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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교과부 제1차관이라면

원 시 인 2010. 6. 29. 20:51

내가 교과부 제1차관이라면

 

 

   이주호 교과부 제1차관님께...

   저는 오늘 토요휴업일을 맞아 가정에서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키우는 아빠로서 아이들과 마음껏 뛰어놀기보다는 아이들과 기말고사 공부를 하라고 하고 저는 학교에서 못다한 수행평가를 채점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격주간일지라도 토요휴무일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평소에는 학교일로 정말 바빠 글을 쓸 엄두를 못 내다가도 오늘은 우리 교사들의 수장인 교과부 장관님께 상소라도 올리고 싶지만 그래도 제1차관님은 의원시절 우리 교사들에게 일일이 하시는 일을 메일로 보내주시고 교육의 방향을 열심히 이끌어 가셨고, 이제는 차관님으로 정부의 교육 정책의 선봉이 되셨기에 차관님께 글을 올려 드립니다.

   차관님은 저보다 세 살 많으신데 차관님은 고개를 들어 올려볼 수 없는 높으신 자리에 계시고 저는 한낮 ‘죄인의 자리인 교사’라는 직분에 하루하루 허덕이며 살고 있습니다. 차관님이나 저나 80년대 민주화 열풍에서 최루탄 맞아가며 맨몸으로 민주화를 외치며 거리를 활보하던 세대가 아닌가요? 그리고 이제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차관님은 가장 높으신 분으로 저는 낮은 곳에 서 있습니다.

   선배님이시고 형님 같으신 분이십니다. 청와대를 옆에 두고 차관님은 교육부 중심에 저는 중학교 현장에서 지척을 두고 생활을 합니다. 같은 시기에 같은 아픔을 안고 살아오며 같은 꿈을 품었지만 처해 있는 위치는 확연히 달라 같이 대면하여 차 한잔 마시기도 어려운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메일 한 번 드리기도 어려운 처지에 있습니다.

   오늘 같이 토요휴업일을 쉬며 차관님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저희 선생들은 격주로 쉬기에 1년에 25일~30일 정도는 더 출근하고 일을 합니다. 그런데도 일반 공무원들이나 회사원, 은행원들은 토요일을 꼬박 쉬면서도 교사들이 방학이 있다고 부러워합니다. 사실 교사들에게 방학이 없다면 아이들 지도에 탈진이 되어 곧 죽음과도 같은 상태에 직면하게 됨을 그들은 모릅니다.

 

   요즘 교사들을 몰아치는 세력들은 교사들을 마치 죄인 다루듯 합니다. 예전에는 사교육보다 공교육이 앞섰는데 요즘에는 사교육이 앞서고 공교육 붕괴의 원인을 ‘교사들의 나태와 능력개발을 하지 않는 이유’라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교원평가를 통해 교사들의 능력을 개발하고 스스로 개발하지 않는 교원은 퇴출하겠다고 장담을 합니다.

   언론 앞에 교사들은 죄인입니다. 막대한 사교육비를 지출케 하는 것은 교사들의 무능력 탓이라고 교사들을 마구 폄하하고 있습니다. 언론이 교사들을 비판하고 학부모들도 교사를 함부로 여기니 이제는 학생들도 교사를 존경하지 않습니다. 이는 모두 교사들의 무능력한 소치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옵니다.

   차관님은 「교육은 국력」이라 하시면서 "교육의 본질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면서 각자 희망과 꿈을 키워나가고, 그들의 개성과 창의력을 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차관님은 "입시 위주 점수 경쟁이 교육의 본질을 많이 흐려 놓았다"면서 "올해는 창의ㆍ인성 교육이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전제하에 저의 소견을 말씀드리고자 하오니 용서하시며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차관님은 교육부의 수장이십니다. 물론 장관님이 계시지만 적어도 제가 보는 견지에서 어떤 정책을 하도록 승인하고 결재하시는 분보다 정책을 기획하시는 분이 더 중요하다고 사료되는 까닭입니다. 그리고 직책의 진보성을 볼 때에 앞으로 더 큰 일을 하신다는 것을 전제할 때 차관님은 교육의 수장이고 저희 교사들은 아주 말단의 불과합니다. 군대로 따지면 차관님은 장군이고 저희는 말단 장병에 불과합니다.

   저는 불멸의 이순신을 보면서 이순신 장군의 위대성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교사로서 교과서에 이순신 전기문을 가르치면서도 이순신의 업적보다는 인간성에 중심을 두고 가르쳤고 그 인간성이 그를 위대하게 이끌었다고 강조합니다. 부하들의 애로사항 하나하나를 눈물로 어루만지시던 이순신 장군의 인간성이 그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게 합니다.

   우리 몸으로 따지면 차관님은 머리이고 저희 교사들은 저 손끝이거나 발끝입니다. 머리에 입장에서 손발이 안 움직여 주니 어찌 일을 할 수 있겠냐며 손발을 묶어두고 싶겠지만 손발이 없이는 어찌 머리로만 일을 하겠습니까? 예전에 의원시절에 메일을 통해 교사들과 소통을 하시던 모습은 더 이상 없는 것입니까? 혹시 교육현장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오는지 귀담아 들으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교회에서 우리 성가대 대장님의 리더십을 존경하며 따릅니다. 스스로 낮아지시며 아랫사람을 존중하며 보살피는 모습은 비단 하나님 아래 한 형제로서 같은 처지이기에 존중하며 이끌어가는 것일까요? 저는 차관님을 존경하며 따르는 일개 현장 교사이고 싶습니다. 차관님의 정책을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이루는 손발이고 싶습니다.

 

   둘째, 사교육이 공교육보다 앞서는 이유를 직시하셔야 합니다. 차관님은 사교육이 앞서는 이유를 교사들이 무능력해서 공교육이 무너지고 이에 불만을 가진 학부모들이 해외 유학을 가고 기러기 아빠들이 늘고 있다고 생각하시지는 않으신지요? 그래서 사교육비를 줄이도록 공교육이 모든 것을 담당하게 하시려는 것은 아니신지요?

   저희 교사들은 지난 이○○ 장관의 열린교육 정책을 일선에서 열심히 실천하느라 노력하였습니다. 저희 교사들이 무능(?)한지라 위에서 공문으로 지시하고 시키면 그것이 현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는 돌파구인 줄 알고 열심히 달려갑니다. 몇몇 선견 있는 교사들은 이미 미국에서 실패한 교육정책이라고 비난을 했지만 무능(?)한 교사들은 열심히 열린교육을 위해 달려갔습니다.

   강의식 교육이 문제라고 토의식 수업도 해보고 분단 수업으로 떠들어가며 수업하는 것이 좋은 교육이라 믿었습니다. 교실 복도도 허물고, 선진 기자재로 보여주기식 수업에 열중했습니다. 암기식 수업과 반복적 학습은 구태의연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공부 안 해도 대학을 갈 수 있다.’는 말을 누가 했습니까? 당시 교육적자원부장관이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 때 미국에서 어느 교수가 ‘월간 동아’에 ‘열린교육이 나라 망치는 교육’이라며 미국에서 실패한 교육정책을 답습하는 한국의 교육정책론가들을 비판했습니다.

   그 결과 학생들의 실력이 떨어지고 공부 안하고 교실과 학교를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등장한 세대가 ‘우리에겐 내일이 없다!’는 X세대입니다. 그들이 ‘서○○와 이이들’이란 그룹이 선풍적 인기를 얻으며 교실이데아를 부르짖었고, HOT의 ‘빌어먹을 놈들!’이란 말이 매스컴을 타고 기성세대를 욕했습니다. 그렇게 부르짖던 X세대가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 취업난에 시달리는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입니다. 정말 ‘내일이 없다!’고 외친 세대가 맞는 것이지요?

   공교육이 붕괴되고 사교육이 앞서는 주 원인은 바로 수능(수학능력시험)입니다. 1994년 수능 이전에는 학력고사였는데, 학력고사를 끝내고 나면 전국수석 어느 고등학교 3학년 누구, 자연계 수석 누구, 서울대 수석 누구가 큰 관심 뉴스였습니다. 그 때 인터뷰만 하면 “교과서에 충실하였습니다.”가 정답처럼 대답하였습니다. 아마 지금도 코미디에 그 말이 구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1994년 수능이 등장하면서 문제가 교과서 외의 지문을 내기 시작했고, 교과서에서 출제하면 출제위원으로 수준이 떨어지는 인식을 받았습니다. 그 때는 선생님들도 교과서 지식이라며 교과서 외에 것을 가르치고 싶어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수능이 실시되면서 교사들은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교과서로 기껏 가르치고 나면 시험은 엉뚱한데서 나오니까요. 첫 해에 재수생이 급증했고 더 이상 수능 고득점자가 공교육에서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아직도 공교육에서는 교과서를 열심히 가르치지만 수능은 교과서 이에서 열심히 출제됩니다. 학생들은 수능 집중 학원으로 달려갔고 그래도 부족하면 재수 반수를 불사합니다. 강남에 10명의 고교 졸업생 중 7명이 재수를 한다는 것은 최근에 나타난 현상이 아닙니다. 학교에서 교육과정 교과서로는 아무리 공부해도 공염불이 되는 이유입니다. 내신 반영은 유명무실한 또하나의 짐이 될뿐 공교육 정상화를 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교육정책론가들의 입시제도 실패는 고스란히 현장교사들이 책임을 떠안는 것을 보고도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현장교사들을 무능력하다고 국 영 수 사 과 5과목의 학업성취도 평가로 학교와 교사를 평가하고 수업 공개 몇 시간으로 교사를 평가하여 채찍을 가하니 우스운 일입니다.

 

   셋째, 교원 평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학부모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누구 엄마인데요. 교원평가하라 해서 선생님을 하려고 아이한테 물어보니 선생님 수업 준비도 잘하시고 열심히 가르치신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평가를 다 잘 해드렸습니다. 그렇게 아시고 우리 애 좀 잘 부탁드립니다.” 물론 교원평가의 아주 미미한 부작용이겠지요. 그래도 학부모가 교사를 평가의 잣대로 들이대는 것은 교사로서 당황하게 합니다. 학교에서 잘하던 아이도 학부모가 학교에 와서 보고 집에 가서 “니 선생 왜 그러니?”라고 한번 던지면 아이는 180도 달라진 태도로 수업에 임합니다.

   교육은 ‘성숙한 사람이 미성숙한 사람을 이끌어 주는 것’이라 했습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선거할 때 왜 만19세 이상으로 제한하는지 그 이유는 알고 계시죠? 그 나이는 되어야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나이라는 것입니다. 대학 교수들은 이미 성인이 된 학생들을 가르치고 강의만으로 학생들을 대하니까 평가할 수 있다고 하지만 교사는 수업과 생활지도, 행사지도, 상담지도, 청소지도, 행정업무 등 다양한 부분의 능력을 단지 수업 한 시간 보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평가를 강요하니까 자녀한테 물어 평가를 한다면 이는 학생 평가의 이중평가가 될 우려가 있습니다.

   차관님께서는 미국에서 공부를 하셨던데 미국에서 교원평가를 그렇게 하나요? 미국에 교사들이 한국의 교사들같이 수업, 생활지도, 행사지도, 상담지도, 청소지도, 행정업무 등을 다 맡고 있나요? 미국에서는 미국의 교육방식이 있고 한국은 한국의 교육 방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사들이 힘들어도 한국식 교육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자부합니다.

 

   넷째, 사교육은 공교육과 함께 굴러가는 두 개의 바퀴입니다. 차관님께서는 사교육 죽이기를 하시기 위해 학교에서 방과후 학교를 하고 야간 방과후 수업도 하라고 지시하시고 학원은 10시 이후 강의를 못하게 하여 이를 적발하는 ‘학파라치’도 등장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교사로 우리 아이의 학부모로 공교육이 사교육을 앞서가고 사교육은 공교육에서 못다한 것을 뒷받침해서 두 개의 바퀴로 굴러가야 우리 대한민국의 교육이 바로 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찌 공교육만으로 다 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사교육을 잡고 공교육을 살리기 위해 EBS 수능방송을 통해 대학입시 공부를 책임지겠다고 하시는데 그러면 학교 교사들을 두 번 죽이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교육 기회의 평등을 위해 다양한 컨덴츠를 제공하고 환경이 어려운 학생들도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EBS 강의나 인터넷을 활용한 사이버가정학습을 활성화 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지만 사이버 가정학습으로 수능을 해결하겠다는 생각이나 EBS 강의로 대학 입학을 하도록 하겠다는 것은 다시 공교육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다섯째, 교원성과급은 교직을 소명의식에서 성과주의로 변질시키고 있습니다. 교사는 사실 돈 때문에 일하는 것도 아니요, 명예 때문에 일하는 것도 아니요, 단지 아이들을 가르치는 소명의식 하나로 기쁨으로 일을 합니다. 그러기에 교사 월급을 3년째 동결해도 누구하나 월급 올려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교사가 돈타령하는 것은 왠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월급을 주면 주는 대로 받고 그만큼 아껴쓰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기업에서 하는 성과주의를 교육에 접목시켜 교사의 경쟁력을 촉진시키려 하는데 사기업은 경제 원칙에 따라 그 성과가 확연히 나타나지만 교육을 성과주의에 따라 평가하여 성과급을 주고 연봉제로 하려는 생각은 교직 사회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교사가 정말 눈에 보이는 성과에 따라 일하고 성과에 맞지 않는 것은 회피하려 한다면 그것을 책망해야 할 일입니다.

   이제 중고등학교 교무실에서 교사평가 C를 받은 교사들은 ‘안하자’주의로 흘러가고 교장 교감 선생님들은 새로운 골칫거리로 남습니다. ‘그깟 100여만원 안 받고 말자. 어차피 열심히 해도 C라면 A받은 사람들끼리 해라.’는 생각입니다. 경기도 지역에 공립학교 선생님들에게서 들은 이야기 이며 이미 서울에서도 그런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교사가 그래서는 안 되는데 평가가 가져오는 역반응입니다. 한 때 그러다 말고 열심히 따라오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을 ‘사랑과 신뢰’로 이끌어가는 것은 교사의 양심이고 소명의식입니다. 상담을 몇 번하면 몇 점, 아이들 올바르게 이끌면 몇 점, 책 읽으라고 권하면 몇 점,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면 몇 점으로 할 수 없는 것처럼 교육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만 가지고 평가를 한다면 그처럼 위험한 일도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평가는 하나님만이 하십니다.

   요즘 들어 교원대우를 잘해야 한다고 하면 ‘큰 일 날 소리’라고 하시겠지요. 갈수록 서로 잘 되게 정책을 펴기보다는 서로 내리깎는 정책을 펴려하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차관님은 교과부의 수장으로 교사들의 어깨에 힘을 실어 주셔야 합니다. 죽기까지 믿고 따르고 싶도록 힘차게 꽹과리라도 두들겨 주십시오.

 

   여섯째, 잦은 교육과정 개편에 따른 부작용입니다. 7차교육과정, 2007년도 개정교육과정, 2009년도 교육과정, 미래교육과정 등 저도 잘 알 수 없는 교육과정의 변화로 일선 학교는 복잡한 변화에 눙동적이고 주체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없습니다. 학부모의 요구와 선진 외국을 따라가느라 교과서를 8개 교과로 줄이느라 국, 영, 수, 사, 과, 기가, 도덕 정도를 기본으로 하고, 학교별로 1학년은 체육을 3개 학년 나눠하던 것을 주당 4시간하고, 2학년은 미술을 3개 학년에 나눠하던 것을 주당 3시간 몰아하고, 3학년은 음악을 3개학년에 나눠하던 것을 주당 3시간에 몰아 가르치게 됩니다.

   그러면 버려지는 과목이 생기고 학습에 연계가 안 되어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이나 미술 전공하는 ‘학생은 즐거움이 없어지고 전적으로 사교육에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전입학의 경우 교과에 결손이 생깁니다.

   고등학교에서 예체능을 선발할 때 중학교 미술, 음악, 체육 교과의 내신을 가지고 선발하여 고등학교에서 가르치고 예체능 대학은 고등학교 내신을 가지고 선발하여 대학 신입생을 뽑으면 무리한 실기 위주의 사교육이 줄어들 것입니다.

   작년에 ○○예고 수험생 2명이 저희반에 있었는데 내신보다는 실기 중심의 선발이라 3학년 1학기까지만 나오고 2학기 들어서는 학교에는 무단 또는 가짜 진단서를 첨부하여 나오지 않고 학원에만 매진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학원 원장의 말에 따라 월 300~500만원을 주고 매진했는데 결국 둘 다 떨어졌습니다. 거의 사기꾼 수준인 학원인데 학교는 떠나고 그런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부모의 말에 답답한 교육 정책에 가슴 아팠습니다.

 

   일곱째, 국어교과서가 국정에서 검정으로 가는 과정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국어교과서는 전 국민의 공통정서를 좌우하는 과목이라 자부합니다. 같은 세대간에 ‘진달래꽃’을 배운다면 그것은 세대간에 공통 정서로 어느 자리에서도 회자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모와 자식간에도 공통 정서가 될 수 있는 과목이 국어입니다. 다른 과목이 지식이라면 국어는 정서입니다.

   그런데 국어를 검정으로 바꾸면서 24개 종류에서 2학년은 15종으로 줄고 내년에 3학년은 다시 줄어들 것이라면 3년 동안 국어교과서 선택의 혼동을 빚을 것이고 이에 따라 3개 학년에 해당하는 학생들은 무수한 피해를 보게될 것입니다. 국어교사들 역시 수업 연구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게 됩니다.

   적어도 교과부에서는 변화와 개혁에만 신경을 쓰지 그로 인한 손실과 혼란은 생각하지 않는 듯합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개혁과 보이지 않는 손실을 내다보는 정책이 중요하다고 사료됩니다. 그래서 저는 ‘섣부른 개혁은 오히려 퇴보하는 것이고 남의 것을 좇아가는 것은 소중한 내 것을 버리는 것’이라 말합니다. ‘한 개인에게 그 만큼의 힘을 주는 것은 그만큼의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인데 그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좌충우돌한다면 막대한 경제적, 인적 손실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제가 드릴 말씀은 많은데, 일단 학교 현장이 바쁜 관계로 이렇게 글을 드리고 교육을 함께 고민할 여유도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학교가 작년보다 올해가 두 배로 바빠져서 선생님들이 힘들어 합니다. 교원평가를 위해 일주일간 학부모공개수업에 방과후 수업 공개에, 일주일 학부모 상담에 방과후 수업하랴, 업무처리 하랴 너무 힘들어 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봅니다. 교무실에 폭탄이 떨어진듯 한숨이 돌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교실에 올라갑니다.

   공연히 대한민국 교육 걱정을 하시는 차관님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부족한 소견으로 일개 말단 현장교사의 애로를 말씀드려 송구합니다. 중요한 공통점은 대한민국의 교육을 걱정하고 보다 나은 방법을 모색하려는 또다른 노력이라 생각하시고 이쁘게 용서하시고 읽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PS :

'무명교사의 예찬'

미국 시인 헨리 반 다이크(Hanry Van Dyke)dml

 

나는 무명 교사를 예찬하는 노래를 부르노라.

위대한 장군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나 전쟁에 이기는 것은 무명의 용사로다.

유명한 교육자는 새로운 교육학의 체계를 세우나 젊은이를 건져서 이끄는 자는 무명의 교사이다.

그는 청빈 속에 살고 고난 속에 안주하도다.

그를 위하여 부는 나팔 없고 그를 태우고자 기다리는 황금마차 없으며

금빛 찬란한 훈장이 그 가슴을 장식하지 않는도다.

묵묵히 어둠의 전선을 지키는 그 무지와 우매의 참호를 향하여 돌진하는 그이어니 날마다 쉴 줄도 모르고 청년의 적인 악의 세력을 정복하고자 싸우며, 잠자고 있는 영혼을 일으키도다.

게으른 자에게 생기를 불어 주고, 하고자 하는 자를 고무하며, 방황하는 자를 확고하게 하여 주도다.

그는 스스로의 학문하는 즐거움을 젊은이에게 전해주며 최고의 정신적 보물을 젊은이와 더불어 나누도다.

그가 켜 논 수많은 촛불 그 빛은 후일에 그에게 되돌아와 그를 기쁘게 하노니 이것이야말로 그가 받는 보상이로다.

지식은 서책에서 배울 수 있으되 지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오직 따뜻한 인간적 접촉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로다.

공화국을 두루 살피되 무명의 교사보다 예찬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 어디 있으랴.

민주 사회의 귀족적 반열에 오를 자 그 밖에 누구일 것인고.

자신의 임금이요, 인류의 머슴인저!

 

조선일보 : http://forum.chosun.com/bbs.message.view.screen?bbs_id=106100&message_id=573345¤t_sequence=zzzzz~&start_sequ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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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컴 : http://eduict.org/edu/home/eduict/bbs.php?id=diary2003&groupid=&where=&keyword=&ikeyword=&sort=&orderby=&newwin=&category=방없는 교사들의 교단일기&how=&p=&s=&recnum=&q=view&uid=1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