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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나더러 비우라고 한다(신호현 詩人)

원 시 인 2017. 1. 10. 23:38

[사는 이야기]

 

나더러 비우라고 한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세상의 진리를 들어야 한다. 지나가는 바람이 속삭이고 따뜻하게 떠 있는 태양이 속삭이는 말. 그 말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고지식하다는 말은 아는 지식이 많아서 남의 말을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을 말한다. 살면서 자신만이 옳다고 믿어 독선에 빠지면 남을 불행하게 하는 것이다. 사상의 독선에 빠지면 남을 죽이도록 미워하게 될 것이고, 정치의 독성에 빠지면 타인을 용납할 수 없어 갈라지고 싸움만 하게 된다.

   그런데 가만 귀를 기울여 보면, 한낫 어둔 골목어귀에서 우는 고양이 소리도 나에게 외치고 있다. 야옹! 냐웅! 냐우! Now! 저승사자처럼 어둠과 밝음의 경계에 서서 종일토록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외친다. 당신이 살고 있는 '지금'이 중요한 시간이라고. 나뭇가지에서 지져귀는 새 소리도 나에게 가르침을 베풀고 있다. '마음을 비우면서 사세요.' 세상의 갈등과 아귀다툼은 결국 욕심에서 비롯되니 마음을 비우라 한다.

    이렇게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힘을 에피파니(Epiphany)라고 한다. 에피파니는 '일상적인 현상에서 진리에 대한 직관을 듣는 내면의 소리'를 뜻하기도 한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어느 날 야구장 관중석에 홀로 앉아 있다가 문득 '나는 소설가가 될 것이다.'라는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 중국의 루쉰은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다가 중국 동포들이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어 처형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건강한 정신이 중요하다.'라는 내면의 소리를 들어 수술칼 대신 펜을 들어 '중국혼'이 되었다.

    소크라테스가 들었던 다이몬(daimon)적인 내면의 소리, 아인쉬타인이 들었던 우주의 비밀을 풀어내는 소리, 베에토벤이 육체의 귀는 어두워졌음에도 끊임없이 명곡을 작곡할 수 있었던 것은 자연 속에서 들려오는 내면의 소리를 악보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시(詩)란 무엇인가'라는 시의 본질을 묻는 질문에 '시(詩)는 신내림(寺)의 언어(言)'라고 말한다. 시인이 시를 쓰겠다는 의지만으로 쓰는 시는 감동이 없다.

    세상에 짧은 인생을 살면서도 훌륭한 업적을 남기는 사람들은 대부분 '내면의 소리' 즉 '신의 음성'을 들어 세상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정신이 되고. 법칙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음악이 되고 시가 되는 것이다. 세상의 소리는 우리에게 자꾸 '더 많이 가져라.', '더 높이 오르라.' '더 빛나는 것을 가져라.', '더 예쁜 것을 가져라.'고 말하지만 내면의 소리는 요즘 내게 '진실하여라.' '내려놓으라.', '마음을 비우라.'고 한다.

    지천명(知天命)을 넘기니 로또를 사지 않아도 부자가 되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높은 권력을 가지는 비결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을 내 것인 양 마구 사용하고 누리며 살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내면의 소리는 '나더러 마음을 비우라 한다.' 세상은 맛있고 입 속에서 사르르 녹는 '비프'를 선택하라지만 내면의 소리는 나에게 은밀하게 위대하게 속삭인다. '비우'라고.

 

신 호 현 詩人

[사는이야기]니더러 비우라고 한다(신호현 詩人).hwp

 

그림출처 : http://cafe.naver.com/life220/16018(안윤모 화가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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