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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불혹(不惑)의 나이, 극기(克己)의 나이(글-신호현)

원 시 인 2015. 12. 3. 09:56

불혹(不惑)의 나이, 극기(克己)의 나이

  

   불혹(不惑)을 넘기면서 세 가지 말을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 ‘힘들다.’, ‘죽겠다.’, ‘짜증난다.’는 말이다. 지난 젊은 시절 가난과 절망 속에서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내뱉던 말이다. 어제 일이 오늘에 비슷하게 펼쳐지는 40이후의 중년 그 이전에는 늘 새롭고 낯선 일들이 내게 부딪혀 올 때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까 지혜를 모으기 전에 불평불만 속에서 내뱉은 언어의 조각들이다.

 

    ‘몸이 힘들다.’, ‘마음이 힘들다.’, ‘힘들어서 못하겠다.’, ‘배고파 죽겠다.’, ‘힘들어 죽겠다.’, ‘외로워 죽겠다.’, ‘~ 때문에 짜증난다.’는 말들은 내가 나의 능력을 불신하고 부딪혀오는 일들을 과대평가해서 절망적으로 내뱉는 말이다. 나는 한없이 부족한데 내게만 힘든 일들이 쏟아져 내리는 것같아 힘들어 죽겠고 짜증나는 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 일들은 누군가 이미 잘 해결해 왔던 일들이었는지도 모른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힘들었던가. 매일 새로운 내용을 배우고 복습하여 익히는 과정을 통해 머릿속은 얼마나 힘들고 죽겠고 짜증났을까.’ 군대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힘들었던가. 낯선 곳에서 매일 고된 훈련을 받다보면 얼마나 힘들고 지쳤는가. 그 때마다 습관처럼 힘들다.’, ‘죽겠다.’, ‘짜증난다.’고 말해 왔던가. 배가 고파도 죽겠고, 보고 싶어도 죽겠다고 한다. 심지어는 귀여워도 죽겠고, 예뻐도 죽겠다고 말하는 습관을 깨달은 것이 불혹의 나이 40이다.

    교실에서 더울 때 조금 참아보면 분명 내 대신 더워 죽겠어요.’라고 말하는 친구가 있었다. 군대에서 온갖 군장을 메고 구보를 하다보면 지치고 힘들어 곧 쓰러질 것 같아 입에서 죽겠다.’는 말이 터져 나올 것만 같은데 조금만 더 참고 있으면 힘들어 죽겠다.’고 말해주는 전우가 있었다. ‘힘들다.’, ‘죽겠다.’, ‘짜증난다.’는 말은 돌아보면 내가 인내가 부족하다는 변명이었다.

    아빠가 어느 때부터 아버지로 되는가를 생각해 보면 자녀와 다정다감하고 친구같이 지내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말수가 적어지시고 참아내시는 모습이 역력히 보일 때가 아닌가. 어려서 아빠를 믿고 따를 때는 친구같던 아빠였는데 사춘기를 겪으면서 아빠에게 반항하고 거슬리면서 나의 입속의 칼로 아빠는 아버지가 되어가셨던 것 같다. 그 때가 아빠는 불혹의 나이를 걷고 계셨던 것이 아닐까.

    불혹의 나이를 지낸 아버지들이나 어른들이라고 해서 세상을 살면서 힘들지 않고, 죽겠지 않고, 짜증나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속으로 인내하고 참아내면서 하나씩 가슴에 담아 쌓아가면서 더러는 한숨이 되고 더러는 병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지치고 힘들면 나무나 바위에게 속삭이듯 나 힘들다.’라고 말하면 나무나 바위도 저도 힘들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것이다. 그래, 힘들면 더러 쉬어 가고, 시간이 부족하면 잠을 덜 자자. 능력이 부족하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 보자, 어차피 세상은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 협력하면 될 일이다.

   

     지금도 주변에서 보면, ‘힘들다.’, ‘죽겠다.’, ‘짜증난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을 다독이며 힘들다.’, ‘죽겠다.’, ‘짜증난다.’는 일을 어떻게 도울까 생각해 보지만 결국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야 하는 문제들이다. 이를 율곡 이이는 극기(克己)라 했고, 많은 성현들은 자신과 싸워 이기는 것이 가장 큰 승리라고 했다. 어쩌면 주위의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불혹(不惑)의 나이가 인생에 있어서 자신을 이기는 극기(克己)의 나이는 아닐까?

(신호현 詩人)

 

울산매일 : http://www.iusm.co.kr/news/articleView.html?idxno=632770

조선일보: http://forum.chosun.com/bbs.message.view.screen?bbs_id=1030&message_id=121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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