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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순수의 땅으로 날개짓하는 아이들(신호현 詩人)

원 시 인 2017. 11. 22. 02:03

[시평      [시평]순수의 땅으로 날개짓하는 아이들(신호현).hwp

 

순수의 땅으로 날개짓하는 아이들

 

- 詩人 신 호 현(배화여자중학교 국어교사)

 

    순수는 아이들의 땅이다.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의 순수를 잃어가는 것이 아닐까? 순수만큼은 어른들이 교실에 앉아 아이들에게 배워야 한다. 아이들이 아빠 엄마! 그렇게 하시면 안 돼요!”라고 외치면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아하! 내가 잘못했구나.”하고 돌아봐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 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18:2-3) 라고 말씀하셨다.

    세상에서 살면 커지려 하고 높아지려 한다. 많이 가지려 하고 쟁취하려고 한다. 그래서 싸우고 모략하고 스트레스에 상처까지 받는다. 그래서 잘못을 회개하고 낮아지고 나누려 교회를 나가고 하나님을 믿으며 다시 순수의 땅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 순수의 땅이 바로 천국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며 지치고 힘들 때 를 읽자. 시는 교회로 가지 않아도 순수의 땅을 밟는 길이다.

 

    어른이 되어서 시를 쓰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순수의 땅에서 많이 멀어졌기 때문이다. 시를 읽는 일도 쉽지 않다. 왜냐하면 쉽게 순수의 땅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서점에서 아무리 시집이 많이 출간되어도 시집 코너 앞에는 한산하다. 시인이 시집을 공짜로 주어도 잘 읽지 않는다. 시인이 적은 순수의 땅이 왠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배화여자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강경일 선생님이 지도하는 1학년 학생들의 시집 내 안에 나를 다 합쳐봐도라는 시집을 읽었다. 정말 순수의 땅에서 행복했다. 내 안에 나를 다 합쳐봐야 고작 14살인 아이들. 14년 전 우리가 월드컵의 뜨거운 열기도 대한민~!’을 외치던 때에는 천국에 있던 아이들이다. 그 아이들이 이 세상에 와서 때를 묻혀야 얼마나 묻었겠는가. 그러니 시 속에서 그대로 순수의 땅내음이 느껴진다.

 

    시험에 목숨 걸고 공부를 벼락치기 하는 14

    공부 말고는 모든 게 재미있는 14

    그래도 뭐 어때?

    아직 14살인데.

 

        - 박주이의 아직은 14의 일부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선 목숨 걸고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 하지만 공부가 재미있을 리는 없다. 순수의 아이들에겐 세상 사는데 필요한 공부보다는 자연 속에서 더 뛰어야 하고, 잠도 더 많이 자야 하는 나이 14살이다. 봄꽃이 피면 들녘으로 달려 나가야 하고, 첫눈이 내리면 추운 줄도 모르고 내달려야 하는 나이 14살이다. 그래도 뭐 어때? 아직 14살인데.

 

    처음처럼 슬쩍

    시간을 되돌리고

    가정법을 써보지만

    항생제는 잠시뿐

    바이러스가 온몸에 퍼진다.

 

        - 박주하의 실수투성이의 일부

 

    어쩌면 우리는 실수투성이. 세상을 사는데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다. 실수를 하면 누구나 가정법을 써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그런데 그 항생제는 잠시 뿐 바이러스가 온몸에 퍼지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KO, 완패다. 주하의 시를 보면 시적 비유가 생생하여 꿈틀거린다. 멋진 시인이 될 아이다.

 

    나는 뭘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뭐가 특별하지

 

        - 김규빈의 나님의 일부

 

    우리는 가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른다. 뭐가 특별한지 끊임없이 탐색기를 눌러보지만 하나님 다음으로 잘 안다는 네이버도 안 가르쳐 준다. 그래서 존재감도 없는가 싶어 답답해진다. 단짝친구와는 조잘조잘 말을 잘하다가도 남들 앞에서는 말도 제대로 못하는 나. 밀물썰물처럼 왔다갔다 밀려드는 파도. 그래도 세상을 살아내려면 님을 존중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찔리고 싶지 않다면

    제발 가시가 뻣뻣하게 서 있을 때는

    날 건드리지 마!

 

        - 최원지의 나는 고슴도치의 일부

 

    ‘가 어떤 존재인지 모르다가 14살이 되어 세상 공부를 하면 스스로 지켜내려는 가시를 빳빳하게 세운다. 여기서 가시는 자존감이다.

 

    엄마와 나는 자꾸 싸운다

    엄마와 나는 싸울 때면 자석이 된다

 

        - 이리안의 자석의 일부

 

    이는 투사의 기법이다. 시를 다른 사물에 비유하다가 이제는 아예 사물 속에 내 마음을 담아내는 기법이다. ‘는 고슴도치가 되기도 하고, 자석이 되기도 한다. 가시를 뻣뻣하게 세워 엄마랑 싸운다는 것은 독립된 자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독립된 자아가 형성되면 오빠’(김나은)도 보이고 일하는 로봇이라고’(이승화)에서처럼 아빠도 보인다.

 

    詩는 발자국이다. 삶의 기록을 남기는 발자국. 어려서는 그 발자국을 일기장에 찍지만 중학생이 되면 이젠 시를 쓸 수 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눈치 빠른 친구는 가 있지요 라고 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초등학생과 중학생 사이에는 커다란 강이 있다. 초등학생 때는 동시’, ‘동화라고 해서 아이 ()’자를 넣어서 아이들 눈에 맞게 쓴 시와 글을 읽었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오면 수필소설을 읽게 된다. 곧 문학(文學)을 배우는 것이다. 문학은 아이들 눈높이가 아니라 어른들의 눈높이’, ‘문학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어서 작품을 이해하기 어렵다.

    초등학교 때는 동시도 동화도 잘 읽던 아이가 14살 중학교 1학년이 되면서부터 책읽기를 주저하게 된다. ‘커다란 강을 넘지 못해서 그렇다. 눈높이가 달라져 책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책을 멀리하면 할수록 어른이 되어도 책을 잘 읽지 않는다. 혹자는 중학교에서 공부할 것이 많아 책 읽을 시간이 없어서또는 어른이 되어서 돈을 버느라 시간이 없어서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커다란 강을 넘지 못해서 책을 읽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시를 읽고 시를 외우면 그 을 넘는데 도움을 준다. 다시 말하면 문학에는 비유상징이 있고 더 나아가서는 반어’, ‘역설’, ‘풍자가 있는데 이 강들을 넘는데 시()만큼 좋은 도구가 없다. 그런데 시를 읽지 않고 쓰지 않으면 문학을 이해할 수 없고 문학을 이해하지 않으면 책을 멀리하게 마련이다. 어쩌다 책을 보더라도 교양서적이나 만화와 같이 쉽게 읽히는 책을 읽게 된다.

    우리가 시를 읽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순수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는 동시에 문학의 가치로 나아가게 하는 힘을 가지는 것이다. 간혹 어머니들께서 자녀들의 국어 공부를 염려하면서 국어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질문을 하면 나는 서슴없이 시를 읽고 시를 외우게 하세요.’라고 답한다. 프랑스에서는 시를 100편 외우게 하고 바칼로레아라고 해서 글쓰기를 통해서 그 사람의 수학 능력을 평가한다고 한다. 시를 읽고 시를 외우는 일이 어찌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번 내 안에 나를 다 합쳐봐도라는 시집의 출간은 14살의 영혼들에게 순수의 땅으로 발을 들여 놓게 하는 거룩하고 신성한 세례와도 같은 것이다. 어린아이 같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시를 알지 못하고는 문학의 가치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합동시를 포함하여 45편의 날개짓은 비록 날개 깃을 펼치는 작은 발돋움이겠지만 이런 날개짓을 통해 푸른 하늘을 날고 천둥 번개 치는 폭풍의 하늘도 거침없이 날기를 기대한다.

    이 작은 날개짓을 통해 14살의 아이들에게 순수의 땅문학의 가치를 선사한 강경일 선생님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또한 시적 자아의 틀을 넓혀준 창작과 비평의 박준 시인의 지도에 감사를 드린다. 여기에 뽑혀 실린 예비 시인들을 축하드리며, 비록 여기에는 실리지 못한 나머지 학생들의 보석 같은 시가 반짝반짝 자라서 멋진 시가 되고 시인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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