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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훈범 칼럼을 읽으며

원 시 인 2010. 5. 24. 23:02
 
[이훈범 시시각각] 대한민국 선생님 전 상서 [중앙일보]

 

  대한민국 선생님들 보세요. 고생 많으시지요. 요 며칠 신문에서 읽은 기사들이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고 성깁니다. 그 설핀 조각들을 맞춰보고자 쓰는 글이니 언짢은 부분이 있더라도 노여워 마시고 읽어주십시오.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이 쓴 책을 소개하는 기사가 있었지요. 가슴 아팠더랬습니다. 수업 시간에 학생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놀기에 빼앗았더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더라지요. 그러고는 무슨 뜻인지 알고나 했는지 칠판에 답 대신 ‘Fuck you’라고 쓰더라지요. 저 같으면 귀싸대기를 올려붙였을 텐데 잘 참으셨습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초등학교니까 그 정도지 중·고등학교는 훨씬 더 심할 테지요.

 교사의 권위가 바닥에 붙은 껌 딱지만도 못한 세상이 돼버렸습니다. 그 선생님은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 체벌이 필요하다고 하셨더군요. 동의합니다. 아까 말한 귀싸대기는 곤란하겠지만 회초리 정도는 불가피하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집에서 하던 외동아들 망나니짓이 단체생활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확실히 알려줘야 할 테니까요. 하지만 체벌로써 교사의 권위를 세울 수 있다는 믿음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겠지요. 권위가 있는 체벌만이 교육적 효과가 있을 거란 말입니다. 권위 없는 체벌은 반항을 낳을 뿐이지요.

   그렇다면 교사의 권위가 왜 떨어졌는지 생각해볼 차례입니다. 왜 그럴까요. 정말 가슴 아픈 기사가 있었습니다. 부인과 아들 세 명을 모두 필리핀에 유학 보낸 냉동기기 수리공 아빠 가 폭발 사고로 숨졌습니다. 어렵게 번 돈을 모두 송금하고 자신은 고시원과 여관방을 전전했었다지요. 안타깝다 못해 화가 납니다.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요.

   왜 그는 그토록 무리해 가면서 기러기 아빠 가 됐을까요. 이 나라 교육을 못 믿어서 그런 거 아닌가요. 기러기는 아니더라도 이 나라 학부모들이 국가 예산의 10%가 넘는 돈을 사교육비에 쏟아붓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노후 대비를 포기하면서까지 말입니다. 이 나라 공교육이 무너진 때문 아닙니까. 껍데기뿐인 공교육 현장…. 권위가 남아있을 리 없지요.

   외람되지만 제가 평소에 정말 궁금하던 게 있습니다. 공교육이 붕괴됐다는 말을 들을 때 선생님들은 기분이 어떠신지요. 학교에서 좀비처럼 앉아있다 종치자마자 학원으로 달려가는 학생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요. 부끄럽지 않으신가요. 이래선 안 되고 바꾸기 위해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으시나요.

   무너진 공교육이 선생님 탓이라는 게 아닙니다. 많은 선생님이 다시 일으켜 세우려 노력과 절망을 번갈아 하고 계신 것도 압니다. 이런 현실에 구원의 빛이 되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타임지가 표지모델로 썼던 미셸 리의 교육개혁 얘깁니다. 무능한 교사를 퇴출시키고 성취도가 낮은 학교를 폐교시켰습니다. 대신 열심히 하는 교사의 연봉은 두 배로 올려주기로 했다죠. 이 땅에서도 당장 그렇게 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교원평가가 거부되고 차등성과급이 사이 좋게 나눠지고 있는 우리네 공교육 현장에 말입니다. 그건 전교조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얼마나 많은 선생님이 ‘아이에게는 도움이 안 되고 어른만을 위한’ 과실을 즐겼습니까. 얼마 전 한 국회의원이 꺼냈다 곤욕을 치렀던 ‘인기 배우자감 여교사’ 농담은 남들 다 아는 썰렁한 얘기가 된 지 오랩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선생님들이 달라져야 우리 교육이 삽니다. 왜 아이들을 학원에 맡기십니까. 학교에선 왜 못 가르칩니까. 올해 수학 가르치고 내년엔 영어 가르치는 거 아니잖아요. 학원에 가야 할 건 학생들이 아니라 선생님들입니다. 학원만 못하다면 학원에 가서라도 배워와야죠. 그래서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보너스도 많이 받으셔야죠. 그건 경쟁이 아닙니다. 사명이요, 책임입니다. 혼자 힘으로 되겠나 미리 포기하지 마세요. 너와 내가 우리가 되고, 모두가 됩니다. 또 1000만 학생과 학부모들이 응원할 겁니다. 건승하십시오.

이훈범 정치부문 차장(2008.12.15)
 
중앙일보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42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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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에 바라는 대한민국 선생님의 마음
 
   12월 중순의 겨울바람 탓인지, 12월 16일자 중앙일보 30면의 사설칼럼 탓인지 귀싸대기가 얼얼하다. 아침마다 중앙일보를 펴면 속상한 수준을 넘어 이제는 화가 치민다. 가뜩이나 경제도 안 좋아 국민들 표정이 굳어졌는데 글답지 못한 글로 대한민국 선생님들의 귀싸대기를 올려치는 사설칼럼으로 뺨이 얼얼하더니 이젠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사설이 언론사의 뇌이고, 눈이라면 사설칼럼은 언론사의 표정이 담긴 얼굴이다. 그래서 사설보다 사설칼럼을 먼저 펼쳐 보는 이유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들의 혜안(慧眼)을 볼 수 있어 설레기도 하고 통쾌하기도 하다. 그런데 이훈범 정치부 차장의 '대한민국 선생님 전 상서'는 교육의 문외한인 정치부 기자가 개인적 사견을 지나치게 확대하여 오도(誤導)하고 있다.
   처음에는 "대한민국 선생님들 보세요. 고생 많으시지요. 요 며칠 신문에서 읽은 기사들이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고 성깁니다. 그 설핀 조각들을 맞춰보고자 쓰는 글이니 언짢은 부분이 있더라도 노여워 마시고 읽어주십시오."로 시작하여 상당히 예의를 갖춘 겸손한 사람이라 여겼는데 초등학교 선생님이 쓴 책을 설명하면서 선생님들의 권위가 땅에 붙은 껌딱지만도 못한(이 차장의 말 인용) 원인을 학원만도 못한 교사들의 실력에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근거로 냉동기 폭발로 숨진 기러기 아빠의 사연을 들고 있다. 기러기 아빠 가 부인과 아들 세 명을 필리핀에 유학 보내고 고시원과 여관방을 전전하게 된 것이 공교육이 붕괴된 이유라 화가 난다 했다. 그리고 그 공교육 붕괴의 원인은 선생님들이 학원교육보다 못한 실력 탓이니 대한민국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학원에 보내지 말고 선생님들이 학원 가서 배워오라는 것이다.
   그렇다. 이 땅에 선생님으로서 이 글을 읽고 무척 반성이 된다. 12월을 맞아 기말고사 출제를 하고, 수행평가를 마감짓고, 생활기록부 기록과 채점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중3 선생님들은 작년보다 훨씬 달라진 고입 원서를 쓰기에도 정신이 없다. 그럼에도 교과 부진학생 지도와 방과후학교 수업을 한다. 그리고 본인은 논술수월성 교육 출장 강의를 일주일에 두 번 저녁 5시부터 8시 30뿐까지 4시간 강의를 한다. 지하철에서 기사를 읽고도 글을 쓸 겨를이 없어 가슴 속에 담아 두느라 시름만 더 깊어졌다.
   그럼에도 한 편으론 교직 생활 17년을 돌아보며 정말 내가 학생들을 잘못 가르쳐 공교육이 붕괴되고 학생들이 학원으로 달려가나 반성도 했다. 경제도 어렵고 없는 돈에 학원비 과외비 들여 아이들 잘못 가르치는 학교 선생님들의 수업을 보충하려 생돈 들이니 학부모들은 얼마나 화가 났을까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나를 만나면 '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겉으로 꾸뻑 인사를 하며 돌아서려니 얼마나 속상했을까 반성했다. 그 기러기 아빠는  학교교육을 못 믿고 선생님들을  욕하며, 자식들 유학 보내고 생이별을 하면서 고시원과 여관방을 전전하다 사고를 당했으니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했을까 생각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의 선생님인 것이 부끄럽고 어깨가 무너지는 자괴감(自壞感)이 들었다.
   또 다른 한 편으론 본인도 논술을 가르치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이 글이 얼마나 논리적인 비약과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통감(痛感)했다. 누가 이 글을 읽고 논리적으로 타당한 글이라 할까? 글의 형식적 측면에서 서론 본론 결론의 기본적 구조는 그렇다 치자. 적어도 초등학교 선생님이 그 책을 쓰게 된 동기가 '공교육 붕괴의 현실'을 말하고자 했다면 그 문제의 원인을 적어도 선생님 스스로에게 있다고 반성문 쓰듯 애써 책을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책을 예로 들었다면 그 책의 의도가 무엇인지 그리고 저자가 표현하려 했던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밝혔어야 한다.
   그런 연후에 그 문제에 대한 원인을 따지고 그 대책을 논했어야 한다. 적어도 공교육의 문제를 논하려 한다면 글의 제목을 달리 했어야 한다. 저자가 집필한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밝히지 않고 한두 가지 사례를 들어 진단한다면 의사가 오진할 수 있듯이 글 쓰는 이는 오류를 범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어떤 문제든 그 원인은 한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은 글쓰는 이라면 누구나 아는 당연한 논리이다. 그러기에 적어도 세 가지 입장에서 원인을 밝히며 접근했어야 했다. 원인이 한 가지가 아니라면 그 대책 또한 한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한다면 이 글이 얼마나 잘못된 글인가를 알 수 있다.
   글을 쓸 때에 나무 하나를 보고 숲을 평가하려는 것은 커다란 오류다. 나무 하나가 썩었다고 그 숲이 다 썩은 듯 표현해서도 안 되고 숲이 병들었다고 나무가 다 썩었다고 말해서도 안 된다. 숲은 나무로만 이루어지지 않고 그 아래 풀도 있고 바위도 있고 흙도 있다. 그리고 거기에 사는 무수한 동식물들이 어울려 숲이 되는 것이다. 나무가 병들어 썩어 가니 숲이 병들 수도 있지만 토양이 오염되었거나, 물이 메말라 숲이 죽어갈 수도 있는 것은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논리다.
   공교육의 붕괴를 이유로 '선생님들이 학원보다 못 가르치니 학생들을 학원에 보내지 말고 선생님들이 학원 가서 배워 오라.'니 이 얼마나 한심한 논리인가. 또한 냉동기사 가족이 유학을 떠난 것은 선생님들이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란 말인가? 이 차장은 '가슴 아픈 기사'라고 하며 본인이 취재한 이야기도 아니고 단순히 기사 내용만 보고 이 나라 교육을 못 믿어서 유학을 간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못 믿을 교육의 원인을 선생님들께 덮어 씌우고 있다. 정말 발로 뛰지 않고 책상에 앉아 기사나 읽고 쓰는 글로 대한민국 선생님들을 우롱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교육 정책을 선생님들이 세우는가? 전쟁에서 작전을 세우고 명령을 하는 것은 장군이 하고 병사들은 죽도록 싸울 뿐이다. 그럼에도 전쟁에 진 이유를 병사들이 열심히 싸우지 않고 실력이 없어 졌다고 비난만 할 것인가. 문제의 원인도 분석하지 못하고 대책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한 곳으로 몰아 폄하(貶下) 하는 논리로 글을 쓰고 있으니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그럼에도 교원 평가를 운운하며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보너스도 많이 받으셔야죠.'라고 조롱하니 선생님들이 돈 때문에, 보너스 때문에 선생님이 되었다고 욕을 하고 있지 않은가. 
   어느 사회나 집단이든 수준에 맞지 않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물론 교수님이든, 선생님이든, 의사든, 변호사든 그 능력이 수준 이하여서 문제를 일으키고 오히려 역행하여서 퇴출시켜야 할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퇴출시키는 것에 부정할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다만 그런 일부의 문제를 대한민국 선생님들이 다 그런 것인 양 글의 제목을 정하고 논리를 펼쳐 나간다면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 좋다. 선생님들이 다 잘못 가르쳐서 공교육 붕괴되었고 학생들은 학원으로 달려가고, 과외하러 가고, 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고 하자. 그래서 대한민국의 선생님들은 학원 가서 배워와야 하고, 인성교육이고 생활지도고 뭐고 학원처럼 가르치지 않으면 퇴출시켜야 한다고 하자. 그런 교육이라면 나부터도 그만두고 ㅇㅇ일보 논설 위원이나 하련다. 아마도 논리적이지 못한 이 차장 퇴출시키지 않는 ㅇㅇ일보라면 나는 죽을 때까지 퇴출 걱정하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