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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이천시의 발전에 관한 제안

원 시 인 2018. 12. 10. 14:50

[아이디어]

 

이천시 발전에 관한 제안

 

 

1. 들어가는 말

 

 

 

   이천은 태어나서 자란 고향이다. 이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이천을 평생 그리워하면서 타지에서 서울에서 보냈다. 눈을 감으면 설봉산의 기운이 전하여 평온하고 눈을 뜨면 구만리 뜰의 누런 곡식들이 펼쳐진다. 아직 원시림 같은 원적산이 있고, 이야기를 머금고 웃고 있는 효향산이 있다. 조용한 용 한 마리 꿈꾸고 있는 해룡산, 바위산 도드람산도 있다.

   그 속에 이천 시민 22만2000명(2018.7 기준)이 살고 있다. 저마다 행복의 밥솥에 불을 지피며 오송도손 살고 있다. 이런 이천이 더욱 발전해서 경기도의 자랑스런 도시로 거듭나기를 소망한다. 이천에 많은 장단점이 많겠지만 그래도 아쉬운 것은 관광 인프라 구축이 저조하다는 것이다. 이천 시민이 자랑스러워 하고 타 시도에서 찾아올 만한 특별한 관광 자원이 없어 기초에 깔린 작은 관광요소들이 서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이천이 주변의 여느 도시보다 경제적으로 풍성해지고 삶의 질이 좋아질 수 있을까. 어쩌면 평생을 공무원으로 보내면서 가진 고민이라 할 수 있다. 서울과 가까이 있으면서 서울 사람들이 찾아오고 즐기며 쉬었다 갈 수 있는 관광 인프라(구조물)를 구축할 수 있을까. 

 

 

2. 이천의 특징

 
   가. 이천의 장점

   이천은 영동고속도로, 제2영동고속도로, 3번국도 등 주요 도로가 관통하기에 사통발달 교통의 요새이다. 서울에서 1시간 가량 떨어졌고, 동부, 서부, 남부로 연결되어 있어 어디에서 접근할 수 있는 도시이다. 그래서 각종 물류창고가 많이 들어섰고, 맥주, 소주 공장, 하이닉스와 같은 크고 작은 공장들이 많다. 

   지형으로는 높은 산이나 계곡의 발달보다는 평지가 많아 농사짓기에 적합하며, 토질이 좋고 배수가 잘되어 가뭄이 들어도 땅이 마르지 않고 홍수가 나도 물이 넘치지 않아 이천쌀이 좋다. 쌀에서 기름기가 흘러 이천쌀은 예로부터 임금님 수랏상에 오르던 명품 쌀이다. 물이 맑고 햇빛이 고르게 비치며, 땅의 정기가 좋아 쌀이 아니더라도 장호원 복숭아하면 그 또한 일품이다. 

   관광으로는 미란다관광호텔과 설봉공원이 유명하다. 또한 테르메덴 물놀이와 덕평공룡수목원, 청암관광농원, 별빛정원 우주, 사기막골 도예촌, 스파플러스 등이 있다.  

   축제로는 산수유축제, 이천쌀문화축제, 도자기축제, 장호원복숭아축제가 있고, 학생들의 체험학습을 유도하기 위한 농촌마을체험, 도자기체험, 자연나라, 인온아트센터, 임실치즈마을, 와우목장 등이 있다.  

   역사 유적으로는 서희 동상과 서희테마파크,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청강만화역사박물관 등이 있다. 
   대학으로는 청강문화산업대학교, 한국관광대학교, 극동대학교, 성서침례대학원대학교 등이 있다.

 

   나. 이천의 단점

   1) 많은 관광 인프라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이는 이천 사람들이 가까이 즐길 수 있는 요소는 있지만, 서울 사람들을 끌어내리기엔 역부족이다. 다시말하면, 산수유축제나 이천쌀문화축제, 도자기축제는 그 행사만으로도 관광 요소가 되겠지만, 평소 미란다온천욕이나 서희테마파크로 서울 관광객을 끌어내리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2) 역사유적이 갖는 스토리텔링이 부족하다. 이천은 효향산의 전설을 잇는 이야기가 있다. 다른 여느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스토리텔리이 부족하다. 다시말하면 관광 가이드가 입에 거품을 물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관광객은 그것이 관광의 소득으로 오랫동안 가슴에 남게 될 것이다.

   3)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관광요소가 부족하다. 이천에 '그곳은 꼭 가보고 싶다.'든가, 죽기 전에 가보아야 할 10대 명소가 될 만한 것을 창조할 필요가 있다. 이런 것 하나면 다른 관광요소를 더불어 살아나고 자동으로 연결될 것이다. 한 번 온 관광객을 1박 2일 또는 2박 3일 묶어줄 신선한 아이템이 필요하다. 

 

 

3. 서울 근교 도시의 특징

 
   가. 볼거리 많은 양평

   양평은 평지보다는 산이 많아서 자연적 환경으로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남한강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산음자연휴양림, 설매재자연휴양림, 중미산자연휴양림, 어비계곡, 사나사계곡, 중원계곡, 중원폭포, 석산계곡, 용문사, 상원사, 용문산, 중미산, 중원산, 중원폭포, 양평치유의 숲, 들꽃수목원, 두메 향기, 양떼목장, 양평레일바이크, 황순원소나기마을, 뚱딴지마을, 기흥성뮤지엄, 양평곤충박물관, 민물고기생태박물관, 양수리환경생태공원, 추억의 청춘뮤지엄, 용문산관광단지, 중미산천문대, 양평보릿고개마을, 외갓집체험마을, 큰삼촌농촌체험마을, 여물리체험마을, 수미마을체험, 모꼬지체험마을, 해바라기마을, 광탄리유원지, 양평임실치즈마을, 잔아문학박물관 등 너무나 많다. 다 적을수가 없다. 양평 인구 11만 6천명으로 이천에 절반 가량인데 볼거리는 두 배가 넘는다. 그러니 서울의 관광객은 대부분 양평으로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나. 문화예술의 산실 안성

   안성은 인구가 18만 3천명으로 농협안성팜랜드, 고삼호수, 금광호수, 칠장사, 청룡사, 서일농원, 안성맞춤랜드, 안성맞춤박물관, 안성맞춤가족공원, 안성허브마을, 풍산개마을, 미리내마을, 안성목장, 죽주산성, 3.1운동기념관, 낙원역사공원, 금다래산머루자연체험학교, 안성천문대, 남사당바우덕이축제, 안성팜랜드호밀밭축제, 안성빙어축제, 포도박물관, 이경순소리박물관, 천문과학관, 박두진문학관, 조병화문학관, 희재미술관, 도깨비 촬영지, 마의 촬영지, 홍길동 촬영지,  등 안성도 많은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다. 서울에서 1시간 거리이고 경부고속도로로 이어져 있다.

   다. 새로운 광광 요소를 개발하는 포천, 파주

   포천 파주는 서울 북부지역으로 이천과는 경쟁 상대가 아니라 여기지만, 최근 서울 북부에 새로운 관광산업이 뜨고 있어 양평 버금가는 자원들을 개발하고 있다. 역시 서울에서 1시간 남짓의 거리이다. 멋진 포천아트밸리 한번 가보라. 관관지 개발의 샘플이다. 허브아일랜드, 산정호수, 평강랜드, 어메이징파크, 비둘기낭폭포, 제일유황온천, 전통술박물관, 아프리카예술박물관, 포천한탄강하늘다리, 운악산자연휴양림, 백운계곡, 지장산계곡, 스프링폴온천, 우둠지, 불빛동화축제, 수목원프로방스, 천문과학관, 국망봉 자연휴양림, 천보산자영휴양림, 울미연꽃마을, 동장군축제, 상아골계곡캠핑장 등 많다. 여기도 다 적는 것이 시간낭비다. 모두가 사람이 그리운가보다. 사람들이 찾아와 놀고가기를 바라며 만든 재밌는 볼거리들이다.

 

 

   라. 역사유적을 보존 발굴하는 강화

   강화는 우리 이천과는 비교가 안 된다. 바다로 둘러싼 자연환경은 볼거리라기보다는 느낄거리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막해변, 보문사, 옥토끼우주센터, 석모도, 전등사, 강화풍물시장, 강화평화전망대, 마니산, 민머루해수욕장, 석모도자연휴양림, 강화역사박물관, 볼음도, 교동도, 강화초지진, 강화고려궁지, 강화자연사박물관, 강화체험아기동물원, 갑곶돈대, 강화고인돌유적, 소창체험관, 강화삼랑성, 무화과족욕체험관, 분오리돈대, 강화아르미애월드, 강화전쟁박물관, 외포항, 마니산참성단, 연산국유배지, 사미지자연놀이체험관, 강화고인돌광장, 강화성박물관, 강화화문석문화관, 강화빙어송어축제, 해넘이마을 등 여기도 매우 많다. 사람은 물(양수)에서 나서 딱딱한 도시에서 살기에 언제나 물(바다)을 그리워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강화는 이천과는 게임이 안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관광으로는 경쟁상대가 된다. 


 

4. 이천 발전을 위한 제안

 

 

   가. 이천의 상징을 개발하라

         이천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도자기'를 떠올린다. 그러다보니 여기저기 도다기 상징물이 많다. '이천역사'도 도자기를 상징한 듯한데 뭔가 아쉽다. 이천의 상징물의 개념이 부족하고 상징 인물, 상징물 등 다양한 요소가 필요하다.

 
   나. 이천의 스토리를 개발하라

         효향산에 얽힌 스토리를 관광요소로 개발하라. 일명 '불로초 로드'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오천교 - 이천교 - 억억다리 - 구만리뜰 - 효향산으로 잇는 뭔가 재밌는 요소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 이천의 예술문화를 개발하라

         이천에 폐교되는 학교를 이천 출신들의 예술박물관, 문학박물관으로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으로 제공해 주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예술가들은 가난해서 스스로 박물관, 기념관을 만들 수 없다. 자기만의 창작 공간을 갖기 어렵다. 작은 부스를 만들어서 작품을 보관하고 창작실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준다. 기존 시설을 이용하여 돈을 적게 들이고 큰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천 대포동 출신 홍성훈 아동문학가는 젊어서 동아일보 기자로 있다가 현재 아동문학가로 문화예술가로 서울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천에 폐교 교실 1/4 크기를 작가방으로 꾸며 내주면, 개인 작품들도 모으고 창작공간도 줄 수 있다. '아동문학가 홍성훈의 방'을 만들어 컴퓨터 한 대만 넣어주면 작가들에게 대단한 긍지를 심어줄 수 있다. 물론 거기 모인 작품들은 사후 기증을 약속 받고 공동 관리하는 것으로 한다. 이렇게 되면 이천출신 작가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상호 교류를 통해 이천 문화예술의 활성화를 가져올 수 있다. 

 

   . 새로운 관광 구조물을 만들어라.

      1) 파리 에펠탑을 만들어라.

 

        예를 드는 것이지만, 파리의 에펠탑과 똑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만들면 서울 관광객은 물론, 전국 관광객을 넘어 일본, 중국 관광객도 유치할 수 있다. 파리가 에펠탑으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천에 현재 시장은 '에펠탑'을, 다음 시장은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을, 그 다음은 영국의 '타워브리지'를 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천이 복하천을 중심으로 마장면 - 호법면 - 대월면 - 이천시내 - 백사면 - 이포강으로 잇는 찬란한 문화도시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물론 그 나라 광광관리소와 협약을 해서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제주도의 '소인국 테마파크'처럼 만들어 나가면 어렵지만 아주 쉬운, 아주 놀라운 관광 도시가 될 것이 자명하다.

      2) 따로 한국 전통의 디자인을 공모해도 좋다.

         에펠탑을 똑같이 만드는 것에 물만이라면 따로 디자인을 공모해서 만들어 나가도 좋겠다. 하지만 에펠탑을 만들어도 좋다는 승인을 받으면 '에펠탑의 명성'까지 같이 가져와 아주 빠르고 쉽게 이천의 이름이 세계화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어렵다면 따로 한국적인 것으로 디자인 공모해도 좋다. 다만 홍보나 세계적 유명세를 타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이다.

      3) 땅과 비용을 걱정하지 말라.

         어떤 일을 계획할 때 경정예산을 걱정하면 일을 추진할 수 없다. 땅은 공모해서 기증을 받으면 되고 비용 역시 기부를 받는 것이다. 다만 그 건축물 안내소에 기증자 명단을 새기고 1억 이상 기증한 사람은 동판에 사진까지 넣어준다면 해결될 수 있다. 시청에서는 TF팀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홍보만 잘하고 추진하면 된다. 처음 시도할 때는 막막하지만 처음 건축물을 잘 만들면 두 번째, 세 번째 건축물은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러기에 처음 아이템을 시도한 시장의 명성을 길이 남게 될 것이다.

 

5. 외국의 사례

 

   가. 라스베가스에는 다 있다

 

 

         이 사진은 라스베가스 벨라지오호텔에 에펠탑이다. 파리에 것보다는 약간 작지만 똑같은 모형이고. 이외에도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이집트의 피라미드, 파리의 개성문 등 다양한 건축물들이 있다. 그러니 라스베가스에는 전 세계의 도시가 모여 있습니다.

 

 

 

 

  . 역사 유적이 된 '불법 구조물'

       사바토 사이먼 로디아(Sabato Simon Rodia·1879~1965)의 삶은 초라했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열다섯 살에 형과 함께 탄광 인부로 미국에 이민 왔다가 사고(事故)로 형을 잃었다. 결혼했지만 이혼하고 혼자가 됐다. 1920년, 로스앤젤레스 남쪽의 빈민촌이던 와츠에 손바닥만 한 땅을 사서 정착했을 때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술주정뱅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뭔가 큰 것'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로디아는 1921년부터 54년까지 33년 동안 땅을 다지고, 철근을 감아올리고, 콘크리트를 바르고, 그 위에 타일 파편, 도자기 조각, 먹고 남은 음료수 병, 깨진 거울, 조개껍데기 등 온갖 잡동사니를 빽빽하게 붙여 탑을 쌓았다. 예술은 물론 기초 교육조차 받은 적이 없는 그는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모양을 만들어 가며 철근을 올렸다. 변변한 장비도 없어서 수 ㎞를 걸어나가 철로를 이용해 철근을 구부렸다고 한다. 그렇게 만든 크고 작은 탑과 조각 17기가 연결되어 있는데, 기반이 고작 60㎝ 깊이인데도 내구성이 뛰어나 건축 공학의 연구 대상이 되기도 했다.
        '와츠의 탑'이라고 불리게 된 이 탑은 현재 미국의 국가 역사 유적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그러나 로디아가 탑을 쌓던 당시에는 그저 '불법구조물'일 뿐이었다. 외로움에 지친 그는 이웃에게 집터를 헐값에 넘기고 동네를 떠난 뒤 죽을 때까지 한 번도 되돌아오지 않았다.
       철거 위기에 놓였던 '와츠의 탑'을 살린 건 지역 주민들이었다. 마침내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로디아는 탑의 이모저모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기립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그 몇 년 뒤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단 한 번이라도 박수를 받아봐서 정말 다행이다.(출처: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23&aid=0003415322&sid1=001)

 

6. 나가는 말

 

    누구나 처음 어떤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단기간에 성과를 낸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다'라는 격언은 이럴 때 쓰라는 말이다. 누군가 시작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장 4년 임기 안에 이것 하나만은 만들어 보자.'라는 각오와 다짐이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집트의 문명이, 마추픽추의 유적이 그렇게 시작되었을 것이다. 문화유적은 곧 생존의 결과다. 에펠이 처음 에펠탑을 기획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딱딱한 철재로 도시 중앙에 만든다고 비난의 경지를 넘어 '미친놈'이라 했다. 에펠이 '철재'를 택한 것은 '천재'였지 않았을까?

   내 고향 경기도 이천에 에펠탑이 들어선다면,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바보들은 비난일색으로 도배할 것이다. '할짓이 없어 에펠탑을 만들어!'라고. 하지만 천재가 아니면 천재를 따라하는 모방으로도 충분히 새 세상을 열어갈 수 있다. 그러나 모방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천재의 비난을 감당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아무나 이순신이 되고, 세종대왕이 되고, 워싱턴, 스티브잡스가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