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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시골집 정서와 아파트 정서

원 시 인 2010. 2. 3.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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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시골집 정서와 아파트 정서

 

   중학교 들어가는 아들과 초등 3학년인 딸을 키우는 맞벌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처가에서 아이들을 키워주느라 두 부부가 출퇴근 1시간이 더 걸리는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처갓집 근처에서 살았다. 직장에서 지치고 퇴근하며 교통에 지치면서도 육아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이제 중학교 들어가는 아이들의 교육과 부부의 출퇴근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이사를 하기로 했다. 두 사람의 출퇴근 거리와 아이들 학군을 따졌을 때 만나는 지점이 서초동이다. 살던 집을 전세 놓고 서초동에 가서 전세를 얻으려니 1억 이상 차이가 난다. 이미 서초동 일대는 입학 시즌을 앞두고 아파트가 오천만 원에서 1억 정도 올랐다고 한다. 빌라를 얻으려니 마음에 드는 집이 없어 3일간 주변 부동산을 다 돌았다. 그래도 헛걸음이다. 강남과 목동 일대에는 전세대란이라고 한다.

   온 가족이 함께 여행을 하듯 그렇게 서초동을 헤집고 다니면서 우리가 살 집을 찾으러 다녔다. 요행이 두 집을 소개받게 되었다. 하나는 마당이 있고, 나무가 있고, 울타리가 있는 80년대 후반에 지어진 집이다. 교장 선생님으로 퇴임하셨다는 60대 후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 주시고 허름한 집을 전면 수리해 주시겠다고 했다. 말 그대로 시골에 잘 지어진 부잣집이다. 시골적 정서가 가득 담긴 집(이후 ‘시골집’이라 하자.)이다. 똑 같은 가격의 다른 하나는 현관 입구부터 비밀번호 누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현관문도 번호키가 달린 5층 집이다. 우리와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있고 같은 세대의 부부가 사는 집인데 맞벌이 부부는 없고 학생이 학원 끝나고 안내를 했다. 도시 속에 아파트이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집을 구경하고 돌아온 우리는 어떤 집으로 이사를 갈 것인지 토론을 벌이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자란 아내는 물론 집도 깨끗하고 화장실이 두 개 있는 두 번째 집인 아파트를 선택했다. 반면 시골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서울로 온 나는 첫 번째 집인 시골집을 선택했다. 우리의 논쟁은 아이들을 두고 아이들을 설득시키는 것에 있었다. 아이들을 설득시켜 힘을 얻으면 아이들에게 약하고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현대판 부모로서 지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내는 첫째, 학교가 가까운 것을 따졌다. 아파트는 둘째 아이가 다닐 초등학교 바로 밑에 있기 때문에 아이가 혼자 다니는 오후 시간에 좀더 안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첫 번째 집은 큰 길 횡단보도를 건너 다녀야 한다. 둘째, 안전성이다. 아파트는 번호키로 되어 있어 키를 잃을 염려도 없고 5층이기에 도둑이 들 수 없어 안전하다는 것이다. 반면 시골집은 단독 1층이라 늘 불안하고 2층과 지하 등 여러 집이 어울려 살기에 뒷문은 거의 열어놓다시피 산다는 것이다. 셋째, 깨끗한 시설이다. 시골집은 마당에 나뭇잎이며 풀들이 말라 다소 지저분하고 돌계단에 이끼가 꼈다. 집안은 2층으로 가는 계단이 있고 주방 쪽엔 아치형의 두툼한 벽장식이 있으며 좁은 주방 대신 식모방이 있다. 화장실은 2층 계단 때문에 샤워할 수 없었다. 반면 아파트에는 식기 세척기와 오븐이 빌트인(Built-in) 되었고 바아 같은 식탁도 있다.

   나는 확고한 아내의 주장에 비해 딱히 내세울 근거가 없었다. 첫째, 초중학교 때는 아이들이 시골적 정서 속에서 자라야 한다고 했다. 더 어리거나 유치원 때도 그랬으면 좋지만 이미 처가 옆 아파트에서 살았기에 기회를 놓쳤으니 이제라도 나무와 꽃을 보며 마음을 맑게 하고 순수한 꿈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반면, 꽃이나 나무가 없는 아파트에서 삭막하게 사는 것은 숨막히는 일이라고 했다. 둘째, 이웃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다. 이층에 같은 또래의 친구들과 마당에서 어울려 놀고 지하에 중고등학생 언니나 형과 어울리면서 자라야 외롭지 않고 사회생활을 잘 한다고 했다. 반면 문만 닫으면 이웃도 없고 친구도 없는 아이들이 텔레비전과 컴퓨터 게임에 빠지는 것은 좋지 않다고 했다. 셋째, 건강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 사는 집을 분양 받아 이사하면서 아이가 아토피 증세를 보였고 잦은 감기로 병원에 출입이 많았다. 반면 시골집의 교장 선생님 자제들은 건강했고 공부도 잘해 큰 회사에 이사로 있으며, 둘째 아들은 국제 회사에 다녀서 미국에 산다고 했다.

   나의 논리는 아이들과 아내를 설득시키지 못했다. 누가 말했나? 남자는 네비게이션과 아내의 말만 잘 들으면 평탄할 것이라고. 결국 우리는 아파트를 계약했다. IQ보다 EQ가 글로벌 리더에게 더 중요한 시점에서 고향이 없는 도시의 아이들에게 고향처럼 그리워할 시골집이나마 마련해주고 싶었건만…. 새로운 아파트라고 좋아하는 아이들과 아내를 바라보는 내 눈가엔 갈수록 삭막해져가는 도시의 아이들과 시골집에 계시는 부모님의 얼굴이 겹쳐졌다.

 

서울신문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code=seoul&id=20100202016006&keyword=신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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