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세계 시인선 045
김현신 시집
지은이 | 김현신
분야 | 문학>한국시
발행일 | 2021년 3월 29일, 판형 | 130*207
페이지 | 160쪽, 정가 | 10,000원
ISBN | 979-11-85260-44-0 03810
■■ 시집 소개 ■■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비대상시’는 읽을 수 있는 텍스트가 아니라 쓸 수 있는 텍스트일 뿐이다. 정신분석적 담론을 원용하여 분석, 곧 읽을 수도 있겠지만, 이때의 ‘읽기’는 우리가 통상 읽는다고 이야기하는 행위와 다른 것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비대상시’의 표층에는 등장하는 기호들은 맥락에서 분리된 파편들일 뿐이며, 실제적인 것은 시인의 내면/ 심리나 무의식에 존재한다. 김현신의 텍스트들 또한 마찬가지여서 상식적인 층위에서 읽을 수 있는 텍스트가 아니다.
─ 고봉준
■■ 저자 소개 ■■
충남 청양에서 태어남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 전공) 졸업
교직에서 정년퇴임
2005년 계간『시현실』로 등단
시와 시론지『시와세계』편집인 역임, (현) 상임위원
(사)한국문인협회 서울 송파지부장
서울송파문화원장 직무대행 역임, (현) 이사
저서: 시집 『나비의 심장은 붉다』 『전송』
『타이레놀 성전』
동인지 『현대선시』 제10집 등
■■ 책 속으로 ■■
그 끝에서 깊어지는 것이다
가면이 젖고 있다
거울 속을 두드린다 나는 ‘가면’ 깊은, 나를 들고 잠이 든다 가까워진 모래도, 나를 가로막는 모래도, 잠에 빠진 나를 가져간다 흔들린다 공간을 가로 막는 안부가 무거워, 너무 무거워, 나는 젖어있다
확장되는 모래가 되라, 모래로 고여라, 비어가는 나는 빠져나온 곳으로 비어간다 감염, 한 순간이 가면을 따라 일어선다 그것에서 빠져나온 가면을 열어라, 가면이 가면을 쓰고 고여 드는
잠에 빠진 눈물이 있다
보도블록에 발을 담그고
한 발은 젖고, 한 발은 푸르고
문밖을 열어볼까, 발자국을 당길까,
가로등을 껴안고 숨었다 나타난다 말을 걸어본다 차가운 발이 떠도는 사물을 본다 묻지 않아서, 말하지 않아서, 캄캄한 구멍은, 눈빛은, 말을 걸어본다
누구였을까, 빗물인 듯, 하얀 입김, 떨어지는 모래로, 추락하는 발목으로, 새롭지 않는 ‘계속’ 밤은 마음을 들어올리고, 비밀을 알 수 없는 비닐인 듯, 열차인 듯, 너는 저편에서 나는 이편에서
세상은 쏟아지고, 마음은 만질 수 없을 거야, 벼랑 끝으로 밀어내는 모서리를 찢으며 젖는
나의 모래를 쓸어갈 순 없겠지?
안녕을 던져보세요
머풀러를 심장에 얹어보시렵니까, 중심은 쓸쓸합니다 안녕을 펼쳐보시렵니까, 홀로 숲속
가는 길을 찾는 중입니다 공을 주고받으며, 떠올리는, 공인 듯 리듬 요령을 흔들어 볼까요 회랑의 끝에서
창밖을 당겨볼까 수풀 덥힌, 수정 될 수 없는, 지평선은 평안하겠지, 커튼에 붙여놓은 깃털 하나 안녕이겠지
평화입니다 햇살이 부족해요 모래 길, 사막 길을 동행해 보시렵니까, 닫힌 현관을 끌고 문득 목이 마릅니다
구름을 지평선에 던져봅니다 안녕, 안녕, 안녕을 던져보세요
연기緣起
연기는 그만, 오늘은 맑은 날, 찡그리며 웃고 싶은 너는 마네킹, 귀걸이 흔들리 듯 너 거기 있었구나, 휴게실 빈 테이블, 한 장 나뭇잎, 얼굴들이 태어나요 한 발의 깊이에 대하여, 물어봅니다 난 아직,
채널을 돌립니다
애수역에서 트렁크를 열다
저편의 너를, 바라보는
‘트렁크’
오늘 비가 내린다 울리는 기적소리에
나를 울려 놓고, 이젠 돌아갈 수 있을까?
꽃이 떨어지고, 타이어가 멀어지고, 떨어지는 강가에서 악마의 돌다리에 웅크린 애수가 애수로 흘러간다
애수라 부르는 사람들은 또다시 목마르고 여전히 돌다리에 새겨지는 비,
물들어 갔네 워털루브리지, 난간 밖 쏟아지는 모서리, 하얀 미소 떨어지던 봄날에
안개, 물집, 캄캄한 음악으로 머무를, 트렁크, 첫 발자국 소리 남기며
기적이 울리는 건
나를 지울 수 있기 때문이야
몽타주로
담배연기로
애수역은 붉어간다
돌을 읽는 저녁
하루를 부르고
구름을 열고
오늘 내내 춤을 출 수 있겠니?
밤거리는 멀어져가는 성터, 희미한 너인 채로 눈빛을 훔치고 싶어, 너는 숨겨져 있구나,
네가 보이지 않는 오늘, 하루가 무너지고, 찬 물결 출렁이며 유령춤을 출까
너를 보내고 혀를 잃은 소리들이 텅 빈 어깨로 부딪친다
돌을 읽는 저녁으로, 너를 엿보는 저녁으로, 남아있을까, 길게 아카시아 냄새가 난다 기린인 듯, 너는 너 인 채로
배경을 닫고
멀어져간 무릎으로
■■ 목차 ■■ 시인의 말 |
|
제1부 페이지 커팅 그 끝에서 깊어지는 것이다 12 보도블록에 발을 담그고 13 페이지 커팅 14 다리 없는 골목이 좋아 16 내 속 깊이 떨어지는 17 안녕을 던져보세요 18 연기緣起 19 오늘은, 오늘입니다 20 사라지는 쇼윈도 21 시트는, 어디 갔을까 22 가시여, 입술로 서성이는가 24 회색이론 26 모래 여자 28 아픈 시를 보는 것 29 구름 몇 개 버립니다 30 소금 꽃 눈물처럼 32 나의 말들이 34 ‘밤’이란 목차 36 악마의 뉘앙스 38
제2부 애수역에서 트렁크를 열다 눈보라 카페 40 낭만 41 애수역에서 트렁크를 열다 42 이별 44 멜랑콜리로 흘러갔다 45 시베리아 46 돌을 읽는 저녁 48 캄캄한 석양입니다 49 붉은 노을, 꽃무늬 블라우스 50 이데아 카페에서 이디아 커피를 52 모닥불 53 중독, 이어서 좋다 54 ‘종’의 울음을 읽는다 55 두 개의 작은 섬, 내 안에 들어올 수 있나요 56 아마도, 를 껴안아 보세요 58 맨발로 떠나보낸 한 잎인 양 60 페르소나는 진행형이다 61 꽃 카페, 구름 카페 62 바다엔 병동이 있다 64 종이로 만드는 저녁 66 해체 67 검은 바람 68 불안은, 70 문장은 사막이 되었다 72 얼음 여자 73 |
제3부 단 한 번 하얀 손 통속적인 눈물은, 76 오嗚 78 밤이 필요한가요? 79 비대상, 벌판입니다 80 단 한 번, 하얀 손 82 바람이 늙어갑니다 84 천둥, 천둥새,가 울었다 86 푸른 사과로 떨어지다 88 강 물 90 초콜릿 92 꽃을 심다 93 플랫공항 94 그늘 96 칸나는 새였을까 98 비, 악수 100 조각난 오늘 102 히말라야 맨발꽃 104 여행 106 누가 저렇게 오랜 세월 떠다니는가 108 그날처럼 오늘처럼 109 지하역에서 타르쵸를 펼치다 110
제4부 겨울, 그녀, 외출 S의 신전 112 경계에 대하여 114 겨울, 그녀, 외출 115 착란 116 자작나무 숲을 흘리다 118 사막을 노래하면 안되나요 119 기도인 듯, 120 오로라, 오로라 122 폭설 피크닉 124 너의 밤을 지나고 126 위치가 쓸쓸해 128 퍼포먼스 130 가라앉는 발등 131 나는 쓰고 나는 쓴다 132 동행 134 극지 135 균열 136 나는 너를 플랫폼이라 부른다 138 나타샤, 흰 눈, 말발굽 140 |
해설 통점의 소리|고봉준 142 |
■■ 서평 중에서 ■■
통점의 소리
- 고 봉 준
*
시집 끝에 수록되는 ‘해설’은 독서의 방향에 따라 다른 성격을 요구받는 듯하다. 독자가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을 모두 읽고 ‘해설’에 도달한 경우, ‘해설’은 작품에 대한 독자의 느낌이나 이해와 일종의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된다. 이 경우 독자는 자신의 느낌과 해설을 비교하면서 해설에 대한 동의 여부를 판단할 것이다.
반면 시집을 ‘해설’부터 읽는 경우도 없지 않다. 가령 시집을 펼쳐들고 몇 페이지를 읽었는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시인이 표현하려는 것을 찾지 못해 당혹스러울 때, 사람들은 작품들을 건너뛰어 ‘해설’을 펼쳐든다. 이 경우 독자는 ‘해설’에서 시세계로 들어가는 비밀 출입구 같은 것을 찾으려고 한다.
이때 ‘해설’이 텍스트에 숨겨진 비밀 출입구를 친절하게 알려준다면, 독자를 그 문 앞으로 데려다준다면, 독자들은 ‘해설’의 전문성을 인정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글은 어디에 해당할까? 추측하건대 이 시집을 펼쳐든 독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작품에서 당혹스러움을 느끼고 곧장 이 글, 즉 ‘해설’로 건너왔을 듯하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이 글 역시 김현신의 시세계로 들어가는 비밀 출입구 같은 것을 제공해야 마땅할 것이지만, 죄송하게도 이 글은 독자의 그런 기대에 부응하지 못 할 듯하다.
김현신의 시세계에 대해서라면 필자가 독자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당혹감에 대해서라면 필자와 독자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이 당혹감의 강도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김현신의 시를 읽을 때 염두에 두어야 할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해보려 한다.
*
먼저, 이 시집이 읽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3부부터 읽기를 권한다. 3부의 첫머리에는 「통속적인 눈물은,」이라는 제목의 시가 수록되어 있고, 거기에는 “이마를 스쳐갑니다 눈물을 열고 몸 가득 채운 너는 항상 비대상입니다 몸을 쪼개는”이라는 진술이 등장한다.
이 진술에서 “이마를 스쳐갑니다”는 그 앞의 행, 즉 “나의 모래를 가져간 번개처럼”과의 행간걸침(Enjambement)이고, “몸을 쪼개는” 또한 그 다음의 행, 즉 “소음은 밀려오고” 와의 행간걸침이다. 따라서 사실상 이 행의 중심은 “눈물을 열고 몸 가득 채운 너는 항상 비대상입니다”라는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비대상’이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일단 3부 전체를 잠시 훑어보라. 그러면 아래와 같은 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천 개의 벌판은 보이지 않았고, 하얀 백지는
그를, 타인으로 읽고 있었다 ‘투명한 그림자’로 죽어가는 ‘칸나’ 피아골 같은
또 다른 벌판을 만든다 잠을 자고, 육체를 내닫는 섬뜩한 성이 있었고,
사각의 문장들, 가버린 손, 병동의 언어, 그리고 보이지 않는 꽃
한 개비의 연기가. 백색의 손가락이 파열하는
- 한마디로 무, 부재, 즉음, 비대상의 세계이다 이것이 언어를 매개로 생각해본 비대상의 또 하나의 논리이다-
(이승훈, 「비대상에서」, 1981)
꽃의 언어를 클릭합니다 초월적 이데아로 깊어가는 영도의 문장은, 누군가를 열고,
꽃은, 찢어진 육체는, 손은, 보이지 않았고
찢어진 인생을 봅니다 한 점, 영혼, 하얀 손, 흘리는,
비대상으로 당신을 봅니다
─ 「비대상, 벌판입니다」 전문
이 시에는 제목에, 그리고 시 속의 인용문에도 ‘비대상’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여기에서 ‘비대상’은 시인 이승훈의 개성적인 시론의 핵심 개념 가운데 하나이다. 일찍이 이승훈은 시를 의식이 아닌 무의식의 층위에서 사유하고자 했고, 그 맥락에서 초현실주의적 방법을 원용하여 시가 무의식의 자동적인 발화에 근접하는 실험을 펼쳤다.
이승훈은 이러한 시적 진술방식이 일체의 대상을 배제한 채 내면, 즉 심리상태만을 드러낸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것을 ‘비대상시’라고 명명한 적이 있다. 요컨대 비대상시에서 시적 발화, 그리고 그 발화에 사용되는 일체의 기호들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특정한 대상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무의식의 자동적인 표현에 불과하며, 그때 언어는 외부와의 지시관계 내지 재현관계에서 벗어나 개인의 무의식이 드러나는 통로가 된다. 물론 이러한 시적 실험이 ‘언어’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이 실험에서의 ‘언어’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언어, 곧 특정한 의미를 전달하거나 사물을 지시하기 위해 사용하는 상징질서가 아니다.
요컨대 이 시의 제목에 등장하는 ‘벌판’은 우리가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그 벌판이 아니고, 우리의 눈앞에, 이 세상 어딘가에 펼쳐져 있는 벌판도 아니다. 그것은 ‘벌판’이라는 기호, 그리고 시인의 내면세계와 무의식에 의해 발화된 언어 기호일 따름이다. 언어의 응축과 치환을 중심으로 무의식을 설명하는 라캉주의자에게는 ‘벌판’이 어떤 문장, 어떤 단어들, 혹은 어떤 표상들이 뭉쳐져서 만들어진 낯선 기호로 이해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시에서 ‘벌판’이라는 기호를 ‘넓고 평평한 땅’이라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 읽어선 안 된다. 아니, 누군가는 그렇게 읽고자 하겠지만, 문제는 그렇게 읽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언어’는 존재하되 지시관계에 의존하여 읽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이 난감함이야말로 독자들이 김현신의 시를 어렵게 느끼는 핵심적인 이유일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 이 ‘언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언어적 질서, 곧 문법 등에 지배되지 않는다.
그것은 무의식이 의식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김현신의 시를 읽을 때 문법적 상식을 벗어난, 혹은 그것이 해체된 상태로 제시되는 것들은 모두 그 ‘언어’가 무의식의 질서를 따르기 때문에 생긴 문제라고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언어’ 자체를 한계지점까지 밀고 나아가는 이러한 태도는 말라르메 등의 상징주의에서 시작되어 초현실주의를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시적 현대성이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실제로 유럽의 시사詩史에서 말라르메가 대표하는 상징주의는 현대성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시에서 ‘언어’의 문제는 그것을 사유하는 다양한 지류를 형성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으므로 상징주의에서 초현실주의에 이르는 흐름을 시적 현대성과 동일시하는 것은 위험하다.
한국시에서도 이상, 조향, 김기림, 김춘수, 이승훈 등은 각자의 방식으로 ‘언어’에 대한 근본적 문제의식을 드러내었으니 시에서의 현대성은 결코 단일한 경향으로 말해질 수 없다. 언어에 대한 자의식이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김춘수의 무의미시 또한 비슷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무의미시’라는 말 그대로 김춘수는 시의 ‘언어’가 의미전달의 수단으로서의 언어가 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김춘수 또한 지시관계나 재현관계에서 벗어난 방식으로 ‘언어’를 사용했다. 물론 언어 기호 없이는 시 자체가 성립되지 않으므로 시적 진술을 포기하지 않되 그것이 의미 전달이나 지시 작용을 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 김춘수는 진술 자체에 의미의 단절점을 도입했다. 이러한 언어 실험이 왜 문학인지, 그것이 문학적으로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또 다른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것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언어를 지시적인 기능으로 사용하지 않아도 시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수용과정에서 독자에 의해 지시 관계로 읽힐 가능성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 위험을 무사히 넘긴다고 해도 지금 우리가 그러하듯이 시를 읽는 독자들이 최소한 무언가를 경험하거나 얻어야 한다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요컨대 그것이 시인의 순수한 내면상태이건, 또는 무의식의 발화이건, 유기적인 연관성은 물론 문맥, 문법적 관계를 벗어난 상태로 제시되는 일련의 진술들 사이에서, 혹은 그것들의 긴장관계가 독자로 하여금 어떤 것을 경험하도록 만들지 않는다면 언어적 구성물로서의 시는 존재할 수 있지만 독자에게 제대로 수용되기는 어렵다.
김현신의 시에서 ‘비대상’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 맥락에 대해 길게 이야기했으니 지금부터는 인용시에 대해 살펴보자. 화자는 “천 개의 벌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으로 진술을 시작하고 있다. 왜 벌판은 보이지 않는 것일까? 누군가가 이렇게 묻는다면, 그것이 ‘비대상’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듯하다. 앞에서 우리는 이 시에 등장하는 ‘벌판’이 대상이 아님을 살폈다. 이어서 화자는 “하얀 백지”가 “그를, 타인으로 읽고 있었다”라고 진술한다.
여기에 쓰인 언어들은 지시 관계의 바깥이거나 무의식적 발화의 일부일 수 있으므로 그 의미를 정확히 헤아리기는 어렵지만 여기에서 ‘하얀 백지’는 ‘시詩’를 뜻하는 듯하다. 즉 시가 ‘벌판’을 ‘타인’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투명한 그림자’로 죽어가는 ‘칸나’” 등과 어떤 관계인지는 헤아리기 어렵다. 그렇지만 설령 그것이 무의식적 발화라 할지라도 전혀 질서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므로 우리는 상당한 척력을 지닌 파편적 발화들을 끌어 모아 시인의 세계 이해방식에 근접할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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