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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 아산과의 인터뷰
- '이 땅에 태어나서'를 읽고
"아산 정주영 회장님!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21세기 원시인입니다."
"그래요. 반가워요. 닉네임이 '원시인'이라구요. 재밌네요. 원시인이 21세기에 국어 선생님을 하고 있다니 참 재미있는 발상입니다. 그것도 대한민국의 근대 경제를 일으킨 박정희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다니셨던 배화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신다니 더욱 반가워요. 그래, 타임머신을 타고 어째 저를 찾아오셨나요? 방학 동안 연수하시느라 힘든 가운데 내가 살아온 이야기 '이 땅의 태어나서'도 읽더니 유튜브에서 며칠 간 다큐멘터리 영상에 빠져 사는 모습을 봤어요. 그러고 보니 원시인쌤도 한 번 빠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 살더군요."
"아! 저를 다 보고 계셨습니까? 부족하지만 저도 뭔가에 빠지면 '끈기'를 넘어 '오기', '오기'를 넘어 '독기', '독기'를 넘어 광기'로 치달리곤 합니다. 아직 '광기'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원시 세상의 이야기가 그리워 글로 쓰니까 요즘 사람들이 시(詩)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8권의 시집을 내니 '시인'(詩人)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시인이 되려면 그래도 '으뜸 가는 시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여 '원시인(元詩人)이 되었습니다."
"어허! 그것 참 재미있는 이야기네요. 그래서 원시인이 되었군요. 인생을 독특하게 사시는 분이군요. 그래도 원시인쌤은 아이들을 가르치니 참으로 즐겁겠소. 맹자의 인생삼락(人生三樂) 중의 하나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즐거움이 아니겠소. 내 비록 소학교만 나왔다지만 소학교를 2등으로 졸업했고, 그때 당시에는 소학교만 졸업해도 17%에 속하니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배우지 못하고 살았겠소. 난 서당에서 천자문, 소학, 명심보감,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떼었으니 나도 학식은 갖추었다오. 내 학식이 어느 정도인 것 같소?"
"천자문과 소학, 명심보감을 하셨으니, 중학교는 하셨고, 논어, 맹자를 하셨으니 고등학교를 하셨고, 대학 중용까지 사서를 하셨으니 대학을 졸업하신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뭐 허준이 요즘 박사학위를 받지 않아도 동의보감으로 우리는 박사라 해도 인정할 수 있듯, 회장님은 '성공시대', '이 아침에도 설레임을 안고',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등 많은 책을 내셨으니 저는 책을 세 권 이상 내면 박사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회장님은 미국 조지 워싱턴대학교에서 경제학 명예 박사학위를 받으셨고, 경희대, 연세대, 고려대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으셨으니 매우 훌륭하십니다."
"그래요? 좋게 평가해 주시니 고맙네요. 내가 세상을 떠나온지 벌써 20년이 되었구료. 그래 세상에서는 나에 대해 어떻게 말한답니까? 나야 일제식민지 치하에 가난한 농부의 장남으로 태어나 공부로 세상을 호령하고 싶었으나 아버지는 2대 장남이니 가업을 계승하여 동생들을 보살펴야 한다고 하셨지요. 내사 가만히 보니 농사라는 것이 아버지처럼 새벽에 일어나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면할 길이 없더군요. 땅을 넓혀야 한다고 소를 키워 땅을 사고 황무지를 개간하셔도 여전히 가난하게 사시더라구요. 난 도회에 나가 살고 싶어 가출을 했지요. 처음에는 철도 공사판에 가서 일도 하고, 부기학원에 다니면서 사법고시 시험도 두 번이나 보았지요. 그 때는 동아일보에 이광수 작가님이 '흙'이라는 작품을 연재하셨는데 어찌나 판사의 삶이 가슴을 뛰게 했는지. 지금 청소년들 BTS 보면 가슴 뛰는 것이랑 진배없죠."
"회장님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평가는 '불요불굴의 개척정신을 실천한 시대 영웅'이라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시대의 빛'같은 삶을 살아오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삶을 살도록 하신 것이 일제식민지의 어려운 삶 속에서 '가난'을 체험하고 가난을 벗어나 부자로 살겠다는 강한 의지가 오늘의 회장님을 위대하게 이끌어 오신 원동력이 아닌가 합니다."
"원시인쌤은 '가난'이 뭔지 알아요? 말씀하는 것 보니 조금 아시는 듯도 하군요. 그래요. '가난'이 나를 가르쳤지요. 논밭에서 일하다 지쳐 논두렁에 앉아 열심히 일하시는 아버지를 보면 바람이 속삭이듯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다'했지요. 자식을 위해 사랑으로 가르치는 아버지 마음, 한밤중에 치성을 드리시는 어머니 마음 왜 모를까마는 나는 마침네 4번째 가출로 세상과 정면 승부를 시작했지요. 그때가 열아홉 살 때였지요. 강연을 많이 하다 보니 이제 저절로 기억이 되었네요. 인천부두 공사장, 보성전문학교 교사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스무 살 때 쌀가게 복흥상회에 취업하여 자전거로 배달하던 시절이 신났지요. 무악재 고개를 넘으면서도 힘든 줄 모르고 다녔죠. 지금 생각해 보면 부모님 주신 타고난 건강과 체력이 내 재산이었다오."
"예, 그러셨군요. 저도 끼니를 많이 굶어서 배고픔의 설움을 조금 압니다. 제가 자란 60년대 역시 시골은 가난하여 미국 원조 밀가루로 국수를 끓여 먹었고, 저녁엔 일찍 자니 죽 끓여 드셨다는 회장님의 글을 보고 조금 동감을 했습니다. 회장님은 부모님 주신 건강이 재산이셨지만 저는 큰 병을 앓아 병원에서 흰 벽이 까맣게 되는 경험을 몇 번 넘기고 하나님께 30년만 더 살게 해달라고 눈물기도로 매달려 살아났습니다. 지금은 제게 존재하는 것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라 생각합니다."
"아하, 그런 아픔이 있었군요. 삶의 시련이라 하면 나도 할 이야기가 많죠. 쌀가게가 폐쇄되고 자동차 수리공장을 세웠는데 불나고 다시 '아도서비스'를 세웠으나, 일제에 의해 강제 합병되어 망했죠. 하지만 그 때 그 기술로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세워 현대자동차의 모태가 되었어요. 그 때 또 같이 세운 것이 현대건설이었죠. 돈을 더 잘 벌려면 건설업이 대세였기에 '현대건설사'을 세웠죠."
"회장님께서도 기적의 연속인 삶을 살아오셨네요.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한 번도 포기하지 않고 달려오셨으니 그 점을 국민 모두가 공감하고 존경하는 이유입니다." "나의 거침없는 추진력은 망설임이 없었죠. 부싯돌에서 불을 피우려면 돌이 부딪는 순간에 번쩍이는 불빛으로 불을 붙여야 하듯 시대는 끊임없는 위기와 기회를 내게 주었죠. 그 때 6.25 전쟁이 나고 미군이 들어오고 남들이 못한다고 기피하는 일은 내게 오히려 기회가 되었죠. 세상에 안 되는 일이 어디 있겠어요. 내게는 남들이 불가능을 말할 때 그 일을 해내고 마는 '짜릿한 성취감'이 나를 이끌어 오는 원동력이 되었다오."
"회장님의 그 '짜릿한 성취감'은 이제 시작입니다. 저도 책을 읽으면서 흥미진진했던 것은 사실 6.25 이전의 이야기보다 전후에 대한민국을 세계 속에 알리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기적을 일궈나가신 이야기가 더 흥분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떻게 이처럼 사람의 심장을 흔들어 놓을 수 있는지요. 아마 회장님께서 이광수의 '흙'을 읽으면서 그러셨을 것이지요?"
"그래요. 내 일생에 나를 뛰어 넘는 세 개의 사건을 말하라면, 첫째는 낙동강 고령교 복구공사였지요. 당시 '현대건설주식회사'라 했지만 장비라야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건설 지식을 갖춘 인부들도 실력이 부족했으며, 교각이나 상판도 부서지고 사라져 국가가 발주한 사업을 맡아 사업 진척이 늦고 인부들 시위까지 겹쳐 6,500만환의 손해를 입어 가족 친척들의 집과 자동차 수리공장을 팔아야 하는 고통을 겪었죠. 그럼에도 1955년 완공을 시켜낸 것은 바로 기업가 정신인 '신용' 때문이었죠.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손님과의 '신용'를 꼭 지키는 정신이기에 결국 '한강인도교' 복구공사를 맡아 재기에 성공하게 되었죠.
"아! 그러셨군요. 회장님의 그 '기업가 정신'을 태동하게 하여 후세가 본받을 수 있도록 한 전환기적 사건이었군요. 지금도 '아산나눔재단'에서 회장님의 '기업가 정신‘을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교육하고 있습니다. 저도 올해 회장님의 기업가 정신을 학교 동아리 활동으로 교육하고자 신청했습니다. 회장님의 기업가 정신을 계승하여 대한민국을 발전시키고 세계로 뻗어나가는 인재 양성을 교육하는 노력에 저도 보탬이 되고자 신청했으니 올해는 꼭 같이하고 싶습니다."
"원시인쌤이 기업가 정신을 교육하는 '아산나눔재단' 사업에 신청해 주었다니 고맙군요. 자라나는 학생들이 성공하려면 어떤 정신으로 살아야 하는지 많은 사람들이 성공의 법칙을 가르치지만 기업가는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신용' 하나는 철저히 지켜야 해요. 신용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러니 돈으로 손해를 보는 것은 별반 문제가 되지 않지요. 사업가가 잃으면 안 되는 것이 돈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신용'을 잃으면 돈도, 양심도, 목숨까지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나를 뛰어넘는 둘째 사건은 1970년 그러니까 56세 되던 해에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던 때였지요. 서울과 부산까지 총 길이 428Km를 총 사업비 429억으로 2년만에 완공하는 공사였지요. 세계 고속도로 건설 역사상 가장 적은 돈으로 가장 짧은 기간 안에 건설했지만 가슴 아픈 것은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지요. 대전 - 대구 구간에 소백산맥을 뚫어야 하는데 그 중 당제터널 공사는 경석이 아니라 절암 토사로 되어 있어 암반이 무너지는 사고로 사망자가 발생하고 낙반 사고가 잦자 인부들마저 떠났지요. 2년이라는 공사 기간을 맞출 수 없었는데 다행히 비쌌지만 조강 시멘트를 단양 공장에서 생산하게 됨으로써 공사 기간을 맞출 수 있었지요. 그 고생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나요. 매일매일 사는 일이 기적이었다 하면 되지요. 무엇보다 그 때 희생된 인부들에게 송구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아팠지요. 그 일로 나는 나 스스로에게 미안함을 감추고 더욱 굳센 마음으로 확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요.
"그 때 회장님께서 서울에서 매일같이 공사장을 다니시면서 발이 커서 맞는 장화도 없이 맨발로 다니셨다는 이야기도 읽었습니다. 경부고속도로를 수십 번 자동차로 오갔지만 5시간 가량 달리면서 지루하고 오래 걸린다는 생각만 했지 그렇게 힘든 수고와 인부들의 목숨이 달렸던 고속도로라 생각 못했습니다. 이제부터는 경부고속도로를 달릴 때마다 공사 중에 사망했던 인부들의 넋을 위해 기도하면서 달려야겠습니다. 특히 당제터널을 꼭 기억하겠습니다. 저희보다 이른 시대에 태어나셔서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이런 훌륭한 고속도로를 만들어 저희에게 편리를 제공하고 국가 발전에 기여하셨으니 감사드립니다."
"뭐! 일찍 태어난 기업가들의 사명이었지요. 비록 군사 구테타로 정권을 잡았다는 지울 수 없는 약점을 가진 지도자였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국가 발전에 대한 열정적인 집념과 소신, 그 총명함과 철저한 실행력을 존경하고 흠모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어요. 사심 없이 나라만을 생각하던 대통령을 도와 한 푼이라도 절약하여 공사를 완성하려던 목표 외에 다른 생각은 없었지요. 이 나라 대한민국을 잘 사는 나라로 만들어 보겠다는 일념뿐이었지요. 맨발이면 어떻겠습니까?"
"저도 일제 식민지와 6.25 전쟁의 역경 속에서 삼성을 일궈내신 삼성 이병철 회장님과 박정희 대통령, 그리고 회장님 이렇게 세 분은 마치 임진왜란의 위기 속에 이순신 장군을 보내어 나라를 구할 수 있도록 해주셨던 것처럼 대한민국의 경제를 도약시켜 세계 10위의 선진국으로 만들게 했던 위인이 아닐까 합니다. 회장님 태어나실 때는 사실 우리나라는 지도상에 없던 나라 아니었나요? 이제는 삼성, 현대는 물론 세계에 내로라는 대기업들이 우리나라 경제를 선도하고 있으니 자랑스럽습니다. 선생님으로 아이들 앞에서 우리나라를 말할 때나. 외국에 나가 여행을 할 때도 한국인이라는 긍지가 속에서 우러나니 대단합니다."
"나를 뛰어넘는 셋째 사건은 사우디아라비아 쥬베일 산업항 공사였지요. 내륙에서 12Km 떨어진 해상에 50만 톤급 유조선 4척이 정박할 수 있는 '바다 위의 항구'를 만드는 공사였지요. 계약금 10억 달러를 받아 당시 한국은 외환위기를 막을 수 있었지요. 수심 30m 아래에 박을 550톤짜리 자켓이 개당 5억인데 89개가 필요했지요. 이것을 현지에서 제작하면 막대한 달러를 날리는 일이기에 나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죠. 그래서 나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결정을 했죠. 우리나라 울산에서 만들어 해상 수송 작전을 펴는 일이죠. 참모들 누구하나 호기심을 갖는 얼굴이 없고 도리어 기가 막힌다는 표정들이었죠. 하지만 나는 한 번 결정하면 결코 번복하는 일이 없었죠. 10층 크기의 철골구조물 89개를 바지선에 실어 12,000Km를 달려온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죠. 이 해역은 파도와 풍랑이 극심한 지역이라 대만 해상에서 바지선과 철골구조물을 잃은 사건도 있었지만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죠. 이것을 계기로 우리 현대를 비웃던 많은 사업가들을 놀라게 했던 사건이죠. 사람이 큰 인물로 성장하려면 세 권의 책을 읽어야 하는데 첫째는 나의 도전과 상상력을 키워준 '아라비안나이트'이고, 둘째는 그 많은 지략과 승부수를 읽어내는 '삼국지', 셋째는 불가능은 없다는 '나폴레옹 자서전'을 읽는 일이죠."
"아하! 역시 회장님께서도 그 비상한 전략과 승부수, 거침없는 도전력이 모두 독서에서 비롯된 힘이셨군요. 저는 '아라비안나이트'와 월탄의 '삼국지'를 읽었지만 '나폴레옹 자서전'은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쥬베일 바다에서 용솟는 샤하르자드 여인의 지혜가 회장님께로 마구 솟구쳤을 감동을 느낍니다. 신기에 가까운 제갈공명의 지략과 나폴레옹의 도전력이 꿈틀꿈틀 10층 높이의 철골구조물들이 마술처럼 엮어져 12Km를 내달려 마침내 쥬베일 산업항이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듯 회장님은 '상상', '지략', '도전'으로 회장님의 아성을 쌓으셨습니다."
"에이! 원시인쌤이 나를 너무 높이 띄우시는군요. 나는 그리 훌륭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냥 남들이 나를 '귀신같은 사람'으로 보길래 나도 사실 상상을 확신할 수 없었지만 '불가능을 가능'하게 해서 나 스스로에게 놀라면서 확신을 얻을 수 있었던 세 가지 사건을 말한 거였죠."
"회장님! 회장님이 들려주신 세 가지 사건 잘 들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뽑은 '정주영 회장님의 신화' 세 가지를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제가 회장님의 귀하신 시간을 많이 빼앗는 것 같기도 하고 이미 다들 잘 알고 있는 신화로 굳어진 일이기에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허허! 원시인쌤이 뽑은 나의 신화라 하니 궁금해서 듣고 싶어지네요. 말씀해 보세요."
"예! 제가 뽑은 정주영 회장님의 신화 첫째는 현대조선을 창업하신 이야깃니다. 현대조선사를 창업하시려 일본 미국을 넘어 영국 버클리 은행까지 달려가 차관을 들여온 이야기는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의심이 가는 이야깃니다. 아직 구매도 하지 않은 미포만 사진 한 장, 유조선 설계도면 한 장뿐으로, 아! 주머니 속에 500원짜리 지폐 한 장도 기지와 유머로 권위적인 영국의 은행을 넘어 배를 살 선주인 그리스의 리바노스를 설득시킨 이야기는 지금도 웃음이 나는 통쾌한 신화입니다. 조선소를 지을 땅을 사지도 않았고 조선소도 없는데 3,600만불 짜리 배를 두 대나 파는 계약을 했다는 것은 이제까지 조선의 역사를 보거나 미래의 조선 역사상 있을 수 없는 이야깃니다. 계약금을 13억 받아가지고 돌아오시는 비행기 안에서의 그 짜릿한 성취감은 대단하셨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즐거움에 도취되기엔 그 이후에 펼쳐질 전쟁 같은 실전에서 잠을 못 이루시는 싸움이셨을 것입니다. 거대한 쇳덩어리가 미포만을 떠나 태평양으로 향하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을 것입니다. 그 이후 미포만 현대조선소는 세계적인 조선소로 성장하여 대한민국 조선업 세계 1위를 달성하는 쾌거가 되었습니다.
둘째는 아산만 방조제 건설입니다. 탁상에 앉은 사람들이 무모한 도전이라 비웃을 때, 그 비웃음이 에너지로 승화되어 불가능을 가능으로 꽃 피워내시는 신화였습니다. '땅을 넓혀라'시던 아버님의 말씀이 귓가에 선연하셨겠지요. 땅이 넓어야 가난을 면할 수 있다. 그래서 서산 앞바다를 막아 간척지로 땅을 넓히시고 싶었겠지요. 방조제가 완성될수록 빠른 유속으로 불가능의 확률은 더욱 커졌겠지요. 15톤, 30톤의 돌무더기도 삼키는 무서운 유속 앞에서 또다시 '정주영 신화'가 탄생하였으니 그것은 '유조선 공법'이었습니다. 거대한 유조선으로 빠른 유속을 차단하고 그 사이에 제방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쉬운 일이었는데 그 쉬운 일도 처음 생각해 내기에는 대단한 도전력이 필요했던 것이었습니다. 그 때 많은 참모들이 "회장님!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불가능을 말했겠지요? 그 때 하신 말씀을 저는 기억합니다. "이봐! 해봤어?" 결국 회장님의 불도저 같은 철학은 결국 방조제 건설의 신화로 남았습니다. "아버지! 어디 계시죠? 제가 농토를 넓혀 대한민국 미래 식량의 터전을 확보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굶주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 목소리가 지금도 들려오십니다.
셋째는 금강산 공동 개발과 경제 협력입니다. 당시 북한은 호시탐탐 남침야욕을 노려왔기에 모든 관계가 적대관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1989년 허담 북한 당국자를 서울에 초청하여 통일의 물꼬를 트고 북한의 낙후된 경제를 지원하는 회담을 열었습니다. 금강산 관광의 문을 열어 주심으로, 이산가족을 만나게 하고, 개성공단을 여는 단초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TV를 통해 방영되었던 1998년 500마리의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넘어 북으로 가시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회장님의 불가능의 대한 도전으로 금강산을 두 번이나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통일연구보고서 공모전에서 전국 3등으로 금강산을 다녀오고 서울시교육청 교사연수 발제자로 '북한 문학의 흐름'을 연구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회장님의 크신 업적이며 지금 다시 경색된 남북관계를 돌아보면 역시 신화로 남겨지는 사건이었습니다."
"오호! 그래요. 두 번이나 다녀왔군요. 그런데 다시 통일이 멀어지고 있으니 걱정이네요.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이 그 책임을 지고 분단되었어야 하는데 독일은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되었다가 통일을 이루었고, 우리나라는 일본 대신 분단되어 75년이 지난 아직까지 분단되었으니 내가 눈을 감을 수가 없네요. 내가 나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기적 같은 일들을 이루었지만 통일을 이루지 못한 것이 가장 가슴 아픈 일이라요. 북한에 2,500만 동포들을 생각하면 괜히 죄지은 느낌이라요. 그동안 애써 노력해서 배불리 먹고 잘 사는 것도 속상하다오."
"회장님께서는 고향을 북에 두고 살아오셨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겠어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교사를 하면서 일반 서정시를 쓰다가 비로소 '통일시'를 쓰게 된 계기가 바로 회장님의 '통일소 방북 사건'이었습니다. 통일 연구 보고서를 쓰고, 통일교사연구회에서 통일 후 교육과정을 쓰고 있으며, 통일시집 시리즈 '통일이 답이다'로 3권을 출간했습니다. 통일 특강을 다녀 보면, 회장님의 방북소가 큰 울림이었음을 실감합니다."
"그렇군요. 아산 간척지에 '기업가 정신'을 뿌리고, 판문점에 '통일 나무'도 심어놓았으니 원시인쌤이 부지런히 아이들을 가르쳐 통일이 빨리 오기를 바래요. 나는 이제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답답하다오."
"이제 회장님은 직접 뛰지 않으셔도 대한의 푸른 젊은이들이 회장님의 '기업가 정신'을 받들어 통일 대한민국, 세계 제일의 국가로 도약할 것입니다. 아참! 회장님은 저를 못 보셨지만 저는 회장님을 직접 한 번 뵈었습니다. 1994년 박목월 시인의 아드님 박동규 교수님이 '해변 시인학교'를 열었을 때, 현대 아산에서 시인들에게 저녁식사를 초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현대 직원 연수생들도 같이 있었는데 먼발치서 회장님을 뵈며 맛있는 식사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회장님께서도 1985년부터 여름철마다 경포대, 울산, 만리포에서 열린 ‘해변 시인학교’에 참가해 문인들과 어울리며 문학과 인생에 대해 토론을 즐기셨다고 들었습니다. 시인 지망생들과 장작도 나르고 궂은 일도 하시는 문학적 감수성과 글솜씨가 뛰어나신 문학 소년과 같았다는 시인들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 때 한 끼의 식사를 대접 받고 가슴에 담았다가 2015년 회장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시 한 편 지어 올렸습니다."
이봐 해봤어
- 정주영 회장(1915-2001)
위기의 순간마다
시련이 없는 사람 없나니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노라
살며 무수한 기회 앞에
거대한 세상 바라보이는가
나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노라
어둠 속에 보이는 광명
땀 흘린 뒤의 달콤한 열매
난 가슴 뛰는 삶을 살았노라
시대가 날 낳았다고
좋은 기회의 때를 만났다 말라
큰 산 넘어야 높은 정상 보이리라
시간은 저울에 올려졌나니
내 앞에서 불가능을 말하지 말라
그 때마다 말하리니 '이봐 해봤어'
https://www.youtube.com/watch?v=FGiNQndZz-A
https://www.youtube.com/watch?v=VTCgnEcXdrQ
"오호! 잘 쓰셨구료. 고마워요. 나도 시가 좋아 해변시인학교에 다니곤 했죠. 박목월 시인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어 한 20년 해변 시인학교를 따라 다녔지요. 매번 해변 시인학교 저녁을 대접하면서 시인들을 좋아했지요. 어쩌면 나의 기획력과 창의성은 인문학적 감수성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죠. 그 감수성에 '하면 된다'는 실천력! 그것이 오늘의 나를 있게 한 힘이죠."
"세상 사람들이 회장님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 바로 그 '초인적인 능력'입니다. 남들이 해낼 수 없는 일을 귀신처럼 해내고야마는 실천력입니다. 저를 비롯한 요즘 젊은이들은 '통밥'이 있어서 머릿속에 통밥을 굴려서 힘들 거라면 그냥 포기를 합니다. 회장님처럼 밤낮으로 매달려야 할 '가난'의 힘도 없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야 말겠다는 '꿈'도 없지요. 마음속에 빈 공허함을 '꿈'으로 채우고, 시련 앞에 '깡'으로 밀고 나가며, 탁월한 기지를 발휘하는 '꾼'의 기질이 없습니다. 저는 일찍이 회장님의 성공적인 단면에서 '오기', '독기', '광기'를 배웠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성공하려면 '끈기'를 넘어 '오기', '독기', '광기'를 가져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오기'를 품으려면 '라이벌'이 있어야 하고, '독기'를 품으려면 마음속에 '상처'가 있어야 하고, '광기'를 품으려면 '미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놀라운데요? 원시인쌤이 제 인생을 통해 깨우친 철학이 남다른데요. 어쩌면 '가난'이 나의 라이벌이었고, 나의 상처였고, 나를 미치게 하는 이유였다고 해도 좋네요. 그럼 '광기'를 넘어가면 어찌 되나요?"
"바로 회장님처럼 '신기'한 사람, 즉 '신기'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김연아 선수가 빙상 위에서 연기하면 라이벌인 일본 선수가 일어나 박수를 치는 경지, 즉 라이벌을 감동시키는 경지를 저는 '신기'라고 합니다. 회장님은 그동안 라이벌을 감동시키며 살아오셨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힘은 바로 '신기'입니다.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를 죽이려고 뜨거운 방에 가둬 불을 지폈더니 서산대사의 수염에서 고드름이 달렸다는 전설 같은 신화를 읽었습니다. 회장님은 우리에게 수많은 '정주영 신화'를 남기셨습니다."
"오호! 원시인쌤의 대단한 평에 감동입니다. 오늘 원시인쌤과의 대화로 내가 인생을 헛살지 않았구나 하는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헛사시다니요? 현대가 있는데요?"
"물질과 기업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지요. 잊혀지지 않는 정신이 중요하죠."
"현대나눔재단은 회장님의 기업가 정신을 이어갈 것이며, 대한민국의 원동력으로 세계를 이끌어 가는 힘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정주영 정신, 정주영 신화'는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원시인쌤이 통일시로 통일을 지향한다니 참으로 기대를 가져요. 원시인쌤도 멋진 통일시인으로 기억되길 기대해요."
"회장님! 오늘 아버님처럼 따뜻하게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회장님께서 그토록 염원하시던 통일을 앞당기는 노래를 시로 쓰는 통일시인이 되겠습니다. 회장님의 기업가 정신을 학생들에게 전하는 교사가 되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잘 가시게. 원시인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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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발신]
<아산재단 독후감 대회 심사결과 안내>
아산 정주영 20주기 추모 독후감 대회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재단은 소설가, 문학평론가 등으로 심사위원회를 구성하여 1·2차 예심과 본심 심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심사결과 귀하께는 수상의 기회를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많은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2021.03.16 오전 10:32)
아산 정주영 서거 20주년 독후감 응모에서 떨어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떨여져도 신났다. 평소 존경하던 분의 모습을 독후감으로 정리할 수 있어서 좋았다. 기업가 정신 교사 연수나 열심히 듣고 2학기 때는 학생들에게 기업가 정신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지도해야겠다. 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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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원시인은 아산과 인연이 없지? ㅠㅠ
난 아산 적극적인 팬인데.. 아산은 원시인 안 좋아 하시나??
그럼 다음엔 또 뭐가 있지? 기업가 정신동아리 활동이다..
이것은 이미 정해졌으니 취소하시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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