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현의 敎育樂書] 에듀프레스 보기 철학으로 보는 진로교육(1) 철학으로 보는 진로교육(2)
철학으로 보는 진로교육(3)
앞서 철학으로 보는 진로교육(2)에서 '철학은 육하원칙이다.'라고 정의하였다. 행복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길에서 수많은 문제가 던져질 것이고 그 문제 앞에 우리는 '선택'이라는 결단을 해야 한다. 우리는 '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찾으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수많은 시간들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어떤 이는 '잠'을 최대의 적으로 생각하고 잠자는 시간을 줄이려고 노력할 것이고, 어떤 이는 '나태'를 문제 삼아 항상 자신을 근신하려 한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는 노력, 자신이 목표하는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도전'이라 하고 그 도전의 적을 '먹고, 자고, 싸는 인간의 본능'이라 생각하여 '본능'의 시간을 조절하여 '이성'의 시간을 확보하려 한다. 그런데 이런 노력으로 자신의 목표를 도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노력의 효율성의 차이를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애초에 출발선부터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태어날 때부터 타고나는 '유전'과 '환경'의 문제이다.
우리 인생의 도전과 성공은 '유전'인가, '환경'인가. 공부를 잘하는 부모의 자식은 공부를 잘하고, 축구를 잘하는 부모의 자식은 축구를 잘하는가.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을 보면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데도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볼 수 있는가 하면 농구선수가 되려면 키와 체력이 타고나야 한다.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면 유전적 영향을 더 크게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부도 안한 부모 밑에서 자란 자식이 공부를 잘해 성공하기도 하고, 선천적 재능이 없어도 노력하여 공부를 잘하는 학생을 볼 수 있다.
개개인의 능력은 '유전'인가, '환경'인가. 타고난 저마다의 능력과 이미 성취한 수준을 존중하여 교육하려면 수준별 수업을 해야 하고, 똑같은 방식, 똑같은 내용으로 교육해야 평등이라 생각하면 획일적인 수업을 해야 한다. 인간은 저마다 타고난 소질이 다르기에 수준별 맞춤형 수업을 해야 한다는 교육방법론은 고대 철학자들도 주장하던 바다. 그리고 당시에는 열 명 이내에 제자를 두고 교육했기에 가능했다. 근대교육이 도입된 1860년대 이후 우리의 교육은 획일화되었다.
교육학자들의 아이러니한 주장은 철학적 입장에서 상반된 견해를 보인다. 진보주의 교육학자들은 '교육은 평등해야 한다.'며 특목고, 자사고를 폐지하려고 하고, 보수주의 교육학자들은 교육의 차별성을 인정하여 수준별 맞춤형 수업을 해야 한다고 학교의 수준을 자꾸 나누려 한다. 학교의 수준에 따라 학생들이 선택하는 스트레스가 커서 '평등'하게 가르쳐야 '행복한 교육'이라 한다. 학교의 수준을 자꾸 나누면 '경쟁'으로 인해 선택의 스트레스가 대다수 학생들의 행복을 깬다는 논리이다.
앞서 말했듯이 진로는 저마다 생각하는 '행복'을 향해 제 각자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라면 교육은 수준별 맞춤형으로 가야 한다. 진보주의 교육학자들은 교육을 '과정의 행복'으로 보고 '과정의 평등'으로 교육을 설계하고, 보수주의 교육학자들은 어차피 도달해야 할 '성취의 행복'을 보고 '과정의 차이'를 존중하는 교육을 설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교육은 해답 없는 '유전'인가, '환경'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과정의 행복'과 '성취의 행복'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교사 1인당 학생수가 급증한 근대교육에서 문제를 찾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고대교육으로 돌아가야 한다. 학급당 학생수를 10명 이하로 줄여야 한다. 10명은 '교육의 거리'이다. 10명 이내이면 교사와 학생은 둘러앉아 수업을 하고 10명이 넘으면 교사는 서고 학생은 앉아야 하는 '교육의 거리'가 생긴다. 수준별 수업, 맞춤형 수업은 10명 이내에서 가능하지 한 교사가 2,30명을 두고는 불가능하다. 고대교육은 도제교육을 통해 질문식 수업, 토론식 수업을 했고, 수준별 맞춤형 수업을 했으니 '과정의 행복'과 '성취의 행복'을 맞볼 수 있었다.
철학으로 바라보는 진로교육의 입장에서 학생들의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과 성취수준의 차이를 인정하고 거기에 맞는 교육을 시키는 것이 제 각자의 길을 찾아 제 각자의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녀의 타고난 소질의 차이나 성취수준의 차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내 아이는 대학을 나와야 하고 남들이 선호하는 직업을 가져야 행복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뒤늦게 전두엽이 발달하여 성취수준을 올리는 대기만성(大器晩成)형 인재들이 얼마나 많은가. 혹시 내 아이가 그런 인재가 아닐까.(신호현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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