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예] 2025년 11-12월호 시평
그리움
- 김태형 시인

호숫가 산책길
물결 가르는 오리와 거위들
나무엔 다람쥐들의 숨바꼭질
잠자던 숲속이 부산해진다
새들의 합창 숲을 울리고
호수에 잠긴 아침노을 신비롭다
저만치서 눈길 주는 사슴 한 마리
그리움 서린 눈빛 맑은 눈동자
뇌종양 수술로 말은 어눌하고
걸음걸이의 거위를 닮았어도
병실 어디선가 제일 먼저 뛰어나와
선생니임…, 반겨주던 은주의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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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꼬리를 잡은 시인
가을에서 겨울로 들어서는 문턱이면 인생의 꼬리를 잡고 있는 느낌이다. 더구나 몸이 하나둘 나를 떠나갈 때면 정신은 더욱 또렷해져 그리움이 솟구친다. 김태형 시인의 「그리움」은 일상의 풍경 속에서 되살아나는 기억과 존재의 의미를 조용히 되묻는 작품이다.
첫 연에서 시인은 호숫가 산책길이라는 평범한 배경을 통해 자연의 소리와 움직임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그 속에서 잊힌 듯했던 ‘그리움’의 실체를 끌어올린다. 물결 가르는 오리와 거위, 다람쥐의 숨바꼭질, 숲속의 새들 합창은 모두 생동하는 시간의 조각들이다. 이런 장면들은 사소한 듯 보이나, 바로 그 사소함이 그리움의 터전을 이룬다.
자연의 조용한 움직임을 따라가다가 화자는 어느 순간 “저만치서 눈길 주는 사슴 한 마리”를 본다. 이 장면은 시 전체에서 가장 서정적인 전환점이다. 사슴은 한국 시 전통에서 종종 순결함, 맑은 존재, 선한 영혼을 상징해 왔다. 정지용의 「유리창」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를 향한 그리움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흐리게 만든다. 이 사슴은 결국 그리움의 실체, 즉 기억 속 한 인물의 환영을 은근히 드러낸다.
셋째 연에 들어서면, 그리움은 더 이상 자연 속 풍경에 머물지 않는다. 뇌종양 수술, 걸음걸이의 어눌함이라는 현실적 고통이 등장하며, 시적 화자가 그리워하는 이는 병으로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는 존재임이 드러난다. 고통 앞에서도 “제일 먼저 뛰어나와 반겨주던 은주의 눈동자”는 여전히 또렷하다.
이 표현은 기억의 온도, 한 사람의 존재가 남긴 따뜻함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 보여 준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남기는 정서는 결국 자연보다도 더 생생하고 강렬하다. 「그리움」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다. 자연이라는 화면 위에 비친 내면의 풍경이며, 존재의 흔적을 끈질기게 붙잡으려는 마음의 기록이다.
이 시의 힘은 담담함 속의 깊이에서 나온다. 시인은 어떤 감정도 과장하지 않는다. 호수와 사슴과 환한 눈동자가 차례로 등장하며 감정은 자연스럽게 고조된다. 그리움이란 감정은 폭발적이거나 과시적인 방식으로 표현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시는 보여 준다. 삶의 많은 진실이 그렇듯, 깊은 마음은 언제나 조용하게 존재한다. 자연은 흐르고 계절은 바뀌지만, 마음의 자리는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다. 시인은 그 자리에 비스듬히 서서 이 시를 떠올렸다.(시평 원시인 신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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