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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감독관의 하루

원 시 인 2010. 4. 6. 22:06

[교육신문]코로나 속 성년식을 치르는 수능생들에게

 

    수능 감독관의 하루

 

 

 

  수능 감독관이다. 아침 5시에 일어나 우유를 한 잔 마시고 인장과 신분증을 챙기고 고사장으로 간다. 날아가는 비행기도 멈춘다는 국가 중대사로 수험생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에 선봉에 선다.

  학생들은 8시 20분까지 가지만 감독관은 7시 30분까지 도착을 해야 한다. 감독관 회의를 마치고는 8시 10분에 시험장 본부에 가서 시험에 필요한 물품을 인수한다. 8시 15분까지 시험실에 입실하여 수험생과 만나면 수험생도 긴장하고 감독관도 긴장한다.

 

  수험생 유의사항을 설명하고 컴퓨터용 수성 싸인펜과 샤프를 배부한다. 수험생의 휴대폰과 모든 전자기기를 수거한 후 이름을 붙여 봉투에 담아 복도 감독관에게 인계한다. 신분증 미지참자는 파악하여 본인임을 확인하고 서약서를 받는다.

  이때에도 긴장되는 수험생은 연실 화장실을 오간다. 어떤 학생은 화장실에서 긴장 때문에 시험을 못 보겠다고 울부짖는다. 그러면서 하는 말 “좋은 대학에 가고 싶어요!” 놀라서 복도 감독관을 통해 보건실로 보낸다.

  8시 25분에 예비령이 울리면 문제지와 답지를 개봉하여 수량을 확인한 다음 답안지를 배부한다. 답안지에 수험생이 지켜야할 일을 간단히 설명하고 답안지에 성명, 수험번호 등을 올바로 기입하도록 말해준다.

  8시 35분에 문제지를 배부하고 문제지의 유형을 확인하고 문제지에도 수험번호와 성명을 기입하도록 지시한다. 불과 8시 10분부터 35분까지 25분이지만 긴장이 되어서 1시간보다 길게 느껴진다.

  언어영역 듣기평가 방송이 37분부터 시작되면 비로소 긴장이 풀리고 수험생은 방송에 몰입하고 감독관은 정해진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한다. 행여 수험생이 감독관 때문에 방송을 못 들었다고 시비를 걸기도 한다면 낭패다.

  15분 정도 듣기평가가 끝나면 결시자를 파악하여 보고서에 기재한 후 복도감독관에게 전달한다. 응시원서와 도장을 들고 수험생에게 다가가 수험표와 신분증을 확인하고 얼굴을 바라보고는 본인인가 다시 본다. 본인이 맞으면 답안지의 기재사항과 표기가 맞는지 확인한 다음 도장을 찍는다. 도장을 잘못 찍어도 소송을 당한다.

  1교시는 8시 40부터 10시 10분까지 90분간 지속된다. 감독관의 할 일이 9시에 끝나면 남은 1시간 가량은 서서 감독하는 일이다. 선생님들은 모두가 서서 수업하는 일이라 서있는 것은 자신 있다지만 아무 말도 없이 서 있다는 것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공연히 한군데만 서 있으면 다리도 더 아프지만 수험생이 부담스럽다고 ‘저쪽으로 가라’고 한다.

  감독관이 수험생의 눈치를 보며 조심하고 피해다닌다. 어느 감독관은 신경이 예민해 신경질적인 수험생 피해다니느라 더욱 힘들었다고 한다. 정감독관은 교실 앞 중앙에 서 있으면 되지만, 때론 시험에 피해가 가지 않는 한적한 곳에 서서 수험생의 옆모습을 보거나 밖의 경치라도 힐끗힐끗 바라본다. 밖의 가을 경치가 아름답기에 다행이다. 

  1교시 90분은 그래도 버텼다. 10시에 종료령이 울리면 문제지와 답지를 회수하여 시험 본부에 제출 확인 받고 잠시 차 한 잔을 마시고 화장실 갔다 오면 또다시 2교시 물품을 수령한다. 어떤 때는 1교시 시험 유형과 난이도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기도 한다. 표시 시간으론 쉬는 시간이 20분이지만 실제로는 10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이다.

  2교시는 수험생들도 긴장이 풀리고 감독관도 좀 여유가 있다. 그래서인지 100분이란 시간은 더욱 지루하고 길다. 감독관들은 돌려가며 쉬는 시간을 갖는데 다행히 2교시에 쉬면 행운이다. 가장 긴 시간을 쉬기도 하지만 점심식사를 빨리 먹고 점심시간의 여유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1,2교시 연속이면 새벽부터 12시 20분까지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오전 내내 서 있는 셈이다. 
   점심을 먹고 13시 10분에 시작하는 3교시 외국어 영역은 듣기평가가 있다. 또다시 ‘꼼짝 마라’이다. 70분간 감독하지만 피곤한 탓인지 더 힘들고 더 길게 느껴진다. 어느 감독관은 뒤에 기대어 졸았다고 털어 놓는다. 감독관만 아니라 수험생들도 졸립다. 어느 수험생은 아예 엎드려 잔다. 깨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 지나친 친절도 삼가란다. 얼마가 지나도 일어나지 않으면 시험지와 답안지를 들춘다. 그러면 일어나 다시 시험을 본다.

  4교시 사회 과학 탐구영역은 시험 시간은 120분이지만 입실부터 퇴실까지는 130분이다. 3과목을 선택해서 시험을 치루기에 어떤 학생은 시험을 안보고 시험공부를 하기도 하고 선택에 따라 3과목을 연속으로 보기도 한다. 감독은 3명이 함께 들어가서 앞에 정감독 뒤에 좌우로 부감독이 지켜 선다. 시험 감독은 그냥 서서 감독하기보다는 학생들이 시험을 잘 치루도록 돕는 봉사를 하기에 어떻게 하면 빨리 걷고 조용하게 감독할까 생각한다.

   학교에 따라 제2외국어 영역인 5교시가 있는 학교도 있다. 그 역시 학생들의 선택이기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가고 몇 반에서 보기도 한다. 감독은 젊은 선생님들 우선으로 선발된다. 감독 수당이 조금 더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빨리 돌아가 쉬기를 원한다. 다리에서 쥐가 나고 종아리가 땡겨 온다. 준비된 의자가 없기에 끝까지 서서 버틴다. 창밖에 노오란 은행잎과 단풍나무가 어우러진 교정의 아름다운 가을 경치가 빛을 잃어 어둑해진다. 

   17시에 종료령이 울리고 답안지를 회수하면 수험생들도 끝났다고 좋아하지만 시험실을 빠져나오는 감독관의 발걸음은 날아갈 것 같다. 정감독관이 고사본부에서 이상유무를 확인하여 퇴실 방송이 있을 때까지 부감독관은 학생들과 교실에서기다린다. 잠시 정적이 흐른다. 정감독관은 뛰어가 최대한 빨리 확인을 마친다.

 

  어둑한 어둠을 헤치고 출근하여 어둑한 어둠을 헤치고 퇴근을 한다. 학ㄷ생들은 하루 종일 추울까봐 켜놓은 히터 속에서 비몽사몽간에 시험을 치룬다. 감독관들은 아마 일년 중 시계를 가장 많이 들여다 본 시간들일 것이다. 피곤하지만 학생들이 시험을 끝내고 환히 웃는 모습에서 보람을 느낀다. 어둑한 교문을 들어서고 어둑한 교문을 빠져나가는 사이 학생들의 운명은 갈라진다.

 

sonia  [2008-11-20]
이 글을 읽다보니 긴장감이 감도네요. 학생들 못지 않게 당일날 감독 선생님들께서 고생을 많이 하신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고요. '입시지옥'이라고도 부르는데, 언제나 이런 시험을 안 치고도 자기가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들어갈 수 있을는지요. 이러한 시험으로 운명이 갈린다는 게 정말 가슴 아픈 일 같네요..
 
     
 
원시인  [2008-11-20]
전 오늘도 느꼈지만 중3 한문을 하면서 기말고사가 끝나고 시험이 없다는 아이들의 수업태도 속에서시험이 있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험이 없다면 "선생님, 이딴 것 왜 합니까?"라고 한다면 아이들 좋아하는 영화나 보여주고 '놀자 학교'가 될 것입니다.시험에서 선생님의 권위도 나온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