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시] 1994년 8월의 독립운동가
독립군 최후의 맹장
- 양세봉 장군
평안북도 철산에서 태어나
안중근 의사의 총성에 울었노라
폭풍처럼 푸른 압록강을 넘었노라
천마산대 낮은 땅에 뿌리 내렸노라
대한통의군 의군에서
임시정부 참의부 소대장으로
어둠 속 살쾡이들을 처단하고
가는 곳마다 간담을 쏘았노라
아아! 빼앗긴 나라 조선
조국의 광복을 꿈꾸던 만주땅
호랑이처럼 신출귀몰 달렸노라
조선혁명군 총사령으로 춤췄노라
이 땅의 독립을 위해
최후의 일인까지 쏘았나니
조선의 뜨거운 독립의 후예들아
세세무궁토록 평화 번영하거라
詩 신 호 현
조선일보 : http://forum.chosun.com/bbs.message.view.screen?bbs_id=1030&message_id=1305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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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혁명군 군관학교 교장
일명 서봉(瑞鳳)·윤봉(允奉). 호는 벽해(碧海). 평안북도 철산 출신. 1919년 3·1운동 직후 평안북도 삭주군에 있는 천마산(天摩山)을 근거로 무장항일운동을 전개하던 천마산대 독립군에 입대해 일제의 통치기관 파괴, 친일파 숙청 활동을 하였다.
1920년 만주로 건너가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에서 활동하였다. 1923년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가 결성되자 소대장으로 활발한 국내진입작전을 전개하였으며, 뒤에는 제3중대장으로 승진하였다. 1929년 재만 각 단체가 통합하여 국민부(國民府)를 조직할 때 참여하였으며, 국민부가 소속 독립군으로 조선혁명군을 편성하자 제1중대장이 되었다.
1931년 신빈현(新賓縣)에서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주요 간부 다수가 붙잡히는 신빈사건 이후 조선혁명군을 개편하여 총사령이 되었다. 1932년 일본군이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석권하자, 재만 중국군과의 연합작전을 펼치기로 하고 중국의용군 총사령관 이춘윤(李春潤)과 협의하여 한중연합군을 편성하였다.
이 해 3월 한중연합군은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던 영릉가성(永陵街城)을 공격하여 탈환하였고, 1933년 흥경(興京)을 공격하여 일본군을 격퇴시켰다. 이와 같이 중국군과 연합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한편, 전투에서 소모되는 혁명군을 보충하기 위해 조선혁명군 군관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으로서 직접 군대를 양성하는 데 주력하였다. 그 뒤 흥경성전투·노구대전투(老溝臺戰鬪)·쾌대모자전투(快大帽子戰鬪)에 참전하여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1934년 8월, 전부터 잘 알고 있던 일본 경찰 밀정인 박창해(朴昌海)의 계략에 빠져 대원 여러 명과 같이 환인현 소황구(小荒溝)에서 일본군에 포위되어, 치열한 전투 끝에 전사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양세봉 [梁世奉]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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