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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시간에 논술 쓰기]어리둥절한 교과서 정책

원 시 인 2012. 9. 22. 13:40

어리둥절한 교과서 정책

 

 

    요즘 교육 현장은 개편된 2009교육과정에 따른 새 교과서 선정으로 정신이 없다. 이번에 개편된 교과서는 2009교육과정의 주요 내용인 집중이수제에 따라 학년별로 구성된 2007 교육과정 교과서를 한 권으로 몰아 구성함으로서 집중이수제에 따른 어느 학년 어느 학기에 가르쳐도 그 교과 내용만 이수하면 되도록 했다. 교육과정을 바꾸다보니 교과 성취기준도 전면 바뀌어 선생님들은 새로운 책을 만들어야 하고 그런 새 책을 선택해서 새롭게 가르쳐야 한다.

    학교현장은 최근 몇 년간 매년 교과서를 선택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2007년 교육과정 개편으로 기존 7차 교육과정 교과서를 전면 개편하여 사용하여 1학년부터 순차적으로 바뀌어 나간다고 1학년, 2학년 바꿔나가더니 이번에는 3개 학년 한꺼번에 바꾸는 작업으로 교무실 좁은 공간에 전시공간도 확보되지 못한 채 구석구석 교과서가 쌓여갔다. 어디 그뿐인가. 각종 출판사에서 자사 교과서를 홍보한다고 각 교과 선생님들께 미리 책을 나눠주는 바람에 거절할 수도 없고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아까워 바쁜 중에 책상 옆에 쌓아놓다보니 교무실 공간은 더욱 비좁게 되었다.

    우리의 교육 정책이 얼마나 단기적으로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교과서 정책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예전에는 몇 차 교육과정이라 하여 5년에 한번 정도 바꿨지만 2007년부터는 교육과정을 해마다 수시로 개편하여 몇 차라고 쓰지 않고 몇 년도 교육과정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학교 현장은 학년마다 적용되는 교육과정이 달라 어느 교과서가 어느 교육과정 교과서인지 구분하여 가르치기도 어렵다. 어찌하여 교과서를 해마다 바꾸고 있단 말인가. 이 번 바뀌면 또 몇 년을 쓸 수 있단 말인가. 이런 교과서 정책의 문제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렇게 학교현장을 혼돈으로 몰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란 말인가?

 

    이런 교과서 정책의 문제는 첫째, 출판사를 멍들게 한다는 것이다. 출판사는 교과서를 통해 이익을 챙기는 기업이지만 출판사의 구조가 튼튼해야 양질의 교과서가 만들어지고 교육현장에 실제 교육활동에도 추수 지원이 이루어져 교육활동을 돕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잦은 교과서 정책으로 교과서를 제대로 팔아보지도 못하고 계속 출판해서 홍보해야 하는 아픔을 겪고 있다. 이번에 바뀌는 교과서는 2013년에 적용하여 2014년까지 쓰고 폐기된다고 한다. 출판사별로 교과서 1종 집필하여 채택되기까지 수천만 원에서 수억까지 비용을 들인다. 지난 몇 년 간 해마다 바꾸더니 역시 이번에도 2년만 쓰게 된다는 사실에 기막히지 않을 수 없다. 교과서 사업에 뛰어든 30여개의 업체는 이런 교과부 정책에 안 뛰어들면 망하는 것이고 같이 뛰어들다보면 출혈 경쟁 속에서 역시 망하는 것이다. 망하더라도 낭비가 되더라도 죽기 살기로 달려들 수밖에 없도록 만드니 미친 교과서 정책이다.

    둘째, 이런 잦은 교과서 개편은 국가적 낭비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고급 종이에 칼라로 인쇄되어 3~400쪽 이상의 교과서를 학생들에게 공짜로 나눠주면 학생들은 함부로 다뤄 낙서하고 찢고 잊어버려도 찾으려 하지 않으니 교실마다 교과서가 나뒹군다. 교과부에서 교과서 낭비를 줄이기 위해 재활용 교과서를 사용하도록 권장하지만 전입생에 경우에나 재활용 교과서를 나눠주지 새 학년이 바뀌어 새로운 학생들에게 지난 학년 학생들의 교과서를 나눠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해마다 교과서가 바뀌는 정책으로 재활용 교과서를 쓸 수 없으니 그냥 버려지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도 한번 교과서를 만들면 최소 5년 내에는 바뀌지 않도록 하고 학생들에게도 책을 무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권당 책값을 정해 선불을 받아 사용하게 하고 1년 후에 반납시 훼손 정도에 따라 돈을 돌려주고 몇 장 이상 훼손하였을 때에는 폐기하고 돈을 돌려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음 학년에서도 새 책을 쓸 것인지 물려받은 책을 쓸 것인지에 따라 물려받은 책을 쓰는 학생은 생활기록부에 물려받은 책을 썼다고 표시하는 칸만 만들어 표기하면 후에 입학사정관에 따른 입시에서 검소한 학생의 근거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셋째, 교육 내용의 연계가 안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부모가 배운 교육 내용을 자식이 배워 부모와 자식 간이거나 형제간이라도 교육내용에 따른 대화가 가능했는데 이제는 출판사별로 다른 내용으로 교과서가 만들어지고 해마다 연계성도 없이 바꾸니 부모 자식은 물론이고 형제라도 대화가 어렵고 다른 학교이거나 다른 학년이라도 배운 교육 내용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니 국민 공통 정서를 함양해야 할 교과서가 국민간에 이질적 정서를 형성할 수 있고 교육 내용의 연계가 안 되어 이미 배운 내용을 또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에 있어 교육 내용의 단계성과 연계성은 중요하다. 지식을 습득하고 심화시키는 과정에서 잦은 교과서의 변경은 지식을 체계화시키는데 어려움을 주게 되어 오히려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이번 교과서는 집중 이수제에 대비한 교과서인데 집중 이수제로 인한 문제의 하나가 역시 단계성과 연계성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2009 개정교육과정에서 집중 이수제를 내세웠던 교육이 2012년 교육과정 개편에서는 사실상 집중이수제가 폐지되었다. 그러면 다시 2007 교육과정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인가. 혼란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의무교육을 하고, 무상으로 교과서를 주고, 무상으로 급식을 먹이고, 이제는 무상으로 교복을 지급하자고 한다. 무상으로 먹이고 입히고 책을 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교육인가. 하지만 교육은 무상만이 최선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노동에는 댓가가 있음을 가르쳐야 하듯 무상에는 그만큼의 책임도 있음을 가르쳐야 한다. 못 먹고 못 입었던 어른들의 어린 시절 아픔 때문에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아픔 없이 키우자고 의견을 모으는데 동참하겠지만 아픔 없이 키우는 게 아니라 물건의 가치를 모르고 자신의 것을 챙기지 못하여 낭비하고 아무렇게 다루도록 키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정책은 미래를 향해 치달려야 하기에 현장에서 다소 무리가 되고 반발이 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먼 안목이 없이 교육과정을 자꾸 개편하여 교육현장을 혼돈에 빠뜨리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신중하지 못한 교육과정 개편이 교육현장에는 얼마나 큰 쓰나미로 몰려오는지 현장에 있어 봐야 안다. 그럼에도 누구하나 정책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앞만 보고 달리는 교육 정책이 어떤 혼돈의 현장을 불러올 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7차 교육과정 교과서로 가르칠 때와 2007교육과정 교과서로 가르칠 때와 2009 개정교육과정 교과서로 가르칠 때에 학생들에게서 달라지는 차이가 무엇이란 말인가? 학생들의 실력이 더 우수해졌는가. 학생들이 인성이 더 좋아졌는가. 학생들이 더 창의적으로 변했는가. 학교 현장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지 않으려면 교육을 길게 내다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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