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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시]일본으로 돌아가라-김선갑 애국지사

원 시 인 2023. 5. 12. 17:22

[인물시]

 

일본으로 돌아가라

   

       - 김선갑 애국지사

 

평화로운 조선땅에

외세의 침략으로 들어와

내선일체 어찌 거짓이더냐

너희는 일본으로 돌아가라

 

조선 관문 부산에 살아

조선 빼앗고 만주 침략으로

기세등등 조선학생 차별하니

용서할 수 없어 일어섰도다

 

너희 일본엔 정의 없더냐

부당함에 일어서지 않더냐

일본 앞에 옥고 치러 죽어야

조선의 혼이 살아 독립하리라

 

부산 학생들아 일어서라

대한제국 독립으로 가자

거짓 위선으로 목숨 빼앗는

너희는 흔들리는 땅에 서리라

 

詩 원 시 인

사진: https://blog.naver.com/sk510328/22302830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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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선갑()[1921~1942]은 1921년 9월 29일 경상남도 창원군 천가면 대항리 200번지[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항동 200번지]에서 태어났다. 1937년 부산제2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부산제2상업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0년 11월 23일 부산 공설 운동장[현 구덕 운동장]에서 열린 제2회 경상남도 학도 전력 증강 국방 경기 대회에 참가하였다. 이날 일본인 심판들은 일본인 학교인 부산중학교를 우승시키려고 입장 절차부터 경기 내용에 이르기까지 편파적으로 진행하였다. 이 대회의 심판장인 노다이[] 대좌가 이런 부당한 경기 진행을 총지휘하여, 결국 동래중학교[현 동래고등학교]에 돌아가야 할 우승을 부산중학교가 차지하게 되었다.

부산제2상업학교와 동래중학교 학생들은 이에 항의하여 폐회식 참여를 거부하였으나, 학교 당국의 강력한 권유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학생들이 폐회식에서 대회의 부당성을 항의하고 「아리랑」 등 민요를 부르며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기에 이르자, 폐회식장은 일본인에 대한 총공격장이 되었다. 이때 김선갑은 1,000여 명의 학생들과 함께 운동장 입구에서 다시 집결하여 시가행진을 하여 영주동에 있는 노다이의 관사를 공격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일본 헌병들이 귀가하는 학생 200여 명을 체포하였다. 김선갑은 이 사건의 주도자로 지목된 11명 가운데 한 명으로 검거되었다. 1941년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8월형을 선고 받고, 1941년 8월 25일 대구복심법원에 항소하였으나 마찬가지로 징역 8월형을 선고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42년 3월 하순에 출옥하였지만, 조사 과정에서 일본 경찰에 받았던 잔학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출옥한 지 2주 만인 1942년 4월 5일에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3년에 건국 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선갑 [金銑甲]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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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11.23 부산 제2상업학교 4학년 재학시 일인들의 소위 경남학도전력증강국방경기대회에 참가하여 동대회에서 일인심판진의 부당한 처사로 일본인 학교가 우승을 차지하자 그 부당성을 지적, 항의하고 동래중학교 학생 등 한국인 학생 1,000여명과 함께 시가행진하며 무엇이 내선일체냐」「너희들은 일본으로 돌아가라등의 구호를 외치며 조선독립만세를 절규하고, 대회심판장인 내태겸치 일육군대좌의 관사를 파괴, 심판장을 구타하다 피체되어 징역 8월을 받고 출옥 후 4월여만에 옥고여독으로 순국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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