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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평]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아서-박예상 시인의 [초록빛 쉼터]

원 시 인 2022. 4. 20. 10:27

[시집평]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아서

 

                          - 박예상 시인의 [초록빛 쉼터]

 

 

   하늘처럼 크고 굳세셨던 아버지가 하늘나라 가신지 수 년이 흘렀다. 하늘을 올려다 보면 어른어른 흘러가는 아버지의 지긋한 웃음이 보인다. 일제 때 태어나시어 6.25 전쟁에 참가하여 유공자가 되셨던 아버지다. 힘든 삶의 여정에서 말씀을 많이 하지 않고 언제나 속으로 인내하며 칭찬해 주셨던 아버지. 아들! 네가 말하니 그리 할게. 아들! 네가 하나님 믿으라니 교회에 나갈게. 그리고는 웃으시며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박예상 시인의 시집 [초록빛 쉼터]를 받아든 오늘 따라 더욱 그립다.

   죽음은 정말 잔인한 그리움이다. 한 번 떠나면 타임머신도 탈 수 없는가 보다. 뭐 그리 하늘나라가 좋다고 다들 한 번 가시면 안 내려 오시는가. 나도 조만간 그 거대한 호밀밭 속으로 들어가봐야겠다. 어쩌면 그 속에서 모두 모여 빈대떡을 부치며 잔치를 벌이고 있을 게다. '이봐요 오늘은 누가 올라왔대요. 경사로다! 경사로다.' 거기에 가면 할아버지 할머니도 계시고 아버지 어머니도 계실 것이다.  

  박예상 시인의 눈은 세상 그리움을 퍼올리는 샘터다. 초록이 깊고 따스한 빛이 흘러나온다. 한국 대경문학에서 몇 번 뵈었는데 그냥 따스한 아버지 같았다. 몇 마디 인사를 건네지 않아도 서로 믿어주는 눈빛을 읽었다. 아호는 '청솔'이다. 푸르게 푸르게 하늘로 자라오르는 소나무를 연상케 하는 이미지다. 천주교 신자로 하나님을 믿는 분이다. 어려서 대전에서 좀 떨어진 시골에서 자랐다. 여름이면 피라미도 잡고, 겨울이면 연도 날렸다. 시골적 정서로 자란 분이 서울 연세대학교를 다니고 농협에서 근무를 했다. 

   어려서 시골적 정서를 가진 사람은 다람쥐, 고양이, 강아지를 대하는 눈빛으로 사람들을 대한다. 따스한 눈빛이다. 사시사철 다르게 피는 산천은 그대로가 정원이었고 정원에서 '쉼터'의 힘을 얻고 일에 대한 관찰력과 열정으로 즐겁게 일하게 한다. 창의적으로 일하게 한다. 부지런히 일하게 한다. 박 시인도 조용하고 따뜻하게 창의적으로 부지런히 일했을 것이다. 시인의 눈빛에서 느껴지기도 하지만 시를 읽으면서 그리 느꼈다. 퇴직을 하고 누구나 '쉼터' 하나 꿈꾸게 된다. 아무도 터치 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에서 조용히 쉬고 싶다. 박 시인은 그러한 쉼터를 이번에 두 개 가졌다. 지난 <한 줄기 초록바람>이 그러했고, 이번 <초록빛 쉼터>또한 그러하다. 

   맨 앞에 실린 작품 '산의 눈물'을 보면, 나머지 작품은 안 봐도 명약관화(明若觀火)다. '산은 / 온갖 시련 타고 넘은 / 아버지의 가슴을 닮아 // 결코 아픔 꺼내지 않기에 / 그 울음 들을 수 없고 / 그 눈물 볼 수 없다 // 누가 / 산의 눈물 본 적 있는가 // 오직 어느 날 문득 / 비바람 세차게 썯는 밤에야 // 혹여 들킬세라 / 천둥 뒤에 숨어서 소리 토하고 / 폭우 속에 숨어서 눈물 흘릴 뿐'('산의 눈물' 전문)이다.

   시는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아버지는 감추고 산의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다. 산은 시련을 타고 넘지 않는다. 아버지가 타고 넘은 시련을 산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산은 아픔을 느낄 수 없기에 울지도 않고 눈물도 없다. 산이 울지 않듯 아버지의 눈물을 본적이 없다는 말이다. 어쩌다 한 번 아버지가 혹여 들킬세라 조용히 울고 있는 보습을 보았을 때 시인은 아버지의 울음소리를 천둥소리로 들었을 것이고, 눈물은 폭우로 보았을 것이다. 

   시인이 본 아버지의 모습이지만 어쩌면 이미 아버지가 된 시인의 모습일 수도 있다. 아버지의 모습이 내게로 전이가 되고 체득되었을 때 아버지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다. 시인도 아버지처럼 좀처럼 울지 않았을 것이고, 자식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인내하고 견디면서 살아왔을 것이다. 이런 시인의 체득된 개별적 체험이 모든 아버지들에게 일반화 되었을 때 시는 공감을 불러오는 것이다. 돌아보면 필자의 아버지도 그리 살아오셨다. 어쩌면 필자도 시인처럼 아버지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시 더 한 편을 살펴보자. '잠든 발목 새벽이 낚아채면 / 시계바늘 가리키는 길 가야만 하고 / 고운 틀 미운 틀 속 땀 흘리고 나면 / 빛바랜 땅거미 등에 지고서 / 또 다시 상자에 갇히는 나날 // 밤하늘 초승달이 / 틈 속을 상자 속을 헤매던 발길 / 실눈으로 안타까이 내려 보는데 / 쌓이고 찌든 목마름 / 한 잔 커피로 녹일 수 없어 // 그래 그래, 오늘 밤엔 차라리 / 한 마리 새가 되어 / 쇠사슬로 붙어 있는 이름도 지닌 것도 / 부서지는 파도 속에 던져 버리고 / 초록바람 손잡고 맘껏 나르는 // 훨훨 탈출을 꿈꾸려 한다'('탈출을 꿈꾸다' 전문)

   아버지는 그랬다. 직장에서 지친 발걸음으로 돌아오시면 쓰러지듯 잠들고 새벽이 열리면 시간에 맞춰 출근하셨다. 방문을 여시고, 대문을 박차고 나가시는데 아버지의 여운은 문 속으로 빨려들어가 갇혔다. 시간이 지나면 대문속에 갇혔던 아버지가 탈출을 하듯 나오셨고, 그림자 같던 아버지 형상이 방문을 열고 다가오셔서는 아버지가 되셨다. 아버지는 '힘들다, 짜증난다, 죽겠다'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 그 세 단어는 아버지 사전에 없다. 그래서 나도 그 세 마디는 쓰지 않는다. 그냥 입 속에 아니 생각 속에 가두고는 견디는 말이다. 

   아버지는 아마 꿈꾸셨을 것이다. 한 마리 새가 되고 싶다고. 아버지를 묶고 있는 자식이라는 이름, 가정이라는 이름, 책임이라는 이름의 모든 것을 출렁이는 파도 속에 던져버리고 아버지가 꿈꾸던 <초록빛 쉼터>로 탈출을 꿈꾸셨을 것이다. 유난히 초록색을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초록빛 봄을 깨우는 초록바람을 타고 날으셨을 것이다. 인생의 한 번은 탈출하고픈 욕망을 꿈꾼다. 그러나 어디 탈출이 그리 쉬운가. 감옥에 갇히면 탈옥은 진정 꿈일 뿐이다. 늙어서 병에 들면 완쾌되기 힘들어 그 또한 꿈이다. 

   새처럼 날고 싶어하셨고, 바람처럼 일상을 탈출하고 싶었던 아버지는 당신 몸을 감싸는 상자에 갇혀 탈출을 하셨다. 누워서도 말없이 자식들의 날개를 달고 붕붕 하늘을 날아다니셨던 아버지는 더 이상 일상에 갇히지 않았다. 아버지가 그토록 꿈꾸던 <초록빛 쉼터>로 가셨나 보다. 그 힘드셨던 일상을 탈출하시고 남겨진 여운에는 환한 웃음만 남았다. 남들은 모두 탈출이 두렵다는데 그토록 오래 꿈꾸셨던 아버지는 아주 편안히 탈출하셨다. 우리가 꿈꿨던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 우리에겐 꿈이었는데 아버지에겐 현실이었다.

   박 시인이 꿈꾸는 초록빛 쉼터는 '다정한 가슴들 / 모두가 꽃이 되는 보릿고개 쉼터'('보릿고개 쉼터' 부분)이다. 박 시인은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을 넘어서 부자가 되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6.25의 전쟁을 넘어서 평화의 쉼터를 마음에 새겼을 것이다. 갈등과 분열을 넘어선 언덕에 화합하고 서로 부등켜 안는 화해를 꿈꿨을 것이다. 그곳은 '가쁜 숨 몰아쉬며 / 올라선 이 자리 / 젊은 날 바라보던 정상은 아니지만 // 내려다보면 멀기도 하고 / 흰 구름도 쉬었다 가는 / 구름 능선인데'('구름 능선에서' 부분)  

   박 시인이 꿈꾸는 탈출 공간은 유형의 공간이든, 무형의 공간이든 상관 없다. 현실의 공간이든, 이상의 공간이든 상관 없다. 탈출은 자유의 공간이며 꿈의 공간이다. 박 시인에겐 일상에서 시인이 되는 길이고, 의미 없는 삶에서 의미 깊은 삶으로의 도약이다. 수상이 없는 공간에서 수상의 길로 나아감이요. 시집 없음에서 시집 출간의 공간이다. 무명의 시인에서 유명 시인으로의 도약이니 박 시인이 추구하는 탈출의 꿈은 우리가 축복하며 함께 가야 할 꿈이다. 그곳에 영광이 있고, 자유가 있고, 의미가 있고, 복이 있으며, 어쩌면 먼저 가 계신 '잃어버린 아버지'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