 애벌레와의 사랑이 시간이 지날수록 지치고 소홀히 여겼고 계속 딴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생각은 바로 애벌레 기둥 위에 있는 세상에 대한 것 이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생각은 커져만 갔다. 결국 줄무늬 애벌레는 자신의 사랑을 버리고 애벌레 기둥으로 떠난다.
혼자 남겨진 노랑 애벌레는 너무 슬프고 외로웠다. 줄무늬가 애벌레가 기둥으로 떠난 후에도 계속 그 기둥을 바라보기만 했다. 슬픈 노랑 애벌레는 기어가다 우연히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애벌레를 발견하고 나비와 나비가 되는 과정에 대해 깨닫게 된다. 고치를 만드는 힘든 과정을 선택한다. 한번 고치를 만들기 시작하면 애벌레 생활로 돌아갈 수 없지만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는 고치 과정을 거치게 되고 노랑 애벌레는 아름다운 나비가 된다. 노랑 애벌레는 욕구가 아닌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을 선택하고 나비가 되어 꽃에게 새 생명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줄무늬 애벌레는 진정한 것을 외면하고 독하게 기둥을 올라간다. 그가 정상에서 확인 한 것은 바로 나비가 되어 세상을 날고 있는 노랑 나비었다. 나비가 되기 위한 번데기 과정을 무시하였고 그냥 오른 기둥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가 지금 공부하는 것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나의 인생에 대한 고민없다면 아무 의미없는 수많은 기둥들을 그냥 기어가고 있을 뿐인거다.
고치의 과정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단계로 힘들더라도 열심히 노력해서 거쳐야 하는 인고의 단계이다. No pain, No gain이라는 말처럼 노력없이는 우리 인생에서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꽃들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펼쳐보니 여러 가지 애벌레 사진들이 나와 당황했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니 노랑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과정을 배우는 부분에서 “그것은 네가 앞으로 될 그 무엇이란다. 그것은 아름다운 두 날개로 날아다니고, 또 하늘과 땅을 연결시킨단다. 꽃의 달콤한 이슬을 마시고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사랑의 씨앗을 전해 주기도 하지.”라고 나무에 매달려 있는 애벌레가 말한다. 즉 애벌레가 나비가 되면 꽃의 사랑의 씨앗을 전달해주는 꽃의 희망이 되어주어 ‘꽃들에게 희망을’이라고 제목을 정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마음속에 희열을 느꼈다.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지만 한 눈 팔 때도 많다. 노력의 시간이 없으면 보다 나은 존재가 될 수 없다. 애벌레 조차 숨을 잘 쉬지 못하고 나비가 되기 위해 고치에서 엄청난 노력을 한다. 숨을 잘 쉬지도 못하고 수백번의 날개짓을 하고 다시 애벌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무서움을 떨치고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힘든 애벌레의 삶을 포기한다. 그리고 나비가 되면 꽃들의 씨앗을 전달하는 꽃의 희망이 되어준다. 애벌레는 하늘과 땅을 연결시켜주는 가치 있는 행동을 보고 힘들지만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