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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 이야기

원 시 인 2019. 1. 30. 09:13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 이야기



어느 추운 눈 내리는 겨울밤이었습니다.

불을 끄고 막 잠을 청하려고 침대에 누었는데 누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프란시스코’는 귀찮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리스도인이 찾아온 사람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었습니다. 


불편한 마음으로 잠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습니다.

문 앞에는 험상궂은 나병환자가 추워서 벌벌 떨며 서있었습니다.

나병환자의 흉측한 얼굴을 보고 섬칫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중하게 물었습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죄송하지만 몹시 추워 온 몸이 꽁꽁 얼어 죽게 생겼네요. 

몸 좀 녹이고 가게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문둥병환자는 애처롭게 간청을 했습니다.

마음으로는 당장 안된다고 거절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 차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못해 머리와 어깨에 쌓인 눈을 털어주고 

안으로 안내했습니다.

자리에 앉자 살이 썩는 고름으로 심한 악취가 코를 찔렀습니다


“어떻게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니요 벌써 사흘째 굶어 배가 등가죽에 붙었습니다.”

‘프란시스코’는 식당에서 아침식사로 준비해 둔 빵과 

우유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문둥병 환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빵과 우유를 게걸스럽게 다 먹어치웠습니다.


식사 후 몸이 좀 녹았으니 나가주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문둥병 환자는 가기는 커녕 기침을 콜록 이며 오히려 이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성도님! 지금 밖에 눈이 많이 내리고 날이 추워 도저히 가기 어려울것 같네요.

하룻밤만 좀 재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할 수 없지요. 누추하기는 하지만, 그럼 여기 침대에서 하룻밤 주무시고 가시지요.”

마지못해 승낙을 했습니다.


염치가 없는 문둥병환자에게 울화가 치밀어오는 것을 꾹 참았습니다. 

혼자 살고 있어서 침대도 일인용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침대를 문둥병환자에게 양보를 하고 할수없이 

맨바닥에 자려고 하였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문둥병 환자는 또다시 엉뚱한 제의를 해 왔습니다.

“성도님, 

제가 몸이 얼어 너무 추워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네요. 

미안하지만 성도님의 체온으로 제 몸을 좀 녹여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어처구니없는 문둥병환자의 요구에 당장 자리에 일어나 밖으로 내 쫓아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희생하신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하며

 꾹 참고 그의 요구대로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알몸으로 문둥병환자를 꼭 안고 침대에 누웠습니다.


일인용 침대라 잠자리도 불편하고 고약한 냄새까지 나는

문둥병환자와 몸을 밀착시켜 자기 체온으로 녹여주며 잠을 청했습니다.

도저히 잠을 못 이룰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꿈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꿈속에서 주님이 기쁘게 웃고 계셨습니다. 


“프란시스코야!

나는 네가 사랑하는 예수란다.

네가 나를 이렇게 극진히 대접했으니 하늘에 상이 클 것이다.”

“아 주님! 

나는 아무것도 주님께 드린 것이 없습니다.”  


꿈속에서 주님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자리에 일어났습니다. 

벌써 날이 밝고 아침이었습니다.

그러나 침대에 같이 자고 있어야할 문둥병환자는 온데간데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름냄새가 베어 있어야할 침대에는 오히려 향긋한 향기만 남아 있을 뿐

 왔다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아! 주님이셨군요.

주님이 부족한 저를 이렇게 찾아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프란시스코’는 무릎을 꿇고 엎드렸습니다.

모든 것을 깨닫고 밤에 문둥병환자에게 불친절했던 자신의 태도를 회개하며 


자신과 같은 비천한 사람을 찾아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이 기도가 바로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프란시스코’의 ‘평화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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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기도'(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 St. Francis of Assisi>

 

Prayer For Peace

 

 Lord, 
make me an instrument of your peace. 
Where there is hatred, let me sow love; 
where there is injury, pardon; 
where there is doubt, faith; 
where there is despair, hope; 
where there is darkness, light; 
where there is sadness, joy. 
O Divine Master, 
grant that I may not so much seek 
to be consoled, as to console; 
to be understood, as to understand; 
to be loved, as to love. 
For it is in giving that we receive; 
it is in pardoning that we are pardoned; 
and it is in dying 
that we are born to eternal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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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수도원의 역사를 훑다보면 두 개의 거대한 봉우리를 만난다.

하나는 ‘성 베네딕도(480~547)’이고, 또 하나는 ‘성 프란치스코(1182~1226)’다.

 

베네딕도는 서양 수도원에 주춧돌을 놓았고, 프란치스코는 무소유의 삶으로 수도원에 영적 나침반을 제시했다.

특히 성 프란치스코는 가톨릭 역사를 통틀어 신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성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이탈리아 중부 아시시에 있는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은

 ‘프란치스코’란 이름 하나만으로 세계적인 순례지이자, 여행지가 됐다.

 

중세 가톨릭교회가 정교(政敎)유착의 특권을 향유하며 총체적으로 탈복음적인 궤적을 그리고 있을 때,

1207년 청년 프란치스코는 허물어져가던 성 다미아노 성당 십자가 밑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다.

 “내 교회를 다시 지어라"

그는 이를 곧이곧대로 알아들어 맨손으로 흙과 돌을 들어 나르며 성당을 보수한다.

하지만 이 말씀은 몰락 위기에 처한 중세 교회를 위한 ‘세기적’ 명령이었다.

이를 깨달은 프란치스코는 탁발 수도회를 창설하여 위대한 개혁의 첫걸음을 내디딘다.

 

그가 표방한 것은 복음으로 돌아가 청빈, 겸손, 소박의 삶을 몸소 사는 것이었다.

이는 당시 교회가 심각하게 앓고 있던 세 가지 병폐인 부, 권력, 사치에 대한 명처방이었다.

 

그 파급력은 가히 메가톤급이었다.

힘으로 밀어붙인 무력 혁명도 아니요, 센세이셔널한 사상으로 새 시대를 연 이데올로기 혁명도 아닌,

그저 소박한 실천운동이었지만 세기를 거듭할수록 파장은 기하급수적으로 거세어져 갔다.


성 프란치스코는 ‘개혁’이라는 용어조차 사용하지 않고

교회의 모든 스펙트럼을 아우르면서 수세기에 걸쳐 일어난 쇄신의 단초를 열었다.

그리하여 그는 동료 형제들을 동지로 얻었고, 숱한 추종자들을 협력자로 얻었다.

 

 ‘제2의 예수’라 불렸을 만큼 존경 받는 성 프란치스코가 일으킨 운동의 여운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증폭되면서 중세 가톨릭을 제자리로 돌려 놓게 되었다.

 

아시시의 성 다미아노 성당에는

프란체스코의 영적인 동반자였던 클라라 수녀의 유해가 있다.

 

성녀 클라라는 아시시의 귀족 집안 출신이지만 

아버지의 반대를 뿌리치고 모든 것을 버리고 프란치스코를 따랐다.

11살 아래였던 클라라 수녀는 프란치스코에겐 친구이자, 누이이자, 함께 영성의 길을 가는 동반자이기도 했다.

  

 성당 안의 조그만 정원에는 장미가 있다. 

그러나 그 장미에는 아무리 봐도 가시는 보이지 않는다.

 

 “젊었을 때 프란치스코 성인에게도 욕정이 일어났다.

그걸 이겨내기 위해 그는 이 근처에 있는 장미덩굴 위에서 자신의 몸을 굴렸다.

 

가시가 몸에 찔리고, 피를 흘리고, 고통을 통해 그는 욕정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런데 계속 장미 가시 위에서 뒹굴자 하느님이 감동하여 장미의 가시를 없앴다."고 한다.
 

이 일화는 대단히 인간적이다.

가톨릭 역사를 통틀어 가장 사랑받고 성인으로 추앙받는 프란치스코도

욕망 앞에서 고민하고, 싸우고, 좌절하고, 다시 싸우고 하는 과정을 거듭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프란치스코가 걸었던 길은

우리에게 ‘나도 당신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 길은 당신도 걸을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짐승과 새들과도 말을 나눌 수 있었다는 청빈의 상징 성 프란치스코,

 

무소유의 정신으로 가난한 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봤던

그의 수도회는 중세 신분사회를 크게 흔들어 놓기도 했다.


 

프란치스코는 44세에 숨을 거두었다.

죽기 2년 전에 그는 동굴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몸에 오상(五傷)이 나타났다고 한다.

 

오상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몸에 난 다섯 상처다.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창으로 찔렀던 옆구리의 상처를 말한다.


새로 선출된 제266대 교황 성하께서 

즉위명으로 프란치스코를 선택하셨다.

 

사진 : https://blog.naver.com/rhkdtnskfk1/22129630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