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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묘지에서(추모 헌시)

원 시 인 2010. 7. 26. 01:17

 

추모헌시(당선작_6편).hwp

 

국립묘지에서

신 호 현



초여름 늦은 오후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바람만 흐르다 되돌아보는 곳


산새 한 마리 날지 않는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말없이 누운 당신을 본다


끝없이 달리는 세월

칠십 고개 뛰어 넘어

반백(半白)의 백발이 되고서야

당신을 다시 찾아왔다


이제는 비바람에

찬란한 이름도 지워져

희미한 회색빛 당신 영전엔

한 송이 들꽃도 피지 않았다.


저녁 노을이 오늘처럼

붉게 어지럽던 어느 초여름

푸른 어깨 M1 소총알 수백발이

황혼의 태양을 떨어뜨렸다.


그 때 당신 곁을 스치던

박격포 소리

따발총 소리

탱크 소리들....


그 태양은 마침내

반도를 붉게 물들였고

쉼없이 이어지는 비명소리로

한강엔 핏물이 흘렀다.


애국심에 치떨던 당신은

꺼져가는 조국의 부름받아

배냇아기 손 한 번 잡지 못하고

그렇게 속절없이 떠나시더니


바람에 귀 기울이면

바람이 들려주던 당신 소식

그네들 몰아내 한강을 넘었노라

그네들 몰아내 대동강을 넘었노라


당신의 두 손으로

기필코 압록강 물을 떠다

어머님께 드리겠다던 맹세는

북쪽으로만 끝없이 향하는데


쓰러지는 조국 부여안고

이 산하 이 강산을 달리던

그대 심장 아련히 멈추던 날

때도 아닌 장대비가 쏟아졌다지


흐려지는 당신 눈빛 속에

선연히 떠올랐을 내 모습은

깊은 눈물의 골짜기 지나

이렇게 달려 왔다


당신을 지하에 두고

뒷걸음치며 시장 행상으로

뛰며 걸은 지도 어언 오십 년

갓난아기 당신 핏덩이는

당신 두 배 훌쩍 커버렸구료


당신 지켜주신 이 땅

다 쓰러져 가는 이 언덕에

비스듬히 초가집 기와집 짓고

언제 무너지나 염려했던 날들


그 때 비굴했던 당신 친구들은

이제 갑부가 되어 떵떵거리는데

부귀영화를 먹고 살더라도

결국 한줌 부토로 돌아갈 인생


살아있는 누구에게나

한 번 찾아올 죽음 앞에서

보다 값진 죽음을 찾아 나서던

당신의 용기를 후손들은 알까나


내 사랑 그대 죽음

결코 헛되지 않으리니

휴전선이 무너져 내리고

민족이 하나 되는 그 날에

부서져간 그대 비석 빛나리라


조국의 아들들아 딸들아

너희들은 아는가 듣는가

너희 자유 네 미래 지키기 위해

죽어서도 평화로운 세상 꿈꾸는

네 아비의 간절한 외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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