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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학당]원시인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에 서다

원 시 인 2015. 2. 17. 12:37

[배재학당]

원시인,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에 서다 

 

제 민족의 역사를 알지 못하면 그 민족은 망한다.

 

   예전에 논술교과서를 집필했던 한국교과서 전 * 주 사장님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나 '설가온'에서 식사를 하고 중구 정동에 있는 배재학당을 찾았다. 배재학당은 이화학당, 배화학당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근대 사학의 발원지이다. 1885년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가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이다. 고종 황제는 1887년 '유용한 인재를 기르고 배우는 집'이라는 뜻으로 [배재학당(培材學堂)]이란 이름을  하사하셨다.

    2008년 7월 24일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으로 새롭게 태어난 배재학당 동관(서울시기념물 제16호)은 1916년 준공한 유서깊은 근대 건축물로 아펜젤러가 전인교육을 실천했던 공간이자 수많은 근대 지식인들을 배출한 신교육의 발상지요신문화의 요람이다. 근대교육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귀한 소장품들과 함께, 상설전시장, 기획전시장, 체험교실 및 세미나 등을 갖추고 있는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은 교육, 종교, 정치,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 근대사를 새롭게 조명할 자료와 담론이 모여드는 공간이자동시대와 호흡하는 역사의 현장으로 모든 이들에게 열려있는 공간이다.(배재학당 설립목적 발췌) 

   이화학당과 배화학당이 근대 여성교육을 담당했다면, 배재학당은 대한제국의 정궁이라 할 수 있는 덕수궁을 가까이 서울의 최중심에 위치해 남성교육을 담당했던 곳이다. 명예의 전당에 보면, 이승만(李承晩, 1875~1965년), 주시경(周時經, 1876~1914년), 나도향(羅稻香, 1902~1926), 김소월(金素月, 1902~1934년) 등 우리 근현대사에 큰 획을 그었던 배재인들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축구, 야구, 럭비, 수영 등을 보급하며 한국 근대 체육의 초석을 놓은 배재 체육의 진면목도 확인할 수 있으며, 김소월의 시집인 『진달래꽃』(1925년) 초판본과 함께 교지 『배재』2호를 통해 「접동」등 그가 배재고보 재학 시절 창작한 작품들도 함께 공개하고 있다.

    배재학당은 당시에도 글로벌 교육을 실시했던 것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한문과 교리문답 두 과목 외에는 영어로 수업을 진행했고,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토의 토론식 수업을 실시했다. 영어, 국어, 역사교육이 우수한 인재를 교육하는 근간을 이미 알았고, 기독교 교육을 통해 '나중심'보다는 '남중심'의 사고를 갖는 인재를 양성했던 것이다. 

    또한 당시 양반과 평민 노비 등 신분에 따른 차별을 철폐하고 누구나 공부할 수 있는 문을 열어 하나님 사랑 안에 한 가족 형제임을 실현했다. 아펜젤러는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겨라.(欲爲大者 當爲人役)"는 말로 기독교 사상 아래 인본주의를 강조했으니 아펜젤러의 교육사상이 높고 위대했음을 알 수 있다. 위대한 선교사이며 교육실천가였던 아펜젤러의 용모는 항상 깨끗하고 정갈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늘 일기를 씀으로서 하루하루의 삶을 기록하여 일기가 남겨 전해지고 있다.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을 돌아보면서 역시 앞서가는 학교는 역사인식부터 남다르다는 생각을 하였다. 배재학당만이 아니라 이화학당도 역사박물관이 잘 만들어져 있다. 언젠가 백두산에 가면서 연변에 있는 대성중학교를 들렀던 적이 있다. 당시 80년의 역사밖에 안되었는데도 역사박물관이 잘 지어져 많은 관광객을 끌고 있다. 대성중학교는 윤동주 시인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배출한 학교이다. 역사 인식이 잘 되어 있는 학교가 훌륭한 인재를 많이 배출하다는 생각이다.

 

    우리 배화도 1898년에 미국 남 감리교 선교사인 조세핀 필 캠벨 여사에 의해 개교하여 올해 117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이화학당은 이화여자대학교에 의해 더욱 크고 발전하였으며, 배재학당도 배재대학교에 의해 그 역사의 가치를 드높이고 있으나, 배화학원은 아직 역사박물관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1930년대 지어져 문화재로 인정받은 건물도 많고 여러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물도 많을 텐데 각자 뿔뿔이 흩어져 관리되고 분실되어 가고 있다.

    너무나 놀라운 충격은 1930년대 만들어진 오래된 피아노를 낡고 소리가 제대로 안 난다고 보관할 곳이 없어 불에 태웠던 모습은 역사와 유물의 가치를 모르는 소치였던 것이다. 배화의 선배 선생님들의 정선이 깃들인 많은 작품들이 방구석에서 공팡이와 습기로 썩어가고 있고, 무심한 손길에 훼손되어 가고 있다. 배화학원 100주년을 기념하던 1998년에는 전 교직원들이 모금을 하여 수천만 원이 걷혔으나, 식당 건물을 짓는데 그쳐 100주년 기념사업을 흔적을 엿볼 수 없게 되었다.

    배화학원의 많은 이사장과 이사, 학교장님들 개개인의 인식에는 역사박물관의 필요성이 있으나 그 생각들을 끌어 모아 박물관을 세울 한 사람의 추진력이 약하다. 이사장님의 혼자만의 노력으로도 어려운 각자의 역량을 최대한 모아 멋진 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한 시기이다. 배화학원 100년에 못 이룬 꿈을 120년에는 이룰 수 있을까? 배화교육을 앞서 이끌어 가시는 이사장님과 이사님들께 '배화학당역사기념관' 건립을 소망해 본다. 

   원시인은 1991년 3월에 부임하여 올해 배화에서 24년을 보낸다. 건강과 여러 여건이 맞아 정년까지 간다 해도 배화학원 130년은 맞지 못한다. 퇴직하기까지의 큰 소망이 있다면 "배화학원역사기념관" 건립을 작으나마 돕는 일이다. 오늘 함께 배재학당을 관람한 한국교과서 전 * 주 사장님은 원시인과 친분이 두텁다. 그 분이 소장한 근대교육 및 전쟁 자료가 5만점이 넘는다. 전라도에 폐교와 오산에 창고를 얻어 보관하고 있는데 보관료만도 월 300만원 이상 든다고 하신다.

   오늘 그 중 전쟁자료 2~3만점을 임진각에 평화공원이 조성되면 전시체험 공간을 만들어 보자고 통일부 담당자와 함께 만났다. 박근혜 대통령께서 제창한 평화공원 조성에 구체적으로 민간 컨텐츠가 뒷받침되어야 사업이 성공할 수 있다. 전 사장님 혼자서는 너무나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정부의 뒷받침이 이루어진다면 통일을 향한 불꽃이 더욱 활활 타오를 것이다.

    원시인은 이 분이 소장한 근현대 교육자료가 배화학당역사박물관과 만나기를 소망한다. 역사박물관을 시작하더라도 결국 컨텐츠가 없으면 허잡한 박물관이 될 것이다. 한 자료에 수백 내지 수천만 원 이상 가는 자료들도 많다. 어디 역사 자료를 돈의 가치로 따질 수 있겠는가. 지금 서울 서촌이 개발되고 관광객 수가 월등히 늘고 있는 이즈음 배화학당역사박물관이 건립된다면 근대 교육의 뿌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광광 명소가 될 것이다.

    올해 202명 졸업시키고 150명의 신입생을 배정받았다. 이제 속속 학생수가 현저히 줄어드는 시점에서 2017년부터는 배화여중이 6학급에서 5학급으로 줄어든다. 현재 초등학교 학생수를 보면 5학급에서 4학급으로 줄어드는 것도 머지않아 볼 수 있는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인근 여학생을 수용하는 학교에 비교하여 배화여중고가 사는 길은 단연 역사인식의 중요성을 일깨울 역사박물관 건립이 시급한 실정이다. 잠시 안이한 생각으로 시간을 미루다가 골든타임을 놓치고 말 것이다.

   

 

 

 

 

 

 

 

 

 

 

'배재학당(培材學堂)’ 현판

1886년 고종(高宗, 1852~1919년) 황제가 하사한 현판. 고종은‘유용한 인재를 기르고 배우는 집’이라는 뜻으로 ‘배재학당’이란 이름을 짓고, 당시 명필이었던 정학교(鄭學喬)에게 현판을 쓰게 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두상

이승만 대통령은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학과 스텐포드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공부하는 동양인 최초 단기간 정치학 박사학위 소유자이다. 대한민국을 잘 사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건국 대통령의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다.  

배재학당 출신의 훌륭한 인재들...

 

 

 

 

 

 

배재학당(아펜젤러) 피아노: 독일 라이프치히의 블뤼트니(Bluthner)사(1853년 설립)에서 제작한 피아노로 헨리 다지 아펜젤러가 직접 가져왔다고 전한다. 배재학당 강당에서도 연주되었으며 제조 번호로 보아 1911년의 것으로 보인다. 제작 연도와 국내에 들어온 시기 등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에 들어 온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연주회용 피아노로서 가치가 있다. 2011년 등록문화재 등록.

 

헨리 게르하트 아펜젤러의 친필 일기

1896년부터 1900년경까지 쓴 아펜젤러의 친필 일기로 배재학당 우물사용과 관련하여 고종에게 올린 진정서, 수감 중이던 이승만과 주고받은 서신 등 당시 아펜젤러의 교육과 선교에 대한 고민 그리고 한국생활을 엿볼 수 있다.

토론식 수업이 가능했던 교실 수업 장면..

단아하고 정갈했던 아펜젤러의 모습..

 

배재학당 홍보영상 보기 : https://appenzeller.pcu.ac.kr/museum/mov.php?to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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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두 번째 명문사학고등학교 하로우스쿨의 박물관에 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