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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을 보내며

원 시 인 2011. 1. 22. 23:52

故박완서 "가난한 문인들에게 부의금 받지 마라"

 

   지난해 등단 40주년을 맞이한 소설가 박완서(80·여) 선생이 22일 오전 5시20분께 경기 구리시 아차동 자택에서 담낭암으로 별세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강남구 서울삼섬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빈소에는 활짝 웃고 있는 고인의 영정이 놓였다.
   박 선생은 지난해 10월 담낭암 수술을 받고 상태가 호전돼 이달 11일부터 자택에서 큰딸 호원숙씨(57·여)와 함께 지냈다. 큰딸 호씨는 "어머니가 주무시다 편안히 돌아가셨다"며 "특별한 임종 시에 유지를 남기시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셋째 사위인 권오정씨(53)는 "더 이상 장모님의 훌륭한 말씀을 듣지 못한다는 게 너무 슬프다"며 "장모님과 대화를 나누는게 인생의 재미중에 하나"였다고 심경을 전했다.

   오전 11시께 찾은 고인의 빈소는 지인들과 가족들의 장례준비로 분주했다. 오전 11시30분께는 이명박 대통령의 조화도 도착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박 선생의 지인들과 문학계 후배들의 조문도 이어지고 있다.
   오전 11시50분께 빈소를 찾은 가수 김창완씨(57)는 "한달전쯤 고인을 만났을때 '몸이 안좋아요'라고 첫 마디를 나눴다'"며 "그게 마지막이 됐다"고 고인과의 인연을 털어놨다. 눈가가 촉촉해진 김씨는 "그래도 선생님이 많은 것을 남겨주셨다"고 안도했다.
   고인의 빈소 입구에는 "부의금을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는 안내문이 쓰여 있다. 고인은 평소 "문인들은 돈이 없다"며 "내가 죽거든 찾아오는 문인들을 잘 대접하고 절대로 부의금을 받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사위인 권씨가 밝혔다.
   박완서 선생은 서울대 국문과를 중퇴한 뒤 마흔이 되던 1970년에 장편소설 '나목'이 여성동아 현상공모에 당선돼 문단에 들어왔다. 한국문학작가상(1980), 이상문학상(1981), 대한민국문학상(1990), 현대문학상(1993), 대산문학상(1997), 황순원문학상(2001), 호암상 예술상(2006) 등을 받았다. 1998년에는 보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중략)

 

민지형 기자   mjh@newsis.com

출처 :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10122_0007220603&cID=10703&pID=10700

 

 

출처 : http://www.ytn.co.kr/_ln/0103_201101222150356231(YTN 뉴스)

 

 

문단의 어머니 박완서 선생님을 보내드리며..

 

                 2005년 한국일보 문학인의 밤에서                     웃고 계신 박완서 선생님의 영정 사진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이 세상 소풍을 마치셨다고 한다. 문단에 어머니 같으신 분이었다. 박완서 선생님의 소설 '옥상의 민들레꽃'이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려 가르치면서 박완서 선생님을 소개하고, 필독도서로 '자전거 도둑'을 읽게 하곤 했다. '자전거 도둑'을 비롯한 그의 작품은 이 세상을 사는데 중요한 것은 돈보다 진실한 마음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선생님을 직접 만나뵙게 된 것은 2005년 한국일보가 주최한 '한국 문인의 밤'에서였다. 작품에서 현대인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따뜻하고 세밀한 언어로 타이르시는 어머니처럼 그대로 어머님의 모습이셨다. 사진을 같이 찍는데도 부끄러워 하시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 날 거기에 참석하셨던 박완서, 유안진, 김남조, 신달자, 조정래, 김훈, 고은 등과 같은 분들은 쉽게 만나뵐 수 없는 문단의 별들이셨다.

   짧은 시간 어머니 같으신 자태를 느끼고 돌아섰는데 벌써 세월은 흘러 6년이 흐른 뒤에야 선생님의 소식을 뉴스로 듣게 되었다. 1931년생이시면 나의 아버님과 같은 나이신데 나는 아버님으로부터 들은 삶의 고난을 떠올리며 선생님이 얼마나 힘들게 인생을 살아오셨을까 생각했다. 일제시대에 태어나 6.25 동족 상잔의 비극을 거치면서 격동기를 살아내신 힘겨운 삶 앞에 경의를 표한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조부모 손에 자란 선생님은 서울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셨단다. 하지만 한국전쟁으로 대학을 중퇴해야 했던 선생님. 의용군으로 나갔던 오빠마저 부상을 입고 몇 달 후 세상을 떠나면서 전쟁은 선생님께 평생 잊을 수 없는 아픔으로 남았던 것이다. 선생님은  병을 앓던 남편을 먼저 보내자마자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들을 잃으셨다니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까?

   선생님께서는 입버릇처럼 "6ㆍ25가 없었다면 나는 선생님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곤 했단다. 선생님께서 그토록 바라시던 선생님이라는 꿈을 내가 살고 있다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힘들어 하고 아이들 때문에 지칠 때, 이런 내 삶이 많은 누군가의 꿈이라면 더없이 소중한 순간들이다. 

   전쟁과 분단의 상처,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아픔을 소설로 표현해온 '영원한 문단의 어머니'이신 선생님이 다녀가신 세상의 발자취를 생각하며, 남은 인생 시를 쓰는 문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그 많은 아픔을 이겨내고 소설로서 삶의 진실을 밝혀오신 선생님이야말로 문단에 존경을 받을 만하다. 연꽃이 진흙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듯이 삶의 어려움을 뚫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문단에 빛이 되신 선생님과의 이별 앞에 삼가 엎드려 명복을 빈다.

 

  

별이 되신 선생님

 

 

그토록 고우신 미소는

세상 고통 고운 살에 담아

수십 년 걸러내신 진주였지요

 

어릴 적 어둔 골목에서

맑게 떠오른 별을 보며

무지개 세상 꿈꾸신 당신

 

소녀가 펼치기엔

너무나 두꺼운 세상

겨울 넘기면 겨울인 세상

 

눈 내리고 비바람 부는

폭풍 같이 험한 세상에서

잃을 것 다 잃고 얻은 상처

 

상처를 딛고 일어서서

비로소 펜을 들었을 때

치유하는 향기가 되셨지요

 

세상에 뿌려진 미소

책장에서 반짝 빛날 때마다

별이 되신 선생님 그립겠지요

 

 

詩  신 호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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