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인세상/◈글모음◈

실수로 크는 아이들(담임을 하며)

원 시 인 2010. 6. 26. 22:43

실수로 크는 아이들

 

   선생님들은 담임으로 교실에서 지옥을 맛보고 천국을 맛본다. 교직 생활 20년에 오던 해 담임이 없었고, 부장 1년 담임만 18년이다. 담임 10년 하면 안식년을 준다고 했는데 안식년 걸리는 해에 부장을 해서 안식년이 무산되었다. 그리고 다시 8년 동안 아이들과 담임을 했다.

   담임을 하면 아이들과 전쟁이다. 1~2년차는 그동안 교직 적성을 키우면서 꾼 꿈을 적용하느라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른다. 아이들과 부딪히고 깨어지다 집에 오면 울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난 스스로 ‘울보선생’이라 했다. 내 말이 옳은데 고집부리는 아이들. 아이들 말이 옳은데 선생이라는 자존심으로 질 수 없다고 고집부리기도 했다.

   3~5년차에는 나름 아이들 다루는 노하우가 생겼다고 “애들아! 그건 이렇게 하는 거야.”하며 적절히 달래기도 하고 때론 때려주기도 했다. 아마 교직 4년차에 갈등을 가장 많이 했다. 내가 교직적성이 맞는가? 아니 내가 가장 잘하고 있지? 비로소 아이들을 위해 매를 들며 ‘사랑의 매’라고 했었다.

 

   「사랑의 매」소운동장 오른쪽 끝 / 무한한 창작의 공간 / 아저씨들 창고 옆을 지나 / 상담실을 향해 돌아 서는데 / 네모 모양의 나무 하나 / 사랑의 매로 들었다. // 지난 오월, / 아이들 가출 사건이 있은 후 / 독립문 공원 구석구석 이 잡듯 / 쪼그린 너희 얼굴 찾아내곤 / 너희 앞에 부족한 내 사랑에 / 먼 하늘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 너희와 함께 하려는 / 독특하고 남다른 나의 노력이 / 맺고 끊음이 부족한 초년 교사로 / 너희에게 오히려 휘말려든다는 / 선배 교사의 충고로 고민했다. // 너희 앞에 어떻게 서는 것이 / 진정 너희의 훌륭한 스승인지 / 고운 자식 매 한 대 더 때린다는 / 선인들의 오랜 가르침을 따라 / 드러내지 않는 사랑을 위하여!

 

   교직 생활 5년이 지나니 비로소 아이들의 선생이 되었다. 1~2년차는 아이들이 머리 꼭데기에서 담임을 가지고 놀았다면 3~5년차는 그런 아이들과 싸움을 하면서 내 부족함을 ‘사랑의 매’로 다스렸다면 비로소 5년차가 되면서 아이들이 내려 보이고 아이들의 행동에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청소년기에 아이들인지라 사춘기의 격정을 스스로도 이겨내기 힘들어 돌발 행동을 많이 하는 아이들. 그래도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그래서 마냥 어른스러운 아이들도 있어 잘 타이르면 깨닫는 아이들도 있고, 마냥 초등학생 같은 아이들은 스스로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기에 선생님의 꾸중과 매로 고쳐지는 아이들도 있다.

   담임 생활 10년까지는 그래도 아이들과 부딪히며 생활을 한다. 아이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아픔이 무엇인지 대화가 통한다. 상담을 하면 아이들이 여름날 봇물 터지듯 툭 터져온다. 아이들 문제를 놓고 기도도 해보지만 담임인 나도 어쩔 수 없는 아픔을 안고 있는 아이들도 많았다. 어떤 때는 상담은 너무 깊이 할 것이 못 된다고 생각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가정 방문도 하고 여의치 않을 때는 병원도 찾아 다녔다.

   담임 생활 15년이 넘으니 아이들의 행동이 보인다. 아이들의 눈빛을 봐도 아이들의 고민이 보이고 얼굴만 봐도 건강 상태가 보인다. 고민 있는 아이들과 즐거운 아이들의 얼굴엔 저마다의 색깔이 있어 아침에 조회를 하다보면 아이들의 얼굴이 칼라로 비춰온다. 대개는 얼굴색이 잘 드러나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별로 걱정거리 없이 학교생활에 충실한 아이들이다. 교실에 40여명 중 고민이 있는 아이들과 아픈 아이들이 눈에 잘 띈다.

   교실에서 도둑 사건이 나도 별로 무섭지 않다. 도둑질을 할 아이들은 몇 명 손에 꼽힌다. 그리고 사건이 나면 어느 정도 눈에 들어온다. 단지 단서를 확보하고 그 아이의 자백을 유도하는 과정이 어려울 뿐이다. 선생님은 도둑도 잡아야 하고, 변론도 해야 하고, 판결도 해야 하고, 모두 다 실수 없이 잘해야 한다. 선생님의 실수는 아이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선생님 선생님! / 선생님이 뭐예요? / 너는 뭐라 생각하니 / 질문에 되물었다. // 변호사 같아요. / 우릴 변론해 주시잖아요. / 때론 검사가 된단다. / 법관도 되고 // 공무원 같아요. / 업무가 많으시잖아요. / 때론 청소부가 된단다. / 카운슬러도 되고 // 연예인 같아요. / 때론 노래도 부르잖아요. / 칠판 가득 너희 꿈 그리는 / 화가도 된단다. // 학원 강사 같아요. / 많은 것 가르쳐 주시잖아요. / 지식만 가득 가르치기보단 / 지혜까지 깨우치려 한단다. // 만능 엔터테이너예요. / 뭐든지 잘하시잖아요. / 너희 앞에 다 해야 하지만 / 제대로 하는 것은 없단다. // 세상 직업 반죽하여 / 하나의 직업으로 빚으라면 / 비로소 만들어지는 작품 하나 / 그것이 선생님이란다.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끊임없이 실수를 저지르고 실수라 말하는 아이들은 가르치기 쉽다. 아니 가르치지 않아도 찾아와 ‘죄송하다.’고 말한다. 정말 착하고 예쁜 아이들이다. 그러나 잘못을 저지르고 잘못인 줄 모르는 아이도 있다. 그런 아이들은 설명하고 이해시키면 되지만, 정작 잘못을 하고도 남에게 전가시키거나 숨기려 하는 아이들 지도가 힘들다.

   올해도 반에서 몇몇 아이들이 끊임없이 말썽을 피운다. 선생님 말에 부정하고 자기들 멋대로 하려 한다. 예전에는 혼내주고 제압해서 나가려 했는데 이제는 그런 아이들도 예쁘다. 여자 아이들이 문을 걸어 잠그고 밀치고 두드리고 난리를 친다. 보는 대로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으나 결국 어느 날 앞뒤 문짝에 구멍을 냈다. ‘누가 그랬냐?’고 물으니 손을 번쩍 드는 녀석들 예전에는 ‘거봐 하지 말랬잖니.’ 하면서 혼내줄 텐데…. ‘어떻게 해결하지?’ 하고 물음만 던진다.

   책상에 낙서를 하고, 액자를 깨고, 유리를 깨고, 친구들과 싸우고, 도둑 사건이 일어나고…. 매일매일 바람 잘 날 없다. 그래도 아이들이 예쁘고 귀엽다. 아침마다 아이들과 함께 기도를 한다. 일반 학교에서는 종교적 행위라고 문제 삼겠지만 우리 학교는 기독교 학교라 다행이다. 처음엔 일부로라도 떠들고 딴짓하던 녀석들도 이제는 기도를 잘한다. 어떤 녀석은 장난하듯 손을 들고 기도를 받는다. 그리고는 힘차게 ‘아멘~’을 외치는 녀석들.

   연애를 하는 사람들은 100일 만남을 작은 기념일로 지낸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100일 만남은 그 만큼 의미가 깊다. 『어린왕자』에서처럼 서로가 서로를 길들이는 시간이다. 100일을 잘 만나면 그 다음부터는 순탄한 만남이다. 대개 깨질 만남은 대개 100일 이전에 거의 깨진다. 어느 덧 나는 담임을 20여년 맡고서야 담임의 도(道)를 터득한 듯 또다시 ‘수없이 실수를 저지르며 크는 아이들’과 100일을 보내며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