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인세상/◈글모음◈

[문학관탐방기]안성 조병화문학관에 가다(신호현)

원 시 인 2015. 5. 2. 22:25

[문학관 탐방기]

 

안성 조병화문학관에 가다

 

     지난 201552일 종로문협에서 안성 조병화문학관에 방문하여 편운시 문학상 시상식과 조병화 시문학 축제, 시낭송제, 조병화 백일장 시상식을 한다고 해서 모처럼 따라 나섰다. 종로문협의 오병훈 회장님을 중심으로 강정수 사무국장님, 채인숙 재무국장, 그리고 회원님들의 단합된 모습이 돋보인다. 저마다 반짝이는 별과 같은 시인들이 한 마음으로 모여 행사를 할 때에는 그 이상의 희생과 봉사 그리고 나눔이 있는데 종로문협은 그 세 가지가 드러나지 않게 잘 이루어진다. 연로하신 분들은 아랫사람들을 잘 배려하고 아랫사람들은 윗사람을 잘 공경하니 갈수록 발전하는 모습에 흐믓하다.

    이번 행사는 안성 문협과 종로문협의 협조적 관계 속에서 문인들의 아름다운 교제가 이뤄지는 자리이다. 문인들은 각자의 절대고독을 작품으로 승화시켜나가는 사람들로 인생의 고독을 잘 아는 분들이다. 그러니 혼자서 산을 만들고 정상에 오르는 일은 쉽지 않다. 교류와 나눔을 통해 서로를 격려하고 박수를 쳐주어야 막혔던 벽이 뻥 뚫리고 끊어졌던 다리가 이어진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처음에는 평범하게 보이던 분들도 사귀고 나면 저마다 아름다운 보석을 지녔는가를 깨닫게 된다.

   안성문협에는 오래 전 한국편지가족에서 만난 전 박청자 회장님(현 고문)과 잘 아는 사이라 안성행이 설레었다. 출발 시간보다 10분 전에 탑승하는 모습, 종로문협에서 호박떡과 물을 준비해서 아침을 못 먹은 사람들을 챙기는 모습, 시인들의 소개를 맡아 사회를 봐주신 홍성훈 전회장님(홍 전회장님은 이천에 초등학교 자랑스런 선배님이시다.) 그리고 '프로는 즉흥에 강하다'고 아이들한테 매일 가르쳐 왔는데 즉흥적으로 시낭송을 시켜도 사투리시를 구수하고 정감있게 낭송하신 이경선 시인님의 낭송으로 즐거웠다.

    이번 여행에 행운은 아마 내게 가득했는지 모른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서 들었던 중앙대 이승하 교수님과 같은 자리에 앉아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누구신지 몰랐기도 했지만 피곤하신 듯 눈을 감고 계셔서 인사를 나누기 어려웠는데 다행이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고, 물과 떡을 나누면서 분위기를 깨주셨기 때문에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졸시집 [우리는 바다였노라]를 드릴 수 있었고, 우리나라 통일과 통일시의 의미에 대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사진을 한 장 못 찍어서 아쉬움의 꼬리가 길다. 하지만 언제 또다시 뵐 수 있을 것이다.

   버스는 거의 도착지에 이르렀는데 사회자님의 배려로 나도 앞에 나가 소개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이렇듯 시의 끈으로 만나고 시로써 삶을 엮어가는 모습은 사춘기의 감성을 키우던 10때에 시를 배우고 외웠던 추억이 이렇게 아름다운 만남을 이끌어 가는가 싶어 내가 학교에서 10대의 소녀들에게 애송시 21편을 예쁜 시화집으로 만들어 암송시키고 문예 글짓기에 열심히 데리고 다니는 것을 소개했다. 행사에 자주 참석하지 못해 낯선 눈빛들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1시간여 달려서 도착한 안성 난실리에는 5월의 푸르른 신록 아래로 연분홍 철쭉꽃이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안성은 자연 경관이 좋아서 그런지 뛰어난 문인들이 많다. 조병화 시인은 물론, 청록파 혜산 박두진 시인도 고향이 안성이다. 시인 허영자, 임홍재, 오세영, 장석주, 한광구, 김완하, 정진규, 시조시인 지성찬, 동화작가 윤수천, 수필가 윤재천, 김진식, 소설가 안국선, 이봉구, 공석하, 평론가 안막 등 안성에서 태어났거나 안성에서 집필실을 두고 활동한 유명 문인들이다.

    행사는 봄바람에 돛단듯 순항했다. 어제는 꿈나무 시낭송대회가 있었고, 오늘은 제25회 편운문학상 시상식부터 시작했다시 부문에 곽효환 시인과 평론 부문에 정과리 교수님이 수상을 했다. 편운 문학상 수상자들의 얼굴에는 복효근, 윤효, 허형만, 이근배, 정호승, 마종기 등 아는 문인들도 많았다. 수상하는 모습을 보면서 좀 더 열심히 시를 쓰고 활동해야겠다는 자극을 받았다시상식과 더불어 제10회 평운시 백일장을 실시하고 있었다. 시상식 후에 시낭송회가 있었는데 안성문협과 종로문협의 어우러진 잔치 분위기를 연상했다.

    안성문협에서 내로라하는 문인들의 시낭송이 있었다. 역시 선배문인들의 전통을 잇듯 정갈하고 고운 목소리로 조병화문학관을 꽉 채우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어 우리 종로문협에서 홍성훈 전회장님이 한복에 마고자를 입으시고 중절모를 쓰신 멋진 모습으로 조국으로 가는 길을 낭송하셨다. 천사같이 하이얀 날개옷을 입고 공존의 이유를 낭송하신 전옥기 시인님, 듣는 이의 가슴 깊은 언저리에 울림을 주는 채인숙 재무국장님의 늘 혹은 때때로”, 조용한 듯 큰 외침의 감동으로 다가오는 김운향 시인의 청춘에 기를 세워라내면의 그리움까지 긁어 생수로 솟구치게 하는 송연주 시인의 기다림그리고 윤영석 시인의 고독과 그리움”, 사투리시를 낭송했던 이경선 시인의 시낭송 등이 있었다.

    행사 중에 간간이 조병화 시인이 누워계신 자리와 기념관을 돌며 사진을 찍었다. 살아생전 2000년에 문화일보에서 시낭송회를 할 때 꼭 한번 뵈었는데 이렇게 사무치는 그리움이 될 줄 몰랐다. 당시 악수를 하면서 기가 쇠잔하신 손을 잡고 안타까웠으며, 사진을 한 장 찍었는데 해맑게 웃어주시던 그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 이제 찾아와 무덤 옆에서 사색에 잠겼는데 초록빛에 붉은 목도리를 두른 까치독사 한 마리 옆을 스치며 한동안 날 바라보았다혹여 조병화 시인이 영혼이 나를 반겨주는가 싶어 나도 뱀을 바라보았다. 무섭다기보다는 마치 무언의 대화를 나누듯 다정했다. 잠시 머물다 숲 속으로 돌아가는 뱀을 향해 손이라도 흔들어 주고 싶었다.

   조병화 시인을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 국어교과서에서 의자라는 작품을 배우면서였다. 이 시는 연작시 의자 중 일곱 번째 시이다.

 

  지금 어디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지금 어디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지금 어디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습니다

 

   조병화 시인이 본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은 누구일까? 1921년에 태어나셔서 200383세에 어머님 품으로 돌아가시기까지 시대의 격정을 겪으면서 기다려오신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은 누구였을까? 어쩌면 이 시대의 어려움을 슬기로움으로 헤쳐나갈 희망찬 후세대들을 모두 말할 것이고, 그 깨우침을 세상에 전할 문단의 후배들을 말할 것이다. 조병화문학관에 놓여진 빈 의자에 조용히 앉아 보았다. 어깨가 무거웠다. 조병화 시인이 마련해 준 의자에 앉았지만 난 또 다른 의자의 주인공들에게 시의 향기를 전하고 의자에 이르는 길로 안내를 해야 할 것이다.

   조병화 시인의 또 다른 작품으로 잘 알려진 것이 해마다 봄이 되면이다. 이 작품은 국어 선생이 되어 중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칠 때 교과서에 실린 시이다.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 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땅 속에서, 땅 위에서

  공중에서

  생명을 만드는 쉬임없는 작업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 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생명답게 키우는 꿈

  봄은 피어나는 가슴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오,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 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나뭇가지에서 물 위에서 뚝에서

  솟는 대지의 눈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이 시를 읽으면 정말 어린 시절 어머님의 말씀도 떠오르고 내게 힘이 되어 주셨던 동네 어른, 선생님들의 말씀이 떠오른다. 부지런히 살라, 꿈을 지녀라, 봄처럼 새로워라시던 말씀. 지금 내가 쉬임없이 일을 하고 글을 쓰는 일에 근간이 되시는 말씀들. 그리고 다시 내가 어른이 되어, 선생님 되어 아이들에게 늘 하는 말들. 부지런히 살라, 꿈을 지녀라, 봄처럼 새로워라 아이들아.

   조병화 시인은 이렇게 내게 시인의 의자를 내어 주셔서 시를 쓰게 하셨고, 선생의 의자를 내어주셔서 아이들에게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 비록 살아서 꼭 한 번의 만남이었지만 시를 통해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만남을 이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또 어떤 시인으로, 어떤 선생으로 내 후세의 아이들과 대화를 하고 있는가. 조병화 시인은 어머님의 심부름으로 세상에 나왔다가 어머님의 심부름을 다 마치셨다는데 난 아직 심부름도 다 못해 혼자 길 잃고 울고 있는 아이처럼 마음이 답답하기만 하다.

   조병화 시인은 뱀의 모습으로 빙의하시어 날 반기시며 무언의 대화를 통해 무슨 말을 하셨던 것일까? 오래 전부터 시를 통해 내 안에 들어와 계신 그 은은한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첫째 건강하라. 둘째 부지런히 써라. 셋째, 시의 지경을 넓혀라.” 안성 난실리의 봄바람 속에 들려오는 조병화 시인의 나지막한 음성이 나의 시정신을 맑게 해주었다. 나는 메모장을 꺼내 시를 쓰기 시작했다.

 

  고사목

 

  내가 죽어도

  내가 떠나도

  모두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화려했던 꽃은

  부지런했던 잎은

  달콤했던 열매는

  모두 사라질지라도

 

  바람 견디고

  어둠 속에 쌓은

  진실했던 언어는

  내 삶의 작품으로 남아

 

  하늘 향한 기상

  타다만 장작처럼

  바람에 검게 그슬려

  천년을 살아가고 있다

 

  그림출처 : http://cafe.naver.com/dolpeople/8794

 

   오늘 행사에 참가하면서 시인으로 갈 길이 멀다는 것과 그 길에 들어선 이상 더욱 부지런히 써야 한다는 생각을 안고 왔다. 조병화 문학관을 아름답게 잘 가꿔놓은 것을 보면서 참 대단하고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거기에는 조병화 시인의 아들 조진형(조병화 문학관 관장, 세종대 교수) 씨와 며느리 김용정 씨가 아버님의 유지를 잘 받들고 있어 보기에 흐믓했다. ‘고향은 사람을 낳고 사람은 고향을 빛낸다.’는 시인의 말처럼 조병화문학제는 안성을 빛내고 있었다.

   ‘꽃은 살아서 영광이지만 문인은 죽어서 영광이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그래서 옥상 칠판에 방명록처럼 써놓고 왔다. 안성의 평화로운 풍경을 뒤로하는 아쉬움 속에 내 고향 이천을 생각했다. 이천에도 훌륭한 문인들이 많을진대 아직 변변한 문학관조차 없다. 비록 몸은 서울에 있지만 이천이 나를 낳은 이상 앞으로 10년 교단에서 후학들을 기르는 일에 전념하면서 작품활동을 더 열심히 하고, 후에 귀향하여 이천 문인들과 어울리며 고향의 지성을 빛내고 싶다.(글 신호현, 시인 배화여중 교사)

 

종로문협의 전 회장이셨던 자랑스러운 홍성훈 선배(이천단월초등학교)님이시다.

편운문학상 시상식 및 조병화문학 축제 개막을 위한 테이프 커팅식이다..

편운 문학상 시상식과 문학 강좌, 그리고 시낭송회, 편운 백일장 시상식이 있었다..

조병화 시인님의 두상이다..

조병화 시인님은 결국 빈 의자를 남겨놓고 떠나셨구나.. 저 의자에 누가 앉지?..

조병화 시인님의 사진만이 반갑게 맞아 주신다...

아직 거기에 계신 듯한 조병화 시인님의 살아 생전 집필실이다..

맑은 하늘에 한 조각 구름..(조병화 시인님의 정체성이 담긴 문장이다..)

대한민국의 대표 시인다우신 글귀로다...

조병화 시인님이 잠들어 계신 곳이다.. (까치독사가 나와 인사를 하듯 나를 한동안 바라보고 갔다..)

아하! 조병화 시인님은 어머님의 심부름을 다 마치셨구나.. 난 아직 심부름이 남았는데 어쩌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던 "해마다 봄이 되면(조병화)"이 시비로 남아 있다.

편운재라는 현판이 있다..

살아 아름다움을 추구하셨던 대상들이 사상으로 남아 있다..

 여러 전시활동의 흔적들이 조병화 시인님의 향기로 남아 있다...

작품과 유품들이 매우 많이 전시되어 있다..

편운 문학상 수상자들의 얼굴..(복효근, 윤효, 허형만, 이근배, 정호승, 마종기 등 아는 시인들이 보인다...)

안성시내 초등학생들이 춤과 공연이 있었다.. 

함께했던 김주현(다재다능하신 분), 고오노 에이지(문학평론가, 번역가), 송연주(시인, 시낭송가)님이다..

여기서 졸시 "일본이여 오라"가 다시 번역되었다.(번역시 보기 : http://blog.daum.net/phshh/15782537)

홍성훈 전 회장님의 시낭송[조국으로 가는 길] 모습...

전옥기 시인님의 시낭송[공존의 이유] 모습...

채인숙 재무국장님의 시낭송[늘 혹은 때때로] 모습..

이경선 시인님의 시낭송하시는 모습..

송연주(시인, 시낭송가) 님의 시낭송[기다림]하는 모습..

시를 통해 인품이 얼굴이 묻어나는 고우신 시인들이시다..

허형만(문학박사, 목포대 명예교수) 시인님과 함께...

오병훈(종로문협 회장) 시인님과 홍성훈(시인, 아동문학가, 종로문협 전 회장) 선배님과 함께..

종로문인협회 조병화문학관에 가신 분들...

2000년 문화일보사에서 시낭송회가 있었고 그 때 조병화 시인님과 같이 찍은 사진이다..

 

위에 동영상은 2018년 6월 16일 편운제에서 찍은 사진을 한신섭 시인이 편집하여 보내준 것임...

 

 

=====================================================

관련글 보기 : http://blog.daum.net/phshh/15780883

 

조선일보 : http://forum.chosun.com/bbs.message.view.screen?bbs_id=1030&message_id=1170589

 

[문학관 탐방기]천재시인 윤동주문학관을 다녀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