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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 스피치]영화를 보고(까짓꺼 씨X, 신호현)

원 시 인 2011. 4. 9. 19:04

 

 

“까짓꺼 씨X”

                               - 영화 『킹스 스피치』를 보고

 

   살면서 용기 없음으로 해서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하고 주저주저하다가 피해보면서 살아온 나날이 얼마나 많았던가. 남에게 피해가 될까봐 망설이고 괜히 실수해서 망신을 당할까봐 망설이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간다’는 식으로 나서지 않았기에 할 수 있음에도 할 수 없었던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그것은 아마 어렸을 때 어떤 행동을 하다가 부모나 다른 가족들로부터 ‘안 돼!’라는 주의를 듣거나 혼나고부터 자신의 행동 욕구를 심리적으로 억눌러 오느라 습관화되어 굳어진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게 굳어진 마음들을 소심하다고 하겠지만 이보다 더 큰 아픈 추억을 내재한 사람들은 그런 아픔이 충격이 되어 상처로 남는다. 난 그럴 때마다 속으로 외쳐보라 한다. "까짓꺼 씨X!"

 

   버티(조지 6세의 애칭, 콜린 퍼스 역)는 현재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아버지이다. 그는 어려서 유모의 그릇된 보육으로 상처를 입는다. 왕자들이 대개 엄마 왕비의 손에서 자라기보다는 유모의 손에서 자라는데 버티는 유모가 자기 의도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꼬집기까지 하는 행동으로 기억도 잘 안 나는 5살 때 부정적 기재가 형성된다. 더구나 태어나면서 왼손잡이이었는데 오른손잡이로 키우려는 부모의 꾸짖음에 상처를 받는다.

   말더듬이가 된 조지 6세는 형의 놀림과 아버지의 윽박지름으로 더욱 움츠러들고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한 후에도 고쳐지지 않는다. 영국의 왕자로 공직에서 일하지만 여기저기 연설을 할 때면 실패와 좌절로 더욱 소심해진다.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헬레나 본햄 카터 역)는 그의 남편을 위로하고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말로 격려해 주면서 말더듬병을 고치려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치료를 의뢰한다. 그런데 백인백색의 치료법에 지친 버티는 더 이상의 치료를 거부한다.

   엘리자베스는 신문 광고로 알게 된 라이오넬(제프리 러쉬 역)라는 언어치료사를 만난다. 라이오넬은 환자가 영국의 왕자라는 사실에 놀라지만 그는 자신의 방법대로 치료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다. 버티는 오히려 치료에 대한 의심과 불확신으로 화를 잘 낸다. 결국 성미가 급하고 빠른 치료를 기대하는 버티와 충돌을 일으킨다. 시끄러운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게 한다거나 치료의 동기를 찾기 위해 어렸을 때의 상처를 알아내려고 질문하는 과정에서 거부하며 치료를 중단하기도 한다.

   그러던 중 버티의 아버지인 영국의 왕이 죽고 형이 왕위를 계승하나 형은 왕위에는 관심이 없고 두 번이나 이혼한 미국 여자와 사랑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는다. 결국 형은 왕위를 동생 엘버트(버티의 왕자 이름)에게 물려주고 떠난다. 이로써 왕위를 물려받은 버티는 이제는 국왕으로서 수많은 연설을 해야 하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시대는 라디오를 통해 연설을 해야만 하는데 독일의 히틀러는 영국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강하고 신망이 두터운 왕을 기다리는 국민들 앞에서 버티는 또다시 라이오넬을 찾아간다.

   한 번도 자신의 아픔을 들어주는 친구를 만나지 못한 버티는 속으로만 상처를 간직했는데 라이오넬의 노력으로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 보이고 치료에 응한다. 라이오넬의 노력으로 자신감을 갖게 되는 버티는 그의 국왕즉위식에서 멋진 연설을 통해 자신의 말더듬병을 치유하고 국민들이 기대하는 왕이 되어 영국을 위기에서 잘 이끌어가는 선군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라이오넬은 버티의 연설 때마다 함께하여 국정을 도움으로 그 공로가 인정이 되어 훈장을 받는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초한 감동적인 영화이다.

 

   2011년 아카데미상 12개 부문 후보로 오를 정도로 이 영화는 118분 거의 두 시간 정도 지속되지만 지루하지 않은 구성으로 긴장을 이끌어 간다. 영화든 소설이든 극적 긴장감을 통해 클라이막스를 느끼게 하고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해야 눈물을 통해 감정을 정화하는 기능을 담당하게 마련인데 버티가 아내 앞에서 자신은 할 수 없다며 상처를 털어놓는 부분에서 눈물이 난다. 엘리자베스는 “당신이 청혼했을 때 왕비로 사생활이 침해당할까봐 두 번이나 거절했는데 당신이 말더듬이의 멋진 모습으로 왕이 안 될 것을 알았기에 청혼을 받아들였다.”며 위로를 한다.

   특히 감동으로 와닿은 것은 영화에서 라이오넬의 치료방법이 나의 생각과 일치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화가 끝나고 아내는 라이오넬을 보면서 ‘나’ 같아 보였다고 한다. 아내가 어떤 부분에서 라이오넬을 보면서 날 떠올렸는지 묻지는 않았지만 나는 교사로 아이들과 만나 수업하는 첫 시간에 몇 가지 당부하는 말 가운데 “까짓꺼 씨X"라는 말을 가르친다. 난 어려서 소심한 성격으로 기회를 많이 놓친 것 같아 의기소침한 아이들에게 용기를 내라는 의미로 들려주는 이야기다.

   세상을 사는 데는 용기가 많이 필요하다. 특히 여자로 우리나라에서 사는 데는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주저하다가는 기회를 놓치고 평범한 여자로 살아가야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내가 소심한 성격으로 손해를 보며 살다가 그나마 지금의 모습을 찾아오는 데는 내 마음 속 도정과 용기를 불러내는 말 “까짓꺼 씨X"라는 말이다. 집에서나 친구들 앞에서 욕 한 번 안하던 모범생의 내가 마음속에 소심을 떨쳐내는 한 마디의 욕이다.

   놀랍게도 라이오넬은 버티에게 자신감을 갖게 하기 위해 욕을 하게 한다. 화가 나서 욕을 할 때는 심리적으로 소심을 떨쳐내고 자신감을 회복하기 때문이다. ‘젠장, 망할, 빌어먹을, 미친 ….’ 아마 12세 관람가로 만들기 위해 자막 번역을 그마나 순화해서 그렇지 원어 발음에서는 그 이상의 욕을 마구 던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욕을 통해 마음속에 응축된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야 자신감이 들어서게 마련이다. 그래서 소설에서나 영화속에서 어느 정도의 욕은 문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가.

   조지 6세가 된 버티가 자신의 말더듬병을 치료해가며 연설에서 자신감을 찾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라이오넬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마치 아이들이 내게 공부를 마치고 더 큰 세상을 향해 떠나기 위해 졸업장에 선 내 모습 같아 보였다. 인류 역사에 이름도 남기지 못할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다만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바람 부는 교단을 지키며 기쁨으로 살아가리라.(2011.4.9, 신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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