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인세상/◈글모음◈

[원시인의 교육 樂書]겨울에 따뜻한 나비 공동체

원 시 인 2022. 12. 2. 06:03

[원시인의 교육 樂書]  에듀프레스에서 보기  원시인이 섬기는 잠실교회

 

겨울에 따뜻한 나비 공동체

 

 

    11월 말 김장김치도 담갔을 즈음에 갑자기 한반도가 얼어붙었다. 낮에도 추운데 밤 길거리엔 영하 10도를 넘나든다. 김장 김치를 담갔다고 겨울 준비가 끝난 것은 아니다. 겨울이 오면 외로운 사람들은 더욱 외로워지고 슬픈 사람들은 더욱 슬퍼진다. 우리 인생에도 겨울이 오면 얼마나 춥고 얼마나 아프고 얼마나 배고프겠는가.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우리내 동시대인으로서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살면 정말 인생을 잘 사는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 진로상담을 하면서 '왜 사는가', '왜 공부하는가', '왜 대학에 가야 하는가'에 대한 자아정체성을 찾아가면, 다음은 끊임 없이 물음표로 다가오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가르쳐 준다. 우리 인생에 육하원칙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에 대한 길을 찾아가는 것이 철학적 진로이다. 그 중에서 '왜'와 '어떻게'는 고추잠자리 가을 하늘을 맴돌듯 매일매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지난주에는 중1 자유학기의 아이들에게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을 읽혔다. 교직 생활 30년 중 대략 20년은 중학교 아이들에게 읽힌 것이다. 한 마리 애벌레가 애벌레 기둥에서 경쟁하다가 고치 속에 들어가 죽은 듯이 인고의 세월을 견디고 나면 날개를 달고 나비가 된다는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우리 인생의 진리를 깨우치는 책이다. 더구나 중학교 1학년 비로소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한 번 뿐인 소중한 인생을 어떻게 살까를 고민하는 아이들에게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우치는 아주 좋은 책이다. 그 책을 가르치면서 우리나라의 건국 정신이며, 교육이념(공부의 이유)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을 가르친다.

    수 년 전에 필자의 수업을 들은 학생 중에 비로소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달았다며 어느 경제신문(제자의 편지)에 편지글을 보내 공부의 이유를 찾아 열심히 공부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널리 이로운 사람'이 되겠다는 편지를 받았다. 그 학생은 쌍둥이였는데 외고를 거쳐 S대에 들어갔고, 다른 아이는 일반고를 거쳐 S대에 들어갔으니 대단한 아이들이다. 학창시절에 글쓰기 대회에 졸졸 따라다니며 수상하더니 교육의 좋은 결과를 확인하는 것 같아 마음이 뿌듯했다. 더구나 '홍익인간'의 정신을 실천하겠다니 얼마나 기대가 되는지 교육의 보람을 느끼게 했다.

    밤 9시를 넘어 문정 로데오거리 끝자락에서 버스를 타려는데 옷깃을 뚫고 들어오는 바람은 겨울보다 차가운데 대학생 청년들 10여 명이 천막을 하나 쳐놓고 군고구마를 팔고 있었다. 찬바람에 실려오는 군고구마 냄새가 어찌나 구수한지 발길에 끌려 다가가니 '탈북민을 위한 사랑을 싣고구마'라고 되어 있다. "왜 고구마를 팔고 있느냐?"고 물으니 "탈북민들이 추운 겨울을 맞아 살기 어려워 성금을 전달하려고 한다."며 하얗게 웃었다. 코로나 상황이었던 작년에도 470여만 원을 모아 전달했단다. 자신의 추위와 희생을 통해 탈북민들이 따뜻해지고 평안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실천하는 젊은이들을 보니 대한민국의 희망을 보는 것 같다.

    천막 위에는 OO교회라고 적혀 있었다. 하이얀 천막 안에서 젊은이들이 발을 동동 구르니 고구마를 안 사줄 수 있겠는가. 노오란 종이를 내밀어 고구마 두 봉지를 사고 거스름돈은 그냥 성금에 보태라 하고 돌아서는데 찬바람은 어디에 갔는지 등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버스를 탔는데 버스 안에 군고구마 냄새가 금새 번졌다. 봉투에는 '달달 촉촉 군고구마'라고 쓰여 있었다. 두 봉투 중 하나를 버스 기사님께 드리며 "방금 샀으니 출출할 때 드시라." 했다. 버스 기사님도 하얗게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지난 코로나로 OO교회를 비롯 전국의 교회들이 바이러스 온상인 양 얼마나 언론에서 호도했는가. 그로 인해 문닫은 교회들이 1만여 개 정도 되고 떨어져 나간 성도들이 3분의 1 정도 된다니 교회들이 얼마나 힘들었는가. 그럼에도 OO교회는 재소자 자녀, 미혼모 가정, 탈북민 교회, 다문화 가정 아이들, 쪽방촌 사역, 해외 선교사님들과 국내외 여러 어려운 교회들, 군복무 중인 자녀들, 지역사회를 섬기는 사랑의 김치, 라면, 떡국떡, 시장에서 사역하는 환경미화원, 폐지수집 어르신, 아파트 경비원 섬김 사역, 군고구마 수익금으로 탈북민 섬기는 사역, 따뜻한 밥상, 사랑의 연탄, 다문화 이주여성 생계비 지원과 소상공인 지원 사역를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 오고 있으니 '따뜻한 나비 공동체'가 아닌가.

 

    애벌레는 기어다니며, 나뭇잎을 갉아먹으며, 지나간 자리에 똥만 남기지만 나비는 날아다니며, 꿀을 빨고, 지나간 자리에 꽃가루(花粉)가 남겨져 많은 꽃들이 열매를 맺도록 돕는 일생을 사는 것이다. 일생을 살면서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일은 가장 쉬운 삶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에서 개체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행위로서 본능을 강조하지만 대한민국의 건국이념, 교육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기독교 정신이야말로 애벌레를 '따뜻한 나비 공동체'로 거듭 태어나게 하는 '어떻게 살까'에 대한 해답이 아닐까.

 

[원시인의 교육 樂書]겨울에 따뜻한 나비 공동체(신호현 시인).hwpx
2.51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