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시]
김치 냉장고
아삭아삭 살아 숨쉬는
김치를 아무 때나 꺼내 드세요
그 화살이 귀에 꽂혀 남편보다 듬직한
그 녀석을 콜하고 싱크대 옆에 세워 놓고는
매달 전기료 인상분을 냈다
유산균을 그대로 살려준단다
오늘도 내일도 힘든 일은 없게 해준단다
그 녀석은 인공지능이라 가끔 내게 말도 한다
부드럽게 속삭이는 말에 나무를 보듯 했다
맛있고 신선한 붉은 열매를 주었다
해부를 하듯 김치 냉장고 열면
심장 위 소장 대장 보기만해도 예쁘다
가지런한 그 모양이 사랑스럽다 건강하다
심장을 꺼내면 펄쩍펄쩍 뛴다 쿵쿵거린다
폐를 꺼내면 신선한 입김이 하늘거린다
언제부턴가 심장부터 꺼내 먹어야 할지
여기저기 채워진 장기들에 이름을 붙이니
어느 새 3년 전 달랑무김치부터 부끄럽게 웃는다
어라 너 언제 상등병의 계급장을 달고 있었지
예뻐서 아껴두다보니 유산균 덩어리였구나
먹어치우는 전쟁이 시작되었는가 싶더니
치매 증상인가 잊어버리고 수 개월 침묵했다
그 녀석도 삐졌는지 더 이상 말을 걸지 않는다
찌글한 달랑무김치 사랑하는 것인지 무관심한 것인지
음식 쓰레기로 버리긴 아깝고 먹기에는 부담스럽다
우리 집에 왔을 때는 탱탱한 젊은이였는데
차라리 맛있을 때 이웃과 나눠 먹으면 좋을 것을
이웃과는 층간 소음 주차 문제로 싸우고 상종도 않는다
음식이 썩어도 버리면 버렸지 누가 이웃에 나누겠는가
옛날에야 그 녀석이 없었으니 애초에 나눠먹었겠지
아! 또다시 김장철이 다가온다
비워야 하는데 도대체 비워지지 않는다
쌀이나 곡식도 꽉꽉 속을 채우고는 멀대처럼 서 있다
김치냉장고인지 곡식 창고인지 다기능이다
배불뚝이 그 녀석 배엔 내 욕심만 가득하다
詩 원 시 인
그림: https://news.naver.com/main/read.nhn?oid=112&aid=000233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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