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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교사의 신문 보기

원 시 인 2010. 2. 9. 00:13

                  부부교사의 신문 보기


   아내와 난 교육 경력 10년을 넘긴 부부교사이다. 남들은 부부교사가 웬만한 중소기업이라며 부러워한다. 정년의 보장과 월급. 정말 감사한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아내는 매일 아침 신문을 보면 불안불안하단다. 아내는 교사로 살아남기 위해서 영어를 배워야 하고 우리 아이들 미래를 살리기 위해서 영어를 배워야 한단다. 이제 40대 중반에 선 우리 교직생활 절반을 더 남기고 있다면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해야 한단다.

   이번에 대통령이 바뀌면서 교육 개혁에 태풍이 또다시 일어난다. 학력 신장을 위해 초3, 중1 진단평가와 중3 학력평가를 실시한단다. 이미 학교 현장에 공문이 내려왔고, 친구 교사는 출제위원으로 들어갔다 왔다. 영어능력 신장을 위해 학교 현장에선 영어는 물론 수학, 과학 등 많은 교과에서 영어수업을 하도록 한다고 한다. 영어능력 인증자격인 TOSEL을 취득한 사람을 학교 현장에 불어 넣겠다는 것이다.

   학교 현장에서 보면 영어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학생들이 불법 유학을 떠난다. 아이들보다 학부모가 앞장 세워 보내는 경우가 많다. 미국 유학생만도 17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 많이 떠나는 중국, 캐나다, 호주, 유럽, 필리핀 심지어는 우리나라보다 경제력이 떨어지는 나라까지 영어권이라면 유학을 떠난다. 국내에서 공부하는 비용으로 유학생활을 하고도 남는단다.

   그러기에 재작년부터 초등학생인 아이들 영어교육을 위해 휴직을 내고 유학을 떠나자는 아내였다. 기둥뿌리 하나 뽑아 겨울방학을 틈타 미국 여행을 하면서 겨우 진정시켰는데 정말 교육현장에서 영어를 못하면 아이들에게 무시당하고 무능한 교사로 퇴출당할 것인가. 교원평가에 영어능력을 평가하고, TOSEL을 취득한 교사와 취득하지 못한 교사의 성과급 지급을 달리할 것인가. 아내가 미래를 잘 내다보는 것인지 우리 부부는 날마다 신문을 타고 불어오는 기류에 입이 바짝 마른다.

   지난 10년 전에도 정권이 바뀌면서 교육개혁을 부르짖었다. 열린교육을 시켜야 한다며 기존의 지식 중심의 교육을 비난할 때도 교사들은 열린교육을 위해 교실과 복도를 헐기도 하고 심지어는 학교 담장을 헐기도 했다. 각종 연수에 적극 참여했고 연구 시범학교도 운영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효과가 있다던 열린교육은 학력 저하현상만 낳고는 공교육이 사교육보다 못하다는 결과를 낳았다.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을 가게 해주겠다며 학력 파괴를 부르짖을 때 교사들은 고사하고 학생들은 믿었을까. 오히려 내신과 수능, 논술이라는 죽음의 삼각형을 선물하지 않았는가.

   2005년 대학입시 발표에서 느닷없이 수능 등급제 실시되고 논술을 대학별로 반영하겠다고 하니, 사교육과 학교 현장은 논술 광풍이 불었다. 앞서가는 대입제도 따라가기에 1년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세우고 실천에 옮기는 학교 현장은 사교육보다 당연히 뒤늦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아이들은 학원으로 몰려들고 사교육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학교 현장은 학력 신장을 위해 서술형 논술형 시험이 50%이상 출제되고 교사들과 학생들은 또다시 휘청거렸다.

   그래도 교사들은 교육가들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가르친다. 누가 그 흐름을 거역할 것인가. 교원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고 따라오지 못하면 무능한 교사로 몰아치는데. 방학이면 선생님들은 논술연수로 뜨거웠다. 또다시 논술 연구 시범학교를 운영하고, 논술 교과서를 만들고 필요에 따를 교육이 시작되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도 써보지 않은 논술, 논문을 아이들 가르치기 위해 새롭게 배워가며 가르칠 준비를 했다.

   그런데 대입에서 아니란다. 논술 반영 안 하겠단다. 그냥 한 번 해 본거란다. 논술 반영하니까 학생들이 싫어하고 평가도 어렵단다. 학부모들은 논술평가의 공정성을 따진다. 어느 대학에서 논술 반영하면 모두 반영하고, 어느 대학에서 반영 안 한다면 모두 반영 안 한단다. 도미노 게임을 즐긴다. 즐거운 건 똑똑한 교육가들이지만 이리저리 쓰러지는 건 교육자들과 학생들이란다. 틈새에서 함께 즐거운 것은 사교육 시장이고….

   이제는 영어교육이란다. 영어시간만으로 12년 교육해도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하니 세계 경쟁력에서 떨어진단다. 그래서 영어교육을 위한 사교육이 늘어나고, 유학을 위한 엄청난 국가 재산이 봇물 터지듯 외국으로 흘러나간다고 한다. 유학을 보내고 멀쩡하던 사람이 기러기가 되고 펭균이 된단다. 그러다 무너지는 가정이 부지기수란다.

   교육은 뜨거운 감자다. 맛있게 보이지만 섣불리 건드리면 죽을 맛을 경험한다. 국민들은 해결되지 않는 문제만 배출하는 듯한 현 정권에 불만을 가지면 새로운 대통령에게 기대를 건다. 70% 넘게 신임을 받는 대통령은 국민에게 보답하려는 듯 섣불리 뜨거운 감자에 손을 댄다. 그러다 지지율 30%도 안 되는 경우를 보았다. 뜨거운 감자는 식기를 기다려야 한다. 서서히 기다렸다가 식으면 국민이 다같이 조금씩 아껴 먹는 맛이 얼마나 달콤할까.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개학을 앞두고 논술 교과서에 따른 지도서를 집필하다가 아내의 입김을 타고 불어오는 영어 태풍을 생각한다. 방학이 끝나기 전 영어 학원에 등록해야 할지, 밀려가는 논술의 끄트머리를 잡고 지도서를 계속 써야 할지 고민을 한다. 그러면 국어도 영어로 가르쳐야 하는가. 신문을 보며 내게 입김을 불어 넣던 아내는 어느새 TV에서 방영되는 ‘대왕 세종’을 열심히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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