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이야기] 이성원-민용자 이사장 인물시 [기자수첩] 한국도서재단 이성원 이사장의 부음을 애도하며
한국도서재단 이성원-민용자 이사장님 이야기
[한미우호협회] 협회지 박정수 부회장님의 회고글 [영원한친구들]
한국도서재단 이성원-민용자 이사장님은 참으로 훌륭하신 분들이다. 존경함이 없는 시대에 존경할만한 분들이다. 두 분과의 인연은 책이다. 91년 배화여중에 처음 부임했을 때 국어과로 독서지도 업무를 맡았다. 물론 그 때에는 도서관도 없었다. 박스에 담긴 너덜너덜한 문고판 서적이 전부였다.
그 책들로 학급을 윤독시키라 한다. 당시 7개 반이었는데 박스에 널부러진 책들은 겉장도 뜯어져 없었고 낡아서 가히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데 이 책으로 아이들에게 읽게 하라니... 답답했다.
그래서 자주 가던 작은 문고에서 사장님께 하소연했더니 그 분이 내게 소개시켜 준 분이 이성원-민용자 이사장님이시다. 그 서점 사장님은 서점을 닫고 다른 일을 하는데 지금도 가끔 만난다. 두 분을 찾아가서 사정을 이야기해 보라는 것이었다. 그 분들이 책을 오지에 기증하시는 사업을 하시는데 도와주실 분들이란다.
경복궁역 앞 적선동 현대빙딩 5층에 한국도서재단을 찾았는데 환하고 반갑게 맞아주시던 모습을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저희 학교에 학생들이 읽을 책이 없습니다.", "아니! 배화여중이면 서울의 명문인데 책이 없다니 말이 되요?" 책 목록을 적어 오라셨다.
당시 첫번에 기증은 받은 책이 1,330권이었다. 당시 나의 선정기준은 1) 최신 유행하면서 학생들이 읽을 만한 도서, 2) 오랜 고전으로 청소년들이 읽을 만한 도서를 학급별로 윤독할 수 있도록 학년별로 차별화하여 기증 받았다. 나중에 이성원 이사장님을 배화여중 강당에서 독서강연을 부탁드렸는데 500여권의 책을 더 가져오셨다. 그래서 1,830권이 배화여중의 필독도서가 되었고, 아직도 그 책들의 일부는 아이들에게 읽히고 있다.
예를 들어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은 지난 주에 진로 도서로 애벌레가 날개를 다는 나비가 되는 이야기는 우리 인생의 과정을 비유한 책으로 30년 넘게 계속 읽힌 책이다. 지금도 그 때 책을 열심히 읽었던 학생들 중에 김oo이는 서울대에 들어가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 석박사를 하고 미국 갠자스 대학에서 교수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독서체험담을 소개해 본다.
배화여중에서의 독서 체험담
-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김 o o -
어릴 때도 그랬지만 중학교 때도 나는 무척 책을 많이 읽는 아이였다. 특히 소설을 무척 좋아해서 중학교 1학년 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감명 깊게 읽고,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을 즐겨 읽었으며, '데미안'을 이해하려고 무척 애썼던 기억이 난다.
책을 읽을 때 나는 학교 근처에 있던 종로도서관을 비롯하여, 교보 문고 등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은 모두 이용하였으나 정작 학교에는 책이 그리 많지 않아 학교에서는 책을 빌릴 수 없었다. 학교 도서실이 완비되어 있지 않은 탓이었다. 그런데 언젠가 학교 4층 구석에 작은 공간이 마련되어 허름한 책장 몇 개가 놓이고 책들이 2중으로 빽빽이 꽂히기 시작했다. 국어 신호현 선생님이 부탁하셔서 어느 좋은 분이 기증하셨던 걸로 기억된다.
나는 거기에 있는 책들을 소설, 수필, 과학 도서를 가리지 않고 하나씩 읽어 나갔는데, 마지막까지 내가 손대지 않고 있던 책은 시집이었다. 그 때까지 시란 내게 아직은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었던 것이다. 그 책은, 제목은 잘 기억 나지 않지만 한국의 현대시를 50수 뽑아 놓은 책이었는데, 책장에 꽂힌 책을 모두 읽고 더 이상 읽을 것이 없었던 나는 할 수 없이 그 시집을 빼 들고 읽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시라는 것을 알고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속에는 길이가 길지는 않지만 행마다 깊은 서정이 담겨 있는, 내가 그 때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가 있었다. 그 후 나는 명시 100선집을 이어서 많은 현대시들을 즐기게 되었고, 그래서 나에게 그러한 기회를 준 그 때 그 독서 공간이 더욱 흐뭇한 추억으로 남는다.
작은 독서 공간이 마련되긴 했지만 여전히 책이 많지는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반별로 윤독을 했다. 반 아이들이 모두 책 한 권씩을 사서 도서부장의 관리 아래 일정 기간을 두고 책을 돌려 읽었던 것으로 기억 된다.
윤독은 한 사람에게는 책 한 권 사는 정도의 부담만을 주면서도 결국 몇 십 권의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에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윤독을 할 때는 미리 선생님이 짜 주신 도서 목록에 따라 하기 때문에 그 나이에 읽어야 한다고 권장 되는 양질의 책들을 골고루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고 나서는 독후감을 쓰면서 감상을 정리하는 숙제도 있었다.
책은 나의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어느 친구보다도 가깝고 좋은 벗이었다. 나는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감수성과 사고력을 키웠으며, 무엇보다도 즐거울 수 있었다. 지금도 나는 공부를 하느라 꾸준히 책을 읽는다. 그러나 그 때만큼 책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책으로부터 얻는 즐거움은 이제 내게서 많이 사라진 듯 하다. 요즘 나는 책 읽는 즐거움보다는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책을 읽게 된다. 그러나 어릴 때 책을 사랑하고 즐겨 읽었던 것은 나를 이만큼이나 키워 준 가장 큰 자양분이며 또 나의 그리운 추억이기도 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는 내 주위의 어린 후배들이 책을 많이 읽기를 바라고 직접 권하기도 한다. 책은 그 어느 매체보다도 많은 상상력을 키워 주고 많은 정보를 주기 때문이다. 특히 중학교 시절은 초등학교 때보다 성숙한 지력으로 더 수준 높은 작품들, 더 깊이 있는 내용의 책들을 읽어 나갈 수 있는 시기이며, 입시 공부에 쫓겨야 하는 고등학교 때보다 더 여유를 가지고 많은 책을 읽으면서 고등학교 때 필요한 언어 능력을 준비할 수 있는 황금 같은 시기이다.
지금은 내가 중학교 다닐 때 부족했던 독서 기반이 충족되었기를 바라며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독서를 지도할 때에도 책 읽는 의무보다는 책 읽는 즐거움을 느끼도록 해 주셔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즐겁게 책을 읽는 후배들의 똘망똘망한 눈빛을 만나는 즐거움을 느껴 보고 싶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성원-민용자 시사장님 감사드립니다. 돈을 많이 버셔서 학생들 군인들 교도소에 책을 기증하셔서 대한민국 구석구석에 20만부 그 이상의 책을 기증하셔서 젊은 영혼들의 꽃을 피우고 그 아이들이 열매를 맻도록 하신 당신들은 위대하신 “나비” 같으신 분들입니다. 세상은 당신들을 잊어도 원시인은 절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하나님 품안에서 편히 쉬십시오. (21세기 원시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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