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학문 수필가]
봄 햇살이 머무는 곳 춘양

경북 봉화군에 위치한 춘양은 태백산의 남쪽 사면에 자리하여 해가 빨리 들고 볕이 오래 머무는 지형으로 예부터 “긴 겨울 끝에 봄을 제일 먼저 맞는 마을”로 불렸던 곳이다. 농사짓는 사람들 사이에선 춘양에 눈이 녹으면 봉화 전역에 봄이 온다는 말도 전해져 온다.
조선시대에는 영남 유학의 변방 거점 같은 역할을 했는데, 깊은 산골에 위치한 춘양은 오히려 외세 전란의 영향을 덜 받아 학문과 가문이 오래 유지되었고, 여러 서원과 재실이 더러 남아 있다. 춘양의 서벽, 도천 일대에는 학문과 절개를 중시하는 선비 가문들이 집단 거주했고, 그래서 춘양을 흔히 산중의 선비 마을이라고도 불렀다.
춘양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춘양목이다. 춘양목은 조선시대 궁궐, 사찰, 선박, 관棺 등에 쓰이던 최상급의 소나무로 결이 곧고, 송진이 많아 잘 썩지 않으며, 벌레가 거의 먹지 않는 왕실 전용 목재였다. “춘양에서 난 소나무는 벼슬아치보다 더 귀하다.”는 말이 전해져 올 만큼 조선 후기에 와서는 춘양에서 나무를 함부로 베면 사형감이었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다.
또한 춘양 인근의 깊은 산에 ‘봉산 지기’라는 목재 감시원이 상주했고 몰래 나무를 베는 자는 역적 취급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춘양의 고산지대가 백두대간 핵심 보호구역과 완충 버퍼 구역으로 지정하여, 생태계 보전, 생물 다양성 유지, 지속 가능한 산림 관리 등, 그 생태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춘양은 깊은 산골이지만 춘양역 때문에 한때 봉화에서 가장 붐비는 곳이었다. 일제 강점기 춘양의 울창한 소나무 숲을 일제가 군수 건축 자재로 빼내기 위해 철도를 가장 먼저 놓은 곳이다. 그때 만들어진 영동선의 핵심 거점이 춘양역이었다. 전해지는 한 유래에 따르면, 영동선 철도 부설 당시 원래 직선으로 이어질 계획이던 노선을 춘양역 쪽으로 억지로 끌어들여 공사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여기서 억지로 춘양에 철도를 만들었다는 뜻에서 ‘억지 춘양’이라는 표현이 생겼다는 설이 전해온다. 실제로 춘양면에서는 지금 ‘억지 춘양시장’이라는 이름을 실제로 쓰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억지춘향’과 억지 춘양을 혼동하고 있는데, ‘억지춘향’은 원치 않는 일을 어쩔 수 없이 한다는 뜻의 관용구로, 춘향전에서 변 사또가 춘향에게 억지로 수청을 요구한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억지춘양’은 앞서 언급했듯이 영동선 철도 노선이 춘양면으로 우회하도록 억지로 수정된 일에서 비롯했다는 것이다. ‘억지춘향’이라는 말이 ‘억지 춘양’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명분이 약한 듯하다. 표준사전에서는 ‘억지춘향’만 실려 있다. 그러면 이 심심산골 춘양에 철도가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가장 먼저 수탈할 곳으로 춘양을 찍었다. 군함, 병영, 교량, 신사神社를 만들기 위해 목재가 필요했고, 그 최상품이 춘양에 있었다. 당시 춘양역은 사람을 위한 역이 아니라 나무를 실어 나르기 위한 수탈의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춘양의 원시림은 수십 년간 춘양역을 통해 일본으로 실려 갔고, 산은 헐벗게 되었다. 그래서 마을엔 홍수, 산사태, 가난이 찾아왔다. 춘양은 골이 깊고, 흐르는 물이 맑고, 늘 바람이 강하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과묵하고 고집이 세다. 약속을 중히 여기며 거짓을 싫어한다. “춘양 바람을 맞은 사람은 휘어지지 않고 부러진다.”는 말이 있다. 춘양 사람의 굽히지 않는 성정을 상징하는 말이다.
춘양은 산세가 태백산맥의 주능선이 남서쪽으로 꺾이면서 잠시 완만해지는 지점에 놓여 있다. 북쪽으로 태백산, 청옥산, 백병산에서 남서쪽으로 휘어져 영주 소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언저리에 위치하고 있다.
산세의 특징이 고산, 완만한 사면, 남향으로 안개와 바람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또한 평균 해발이 600미터에서 900미터로 북쪽의 고산들이 찬바람을 막아주며, 깊은 골짜기는 안개와 습기가 오래 머무른다. 이러한 환경은 소나무의 성장을 늦추지만, 대신 조직이 치밀해지고 수지가 많이 쌓이는 명품 소나무가 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동서남북이 모두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 구조인 춘양에 전쟁 때도, 수탈 때도 외부 세력이 들어오기에는 매우 어려운 땅이었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는 봉산封山으로 관리했고, 일제는 소나무를 수탈하기 위해 철도를 뚫어야만 했다. 춘양 소나무 숲에서는 임산물로 송이버섯을 비롯한 버섯류가 품질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해발이 높아 사과나무 재배 지역이 최근 들어 크게 늘었다. 지구온난화로 사과 재배가 점점 북쪽으로 이동하는 만큼, 춘양이 사과 재배지로 적합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밤낮의 일교차가 커서 당도와 저장성이 뛰어난 사과 생산지로 발돋움했다.
필자가 춘양에 오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세 해째를 맞았다. 춘양에서 살아가려면 우선 산과 친해져야 한다. 어디를 가도 보이는 것은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다. 산등성이는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골짜기는 참나무를 비롯한 잡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산세는 출렁이는 물결이요, 풍광은 한 폭의 산수화요, 뾰족한 산마루는 구름을 두르고 하늘에 맞닿아 있다.
아름드리 소나무는 백 년의 세월을 품었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아픔을 딛고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춘양목의 기백이여! “바람은 나를 시험했고, 산은 나를 단련했다!”

노학문 - 수필가
2004년 《문예사조》 수필로 등단
한국문협 회원, 제5회 짚신문학상 수상
수필집 『뫼들내』
[신호현의 신문예 2026 5-6월호 수필평]
봄 햇살이 머무는 곳, 춘양
— 기억과 자연, 그리고 역사적 상흔의 서사

노학문의 「봄 햇살이 머무는 곳 춘양」은 단순한 지역 소개를 넘어, 한 공간에 축적된 자연과 역사, 인간의 삶을 유기적으로 엮어낸 수필이다. 이 글은 ‘춘양’이라는 장소를 통해 시간의 결을 드러내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일제강점기의 수탈이라는 역사적 아픔까지 함께 조망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특히 “봄을 가장 먼저 맞는 마을”이라는 표현이 읽고 난 후에도 기억에 남는 말이다.
이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자연과 인간의 긴밀한 관계에 대한 통찰이다. 태백산 남사면이라는 지형과 따뜻한 햇살, 고산지대의 기후는 단순한 배경을 넘어 인간의 성정과 삶의 방식까지 형성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는 인간과 자연이 하나의 질서 속에서 공존한다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사상과 연결되며, 춘양 사람들의 과묵함과 강직함 역시 이러한 환경 속에서 형성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이 작품은 춘양목을 중심으로 자연이 수탈의 대상이 된 역사적 현실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일제강점기 철도 부설과 목재 반출은 자연과 공동체를 동시에 훼손한 사건이었으며, ‘억지 춘양’이라는 표현은 이러한 강제적 역사의 흔적을 상징한다. 이는 힘의 논리에 의해 자연과 인간이 희생되는 약육강식의 구조를 보여주며, “자연은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지만 탐욕은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과도 맞닿아 있다.
춘양역을 중심으로 한 서사는 지역적 특수성을 지니면서도 식민지 경험이라는 보편적 역사와 연결되며, 작품은 향토 수필을 넘어 하나의 역사적 기록으로 기능한다. 이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조지 산타야나의 말처럼, 과거를 기억하고 성찰하는 일이 현재를 살아가는 데 중요함을 일깨운다. 결국 이 작품은 자연과 역사, 인간의 관계를 통합적으로 성찰하게 하며, 봄이란 고통을 지나 도달하는 회복의 시간임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수필이라 할 수 있다.[21세기 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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