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을 보고]
하운, 나의 슬픈 반생기
1. 처음- 연극을 보기 전에
혜리 양은 무척 예쁘다. 오랫동안 우리 성가대 소프라노 솔리스트로 봉사했고, 혜리 양 엄마는 지금도 소프라노에서 함께 찬양을 드리고 있다. 간혹 모녀지간에 같은 성가대에서 봉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 역시 모전녀전(母傳女傳)이라는 말이 절로 난다. 오랜만에 대학로 ‘성균소극장’에서 하는 “한하운, 나의 슬픈 반생기”라는 연극의 초대를 받았다. 물론 혜리 양이 주연급으로 출연하는 작품이다.
[나의 슬픈 반생기]는 문둥병에 걸렸던 한하운 시인의 자서전이다. 문둥병은 인간의 질병 가운데 가장 절망스러운 병이라 해서 ‘천형(天刑)’이라 한다. 지금은 한센병이라 하지만 이 병에 걸린 한하운 시인은 그 절망과 고통 속에서 죽고 싶었던 고통을 시로써 승화시키면서 살아냈던 것이다. 고통이 없으면 어찌 삶의 깊은 맛을 알겠는가마는 그렇다고 고통을 바라는 사람은 없다.
연극 “하운, 나의 슬픈 반생기”는 절망과 환희의 경계의 선 사람들의 이야기로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현대라는 그물에 걸려 허덕이는 물고기들에게 더 절망과 더 고통이 있음을 보여줌으로서 물고기들이 그물을 뚫고 자유의 바다를 다시 활보하기를 바라는 연극이다. 갈수록 사람들의 형편은 좋아지는데 반대로 수렁으로 굴러가는 마차는 언제나 있고 거기에 올라타 뛰어내릴 용기도 없이 치달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한하운 시인은 ‘문둥이’란 이름으로 인간대열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인간 폐업을 당해 실업자로 거지가 되어 거리를 방황했다.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인간’이라는 자유를 빼앗기고 찢어지는 피부와 고름에 갇혀 움직임도 부자유하다. 그래서 말 그대로 천형이다. 살아도 죽음이다. 구천(九天)에 사무칠 나위 없는 원한을 짐승처럼 혼자서만 울어야 했다.
2. 중간- 연극을 보면서
연극 “하운, 나의 슬픈 반생기”는 이 두 인물을 잘 대비시켰다. 한태영은 부잣집 아들로 잘 생겼다. 공부도 많이 해서 그가 뜻하면 세상을 거머쥘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다. 그는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사업을 시작한다. 다행이 수완이 좋고 마당발인 박 사장과 미모의 ‘S’(혜리 역)의 도움으로 사업이 척척 풀려 나간다. 미모의 ‘S’는 태영과 같이 친해지다가 결국 한 몸을 이룬다.
하운은 문둥병에 걸린 사실을 알고 자괴하고 슬픔에 빠져 자살하려 하나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으로 자살을 버리고 삶을 택한다. 갈수록 병은 깊어가고 거꾸로 치달리는 세상 앞에 정면으로 달려가 ‘데모’도 한다. 그러나 세상의 물결은 거대해서 어쩔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남쪽으로 내려가 문둥병을 치료하고자 한다.
사업가 태영과 시인 하운은 명동 술집에서 시로 만난다. 태영은 술을 마시다가 시를 팔러 온 하운을 만나고 비로소 시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거 당신이 지은 거요?”, “네, 시가 되건 안 되건 한 장 사주세요.” 그 둘은 꿈에서 서로 만나 시를 이야기 한다. 더 바랄 것이 없는 태영은 하운에게 시의 영감을 달라하고 가진 것이 없이 절박한 하운은 현실에서 태영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런데 공통분모인 시는 있으나 현실의 삶이 너무나 다른 까닭에 서로가 원하는 것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꿈으로 설정을 해서 극과 극의 대립을 조화시켜 흐름을 이끌어 간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 숨막히는 더위 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 쑤새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룸거리며 / 가는 길.....
신을 벗으면 /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 발꼬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꼬락이 잘릴 때까지 /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 「전라도길 전문」 한하운 -
시 한 소절 한 소절에 담긴 처절한 의미를 탐하는 ‘태영’과 어머니의 죽음, 동생과 아내가 정치 폭도들에게 끌려가 소식을 알 수 없는 절박한 현실 속에 ‘하운’은 서로 다른 존재인데 한 몸이고 하나인데 너무나 다른 둘이다. 태영은 절박한 하운을 이해할 수 없고, 하운은 절박하여 여유 있는 태영을 이해할 수 없다. 시(詩)만이 그들을 서로 만나게 하는데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태영은 사업이 성공하기 직전에 투자한 금액을 모두 날린다. 박 사장과 미모의 ‘S’는 결국 시골 순진한 투자자들을 노린 사기꾼이었던 것이다. 태영은 모든 것을 날리고 ‘S’와의 불륜을 알게 된 아내마저 떠난다. 그리고 바닥까지 이르게 되고 급기야는 자살을 결심한다. 그 때 문둥병을 치료 받고 시인의 반열에 오른 하운이 나타난다.
그 때 태영은 하운에게 외친다. “죽어버리겠다고!” 하운은 태영에게 외친다. “나는 나병 덕에 살았다. 나 한하운은 나병 덕에 살았다!” 라고. 결국 태영은 삶이 곤궁해지고 절박해진 만큼 비로소 시 한 소절 한 소절이 절실히 가슴에 박히게 되었다. 둘은 한 몸이지만 현실과 이상은 너무나 괴리한 위치에서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3. 끝- 연극을 보고 나서
‘한태영’은 시인 한하운의 본명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그 이름으로 그는 슬픔 가득 55년을 이 땅에 살다 갔다. 사업가이기도 하고, 보육원 원장으로도 살다 갔다. 그러나 ‘한하운’은 시인의 이름으로 천년 이상 영원히 살 것이다. 한하운의 이름으로 우리는 아픔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고통 속에 새 생명을 낳듯 아픔으로 태어난 그의 시편들로 그의 꽃을 기억할 것이다. 더 이상 한센병은 우리에게 그토록 아픔을 주지 못할 것이기에 문둥병 시인은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연극을 보는데 한하운 시인의 숨소리가 들린다. 처절했던 그의 삶과 고뇌. 못된 짐승으로 버려져 돌팔매와 굶주림이 만들어주는 비참한 삶의 현실. 배우들의 몸을 던지는 연기와 거친 숨소리에서 시인의 항변이 들린다. 소극장에서 연극을 보는 묘미랄까. 20여 명의 배우와 스텝진이 한 몸이 되어 불을 뿜는 듯한 연기력으로 한하운 시인의 환생을 재연했다. "프로젝트 하운"팀에게 박수 갈채를 보낸다.
“나는 나는 / 죽어서 /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 푸른 들 /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 푸른 울음 /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 죽어서 / 파랑새 되리."
- 「파랑새 전문」 한하운 -
올해도 중 1학년 여학생들에게 애송시집을 나눠주고 이 시를 외우게 했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 천상병 시인의 ‘귀천’, 김춘수 시인의 ‘꽃’,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를 외워 가슴에 꽃처럼 꽂게 했다. 한하운 시인의 삶을 다 말해 무엇하랴, 윤동주 시인의 삶을 어찌 다 말하랴. 그 삶은 다 알 수 없지만 시를 외워두면 어느 날에 그의 안타깝고 처절한 삶을 만나게 되리라. 그러면 영혼은 ‘파랑새’가 그들의 가슴에 살아서 날아올라 밤하늘에 별이 될 것이다.
조선일보 : http://forum.chosun.com/bbs.message.view.screen?bbs_id=1030&message_id=1185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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