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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시인의 단단한 안개
- 이문자 시인의 『단단한 안개』
제목을 읽으면 '미친 시인'이라는 말에 필자가 시인을 악의적으로 비판하고 있다고 오해할까 싶다. 여중 진로상담부장으로 지내다 보면 이제 막 사춘기로 자신의 움집을 짓고 있는 중학교 여학생들에게 '선생님은 미친 학생이 좋다.'라고 망언(?)을 쏟는다. 뭔가에 한 번 미쳐보지 않고 인생을 말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다면 아주 긴 시간이지만 짧다면 아주 짧은 시간이다. 미래를 내다보면 긴 시간인 줄 알았는데 과거를 돌아보면 짧기만 하다.
이제 막 사춘기를 앓고 있는 소녀들에게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보내야 비로소 자신의 인생이 시작된다.'라고 한다. 자신도 알 수 없는 짜증과 분노, 불만과 반항 속에 자신의 가치관을 정립하면서 '싫고 좋음', '부정과 정의', '내 것과 남의 것'의 구분이 분명해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생을 어떻게 살까를 고민하고 목표를 세우며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기 시작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대부분은 인생을 작심삼일(作心三日) 하는데 자신의 목표가 생기면 성공을 향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첫 번째로 갖는 특성이 '끈기'이다. 끈기가 있으면 반에서 1등은 한다. 끈기보다 더 나아가 경쟁상대를 따라잡는 마음을 '오기'이다. 전교1등을 따라잡겠다는 마음은 오만한 기운이지만 성공하면 전교 1등을 한다. 오기보다 더 나아가면 '독기'이다. 독을 품고 공부하려면 상처가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상처 받는 것을 두려워 하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만이 독을 품을 줄 알고 독기에 성공하면 그 지역에서 1등을 한다.
독기보다 더 독한 마음으로 노력하려면 '광기'이다. '미쳐야 미친다.'는 말이 있듯이 '올인' 또는 '몰입' 하지 않고 그 세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특히 예술 분야는 '광기'가 더욱 요구된다. 미치지 않고 예술을 한다면 필자는 그를 예술가라고 하지 않는다. 이렇게 광기를 지닌 예술가는 그 나라 1등은 한다. 광기를 넘어서면 '신기'이다. 말 그대로 '신적인 기운'이다.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트리플 악셀의 고난도 기술을 연기하는 것이나 축구선수가 드리볼을 귀신처럼 몰고 들어가 공인을 넣는다면 그것은 '신기'이다. 이렇게 신기를 지니면 세계 1등을 할 수 있다.
이문자 시인의 『단단한 안개』는 제1집 『삼산 달빛연가』, 제2집 『푸른 혈서』에 이어 세 번째 출간이다. 문단에서 3번째 시집이 중요하다. 이제 막 초보 시인의 옷을 벗고 중견시인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이고 시인의 시형(詩形)을 다른 시인들과 구별짓는 첫 발자국이다. 나무에 비하면 비로소 자기만의 첫 가지를 뻗어올리는 이치이고 인생에 비하면 사춘기의 감정을 견디고 비로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제2의 인생이다.
중앙대에서 문예창작과 학생들을 지도하고 계신 이승하 교수의 해설을 보면, 요즘 시가 사회와 불통을 하는데 비해 『단단한 안개』 는 자연을 향해 있다기보다는 사회를 향해 있고, 관념의 세계가 아닌 일상의 세계에, 추상의 세계가 아닌 구체성의 세계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 다양성의 독자와 대화가 가능하다고 평하고 있다. 이것이 이문자 시인이 추구하는 시의 세계를 향한 첫 가지이다. 작품을 통해 시인의 희미하지만 『단단한 안개』 의 세계를 들여다보자.
"난 펼칠 때 살아나요 / 누구는 더 나은 날을 위해 접는다지만 / 난 펼칠 때 살아나요 / 어른들은 접을 줄도 알아야 한다지만 / 접는다는 것은 / 포기하는 것이고 펴지 않는 것이고 / 바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므로 / 난 펼칠 때 살아나요 / 그래서 접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 금방 겨울이 올지 몰라요 / 바람이 꾸덕꾸덕 얼어붙을지 몰라서 / 난 펼칠 때 살아나요 / 새로운 바람 / 신나는 바람 / 멈추지 않는 바람을 생각해요 / 그런데 절반만 편 느낌은 뭘까요 / 가 닿을 수 없는 거리가 느껴져요 - '부채' 부분 -
'인생을 왜 사는가' 철학적 질문 앞에서 우리는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왜 글을 쓰는가'와 같이 어려운 질문일 수 있다. 그런데 시인은 명쾌하고 쉽게 그 해답을 찾고 있다. 가령 '부채를 왜 만들었는가'라고 물으면 '부치기 위해'라고 쉽게 답하듯 시인은 '펼칠 때 살아나는 부채'로 답하고 있다. 부채를 접어서 가방에 넣고 다니려고 사는 사람은 없다. 부채를 펴서 활활 바람을 일으키려고 만들어진 물건이다. 인생은 부채처럼 새 바람을 일으키고 신바람 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는 것이다. 시인은 "나는 펼 때 살아나니까요"라고 외치는 함성이 들린다.
"그녀는 반지하에 살고 있다 / 장마철이면 상형 문자의 곰팡이가 / 우울의 문장을 쓴다 / 냄새가 몸에 끈적끈적 들러붙어도 / 무더위에는 반지하가 최고라고 위로한다 // (중략) // 그녀가 사는 공간은 어둡고 퀴퀴한 / 냄새로 얼룩져 있다 / 지금도 그녀는 반 지하 계단을 오르고 있다 / 조금만 더 오르면 일 층이라고 / 온전한 봄 햇살을 받을 수 있다고 / 누구에게는 평범한 시작이 / 생의 끝 날까지 닿아야 할 목적이라고 - '반올림' 부분
이사를 가면 제일 먼저 따지는 것이 햇빛이 들어오는가이다. 반지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1층을 향한 꿈을 음표 '반올림'에 비유하고 있다. '반올림'은 반지하 사람들의 애환을 끌어 올려주는 희망의 시이다. 평생 아이들을 지하 단칸방에서 키워 아토피 피부와 비염을 달고 사는 아이들을 두었다는 어느 아빠의 푸념을 떠올리면 반지하는 그래도 형편이 낫겠지만 상향 지향성의 우리네 인간들은 반지하에서 끊임없이 1층으로 향하고 있는 '단단한 철학'을 이야기 하고 있다.
"나는 시침과 초침 사이 / 혹은 5시와 7시 사이에 있다 / 5시는 과거고 7시가 미래라면 / 6시는 현재다 // 초침을 따르기엔 벅차고 / 시침을 기다리기에는 불투명한 미래 / 먼저 간 사람은 / 먼저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 노을 뒤쪽의 새벽이 있듯 / 원심력에 간혀 되돌아오는 미래 // 나는 앞서가는 자인가 / 뒤따르는 자인가 / 죽겠다 죽겠다 노래하던 사람은 / 아직 죽지 않았다 / 나는 시각에 따라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한다 - '시계' 부분
시인은 '시계'를 통해 존재 의미를 찾고 있다. 시침과 초침 사이에 분침인지 초침은 너무 빠르고 분주한 반면 시침은 너무 느리고 여유롭다. 너무 빠른 것도 화가 나고 너무 느린 것도 답답해 속터진다. '나는 누구인가' 자아의 정체성을 찾고 있다. '시계'를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나'를 말하고 있다. '단단한 철학'이다. 시를 쓰고 그림 그리고 서예를 즐기고 소설세계에 빠져 사는 시인에게 '5시는 과거이고 7시는 미래'일 수 밖에 없다. 시인은 밤새워 작업을 하고 새벽 6시에 서 있다.
사람이 예술을 한다는 것은 인간의 기본 욕구를 초월해야 한다. 먹고(喰), 자고(眠) 싸는 것(性)을 초월할 수 있어야 한다. 보통 사람들은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자고, 더 많이 싸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산다면 예술의 세계는 덜 자고, 덜 먹고, 덜 싸는 삶을 살더라도 더 멋진 작품의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는 것이다. 모난 돌을 깎아 구슬을 만들 듯, 무쇠를 녹여 명검을 만들 듯 무디어진 자신을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 구슬 같은 시가 되고 명검 같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문자 시인에겐 밤이 낮이고 낮도 낮이다. 한밤에도 새벽에도 깨어 있다. 페이스북에 올려지는 글은 밤낮이 구별되지 않는다. 잠을 안 자냐고 물으면 남겨진 인생이 짧아 잠잘 시간이 없단다. 누가 잠을 안 재우냐고 했더니 시가, 소설이, 서예가, 그림이 잠을 재우지 않는다고 한다. 옛날 양반 사대부들은 시(詩), 서(書), 화(畵)에 능통해야 했다. 아마 조선시대 선비 집안에서 태어났나보다. 필자와 같이 비천한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돈 벌고 일하느라 잠을 자야 하기에 이 시인이 부럽기만 하다.
누가 강제로 잠 자지 말고 시를 쓰라고 하면, 그림을 그려서 제출하라고 하면 다들 지옥 같은 삶이라고 할 것이다. 이 시인은 시키지 않아도 좋아서 스스로 한다. 그뿐인가 문단에서 활동도 많이 한다.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위원회 사무국장, 서울 종로문인협회 사무국장, 계간문예 작가회 사무차장 등을 맡아 문단의 일꾼으로 분주하게 봉사를 많이 한다. 요즘에는 '뉴스N제주' 등에 칼럼까지 쓰고 있으니 잠 잘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면 보통 사람들이 핑계 대기 쉬운 가정은 어떤가. 두 자녀를 훌륭히 키웠고 멋진 남편도 잘 섬기고 있으니 더 말할 나위 있겠는가. 바쁜 만큼 더 빨리 달리고 잠을 덜 자면 더 예쁜 삶이 구려지는 법칙을 터득했나 보다. 이문자 시인은 문단에서 아직 젊은 나이에 말을 타고 승승장고 달리고 있다. 시인은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구체적인 사물을 통해 '어떻게 살까'라는 철학을 노래하고 있다. 그 비유와 상징성이 '단단'하다. 희뿌연 '안개'에 휩싸인 고봉준령(高峯峻嶺)을 향해 새벽 5시와 7시 사이에 서서 부챗살을 활짝 펴기 위해 미친듯이 달리고 있는 시인이다. (신호현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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