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에서 / 윤강로
국도에서 왼쪽으로
산 밑 큰 마을
시흥이다
시흥은 부촌인가보다
겨울나무 숲에 안긴 덩실한 기와집들의 마을
집집이 대문마다 활짝 열려 있다
마을사람들은 다 피란 갔나보다
빈 집에 들어갔다
대청 마룻바닥에
흙 묻은 군화 발자국이 어지러이 찍히고
쌀뒤주 위에
백자가 단아하게 놓여 있다
고상하고 품위 있는 것들이
제일 먼저 깨지는 전쟁
사람들은 길가에 뒹구는 돌멩이가 되었다
여기서 하룻밤
쉬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