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프레스] 에듀프레스에서 보기 교권을 살리려면(2)
교권을 살리려면(1)
선생님이 되겠다고 한국교원대를 졸업한 K군이 기간제 교사 1년을 나름 꿈을 펼치듯 즐겁게 하더니 어느 날 필자를 찾아왔다. '교사를 계속 해야 하나요?' 오랜 희망을 안고 자신의 꿈을 절 펼치며 즐겁게 아이들을 가르치리라 생각했는데 학교 현장에서 무슨 고민을 했길래 황당한 질문을 던졌을까. '코딩 공부 6개월이면 교사 월급보다 월씬 많다.'고 했다. '임용은 너무 힘들어 언제까지 기간제로 떠돌아야 하느냐.'고 했다. '기간제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기 너무 힘들다고 했다. 열심히 가르치고 '비록 한두 명이었지만 교원평가 서술형 보고 충격이었다.'고 했다. 거기에 '연금도 비전이 없어 특별히 교사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K군은 교직을 접고 외국으로 다른 공부하러 떠나고 싶다고 했다.
초등학교 교사가 꿈을 펼치는 학교 교실에서 극단적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은 가장 가까이서 사랑했던 부모도 몰랐고, 자기에게 닥친 현실 헤쳐나가기에 급급했던 동료교사도, 교육정책을 잘 펼치겠다던 교육부나 교육청도, 교육위원회 정치인들도 몰랐다. 각종 교육제도 아래 경쟁하며 공부하는 학생들이 힘들어 학부모는 '내 아이'를, 선생님들은 '우리반'을 열심히 챙겼는데 참고 억눌렀던 교권의 봇물이 터졌다. 갓 심은 푸른 새싹이 자라는 텃밭에 붉은 흙탕물이 번졌다.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우왕좌왕하며 고인 물이 스스로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듯하다.
교권을 살리려면 첫째, 학생지도 면책권을 주고, 문제학생 분리지도 전담팀이 구성되어야 한다. 한 교실에 2-30명의 학생들이 하루 종일 생활하다 보면 학생 사안이 무수히 터진다. 교실은 말 그대로 미설숙한 아이들이 사는 작은 사회이다. 공부하기 싫은 학생들은 교사의 수업을 방해할 것이고, 친구들을 괴롭히고 싸우고, 남의 물건을 훔치고, 말과 행동을 지나치게 해서 문제를 일으킨다. 한 집에 한두 명도 아이돌보기 힘들다는데 그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교사가 교실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손발이 묶인 초임교사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예전엔 5-60명이 한 교실에 있어도 관심 받고 싶은 1명이 유리창을 깼지만 지금은 2-30명이 모두가 유리창을 깬다. 집에서 특별한 사랑을 받던 아이들이 친구를 배려하고, 참고 인내하며 수업을 듣고, 친구 간이나 선생님께 예절 바르게 생활할 것인가. 일단 학생 사안이 터지면 아이를 분리하여 따로 지도하는 팀에게 넘겨져야 나머지 학생들이 온전히 수업을 받을 수 있다. 교사를 향한 폭행, 폭언, 과도한 민원에는 '교육 방해죄'로 크게 처벌해야 한다. 예전에는 교사가 학생 싸움을 말리는 경찰도 되었다가 시시비비(是是非非) 가리는 판사요, 아이를 지켜주는 변호사 검사요, 공평한 체벌을 가해 혼내주는 형집행관이나 교도소장도 되었다.
둘째, 학교에 기간제 교사를 10% 이하로 줄여야 한다. 전북은 기간제 담임교사 비율이 41.9%이다. 평균이 41.9%라면 많은 학교는 절반이 넘는다는 것이다. 필자가 아는 학교는 담임 18명 중 11명이 기간제 교사이다. 학교현장은 기간제 비정규직 세상이다. 교사뿐만 아이라 교무행정직, 급식 종사원, 방역, 수업 강사 등 각 분야마다 매년 사람들이 바뀌어 그 작은 학교에 누가 누군지도 잘 모른다. 비정규직 기간제의 지도를 학생들은 귀담아 듣지 않으려 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데 비정규직을 대통령이 승인한지 30년만에 학교 현장은 아수라장이다. 그 피해는 당연 2030이고 내년을 내다볼 수 없는 그들은 결혼도 출산도 포기한지 오래라는 말은 2-30년 전 이야기라 출산율 절벽이다. 필자가 대통령이라면 비정규직 비율을 10%이내로 줄이는 것을 조례로 정하고 싶다. 젊은이들에게 안정된 직장을 주어야 결혼하고 아이 낳아 가정을 꾸릴 것이 아닌가. 학교현장에 담임교사 비율이 41.9%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에 이은 한국교육의 5대 비극이다. 비극의 학교를 희극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교육 정책론가들의 사명이다.
셋째, 선생님을 존중하는 분위기를 살려야 한다. 교원평가는 폐지되어야 한다. 사회 성인들이 회사에서 직원평가를 하는 것은 직원을 능률을 올리려 한다지만, 학생이 1년 동안 열심히 가르쳐 준 제 선생님을 무기명으로 평가하라니 미성년 학생들은 얼마나 신나겠는가. 어른들도 누군가를 말하라면 부정적 생각을 먼저 떠올리는 경향인데 어린 학생들에게 무기명으로 '누군가를 평가하라'면 감사를 쓰는 착한 아이들도 있지만 간혹 못된 말로 상처를 주는 학생도 있다. 선생님들 상처받고 정신 차리라는 것인가.
각종 신문이나 방송 언론도 남의 이야기를 떠벌리는 것인데 아무리 사실이라도 나쁜 이야기를 떠벌려서 사회에 경각심을 주기보다 사회가 더 악해지는 분위기를 조장한다. '누가 이웃을 도왔더니 이렇게 좋아졌더라.', '누가 이런 훌륭한 일을 했더라.'는 뉴스는 거의 없고, '누가 누굴 죽였다.'느니 '누가 어떻게 훔쳤다.'는 이야기만하는 언론이라면 교육에 도움될 것은 없다. 그동안 선생님들을 비난하는 기사만 있었지 선생님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기사는 드물었다. 그러니 학부모들도 학교와 교사를 우습게 여기는 것이 아닐까.
K군이 1년 동안 기간제 교사를 하면서 우리 교육현장의 문제점을 온몸으로 경험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담하건데 그가 본 교육현장의 문제와 아픔은 더 많다. 그러기에 선배교사로서 편안히 '선생님의 꿈'을 펼 수 있도록 터를 다듬지 못한 데 대해 죄책감이 앞선다. 슬픈 서이초 선생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이런 교육현장의 문제를 교육 정책론가, 언론, 학부모, 교사들이 한마음으로 풀지 않으면 더 가슴 아픈 일들이 벌어질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그러니 외국으로 다른 공부를 하러 간다는 K군을 잡을 수가 없다. 필자는 K군이 독일 학생은 박물관 관람하며 어찌 줄을 잘 맞추는지, 일본 학생이 지나간 자리에 어찌 쓰레기 한 조각 없는지, 북한 학생들이 어찌 선생님 말을 잘 듣는지 배워와서 우리 교육을 선도했으면 좋겠다.
교육은 먼 산을 바라보아야 한다. 오늘 날 우리가 잘 살 수 있는 것은 50년, 100년 전에 우리 교육을 이끌어온 선각자들의 정책 입안과 교육현장에서 여러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고 부단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노력해온 교사들의 노력이 아니었을까. 필자는 그 선생님들의 손에 회초리가 들렸다고 부정적 평가를 하지 않는다. 그 회초리로 공부하기 싫은 아이들 공부 시켰고, 남의 물검 훔치는 아이들, 남을 괴롭히는 아이들, 교실에서 유리창을 깨는 아이들을 바르게 키우는 교권이었다. 혹자는 '그렇다면 다시 아이들을 때려서 가르치려는가.' 우문을 던질 것이다. 회초리를 빼앗고 손을 묶었으니 그에 상응하는 제도로 교권을 세워주고 경찰, 변호사, 검사, 판사, 형집행관, 교도소장을 학교에 모셔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교실엔 2-30명이 저마다의 유리창을 깨고 있다.(신호현 詩人)
그림: https://blog.naver.com/jeonjunews/223052142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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