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인세상/◈글모음◈

[인물시]청산리 대첩의 삼장군-안무 장군(詩신호현)

원 시 인 2017. 2. 27. 19:44

[인물시] 1994년 9월의 독립운동가

 

청산리 대첩의 삼장군

 

             - 안무 장군

 

 

나는 살아서 군인이었노라

빼앗긴 대한제국 독립군으로

내 나라 되찾으려 붉은 눈으로

만주벌판 산악지대를 누볐노라

 

경술국치 참을 수 없는 울분

구국항쟁에 깃발 높이 들었노라

무관학교 세워 독립군을 양성하고

대한 국민회군 사령관 되었노라

 

빼앗긴 무궁화 빼앗기는 모란

형제로 이리떼 물리쳤노라

봉오동 전투 부관으로 참여하여

독립군 최초의 승전을 거두었노라

 

홍범도 김좌진 부대 연합하여

어랑촌 완루구 고동천 전투에서

청산리 대첩 역사에 기록하였나니

나는 죽어서도 군인이었노라

 

詩 신 호 현

조선일보 : http://forum.chosun.com/bbs.message.view.screen?bbs_id=1030&message_id=1305609

======================================================================

 

https://youtu.be/Vy9UaQtDSk4

 

===============================================================

청산리 대첩의 또다른 명장

 

   안무 장군은 일명 병호(). 호는 청전(). 함경북도 경성 출신. 1899년 한국군 진위대에 들어갔다가 경성교련관양성소를 졸업하고 진위대 교련관이 되었다. 1907년 군대 해산으로 퇴직, 경성학교 체조교사로 근무하다가 1910년 국권상실로 간도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4년 북간도에서 대한국민회를 조직하고 국민회군 400여명을 무장시키고 부사령관이 되었다.

   1920년 대한독립군, 군무도독부군과 연합사령부를 구성하고 최진동()상령관의 부관으로 일제에 대항하였다. 1920년 6월 독립군 부사령관으로 봉오동전투에 참전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일제의 반격으로 그해 12월 밀산()으로 이동하였다. 1921년 2월 노령 자유시()로 이동, 국민회군을 한인보병자유대대에 소속되게 하였다. 그해 6월 자유시참변을 당하여 다시 만주로 건너갔다.

   1923년 2월의 국민대표회의에 참석하였으며, 1924년 용정()에 본거를 두고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용정영사관 경찰의 습격으로 복부에 관통상을 입고 붙잡혀, 용정 자혜병원에서 치료하였으나 죽었다.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안무 [安武]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