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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매일]뻥치며 살자(글-신호현 詩人)

원 시 인 2019. 3. 20. 22:27

[울산매일]    뻥치는 기술(1)

 

뻥치며 살자

 

 

     아니, ‘뻥치며 살자니 이게 무슨 해괴망측(駭怪罔測)한 말인가. 더구나 시인이며 선생님인 사람이 신문에 보낸 논고가 뻥치며 살자니 이게 무슨 말인가. 그렇잖아도 눈 뜨고도 코 베가는 세상인 양 사기꾼이 많아 남의 말에 속아 돈을 잃고 인간관계마저 끊기는 가슴 아픈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도 무슨 말인지 들어는 보자.

     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았다고 하자. 그 장면을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렸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간혹 한두 명은 '나무가 춤을 추고 있다.'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한두 명은 정말 이상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사실'을 보고 나무가 춤을 추고 있다.'라고 뻥을 치는 것이다.

이렇게 '사실'을 말하는 사람은 '자연과학'의 적성을 가진 사람이고, ''을 치는 사람은 '인문학'의 적성을 가진 사람이다. 어떤 대상을 설명할 때 '사실 그대로 묘사'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켜 '비유나 상징'으로 표현할 것이지 나눠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거리에 나무가 춤을 추고, 울고, 웃는 것이라 표현하는 것은 정말 믿기지 않는 뻥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믿기지 않는 뻥을 믿고 흥미를 가지고 때로는 감동하게 된다.

 

     어쩌면 해리포터'를 쓴 J.K 롤링은 가장 그럴듯한 뻥의 대가이다. 그가 쓴 소설은 현실에서 전혀 있을 수 없는 뻥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뻥에 흥미를 가지고 몰입하여 읽다보면 마치 그 뻥이 현실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뻥의 세계에 빠져들어 가슴 졸이며 울고 웃다가 행복한 감동에 젖어 현실의 고통을 잊는다. 롤링은 그 뻥으로 돈을 벌고 인기와 명예를 얻게 되었다. 롤링은 죽어도 그의 작품은 살아 영원히 남겨질 것이다.

     사람들은 '사실'을 중시할 것인지 '이상'을 중시할 것인지 끊임없이 논쟁하며 새로운 세계를 추구해 왔다. 세계 문학사이나 미술사를 보면 '사실'을 중시하던 고전주의 작품들과 '이상'을 중시하던 낭만주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다시 낭만주의를 극복하고 사실주의나 자연주의 작품들은 다시 '사실'을 중시하며 작품을 창작해 왔다. 그러다 다시 인상파나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이상'을 중시하게 된다.

     이런 현상은 비단 문학이나 미술과 같은 예술의 세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교육에서도 근대교육이 시작한 19세기에는 '지식(이상)'을 중시하여 이론을 강조했다면 19세게 말에 '경험(사실)'을 중시하여 실기와 실습을 강조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20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지식'을 다시 강조하게 되어 우리네 7080 세대들은 지식 중심의 암기 위주식 교육으로 공부를 배웠다. 그런데 요즘은 다시 '경험'을 중시하는 경향 속에서 혁신학교니, 자유학년제니 하는 새로운 교육을 불어넣어 학생 개개인의 체험으로부터 터득해가는 지식을 중시하고 있다. 물론 이런 교육의 흐름에는 학생 개개인이 깨닫는 지식을 중시하는 구성주의 이론이 바탕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으로 돌아오면, 요즘 자연과학을 중시하다 보니 '인문학'이 죽은 지 오래다. 경제가 어렵고 취업이 힘든 시기에 인문학은 더욱 죽어가고 있다. 당장 먹고 사는 일에는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것이 좋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현실'만 바라보다 보면 가슴 속에 남겨지는 나무의 의미는 없다. 나무가 왜 흔들렸는지,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왔는지, 나무는 왜 춤을 추고 있는지, 우는지, 웃는지를 글로 쓰다보면 그것은 나무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네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시인으로 선생으로 가장 그럴듯한 뻥을 치는 기술 즉 '비유나 상징'을 가르치게 된다.

신호현 詩人

  뻥치며 살자(울산매일 190408-18면).pdf

 

울산매일 : http://www.iusm.co.kr/news/articleView.html?idxno=84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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